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청공,아오소라 제 4

2012.01.22 07:33

연규호 조회 수:603 추천:20

아오소라 제4. 8장. 일본인의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 (고양이에게 맡기는 생선) 살리나스에 살고 있는 다카야마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수신자를 확인 하는 싸인을 받고 전달됐다. '1942년 2월 1일,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으로 짐을 싸 가지고 오라는 미국 정부로부터 온 통지서였다. ' -그들, 다카야마 가족은 멀리 콜로라도 남부에 있는 아마체(Amache) 수용소로 강제로 끌려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된다고 하는 명령서였다. 전 가족이라면, 다카야마 부부와 버클리에서 공부하는 딸, 히토미(Hitomi 20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콜로라도 의과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제임스도 그곳에 수용될 거라고 했다. "아니? 의과대학에 다니는 미국 시민인데 뭐가 그렇게 의심이 돼서?" 다카야마의 부인이 남편에게 하소연하듯이 물었다. "그러게 말이요...." 다카야마는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꽃 농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쇠하던지 다른 사람에게 운연권을 넘겨 줘야 한다고 하는 통보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 강제로 몰수 된다고 했다. 그러나 다카야마는 꽃 농장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꽃 농장은 그들에게 있어 아들과 딸과 같은 귀한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정부를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여보? 누구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요? 여보!" "누구에게?" 평소에 잘 알고 지냈던 스위스(Swis)에서 온 이민자이며 꽃 농장 주인, 프랑크 마이어스(Frank Myers)를 만나 부탁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카야마와 비슷한 나이의 이민 2세로 겸손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알프스 산에 두텁게 쌓인 흰눈설에 봄이 오면 푸릇푸릇 나무의 순이 움트며 여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이 피고 녹음이 짙어지는 고향, 제네바를 무척 자랑스럽게 얘기해 주었던 마음이 푸근하고 따슷한 스위스 사람인 프랑크가, 웬일일까? 다카야마의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농장 관리도 버거운데 다카야마의 큰 농장을 같이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는 역시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유럽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정책을 준수하는척 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에대한 혐호감을 노출하고 있었다. '아! 그토록 믿고 따랐던 이웃이었는데 도와주기를 거부하다니...진정한 이웃으로 알고 지냈는데.....' 다카야마는 친구로부터 받은 배신감에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다음날, -고민 끝에 생각나서 찾아간 또 다른이웃은 아이리쉬(Irish), 존 맥.나이트(John McKnight)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는 더 준법정신이 강한지 정부의 방침을 거역할 수가 없노라고 선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를 저주한다고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보십시오.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허황한 욕심 때문에....."- 일본과 일본 사람들을 바라다 보는 눈초리가 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처졌다. 결국 다카야마는 그의 농장을 맡길 사람을 더 이상 생각해 낼 수가 없어 낙담을 하며 포기 하려고 했다. "여보? 이젠 누구에게 부탁을 한담?" 다카야마는 아내 쥰꼬를 바라다 보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잘못하다가는 전 재산을 날리게 되며 그들의 노후 대책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글쎄, 누가 좋을까요? 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정부에 맡긴다면?" 그것은 모든 재산을 거저 준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아! 여보, 혹시 김상환이란 조선 사람에게 부탁하면 어떨까요?" 아내 쥰꼬가 뜻밖의 제안을 했을 때 다카야마는 어리둥절했다. "김상환? 김상환! 와, 좋긴 한대 조선 식민지 사람에게? 조센진, 잘 속이고 거짓말 잘 한다는 데...어떻게?" 다카야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여보! 내가 보기엔 그 사람 착실한 사람 같던대, 믿을 만 하던대." "여보! 