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토네이도의 비밀

2012.03.17 12:07

연규호 조회 수:518 추천:19

단편소설-월간문학 투고 작품. 제목: 회오리바람(突風, Tornado)의 비밀(秘密) 1. 연 5일째, 오늘 밤에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바람이 불어올 뿐만 아니라 토네이도(돌풍)가 올지 모르니 지하실로 대피하라고 아파트 매니저가 얼굴을 찌푸리며 강력하게 전달하고 갔다. 비바람은 마치 미치광이가 피묻은 식칼을 손에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찌를 듯이 숨어 있는 방문을 박차고 쳐들어오고 있는 듯했다. 평소에는 꿈쩍도 안할 듯이 육중한 이 아파트 건물도 음산하고 강한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흔들흔들 움직였다. 창밖에서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땅바닥으로 꽝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오늘 밤에는 어제보다 더 큰 재난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이중으로 된 유리창에 간헐적으로 부딪치는 커다란 빗방울들이 당장에라도 두꺼운 유리를 산산조각을 내고 강한 바람이 아파트로 확 밀려 들어와 모든 것을 날려 보낼 것 같은 무서운 생각에 내 간이 콩알만 해지다 못해 이젠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층 창문 앞에 서 있는 큰 활엽수 나무들이 비바람에 휘청거릴 때마다 길게 옆으로 뻗친 가지 하나가 기분 나쁘게도 내 아파트 유리창에 부딪히면서 아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위협적이었다. 위-잉, 위-잉, 꽈당, 쾅쾅, 우르르. 그리고 번쩍이는 강한 번갯불 빛이 내 눈 속 뒤편으로 헤집고 들어와 예리한 송곳으로 망막 세포들을 후벼 파내는 듯한 아픔을 주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 층짜리 아파트가 돌풍에 견디지 못하고 삽시간에 무너지거나 날아간다면 나는 시멘트벽에 깔려 죽든지 나뭇가지에 목이 끼어 끽 소리도 못하고 땅에 고꾸라져 죽을 것이 빤하니 입이 바짝바짝 마르며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 미시시피 강이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끝도 없이 광활한 미국 중부 대평원에는 5-6월이 되면 연중행사처럼 발생하는 강한 비바람이 며칠째 불고 있다. 게다가 언제 토네이도(돌풍)가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수많은 사람이 벌벌 떨고 있다. -어젯밤에는 그래도 비가 덜 오는듯하여 모처럼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잘 수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밤늦게 예상치도 못한 비바람이 더 강하게 불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천둥 번개 그리고 토네이도가 올 것이니 대피하라고 긴급 뉴스를 내보내었다. 혼자 사는 동양 사람이기에 백인 주민이 100%인 아파트 대피소로 가지 않고 거실에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도 중단되자 밖 앗 세상과 단절됐으며 준비해 둔 양초도 동이 나고 보니 암흑이라는 자체가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차라리 붕괴 될지도 모르는 아파트를 떠나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으나 칠흑 같은 밤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미쳐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급기야는 누군가에게 매달려 구원을 요청하고 싶었다.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할아버지(성공회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도를 하기도 하며 눈을 감고 잠을 자다보니 새벽 5시가 되었다. 밤새 불던 비바람이 현저하게 약화 되면서 중단됐던 라디오가 뉴스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난밤 대형 돌풍이 조플린(Zoplin) 서쪽 지역을 강타해 30여 채의 집과 건물이 날라 갔음은 물론 3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그리고 인원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건물 더미에 깔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영어 방송은 속보로 전하고 있었다. 나는 혼비백산해 아파트 밖으로 나오니 주민이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눈에 띠는 것은 아파트 입구에 서 있던 100년 이상이 된다는 고목이 강풍에 견디지 못하고 두 동강이가 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지역이 불과 2마일 서쪽이었음을 알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이런 와중에 나는 아침 식사도 거르고 고물자동차를 몰고 5마일 북쪽에 있는 직장(공장)으로 운전해 갔다. 