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2007.05.14 01:52

홍영순 조회 수:525 추천:68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찬송가 365장 1절 2절)

우리 주위에는 남다른 역경과 고난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아픈 십자가가 그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보다 가벼운 것을 감사하며 찬송 부르며 살고 있는 그분들의 모습은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산 교회로 처음 갔을 때입니다. 교회 앞 좁은 골목 끝에는 구멍가게가 있고, 그 구멍가게 앞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며칠 후 반찬을 사려고 구멍가게엘 갔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긴 띠로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옆으로 짐을 지듯 업고 있었습니다. 그 골목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란 그 골목 밖에 없는데 그 할머니가 골목길을 거의 다 막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업고 있는 아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팔 다리를 마구 내둘렀습니다. 제가 조심스레 그 옆을 지나가려고 하자 그 할머니가 인사를 했습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이 아이가 제 큰 손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분은 바로 우리 교인이었습니다. 전 뭔가 잘못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얼굴은 온화했으며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쩔쩔매는 저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난 괜찮아요.’ 라고 소리 없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두발을 벌려 몸의 균형을 잡으며 옆으로 업은 손자에게 지나가는 차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의 아들은 저희 교회 집사님이었고 며느리는 젊고 예뻤습니다. 그 손자는 애기 때 심한 열이 있은 후 뇌성소아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 밑으로 손녀 둘과 손자 하나가 있었는데 모두 잘 생기고 똑똑했습니다.
처음 그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찬송이 있느냐고 묻자 그 할머니가 신청한 곡이 바로 365장이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엔 조용히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의 눈에선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목이 메어 찬송을 못 불렀습니다.
그 후로도 그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면 그 할머니는 언제나 그 찬송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며 며느리는 자주 눈물 흘렸지만, 그 할머니는 부를 적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손자입니다.”
가끔 그 할머니가 하는 이 말은 바로 그 할머니의 마음이요 믿음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이 믿음은 가족은 물론이고 손님들도 그 아이를 그 집의 맏손자로 대하게했습니다. 그 집에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아이 방으로 가서 인사를 하였고 선물도 그 아이 중심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애 방에서 이야기하고 예배도 같이 드렸습니다. 밥은 꼭 먹여 주어야만 했는데 반은 입에서 다시 나와도 아무도 얼굴을 찡그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 할머니는 그 무거운 십자가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이제 더 이상 365장 찬송을 부르지 않고 기쁜 찬송만 부르겠지요.
지금 그 손자는 33살이 되었는데 건강하다고 합니다. 아마 그 며느리가 눈물을 거두고 시어머니가 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아들로 키우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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