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벌레

2010.05.03 09:50

홍영순 조회 수:674 추천:72


예쁜 벌레    

봄만 되면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학교 울타리 밑을 열심히 파헤친다.
아이들이 썩은 나뭇잎 속에서 찾는 건 예쁜(?) 벌레들이다. 아이들은 꼬물꼬물하는 작은 벌레들을 찾으면 보석이라도 캔 듯 좋아한다.
Preschool에서 처음 일할 때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걸 보고 있는데 제이슨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제이슨 얼굴은 온통 웃음이 춤을 추고 자랑스러움으로 빛났다. 제이슨은 신기한 보물을 내게 보여주듯 내 앞에 주먹을 내밀더니 손을 폈다.
“어마나!?”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제이슨 손에는 작은 지렁이들이 꼼틀대고 있었다.        
나는 속이 뒤집혀 토할 것 같은 걸 겨우 참으며 말했다.
“지렁이가 예쁘구나! 그런데 지렁이는 땅속에 살잖아. 이제 그 지렁이들 집에 가고 싶겠다.”
제이슨은 손에서 꼼틀거리는 지렁이를 들여다보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이번 3월 달에는 Caterpillar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공부한다.
교실 벽마다 애벌레 그림과 사진을 붙이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도표로 만들어 걸었다. 예쁜 애벌레 그림책들을 날마다 읽어주고, 여러 가지 재료로 애벌레를 만들고 색칠했다.
하루는 캐롤선생님이 아이들을 둥글게 앉혀놓고 새까맣고 커다란 송충이와 놀았다. 팔에 놓아 머리까지 기어 올라가게도 하고 손바닥에 놓고 쓰다듬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만져 보게 했다.
아이들은 송충이를 만져보며 아주 예쁘다고 했다.
난 내 차례가 오자 도망가고 싶었다. 도저히 새까만 송충이를 만지거나 팔에 올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송충이가 내 몸에 닿는 순간 까만 송충이 털들이 다 내 몸에 파고들 것 같았다. 난 송충이가 담긴 그릇을 얼른 다음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다음날, 우린 과자와 주스까지 싸가지고 학교 뒷산으로 애벌레를 잡으러 갔다.
아이들은 보물찾기라도 하듯 신나서 애벌레를 찾아다녔고, 커다란 병과 플라스틱 통에는 송충이와 애벌레들이 속속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학교 근처 송충이는 모두 까맣고 털이 북슬북슬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털 없는 다른 애벌레보다 그 까만 송충이가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될 거라고 믿었다.
우린 그 까만 송충이들을 커다란 곤충망에 넣고 기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잡아온 송충이는 13마리였는데 다음날부터 엄마들이 송충이를 잡아왔다. 모두 똑같이 새까만 송충이를……. 그래서 송충이는 30마리쯤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새 풀잎을 따다 주며 까만 송충이들을 정성껏 길렀다.
우리들은 날마다 송충이들이 고치를 짓고 나비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송충이들은 점점 작아지더니 한 마리 두 마리 죽기 시작했다.
선생인 우리가 제대로 공부를 해서 송충이를 길렀어야 하는 건데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부모들한테 창피했다.
결국 아이들 몰래 송충이를 숲에다 버리고 어렵사리 누에를 구했다.
이미 반쯤 자란 누에는 뽕잎을 따다 먹였더니 아주 빨리 자랐다.
얼마 후, 누에들이 예쁜 고치를 짓기 시작했다.
누에가 가는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모습이 밖에서 잘 보였다. 점점 고치가 두꺼워 지더니 실을 뽑아 고치를 짓는 누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도 고치가 딴딴하도록 잘 지었다.
좀 더 있으면 나방이가 나올 것이다. 다행히 우리 반 아이들은 송충이를 쉽게 잊어버리고 누에가 자라고 고치 짓는 모습을 보며 좋아했다.
벌레만 보면 속이 뒤집혀 밥도 못 먹던 나는 이제 벌레들과 제법 친해졌다.
아주 조끔 벌레가 예뻐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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