가는 길이 끊기거나 통제되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서쪽 지역을 바라보니 큰 상점들과 집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려 마치 유황불이 타다 말은 듯한 지옥을 보는 듯했다. 가까스로 공장에 도착하니 “잠시 공장을 폐쇄하니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 까지 기다리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말로만 듣던 토네이도의 위력을 보며 세상에 나 홀로 숨어 살 곳이 없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잠시 주춤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니, 천둥과 번개도 덩달아 우당탕, 우당탕 소리치기 시작했다. ‘토네이도가 다시 온다면 나는 죽는다’ 라는 공포 때문에 가슴이 짓눌리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도 먹지 않아 탈진해 있는데 전기마저도 들어 왔다 나가는 것을 보니 오늘밤에도 정전이 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저녁이 되면서 비바람이 더 강해지더니 정전이 됐다. 중단되기를 반복하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도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순간 밖 앗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전깃불 대신 켜 놓은 촛불을 바라보면서 언제 덮칠지도 모르는 토네이도를 기다리는 겁먹은 사슴처럼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한기(寒氣)를 불러왔다. 문득 성공회 신부였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들렸다. “채리(菜梨)야! 무서울 때는 하나님(천주님)께 기도 드리거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느니라.” 기도를 드리는 것에 비례해서 비바람은 더 강해지니 오히려 무서움이 더 커졌다. ‘차라리, 죽더라도 이불 속에서 죽자.’ 나는 이불을 푹 쓰고 잠을 청해 봤으나 강한 비바람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버려진 사람, 숨어 사는 사람, 전채리’는 혼몽한 속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2. 피부 색깔이 노란 나, 전채리는 왜 백인들만이 사는 동네 조프린(Zoplin)에 와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가? 사랑을 받고 싶으며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보니 모든 것이 우울해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은둔녀(隱遁女)가 됐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마저도 피해 조용히 숨어 살고 싶었다. 사람! 사람! 특별히 지난 50년의 내 인생 중에 나를 지극히 사랑했던 세 명의 사내(三人의 男子)들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제이, 제삼의 사내(第一, 第二, 第三 男)들에게 사죄하려고 해도 자살해 죽을 용기마저 없어 무작정 세상을 등지고 흘러 온 곳이 미주리주 조프린이란 작은 도시였다. * 5년 전, 제 삼(第 三)의 사내(男子)에 해당하는 백인 남편, 밥. 맥 나이트(Bob. McKnight)가 갑자기 췌장암으로 죽었을 때, 나는 영어가 잘 안통하고 관습도 다른 백인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반대로 끔찍이도 나를 사랑해 준 그가 없다보니 무지무지하게 외로웠다. 밥(Bob)이 남겨준 유산이 꽤나 있었다. 외로운 나를 위로한답시고 재산에 눈이 어두운 얌체 같은 한국사람 사내들로 인해 나는 곤욕을 치룬 적이 있었다. 남편이 죽기만을 기다린 나쁜 여자라는 불명예를 회복하려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살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3년 전, 나는 나의 외동 딸(박경희)에게만 내 계획을 말하고, 보따리를 싸 들고 오크라호마 튤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마침 그날은 궂은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 2008년 1월 12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조프린으로 이사를 왔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운명이요 팔자라고 불러야 할 만큼 내 인생은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인 불행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청주(淸州)에서 자랐다. 우연한 기회에 점쟁이 할아버지가 내게 말한 것이 씨가 됐는지 아니면 벌을 받았는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중앙공원에서 점을 치는 능글맞은 어느 할아버지가 공짜로 내 사주팔자를 봐주었다. “네년은 드센 팔자를 가졌어. 