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6
어제:
24
전체:
458,255



 


아버지의 단장(短杖) / 홍인숙(Grace)

 

70kg 체중을 받아 안는다
85년 세월이 말없이 실려온다

침묵하는 상념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굽은 다리를
묵묵히 반겨주는 검은 단장

12월 바람도 햇살 뒤로 숨은 날
조심조심 세 발로 새 세상을 향한 날

고집스레 거부하던 단장을 짚고
"난 이제 멋쟁이 노신사다"
헛웃음에 발걸음 모아보지만

늙는다는 건
햇살 뒤로 숨은 섣달 바람 같은 것
아버지 눈동자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 같은 것


*  *  *

삶의 뒷모습 / 홍인숙(Grace)


쓸쓸한 것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홀로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세상사 잠시 잊고 굽은 어깨를 숙여
후루룩 후루룩 국밥을 먹는 뒷모습이다


온종일 침상에서 헝클어진 백발로
국밥 한 그릇 입맛나게 드시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
울컥,  쓰다듬고픈 연민이 차오른다


슬픈 것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늙고 병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 얼굴을 묻고
한 끼 식사에 열중하는 뒷모습이다


<시와 정신 2010년 봄호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 나목(裸木) <한국일보> 그레이스 2007.02.09 508
47 저녁이 내리는 바다 <한국일보> 홍인숙(그레이스) 2007.03.07 525
46 무료한 날의 오후 <한국일보> 홍인숙(그레이스) 2007.05.11 497
45 불면 <미주문학 38호> 그레이스 2007.10.30 523
44 존재의 숨바꼭질 <미주문학 39호) 홍인숙(그레이스) 2007.10.30 506
43 무료한 날의 오후 (YTN-TV 뉴스 '동포의 창' 동영상 ) 그레이스 2007.11.19 776
42 나무에게 (YTN-TV 뉴스 '동포의 창' 동영상 ) 그레이스 2007.11.19 584
41 저녁이 내리는 바다 <미주문학 41호> 그레이스 2008.05.13 471
40 쓸쓸한 여름 , 나무에게 < 중앙일보> 홍인숙(그레이스) 2008.07.17 658
39 문을 열며, 겨울커튼, 나무에게 <시향만리> 홍인숙(그레이스) 2008.07.17 731
38 잠든 바다 외 1편 <문예운동 통권 79호> 그레이스 2008.08.29 481
37 아버지의 단장 외 1편 <문예운동 통권 85호> 그레이스 2008.08.29 535
36 쓸쓸한 여름 <문학과 창작> 그레이스 2008.08.29 603
35 날개 <문예운동 100호 특집> 그레이스 2009.05.12 519
34 인연 (2) 외 1편 <시세계 2008년 겨울호> 그레이스 2010.09.18 232
» 아버지의 단장 / 삶의 뒷모습 <시와 정신 31호> 그레이스 2010.09.18 727
32 자화상 < PEN 문학 2010년 3,4호> 그레이스 2010.09.18 262
31 풀잎 <문예운동 2010년 가을호 107호> 그레이스 2010.09.28 275
30 비오는 날 <재외동포 신문> 그레이스 2010.10.14 289
29 사랑한다면 <미주 중앙일보> 그레이스 2011.08.31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