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아오소라(청공)

2012.01.18 14:19

연규호 조회 수:766 추천:31

장편소설 아오소라를 나누어서 웹에 올림 서울 푸른사상에서 출판함 분재 A Chunggong 長篇 小說: 아오소라(靑空) 著者: 연규호,(延圭昊, Kyuho Yun) 韓國,美洲 文人協會 會員 韓國 小說家 協會 會員 國際 펜클럽(Korea & USA)會員 美國 內科 專門醫師 kyuhoyun@yahoo.com 714 636 0133 저자(著者)의 말: 작심한 듯이 무뚝뚝한 얼굴 표정으로 주미(駐美-米國) 일본(日本) 대사(大使)가 ABC-TV에 나타나 담담하게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땅"이라고 미리 써 가지고 온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아닌데. 아냐! 독도(獨島)는 한국 땅이요, 만주(滿洲)도 한국 땅이었어...... 아니? 대나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섬을 죽도(竹島)라니? 말도 안 되지. 독도는 신라(新羅)때부터 한국 영토(韓國 領土)였는데....."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를 쳤으나 깨진 축음기 판에서 울려 나오는 잡음 소리처럼 초라한 메아리가 되어 내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진정 마음을 열고 협력하는 이웃, 그리고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대한해협(大韓海峽)과 현해탄이 부딪치는 곳에 청공(靑空)이라는 애증(愛憎)의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펜을 들었다. 캘리포니아 빌라 팍(Villa Park) 서재에서 9월 14일 2008년 장편 소설(長篇小說): 제목: 아오소라(靑空) 제 1부: 동양계 미국인(Asian American) 1장: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日本) 일 년 내내 휴가도 없이 밤늦게 까지 환자를 진료하다가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는 외과 수련의사(外科修鍊醫師, Surgical Resident.)인 내가 모처럼 일찍 퇴근해 딸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심장병(心臟病) 환자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다. - 4시간 이상 소요되는 심장 판막 수술을 받으려던 40대의 뚱뚱한 백인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지던 중 예상치 못한 심장마비로 손 쓸 사이도 없이 복도에서 숨을 거둔 것이 오전 9시였다. 만반의 대 수술준비를 하고 초조하게 환자를 기다리고 있던 수술 팀은 허탈한 마음으로 거추장스럽기도 한 수술복을 벗어 던져 버렸다. 토요일 오후에는 더 이상의 수술 대기환자도 없다보니 오후 1시에 퇴근을 해도 좋다고 하는 호랑이 같이 엄격한 외과 과장의 특별한 허락을 받았을 때, 속마음으로는 '이게 웬 떡인가' 무척 기뻣으나 겉으로는 죽은 환자를 애도 하는 것처럼 담담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서 집에 돌아 왔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오니 전기가 켜 있지 않아 다소 컴컴한 거실에 이제 막 백일(百日)을 넘긴 딸아이가 유아 침대에서 웬일인지 칭얼대지도 않고 앙증스럽게도 무엇을 찾고 있는 듯이 빤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그머니 침대 속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딸아이는 두꺼비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오늘 따라 딸아이의 검은 두 눈동자가 평화롭고 맑은 호수처럼 보였다. 잔잔한 호수 수면으로 파란 하늘이 비단결 흘러내리듯이 조금씩 조금씩 빨려들어 가는 듯 했으며 호수 바닥에 빠져 있는 초생달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까이 오라고 유혹하는 듯 했다. 호수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융단처럼 펼쳐진 진한 초록의 풀밭에서 양떼들이 한가로이 꼴을 뜯어 먹는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움이 눈동자 속에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소라야. 아빠가 왔어." 나는 손바닥을 좌우 옆으로 흔들면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슴 조리고 있었다. 순간 "꺅"하는 배 웃음소리를 내며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 것으로 보아 젊은 아버지인 나를 알아보는 듯 했다. 외과수련의사라는 직업은 잠시도 숨 돌릴 틈도 없이 응급환자 수술하랴, 당직을 하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업인터라 그동안 딸아이와 오순도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았는지 예기치 못한 백인 심장환자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일찍 퇴근해 모처럼 천금 같은 오붓한 행복 속에 젖어든 한 때였다. 