세 놈을 거쳐, 세 번 시집갈 팔자여... 두 놈은 다 죽고...그런데 세 번째 놈은 너를 정말 사랑할 테니 그놈을 꼭 잡아라!”라고 점괘를 주었는데 처음에는 “웃기는 할아버지로군”이라고 무시했는데 50년을 살고 보니 그놈의 점괘가 딱 들어맞은 듯 했다. 하나도 아닌 세 남자가 나를 사랑해 주었으나 나는 아직도 사랑에 굶주린 불쌍한 우물가의 여인이었다. 나의 할아버지(성공회 신부)가 열을 올리며 강론하던 대목이 생각난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을 대상은 아니다. 믿을 대상은 오로지 예수님일 뿐...” 그렇다. 나를 거쳐 간 세 명의 사내들이란 사랑의 대상이었을 뿐, 설령 믿는다고 해도 사내가 살아 숨 쉬고 따스한 체온이 있을 때일 뿐, 죽어 찬 몸이 되면 그것은 지나간 추억이 될 뿐이었다. 첫 번째 사내(第一 男)란 지금은 내게서 잊혀진 김종일(金種一) 오빠이다. -그는 나에게 첫 사랑의 경험을 준 사내로 나와 결혼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했고 이북에서 피난 나온 볼품없는 초란한 사내였다. 두 번째 사내(第二 男)란 김종일 오빠와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인데, 집안 좋고 부유했기에 최고의 신랑감으로 나와 결혼 했던 첫 남편이 되는 박형진(朴亨眞)이란 오빠를 말한다. -그는 육사(陸軍士官學校)를 졸업한 직업 군인으로 잘 나가다가. 88 올림픽 이후, 전사했다. 세 번째 사내(第三 男)란 첫 남편, 박형진이 죽은 지 6년 후, 미국에 와서 다시 결혼한 두 번째 남편인 밥.맥나이트(Bob McKnight)라는 미국인 오빠를 말한다. -밥(Bob)은 점쟁이 말대로 나를 지극히 사랑해 줬는데 5년 전, 생각지도 않게 췌장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가 죽자 나는 그를 따라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정작 목숨을 끊지 못하고 이렇게 구차하게 멀리 조프린에 와서 외롭게 살고 있다. 세 사람의 사내들을 나는 오빠라고 부른 이유는 어려서부터 내 주위에서 나를 진심으로 돌보아 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남편은 물론 두 번째 남편 밥(Bob)마저 죽자 나는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 그리고 ‘세 번째 결혼은 없다’ 라고 단정하고 세상을 등진 은둔녀(隱遁女)가 됐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남편 둘이 모두 죽다니... 나에게 무슨 액운이라도 있는 것인지.... 3. 50년 전--- 청주시 수동 언덕에 있는 청주 성공회는 조선식과 서구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명소였다. 나의 할아버지(전상은)는 성공회의 주임신부로 58세였으며 아버지(전명수)와 어머니는 6.25동란 중에 북한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기에 나는 고아로 할아버지(신부님)가 나를 양육했다. 그러기에 부모 없이 주임신부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나에게 성당 교우들은 물론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마치 다섯 살짜리 공주처럼 대해 주었다. 이 성공회에 40살 된 조지 맥 나이트(George McKnight)라는 미국에서 파견 나온 신부가 있었다. 맥.나이트 신부의 아들인 밥. 맥.나이트는 11살, 그리고 성당 수위의 아들인 김종일도 11살이었다. 중앙 시장에서 미곡상(米穀商)을 하는 박씨의 아들, 박형진도 11살로 성당과 이웃하고 있는 교동 초등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로 성당 교우였다. 부모를 일찍 잃은 공주였기에 이들 세 남자 소년들을 친오빠처럼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주었으며 나 또한 그들을 좋아했다. 이들 세 오빠 중, 박형진은 체구도 우람하며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교동 초등학교와 청주 고등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졸업 후 당당하게 장교가 돼 나와 결혼을 한 승자였다. 그러나 김종일은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강원도 철원에서 1.4 후퇴 때 청주로 피난 나왔다가 나의 할아버지(신부님)의 도움으로 성공회당 수위로 일하며, 어머니는 식모로 일하여 근근이 살았다. 그러기에 수위의 아들인 김종일은 박형진과 밥. 맥 나이트와 상대가 되질 않았으나 유달리 성공회 신부의 손녀딸인 나를 공주님처럼 성심껏 도와줬으며 나도 그를 좋아했었다. 가난한 김종일 오빠를 나는 동정심(同情心)과 사랑(愛情)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50년, 나는 김종일 오빠를 첫 번째 남자(第一 男)로, 박형진 오빠를 두 번째 (第二 男)남자로 그리고 첫 번째 남편으로, 그리고 미국사람 밥. 맥나이트(Bob. McKnight) 오빠를 세 번째 (第三 男)남자로 그리고 두 번째 남편으로 알고 살아 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들 세 남자를 모두 잃고 버려진 여자로 사람의 눈을 피해 은둔녀(隱遁女)가 돼 여기 미국 중부 백인들만 사는 조프린으로 숨어들어 온 것이 3년 전이었다. * “오늘 밤에도 토네이도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올 테니 누구를 막론하고 지하실로 대피하시오!” 