조선 사람들? 못 믿잖소? 거짓말 잘하고, 훔쳐가고, 그러니 조선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거나 다름 없잖소?" "조선 사람이라고 다 그런가요? 원래 조선 사람들은 예의가 바른 민족이었는데, 일본이 망쳐 놓았다고 하든군요. 그러니, 한번 맡겨 봅시다." "..................." 다카야마는 더 대답을 못하고 머뭇 거리고 있었다. "부탁해 봅시다. 여보!" 쥰꼬가 다시 강조했을 때, 다카야마는 눈을 지긋이 감고 말았다. 조선 사람에게 농장을 부탁한다는 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인대, 그래도 그는 밤새 고민하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지루하리만큰 길고 긴 괴로운 밤이 지나고 짜증나는 아침이 됐다. "조선 사람, 괜찮겠지?" 다카야마는 뚱딴지같이 아내에게 힘없이 그리고 체념한 듯이 물었다. "그러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쥰꼬는 다부지게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부탁해 봅시다. 여보!" "잘 생각했습니다. 여보." 마침내 일본 사람 다카야마는 농장을 조선 사람, 김상환에게 맡기기로 마음을 정하고 다음날 아침에 정장을 하고 살리나스 북쪽에 사는 김상환의 농장으로 힘없이 찾아갔다. 믿어도 좋을까? 정작 농장을 맡겠다고 해도 정말 믿어도 될까? 그는 의심을 하며 그의 집을 찾아갔다. 생각지도 못한 일본 사람, 다카야마의 방문을 받은 김상환 부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는 듯했다. '아니? 일본 놈들이 여기, 조선 사람의 집엔 무슨 일로 왔나?'라는 의구심과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대했기 때문이었다. 콜로라도에 있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그의 귀중한 꽃 농장을 맡아 달라고 하는 뜻밖의 간곡한 다카야마의 부탁을 들은 후, 김상환은 정색을 하고 거절을 했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어찌 내가일본사람의 재산을 맡아 관리를 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일본은 조선의 원수입니다. 다카야마씨!" "원수가 아닙니다. 이웃입니다."쥰꼬가 곁에서 조용히 대답을 했다. "이웃이라고 하셨나요, 쥰꼬상?" "예. 이웃입니다." "그래요? 이웃? 나는 아닌데요. 쥰꼬상!" 그러나 다카야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체념한 듯이 그리고 모든 자존심을 잃어 버린 사람처럼 거듭 그리고 또 간청을 하고 있었다. 부탁을 받아 준다면 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제안도 했다. 조선 사람, 김상환으로서는 들어 주기 힘든 부탁이었다. 식민지로 인해 죽을 고생을 한것도 한스러운데 이젠 일본 사람의 재산을 관리해 달라고...... 김상환부부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그만 일어 나려고 했다. 순간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웃이라고만 말하던 쥰꼬가 무룶을 꿇더니 남편을 대신해 김상환부부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멀리 콜로라도로 잡혀 갑니다. 농장을 어느누구에게 부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스위스 사람도, 아이리쉬도 어느 누구도 받아 주질 않습니다. 김상환 선생님! 선생님마저 받아 주지 않은다면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야합니다. 우리는 선생님 가족과 조선 사람을 믿습니다." "예? 조선 사람을 믿는다고 하셨나요?" "예." 쥰꼬는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조선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는데...어떻게 쥰꼬상은 우리 조선사람들을 믿는다고 하나?' 김상환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으며 조선 사람을 믿는 일본 사람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발견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조선 사람을 믿는다고요?" "그렇습니다. 김상환씨라면 믿습니다." "저라면?" "예." "마지못해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나는 전부터 그렇게 보아왔습니다." -김상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니 굶주려서 돈을 벌기위해 무조건 이민선을 탓던 1905년을 생각했다. 먹고 살기위해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고 쫓기듯이 도망하던 그때가 얼마나 초라했던가.... 그런데 여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용소로 가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의 눈물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요, 다카야마씨?" "얼마나요?" "내일 아침에 다시 봅시다. 오늘 밤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상환선생님!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다카야마 부부는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람, 내일 보자고 하는 것을 보니 마음에 없나보군. 