허나 그 행복한 시간도 잠깐,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모처럼의 행복을 방해하는 오만한 낚시꾼들의 거친 고함 소리 때문에 어쩌다 가져보는 즐거움이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 -근엄해 보이며 수염이 긴 두 노인들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두 손자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랑카랑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여름날의 폭풍우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둔탁한 내 고막깊이 파고 들어와 깊은 산의 메아리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손자야(아이시떼 이르 마고)! 조센진(朝鮮人)은 목욕도 안하고 얼굴도 씻지 않는 더러운 민족이니라. 마늘을 많이 먹으니(닌니쿠 쿠사이)입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고 거짓말을 잘하는 믿지 못할 민족이니라. 손자야! 목욕도 안하고 거짓말을 하면 너는 일본 사람이 아니고 더러운 조센진이니라. 알겠느냐?" "하이, 오지이상." 초등학교에 다니는듯한 어린 일본 손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대답을 하고 있었다. 검은 조끼에 금 빛나는 시계를 옆구리에 차고 금테 안경을 쓴 작고 뚱뚱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겁에 질린 듯한 손자에게 훈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완연히 조센진을 비하하고 있는 말투였다. 이번에는 더 크고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자야! 일본 사람은 키가 작고 돈밖에 모르는 쪽발이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나 속으로는 음흉하고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놈들이다. 남해안을 침범한 왜구(倭寇)들은 임산부의 배를 사정없이 예리한 일본도(日本刀.칼)로 갈라 태아까지도 꺼내 칼로 베어 죽인 잔인한 놈들이니라. 알겠느냐?" "할아버지?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다. 손자야." 수염이 길고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역시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들지도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한국 손자에게 몹시 화난 얼굴로 분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훈계하고 있는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무슨 씻지 못할 원한이 있었는지 역시 일본 사람들을 빗대고 하는 말이었다. 순간 또 다른 굵고 엄숙한 제 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한국과 일본은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고 살아야 할 가까운 이웃 나라입니다." 검정 신사복을 입은 60대의 장년 남자가 아까부터 캄캄한 모퉁이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쳐대고 있었다. "그게 가능할까요?" 나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어림없는 말이라는 듯이 비아냥거리며 되물었다. "물론이지. 그게 필연이니까." 그도 역시 캄캄한 매개체를 통해 나에게 반말로 대답했다. "당신, 누구야?" 나는 반말로 모퉁이에서 말하고 있는 장년의 남자를 향해 신경질나는 말투로 물었다. "나, 동아일보(東亞日報) 논설위원(論說委員)이요." "동아일보? 혹시, 유광렬(柳光烈) 선생님?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이라는 글을 쓰신분?" 그를 향한 나의 질문에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쥐 죽은 듯이 싸늘하게 조용했다. '일본? 한국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 2008년 4월 15일, 나(金秉宣, William, Bill)는 아주 예쁘고 귀여운 딸을 보았다. 너무나 예쁘기에 이름 짓는 것이 꽤나 어려웠으나, 다행히 일본 여자인 나의 아내가 파란색을 유달리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식 이름으로 '소라(靑空)'라고 지을 수가 있었다. 한국 이름으로는 <김소라 그리고 한자로는 金靑空>이라고 불리며 맑은 눈을 가진 계집아이였다. 