아파트 매니저가 방문을 두드리며 강력하게 권고를 했다. 캄캄한 밤, 강한 바람이 불자 유리창이 덜컹덜컹 거리며 밖에서는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 하나님!” 나는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강한 비바람은 그치지 않았으며 전기가 나가자 방송도 끊기면서 온통 암흑이 되고 말았다. 준비된 양초도 얼마 남지 않아 어둠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어린 사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아! 나를 살려주소! 나를! 누구 없소?” 나는 마침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순간 선명하게 내 앞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여보, 채리? 나야. 나.“ 18년 전에 전사한 첫 번째 남편 박형진이 육군 중령의 제복을 입고 내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니, 여보?”나는 손을 내밀어 죽은 남편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잡히지 않았다. “채리? 내 손을 잡아!” 전 남편 박형진이 외쳤다. 그러나 역시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내 눈에서 사라졌다.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그는 나를 사랑했기에 죽어서도 나를 구하려고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웠다. * 잠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나보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비바람 소리가 여전했으며 저승사자가 여러 차례 왔다 갔는지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하나님! 구해 주세요!” 나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 “채리? 너는 참으로 이기적인 애로구나! 너만 살자고. 기도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했어!” “그의 나라?” 문득 기도 중에 떠오르는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었다. 5년 전에 췌장암으로 죽은 두 번째 남편, 밥 맥.나이트(Bob. McKnight)의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파견 나온 조지 맥.나이트 신부의 아들로 한국과 캘리포니아를 오가다가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떠났던 미국인 오빠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마치고 에디슨 전기 회사의 기사로 결혼도 않고 살았다. 무슨 인연이었는지 첫 남편 박형진 중령이 죽은 지 6년 후 우연한 기회에 나와 밥(Bob)은 연락이 되었다. 그의 나이 45세 그리고 내 나이 38세로 마음 깊이 외로웠다. 밥(Bob)은 내게 정식으로 청혼했으며 1년간의 수속을 마치고 미국으로 온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미국인과의 결혼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언어와 풍속이 다르다 보니 손과 발로 그리고 온몸을 사용해 대화를 해야 했다. 그래도 사랑이란 끈끈한 고리를 연결하고 살아 왔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듯이 6년 전, 남편 밥(Bob)은 이유 없이 살이 빠지기 시작했으며 등판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내과에서 정밀 검사를 한 결과 췌장암이 그의 온몸에 번져 있음을 알게 됐다. ‘췌장암이라니....’ 밥(Bob)은 담담하게 그 진단을 받아 들였다. 수술도 항암 치료도 거부하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매달려 천국을 소망했다. 그리고 3 개월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밥(Bob)? 당신이 어떻게 여길?”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으려고 나의 손을 뻗쳤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옛 사랑의 추억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밥(Bob)!" 사라진 그를 향해 소리를 쳤다. 세찬 바람이 아파트의 창문을 드세게 때리고 흔들고 있었다. 며칠째 아파트 창문 앞에 서 있는 제법 큰 활엽수 나무 가지가 창문을 후려치곤 했는데 더 세찬 바람이 불면 유리창이 깨질 것 같았다. “무서워.. 나, 죽을 것만 같아...무서워.” 나는 내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무섭다는 말을 내 귀로 듣고 있었다. 4. 우르릉 쾅! 우지끈!