여보." 다카야마는 아내를 바라다 보며 괜히 헛수고를 했다는 듯이 한 마디했다. "아니요, 허락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쥰꼬?" "어쨌든 내일 다시 가 봅시다. " 밤새 뜬 눈으로 잠도 못자고 다음날 아침, 다카야마 부부는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김상환의 집을 찾았다. 어제처럼 정중한 인사를 한 후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곁눈으로 김상환의 얼굴을 읽고 또 읽었다. 잠시 후에 그의 입에서 나올 단호한 거절을 미리 듣고 있는 듯 했으며 막상 그 대답을 기다리자니 불안함이 엄습하고 있었다. "김상환 선생님? 제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다카야마는 체념한 듯이 먼저 도와 달라고 재촉을 하고 말았다. ".............." "부탁입니다. 제발....." 쥰꼬도 곁에서 거듭 부탁을 하며 김상환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안된다'고 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다카야마 상? 그러겠습니다. 우리가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예? 받아 주시겠다고요? 그래요? " "그렇습니다. 저도 밤새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지요. 걱정마시고 콜로라도에 가셔서 몸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때가 되면 돌아오십시오. " "감사합니다. 김상환 선생님.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다카야마는 물론 쥰꼬도 감사함의 표시를 하며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다카야마상? 보상은 필요없습니다." "예? 보상을 안받는다고요? 농담을 하시나요?" 다카야마는 얼굴이 헬쓱해 지면서 되물었다. "보상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이웃이기에 받아 주겠다는 거지요." "이웃이니까?" "예. 이웃." 김상환은 힘을 주어 대답하며 미소를 짖고 있었다. 그러나 다카야마는 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힘든 부탁이었다. 자신의 농장을 관리하기도 힘든대 더 규모가 큰 농장을 보상도 없이 이웃이기에 관리해 주겠다니, 이것은 누가 봐도 엄청난 일이었다. 김상환도 밤새 이문제를 생각해 봤으리라. 불가능 할지도 모르는 일을 감히 수락하다니, 그것은 단지 '조선 사람도 부지런하며 의리가 있음을 '알려 주고 자 함이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은믿어도 된다. 그리고 조선 사람은 부지런하며 인정이 있고 거짓말을 안한다'라는 긍지 때문이었다. '단지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은은한 음성이 귀 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 1942년 2월 1일 새벽------ 조선 사람, 김상환은 낡은 농장용 트럭에 모든 것을 체념하여 아주 피곤한 모습을 한 일본 사람, 다카야마 부부와 학업도 중단한 딸 히토미를 태우고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으로 갔다. 살리나스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생각보다 쌀쌀해 귀끝이 찬 새벽이었다. 세시간이나 걸려 운전해 그곳에 도착해 보니 털 사쓰와 털 모자를 쓴 많은 일본인들이 이미 와서 웅성웅성거리고 있었으며 각각 작은 피난 보따리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 겁 먹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해를 당하지 않을까?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위험한 일본인들'이 멀리 콜로라도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그라나다 외곽에 위치한 아마체(Amache Camp)에 강제로 수용되는 비참한 현장이었다. 비록 미국 시민으로 애국심이 있다고 해도 일본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매국노, 역적 그리고 스파이'가 된 일본 사람들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아니면 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먼지가 묻어 초록색갈이 갈색으로 여기저기 바랜 미군 트럭, 여러대가 이곳으로 향해 오더니 눈을 부라린 미군 헌병들은 마치 소 떼를 다루듯이 일본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다카야마씨? 잘 다녀오세요. 몸건강하게." "김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조선 사람, 믿어도 됩니다." "사요나라!" 그리고 다카야마부부는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다른 일본 사람들과 같이 트럭에 가까스레 올랐다. 찬 바람으로 인해 코가 싸늘 했으며 눈을 지긋이 감아야했다. 샌프란시스코 역으로 간다고 했다. "사요나라!" 