한국말로 <소라>는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하잘 것 없는 조개(貝)류 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예쁜 이름이기에 나도 기꺼이 찬성하여 미국식으로 <소라 킴(Sora Kim)>이 됐다. '소라'의 가슴속 깊이에서 흘러나오는 은근한 고동소리를 듣다보면 잊혀 진 바닷가의 아련한 옛 얘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조개류에 지나지 않지만 여성들이 소라를 그렇게도 좋아 하는 것은 그 은근한 고동소리가 그녀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슬픈 사연들을 쉽게 잊게 해주는 은근한 마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소라의 꿈'(夢)이란말로 '소라'를 연상하는데 과연 소라는 무슨 꿈을 꿀까? 내가 보기엔 소라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소라는 바닷가에서 보았던 연인들의 서글픈 사랑과 이별을 고동소리 속에 살며시 울려 보내기에 여성들은 그 사연이 말해 주는 옛 추억에 잠겨 정신이 혼미하다보니 마치 소라가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파고가 높은 현해탄(縣海灘)을 오고간 슬픈 사연을 소라는 그 가슴속에 차곡차곡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 내 딸 '소라'는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의 피가 각각 50%씩 섞인 혼혈아(混血兒)이지만,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겉모양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백인과 한국 사람과의 혼혈아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어찌 보면 100%, 같은 피부색과 닮은 모양이기에 자연스레 한 가족이라고 느껴진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이토록 순수하고 깨끗한 눈동자를 갖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서로 속이고 욕심을 내는 것에 비례해서 깨끗했던 눈동자는 점점 혼탁해 지는 것 같다. 어쩌다, 살인자의 눈을 보면 증오와 복수심으로 인해 눈동자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살기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오싹케 하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반면 인자한 어느 구도자(求道者)의 눈을 보노라면 마치 양같이 온유하며 진주같이 맑아 내가 지금 바라다보고 있는 나의 딸, 소라의 두 눈동자와 같다고 느껴진다. 천진스럽고 사랑스러운 소라의 눈동자에서 뜻밖에도 나는 한국과 일본에 얽힌 천년의 아련한 역사를 차분하게 읽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나는 그 두 눈동자에서 흐느끼며 흘렸던 한스러운 '피 눈물(血漏)'을 보고 있는 듯했다. 아니! 광활한 태평양을 넘어 멀리 혹한의 알라스카로 돌진해 가는 길 잃은 연어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동해 바다로 들어와 강원도 동강(東江)으로 찾아가야 할 연어가 길을 잃고 방향도 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애처러워 보였다. 정처 없이 달려가다가 상어나 고래의 밥이 될지도 모르는 가엾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 무한정 달려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옛 이민자들이 힘에 겨워 지쳐 쓰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부디 연어가 제정신을 차려 원래의 고향인 동강으로 다시 돌아와 주기를 기대했다. "연어야! 부디 너의 고향, 동강으로 가거라. 상어에게 잡히지 말고...." * 소라-하늘-연어-청공-소라-하늘-연어-청공- 마치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아가듯이 나는 딸의 눈을 바라다보며 멍하니 마음을 잃고 있었다. "여보! 무얼 해요?" 불이 켜있지 않아 다소 컴컴한 부엌에서 소라에게 줄 우유를 만들고 있던 아내가 내 등 뒤로 다가와서 한 손으로 나를 감싸 안으며 의아한 듯이 물었을 때,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딸의 눈동자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다. "어, 소라의 눈을 보고 있어." "아니, 소라의 눈에 무슨 잘못이 있어요, 빌?" 아내는 걱정이 된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잘못이라니? 아냐, 파란 하늘과 맑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 같아." "파란 하늘과 맑은 호수?" 아내는 뱀처럼 감았던 팔을 살며시 풀면서 내말을 일축해 버렸다. "고향을 찾아 가는 연어를 보는 것 같아....."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소라의 눈에서 연어를 보다니?" 마침내 아내, 제니퍼는 내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큰 소리로 힐책하며 눈을 찡그렸다. 