“ 아파트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천둥 그리고 소리비가 내 귀를 어지럽혔다. 벽시계가 멈춰 있었으며 찬장에 올려둔 커피 잔과 접시가 땅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지면서 산산 조각이 됐다. 나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나를 구해 주소! 나를!” 나는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다. 순간 나는 할아버지(신부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채리야, 세 번째 사내(第 三男)의 손을 잡거라!” “세 번째 사내라니요? 밥(Bob)? 그는 이미 왔다 갔어요. 할아버지!” “아니다. 살아 있는 사내 말이다.” 살아 있는 사내라면? 아, 종일 오빠? 그러나 그는 이미 내 기억에서 까맣게 잊힌 제 일의 사내(第一 男)인데.... -생각해 보니 그는 비록 첫 번째 사내이기는 하나 가난했으며 격이 떨어지는 미천한 성당 수위, 청소부의 아들이기에 할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는 남편감으로는 열외 되었던 사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일 오빠는 바보처럼 나를 정말로 잘해 주었다. 물도 떠다 주고, 엎어 주었던 종일 오빠와 나는 캄캄한 성당 기도실에서 포옹했으며 입맞춤을 했었다. 포근하고 안락했었다. 메뚜기를 잡으러 갔던 무심천(無心川) 근처 논두렁에 세워둔 노적가리에서 소나기를 피하다가 추워 떨고 있는 나를 꼭 안아 주었는데 역시 따스했으며 안락했었다. 그러기에 그는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첫 남자(第 一 男)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내과 전문의사가 돼 청주 도립병원에서 일했는데 그는 내가 결혼한 것을 알고도 총각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외면했으나 그는 나의 곁에서 늘 맴돌았다. 첫 번째 남편 박형진이 죽은지 6년 후 미국으로 이민와 밥(Bob)과 결혼하자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와 형편없는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고 있음을 후에 알게 됐다. 그 뿐인가 두 번째 남편 밥(Bob)이 췌장암으로 죽어 장례를 치르던 날, 그는 장지로 찾아와 조문을 했는데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며 계면 적게 웃었다. 그리고 명함을 주고 갔었다. 그가 간 후, 나는 너무나 외로워 그와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당당한 내과 의사요, 아직 총각인데.....’ 누가 봐도 훌륭한 남편감이었다. ‘말도 안 되지. 내가 미쳤나? 세 번씩이나 결혼을? 말도 안 되지. 남자에게 미친년인가? 아니지, 아냐!’ 나는 의도적으로 종일 오빠를 피했었다.- * 우당탕, 우직끈. 우르릉....아파트 밖에서 들리는 비바람 소리와 천둥 번개는 마치 나를 삼키려고 작정한 것 같아 겁이 나 밖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오늘 밤, 나는 아마도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사내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이 귀에서 쟁쟁 울렸다. “채리? 어려울 때, 나를 불러줘. 곧 달려갈 테니....” 그런데 지금에 와서 무슨 낯으로 그를 부른담.... “채리? 너 예쁘구나! ” 노적가리 속에서 나를 꼭 안아주면서 그가 한말이 떠오르며 얼굴이 붉어 졌다.- 밖에서는 비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 대니 유리창이 후다닥 놀란 듯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마치 토네이도가 내 머리를 덮친다고 생각했다. 순간, 꽈당- 쨍그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마침내 며칠 전부터 유리창에 부딪치던 활엽수 나뭇가지가 꺽이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의 창문을 깨뜨리니 강한 바람이 아파트로 들이쳤다. 순식간에 창문의 커튼이 떨어지는가 하면 신문지가 여기저기로 나르며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물 컵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더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맙소사!” 바람에 쓸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실로 들어가 가까스로 문을 잠갔다. 다소 안정이 됐으며 문득 제 삼의 사나이, 살아 있는 사나이, 종일 오빠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오빠를 사랑했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니 집안이 가난했으며 신분이 그랬기에 의도적으로 오빠를 좋아 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고 사실을 털어 놓고 싶었다. 가까스로 그가 주었던 명함을 찾았다. 