이른 아침,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은 오늘 따라 찬 바람이 강했으며 기약 없는 이별로 더 춥고 쓸쓸해 보였다. * 다카야마 일행이 샌프란시스코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북가주에서 온 일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대 모닥불도 없다보니 추워서 덜덜 떨고 있었다. 대충 세어 보니 약 500명은 될 듯한 일본 사람들, 남녀, 노소가 맥을 놓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으며 그 주위에 미군 헌병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노인들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했으나 젊은 이들은 간간히 화를 못 참고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엄연히 미국 시민이다. 어찌 미국정부가 미국시민을 못 믿는다는거냐? 왜? 우리도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 시민들이다."라고. 그러나 이들을 매섭게 째려 보고 있던 백인 헌병 하나가 큰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일본 놈들! 너희들은 우리 미국을향해 총을 거꾸로 쏠 매국노들이다. 잠자코 있거라!" 일본 청년은 더 이상 큰 소리로 불평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허름하고 지저분한 열차에 일본 사람들을 분승 시킨후, 열차는 칙칙 폭폭 소리를 내며 샌프란시스코역을 떠나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열차이지 열악한 나무로 만든 의자는 딱딱했으며 석탄 난로가 중앙에 있기는 하나 열기가 약해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춥고 또 추웠다. 그래도 노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청년들은 일부러 좋은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아버지, 배가 산 처럼 부른 임신부도 있었다. 모두다 일본인 잇세이(일세)와 닛세이(2세) 그리고 혹간 산세이(3世)가 있었다. 도리켜 보면 일본 이민 80년의 모습이 여기 후지고 냄새 나는 기차속에서 보는 듯했다. 나뭇잎이 앙상한 캘리포니아의 산간과 얼어 붙은 겨울 평야를 달리는 낡은 기차속에서 다카야마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동경의 신쥬꾸(新宿區)의 옛 건물들과 황궁에 아버지하고 같이 갔었는데 운이 좋게 어느날 머리에 큰 깃을 달고 나온 명치 천황을 본일이 있었다. 문득 그 때 그 모습이 멋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응 의숙을 다니던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의 집에가서 만났던 머리를 길게 땃던 그 소녀. 지금은 어디에 갔을까? 그후에 아버지가 마련해 준 아내, 준꼬상, 그녀는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슬그머니 옆을 바라다 보니 60노인이 된 아내 쥰꼬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은 것으로 보아 지난 인생이 힘들었음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어쩌다 나를 만나 이 고생을 하는가? 다카야마는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도 금년 버클리 대학 2학년 생이며 당당한 미국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로 끌려가야하는 딸 히토미가 어머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었기에 아내 쮼꼬는 외롭지 않은 듯 지긋이 눈을 감고 있었다. 콜로라도 의과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야 할 아들 제임스는 어찌 되었는지? 미국정부는 미국 의과대학생도 못 믿는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기차는 캘리포니아의 주 청사가 있는 사크라멘토를 지나고 있었다. 사크라멘토의 평야에 간간히 녹지 않은 눈도 보였으며 우거졌던 나무들은 아직도 잎이 떨어져 앙상하기만 했다. 아직도 먼 길이지만 어짜피 가야 할 길이라면 기차로 밤새 달려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수용소로 가지 않는 다면 대륙 어디로든지 달려가고 또 돌고 돌았으면 좋으련만, 이 기차는 분명히 콜로라도 수용소로 간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달이 없는 캄캄한 밤, 별들이 유달리 초롱초롱해 보였다. 마치 별들이 살아서 여기 저기로 나들이를 가는듯해 보였다. 기차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네바다주를 지난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일본 식 주먹밥이 아닌 딱딱한 빵에 버터와 그리고 작은 햄이든 샌드위치 하나와 물 한컵을 먹은 것이 고작이었으나 배가 고프지 않았음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가? 아니 더 준다고 해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조선 사람, 김상환에게 억지로 맡기고 온 농장이 궁굼했으며 걱정스러웠다. 과연 조선 사람이 거짓말 하지 않고 농장을 끝까지 돌보아 줄까? 정말 돌보아 줄까? 조선 사람은 게으르며 거짓말을 잘 한다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대답은 '아니 올시다'였다. 