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13 06:14
그대에게
홍인숙(그레이스 홍)
"거리에 온통 낙엽이 날리고 있어. 완연한 가을이야"
생활엔 아무 보탬도 안 되는 시인인 아내가
무슨 예쁜 구석이 있으랴마는
아내의 잃은 시심까지 불러일으키는 밝은 목소리
내가 이렇게 아픈 중에도 가을은 왔단 말인가
창문으로나 바라보는 정원엔
감나무에 감만 몇개 열렸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거리 가득 가을이 쏟아졌단 말인가
옷을 입혀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아침 저녁 양 어깨를 주물러주며
밤마다 고통하는 아내의 신음소리에 안쓰러워 하는 사람
벌써 시월은 떠나가는데
세월도 못 느끼고 두문불출인 아내에게
가을을 한아름 안겨준 계절의 전령사
그대여
난 정말 그대에게 미안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펜문학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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