분명, 명함에는 내과 전문의사, 전화 (213 375 0951) 그리고 (714 525 443)이라고 쓰여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건 첫 번째 전화는 바쁜 신호로 통화가 되질 않았다. ‘다시 걸까? 말까? 지금까지 무시하고 살았는데, 지금 와서 무슨 낯으로 전화를.... 차라리 말없이 죽는 편이......’ 우타당, 꽈당...요란한 소리가 깨진 창문을 통해 더 요란했다. ‘오빠 나, 나 좀 살려줘....’ 나는 어린 시절 종일 오빠에게 스스럼없이 부탁했던 것처럼 중얼 댔다. 두 번째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김종일 내과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오빠, 나야. 나....” “누구라고요? 어디가 아픈지 알아듣게 말하세요!” 내과 의사 김종일은 자살하려고 하는 어느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로 판단한 듯했다. “오빠! 나, 채리...” “채리? 채리....” 그리고 김종일 의사는 큰 소리로 채리에게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 다구쳐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비관하고 백인들만 사는 곳에 숨어 살아 왔음을 알게 됐으며 그녀가 있는 곳이 다름 아닌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조프린 시(市)임을 알게 됐다. “채리? 하필이면 조플린이야! 나에게 말도 없이....내가 곧 달려가마! 곧.” “안 돼! 여긴 위험한 곳이야. 그리고 나는 종일 오빠를 볼 수 없어.”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숨이 가빳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속에 누군가에게 나를 알려 준 것이 후련했다. 사람은 결코 홀로 숨어 살 수는 없다고 느꼈으며 어떤 방법이든지 결국 노출된다고 생각했다. 토네이도 때문에..... 더 강한 바람이 깨진 창문을 통해 들이 닥치면서 부엌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접시와 컵들이 와르르 떨어져도 나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깨진 창문을 막아 보려고 침실에서 담요를 들고 나와 유리창을 가리려는 순간 강한 바람에 의해 담요가 내 얼굴을 휘감으면서 나는 마룻바닥에 내동댕이 처졌다. 5 인간은 죽음 직전, 그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신념에 따라 죽음도 다르게 마련이다. -췌장암으로 죽은 두 번째 남편, 밥(Bob)은 죽음 앞에서 아주 의연했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평안하게 살텐데 죽는 것이 뭐 그렇게 무서운가, 채리?’ -군대 사고로 전사한 첫 번째 남편 박형진도 의연했었다. ‘나, 이 세상에서 잘 살았어. 죽으면 그만이지.....나라를 위해 충성을 했는데...’ 그런데 나, 전채리는 성공회 신부님의 손녀인데 이다지도 안절부절 하다니.... 나는 마치 내 스스로가 던진 그물 속에 갇힌 물고기가 된 느낌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 어제처럼 정전이 되자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이 중간됐다. 아침 방송에서 조프린을 강타한 토네이도는 상상 못할 위력을 가졌으며 똑같은 토네이도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고 했었기에 오늘저녁도 마음이 불안했다. 무려 6일째가 되고 보니 몸과 마음이 허탈했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솟았다. 나는 다시 일어나 담요를 들고 침실로 들어와 문을 꼭 닫고 밤을 새우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깨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으로 침실 문마저 덜렁덜렁 거리니 꼼짝없이 죽을 것 같았다.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전화 소리가 바람에 묻혀 아주 희미했다. 이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어 줄 사람이란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거나 혹시 내가 걸었던 전화번호를 전화국을 통해 알아낸 종일 오빠라고 생각했다. 전화가 다시 울렸으나 멀거니 바라 볼 뿐 받지를 않았더니 몇 차례 더 울린 후 끊어졌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뒤 따라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순간 우지끈하는 소리가 나면서 침실 문이 두 동강이가 난 듯, 이가 빠진 입처럼 반 이상이나 열리고 말았다. 바람이 몰아쳐 들어오자 컴퓨터가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내 머리에 부딪혔는지 나는 아찔, 정신을 잃고 방바닥에 나둥글어 떨어졌다. *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조프린 인근에 있는 공공의료기관 침대에 누워 천정만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으며 어렴프시 비바람이 불던 것이 기억에서 떠올랐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비바람이 불어 닥치자 컴퓨터가 떨어지다 내 머리에 부딪힌 것이 마침내 생각났다. “채리? 