평소에 그 사람과 한마디도 마음 터놓고 얘기 한번 한 기억이 없는데, 게다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평소의 불만과 앙갚음이 두려웠다. 농장을 돌봐 준다고 말해 놓고 다카야마 가족이 없는 사이에 슬쩍 자기 것으로 가로챌 것만 같았다. 꽃 농장이 다카야마에게는 전 재산인데 그것을 송두리째 조선사람에게 황망스럽게 맡기고 온 것이 크나 큰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고 온 것 같아 후회가 됐다. 앞으로 몇 년이나 수용소에 있게 될런지, 아니면 살아서 돌아 가게 될런지도 모르는 판에 농장이 무슨 문제가 되나, 그는 후회를 하고 또 후회를 하고 있었다.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 놓고 단념한다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이 드는지 다카야마는 머리가 지근지근 아프기 시작했다. 기차는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무작정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길 잃은 말 한 마리가 주인을 찾아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었다. 지루하고 긴 겨울밤의 고독함이었다. 어느 누군가가 참다 못해 잘 알려진 일본 민요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흘러 떨어지지 않도록 떠 오르네. 봄 날에 혼자뿐인 밤 위를 보며 걷자. 눈물에 흐려진 별을 세며 떠 오르네. 여름날 혼자뿐인 밤 행복은 구름위에 행복은 하늘위에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또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마침내 기차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달도 없는 캄캄한 밤. 적막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속에서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 가요를 구슬프게 그리고 한을 달래며 부르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교토, 도쿄, 오사카, 오이타, 삿보로 그리고 가고시마의 하늘을 떠 올리고 있는 듯 했으며 그들의 마음은 그 곳에 가 있는 듯 했다. 눈을 감고 비스듬히 누어 이 생각 저생각을 하고 있는 다카야마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왔던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경응의숙을 졸업하고 동경에서 경제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인생은 한 순간에 곤두박질도 치고 하늘로 솟구치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구슬픈 노래 소리가 더 커지는 순간 닛세이(2세)청년 한명이 열차 코너에서 화가 난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들 하십시오. 그렇잖아도 우리는 일본만을 사랑하고 미국을 싫어 하는 비 애국자라고 하는데 그런 노래나 부른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차라리,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릅시다.' 흠찢 놀라 많은 사람들이 노래 부르기를 그쳤으나 여전히 몇몇 노인들은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아니, 고향생각이 더 나는지 울고 있었다. "그만들 하십시오.!" 닛세이(2세) 청년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 하라니? 너는 미국놈이냐? 네가 아무리 그래도 우린 일본 사람이다. 미국에 사는 일본 사람이다." "그러니까, 문제가 된다는 거지요. 일본이면 일본, 미국이면 미국! 한가지 선택을 해야지요." "한가지 선택이라, 그래, 내 마음은 일본, 내 겉은 미국이다. 이녀석아!" 잇세이(1세) 노인이 큰 소리로 대답 했을 때, 뜻밖에도 여기저기에서 "옳소! 옳소!"라는 반응이 나왔다. 압도적인 반응이었는지 그 후 닛세이(2세)청년의 항의가 더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마음은 일본에, 몸은 미국에........ 기차는 기적 소리를 내며 헉헉 산길을 달리고 있는지 숨이 찬듯했으며 가기 싫은 산길을 저주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몰몬(Mormon) 교도들이 모여 산다는 유타주를 지나고 있는 기차는 이제는 힘이 드는지 가끔씩 멈춰 섯다가 다시 가기를 반복하더니 다음날 오후 늦게 솔트 레이크(Salt Lake City)역에서 멈췄다. 헌병들은 일본 사람들에게 기차에서 내려 피로를 풀기 위해 몸 운동을 하라고 친절하게 말해 줄 뿐만 아니라 특별 음식으로 식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헌병의 달라진 태도로 인해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거장 풀랱 폼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솔트 레이크 시티는 큰 도시에 비해 아주 조용한 도시로 인상 깊었다. 마치 다카야마가 즐겨 찾아 갔던 요코하마 시와도 비슷해 보였으며 고향역을 지나가면서도 사정이 여의치않아 들리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문득 어디에서인가 "노부사가! 노부사가! 여기서, 아버지가 너를 기다린다." 라고 할복 자살했다던 아버지가 부르는 듯 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가 어느듯 30년이 됐는대 이토록 생생한 목소리를 듣다니...... "아버지?"