어떤 회상 / 홍인숙(Grace)
해질녘 바람은
두고온 땅 냄새 찾아
이끼낀 돌밭을 어루돈다
소근대는 호수의 물결 따라
기억의 초상(肖像)으로 걸어가면
마주 달려오는 시간들
어릴 때 물결은
두려움을 몰고 오는 파도였다
망막 가득 밀려드는 검푸른 물살로
강기슭 동생의 무덤을 끌어안고
서성이던 밤
시집간 사촌언니 집에서
온밤을 지새고 돌아온 날
"어린것이 먼길을 잘도 다녀왔네."
칭찬 뒤로 긴 꼬리를 물던 세찬 물결
어린 날의 환영(幻影)이
해 저문 정원에 긴 허리를 걸쳤다
어디선가 날아든 한 떼의 비둘기가
요란스레 물살을 훑고 지나간다
어스름 땅거미가 하늘로 오른다
정말 내게 동생이 있었을까
(2002년 미주문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