나야, 나. 보이니?”누군가가 내 앞에서 큰 소리로 묻고 있었다. 눈앞이 뿌옇으며 모든 것이 희미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남자의 모습이 였는데 무엇인가 재차 반복해서 묻고 있었다. “채리? 나, 종일, 오빠야!” 종일이라는 말이 귀에서 들렸다. “종일? 오빠?” 순간 그가 잡은 손을 통해 따스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다. 아니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 김종일은 저녁 늦게 걸려온 어느 여인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을 때, 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담당 의사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어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사랑하고 연모해 온 채리의 전화임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조프린의 토네이도 참사” 현장에서 걸려온 전화임을 알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채리가 다급한 나머지 손 전화로 구원을 요청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는 ‘무서워. 무서워’라는 몇 마디만 남긴 후 끊겼기에 상황이 절박하다고 느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오크라호마 튤사(Tulsa Oklahoma)로 가는 비행기 편으로 튤사에 도착하니 아침10시였다. 자동차를 빌려 조프린으로 가는 길을 물어 폐허가 된 토네이도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구조대원에 의해 채리가 리지오날 병원(Regional Hospital)의 중환자실에 있음을 알게 됐다. “어찌됐습니까?” 간호사에게 물으니 “정신을 잃고 아파트 바닥에 누어있는 것을 마네저가 연락해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머리를 다쳤을 뿐만 아니라 심한 공포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 곧 깨어 날 것입니다. 무려 6-7일간 변변히 먹지를 않았으니 탈진도 됐고요.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심한 우울증으로, 언제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고 담당 의사가 말했지요.” “채리? 다행이구나. 크게 다치지 않아서.” 종일은 누어있는 채리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볼을 보듬어 주었다. -순간 채리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종일 오빠와 같이 메뚜기를 잡으러 청주 무심천 뚝방을 헤집고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베 배기를 마찬 후 쌓아둔 노적가리 속에서 오빠가 포근하게 안아주며 한 말이 떠올랐다. “채리야. 너 아주 예쁘구나....”- “종일 오빠? 나...” 채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알아, 알아- 채리.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종일은 말을 가로챘다. “.......” 채리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채리. 퇴원하는 대로 이제는 나를 따라 오너라. 어디로 가든지, 너 혼자 숨어 살 수는 없어. 내가 네 곁에 있어야 해.” 채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침내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헤치고 나온 듯했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점쟁이가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년은 세 사내를 만날 팔자야. 그래도 세 번째 사내를 꼭 붙들어라.” 그리고 꿈을 꾸고 있었다. 성공회당으로 올라가는 길고 먼 돌계단을 한 발짝 두 발짝 밟으며... 무심천 뚝방에서 메뚜기를,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으며 즐거워하던 옛날로 돌아간 꿈을 꾸면서.... 소설 끝. 작가 소개: 연규호(延圭昊) 청주 출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내과의사 한국 소설가 협회, 미국 소설가 협회 한국 문인협회, 미주 문인협회 미주 펜 클럽 회원. 미주 펜 문학상 (소설) 장한 연세인상(문학) 장편 소설: 안식처 외 14편 kyuhoyun@yahoo.com www.mijumunhak.com/yunkyuho 714 636 0133 9982 Bixby Cir. Villa Park Ca 9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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