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8 15:13
아버지의 단장(短杖) / 홍인숙(Grace)
70kg 체중을 받아 안는다
85년 세월이 말없이 실려온다
침묵하는 상념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굽은 다리를
묵묵히 반겨주는 검은 단장
12월 바람도 햇살 뒤로 숨은 날
조심조심 세 발로 새 세상을 향한 날
고집스레 거부하던 단장을 짚고
"난 이제 멋쟁이 노신사다"
헛웃음에 발걸음 모아보지만
늙는다는 건
햇살 뒤로 숨은 섣달 바람 같은 것
아버지 눈동자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 같은 것
* * *
삶의 뒷모습 / 홍인숙(Grace)
쓸쓸한 것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홀로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세상사 잠시 잊고 굽은 어깨를 숙여
후루룩 후루룩 국밥을 먹는 뒷모습이다
온종일 침상에서 헝클어진 백발로
국밥 한 그릇 입맛나게 드시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
울컥, 쓰다듬고픈 연민이 차오른다
슬픈 것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늙고 병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에 얼굴을 묻고
한 끼 식사에 열중하는 뒷모습이다
<시와 정신 2010년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