사실, 나는 오늘 따라 어린 딸의 눈동자를 통해 먼 옛날의 슬펐던 얘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아니, 너무나 슬프고 원통해서 피 눈물을 흘리던 고향을 잃은 이민자(移民者)들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문득 젊은이들에게 우상처럼 인기가 있는 일본의 십대(十代) 여자 가수, 타카하시 히토미(高橋腫, Takahashi Hitomi)가 온 힘을 다해 피를 토하듯이 부르는 '청공의 눈물(아오소라노 나미다)'이 내 귀에서 맴돌고 있었다. "혼자서 어둠 속에서 너의 눈물의 의미를 깨달았어. 바라는 장소, 걸어 나갔지만 누구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바다를 건너는 바람은 오늘도 망설임 없이 내일을 향해 가는데 마음은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걸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 슬픔 속에 용기가 있어. 광휘를 붙잡을 거라 믿고 있어. 퍼붓는 푸른 하늘의 눈물(후리시키루 아오소라노 나미다) 언젠가 웃는 얼굴로 바뀔거야. 서두르는 발걸음 쫒아온 바람 손가락 사이를 미끄러져 빠져 나가네. 흘러넘친 푸른 하늘의 눈물(코보레테타 아오소라노.) 내일은 분명 맑을 테니까. 퍼붓는 푸른 하늘의 눈물(후리시키루 아오소라노 나미다.) 언젠가 웃는 얼굴로 바뀔거야." * '퍼붓는 푸른 하늘의 눈물, 언젠가 웃는 얼굴로 바뀔 거야.' "그래. 그래. 퍼붓는 청공의 눈물, 아니 외롭고 한스러워 흘리는 피눈물.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웃는 얼굴로 바뀌겠지. 그래, 아무리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피눈물을 뿌리는 역사로 얽혔다고 해도 언젠가는 실타래가 풀리듯이 웃는 얼굴로 손을 잡는 이웃이 되겠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히토미의 이글어진 얼굴과 그 곳에서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바라다보며 혼잣말로 중얼댔다. 모처럼 보낸 천금 같은 오후, 딸(소라)의 눈동자 속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얽힌 1000년의 세월이 컴퓨터의 메모리에 농축되어 있던 것을 하나하나 또렸하게 꺼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2장: 내 곁에 있는 일본. "스탠포드(Stanford) 의과대학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는다면 엘리트군요?" "암! 물론이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니까요.?" *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의과대학 병원에서 외과전문의사 과정을 수련하고 있는 나는 지난해, 2007년 5월, 일본인 4세, 제니퍼 이시카와(石川)와 어렵게 그리고 많은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금년 4월에 아주 예쁜 딸을 낳았다. 더럽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조센진 4세인 나와 잔인하고 음흉하다는 쪽발이 니혼진 4세인 제니퍼와의 결혼도 충격적인데 우리 둘 사이에 혼혈의 아이까지 낳은 것은 너무나도 상상밖의 사건이었는지 모두들 수근 거렸지만 막상 당사자인 우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은 우리는 당당한 일류 대학 출신이기에 누구에게도 꿀릴게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해서 낳은 애기라? 와 어려운 일이구먼." 누군가가 우리를 비웃듯이 물었다. "왜? 안되나요?" 우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안되는 것이 아니고 꺼린다는 말이지, 허허!" 일본을 잘 안다고 하는 어느 한국 노인이 우리를 보고 측은 하다는 듯이 비꼬는 듯 한 말을 던지고는 훌쩍 사라졌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기는 행동이었다. 비록 한국과 일본의 후손이기는 하나 100년이 지난 이민 4세인 우리에게는 조선이니 일본과 같은 쾌쾌하고 고리타분한 옛 역사는 먼 옛날의 우화(寓話)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 "미국 이민 4세라니?" "아! 나의 증조할아버지(김상환, 金祥桓, 1884년생)는 1905년에 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미국 하와이로 이민와 막 노동을 했으며, 그 아들, 김경문(金庚文) 할아버지는 살리나스에서 꽃 농장을 경영했답니다. 그 때 이웃에 살았던 일본 사람 가족이 있었는데, 2차대전중에 '일본사람'이란 이유로 콜로라도로 끌려가 강제 수용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나의 할아버지는 일본 사람들을 몹시 싫어했으며 손자가 되는 내게 일본 사람을 반대하는 교육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시킨 것으로 보아 일본 사람들과 사이가 나쁜 듯 했습니다." -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지만 아주 멀고 서로 미워했느니라." "왜 그랬죠, 할아버지?" "그것이 역사니라. 대대로 내려온 역사." "역사?" 나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배운바가 별로 없기에 되묻지 않았음은 이민 4세인 내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은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모르나 할아버지는 일본에 대한 원한과 열등의식 때문에 일본을 더 더욱 싫어하는 듯했다. -그러나, 도리켜 보면, 한반도는 일본 열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한자를 비롯하여 많은 문물을 일본에 전달해준 선진국이었다. 백제는 <왕인(王仁 博士>를 일본에 보내 한자를 보급시켰으며 고구려(高句麗)와 신라(新羅)도 승려, 학자 그리고 기술자를 보내 일본의 문맹을 깨우쳐 주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성덕태자(聖德太子.쇼도꾸)도 백제를 통해 관제를 배운후 야마도 정권을 부흥시켰다. 그러기에 오사카나 규슈에 가면 아직도 백제촌(百濟), 고구려촌, 신라촌 그리고 고려촌이 남아 있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 본들 수확기인 가을이 되면 가차없이 불어 닥치는 태풍에 의해 농작물의 손실이 너무나 커 가난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기에 신라, 백제, 고려 그리고 조선에 와서 구걸을 해 식량을 얻어 갔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포악한 해적(왜구)으로 돌변해 잔악한 노략질을 일삼았다. 세종대왕은 이종무 장군을 보내 대마도를 정벌하고 그들에게 정식으로 삼포(三浦)를 개방하여 일정량의 곡물을 주어 보냈다. 16세기부터 멀리 화란, 포르트칼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규슈를 들락거리면서 일본은 조선보다 훨씬 앞서 총과 화약을 수입하여 스스로 조총을 제조하게 되었다. 마침내 일본은 총과 화약을 들이대고 현해탄을 건너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 반도를 피폐시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동경으로 수도를 옮긴 후 200년 후에는 동경항구가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개방이 되더니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선각자들에 의해 서방 문명을 배워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반면 곡물과 문물을 일본에 제공해 주었던 선진국, 조선은 폐쇄정책으로 인해 일본에 뒤져 마침내 일본에게 먹혀 식민지가 됐다. 그 때부터 자존심을 잃은 조선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기 시작했다.- *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일본은 관심 밖의 나라였는데,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면서 관심속의 나라가 됐으며 '조센진'이란 말이 뜻밖에도 나쁜 말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1.5세의친구가 한 말이 기억에 난다. "빌! 조센진이란 말은 쓰지 말게.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비하하는 말이니까..." "그래? 조센진이란 말이 그렇게 나쁜 의미니?" 나는 되물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일본 여자와 결혼을 했으니 일본은 내 이웃이 아니라 아예 내 곁에 존재하는 아내의 나라가 됐다. 일본? 내 곁에 있는 나라.......아니 내 나라가 된 셈이었으니 세상 떠난 할아버지가 안다면 땅을 치고 울 일이었다. 게다가 더럽다는 조센진과 잔인하다는 일본 사람의 피가 각각 50%씩 섞인 딸을 나았으니 일본은 더 이상 내 이웃이 아닌 나의 나라가 된 것을 오늘 오후 소라의 눈동자를 바라다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냐! 소라의 눈동자를 바라다보노라면 호수같이 맑고 푸른 하늘처럼 순결하지 않은가?' 한.일 합작품인 내 딸을 보면서 나는 반대로,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의 좋은 특성을 각각 50%씩 섞어 놓은 천사 같은 딸이라고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의 말은 다 틀린다. 아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아니! 빌? 무엇을 하는 거요?" 아내 제니퍼가 놀라 되 묻는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사이에 한국과 일본을 여러 차례 오고간 듯한 느낌이 내 몸속 깊이에 파고 들었다. 너무 골똘히 생각하다보니 마치 현해탄(懸海灘)과 대한해협(大韓海峽)을 여러 차례 오고 간 듯 했으며 높은 파고에 떠밀려 비틀 거리고 있는 듯했다. 제 3장: 일본 사람의 미소(微笑). (국보(國寶) 1호(一號)의 나무에 새긴 미소) 도리켜 보면 지금까지 살아 오는 동안 이토록 일본에대한 오해를 갖게 된 것은 생각해 보면 살리나스(Salinas)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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