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 "..........." 역시 대답이 없었으며 메아리만 울려 올 뿐이었다. -가엾은 아버지였다.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랬는지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를 내자 그는 사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그는 사무라이 정신대로 하리가리 (割腹)를 택하고 말았다. 부끄러움보다는 결백을... 구차한 삶보다는 죽음을 선택했다. 구차한 변명보다는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겠노라고... 두 시간을 머물러 석탄과 물을 공급받은 기차는 힘이 솟았는지 붕붕 소리를 지르며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톡키 산맥을 끙끙거리며 지나기 시작했다. "럭키 산에 흰 눈이 내릴 때...." 라는 시 구절이 생각났으나 내용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콜로라도 산맥을 기어오르는 기차는 마치 나무 가지에 바짝 붙은 매미가 엉기정 엉기정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미국 정부의 대접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본 사람들을 해 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를 했는지 마침내 피곤에 지친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고향 그리워......" 누군가 흥얼대는 사람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피곤하여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다카야마는 달랐다. 한잠도 못자고 가슴 조리며 뜬 눈으로 지샜다. 아들 제임스가 염려스러웠으며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사고가 있어 몸을 다치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콜로라도가 아닌 다른 캠프로 옮겨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두고온 농장은 어떻게 돠고 있는지, 조선 사람이 정말로 농장을 관리해 주고 있는지, 이 생각 저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시쿤둥 아프기 시작했다. 지쳐서 잠든 아내, 쥰꼬와 딸 히토미를 바라다 보면서 다카야마는 남편과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역활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을 수용소로 가면서 더 더욱 느껴지고 있었다. '아버지인 내가 강해야한다. 남편인 내가 앞서 가야한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수용소 생활을 위해...... 강해야 한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나보다. 다카야마가 다시 눈을 떳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으며 기차는 와이오밍의 도시 '샤이엔(Cheyenne)'에 도착했다. * 샤이엔(Cheyenne)! 수 인디안의 도시--- 아름다운 인디안 처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샤이엔(Sheyenne)이란 도시는 애환이 잠긴 도시였다.원래 수 인디안들이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많은 중국 노동자, 일본 노동자 그리고 백인들이 철도 건설을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어 큰 도시를 만들고 수 인디안들을 쫓아 내었다. -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은 수 인디안들은 여러 인디안들 중에서 가장 용맹했지만 생태학적으로 버팔로(Buffalo)와 같이 평화롭게 대평원에서 살고 있었다. 샤이엔강에서 고기를 잡았으며 불랙힐이라는 성산(聖山)에서 전능하다는 와콘다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가 하면 가을에는 대평원에서 알이 굻고 탐스럽게 달린 많은 옥수수를 수확했다. 그러기에 수 인디안들이 살던 대평원은 아주 평화로운 고장이었다. 수.인디안-버팔로-와콘다 신-옥수수 이 네가지는 수 인디안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조건이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수 인디안들은 분명 진(秦)나라의 시황(始皇)이 서복(徐福) 장군과 선남 선녀 각각 500명, 도합 1000명을 동쪽에 있는 나라로 보내 영원히 늙지 않게 하는 불로초(不老草)를 찾으러 간 그들 중국인의 후예이건만 그들은 불랙 힐스(Balck Hills)에 있는 와콘다(Wakonda) 신이 창조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신앙관은 특별했다. 그들은 와콘다 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면 영생한다고 믿는 확고한 신앙이 있으니 다른 인디안들에 비해 강건하고 용맹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어찌보면 무술림들의 신앙관인 '알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 알라에게 간다'는 그 신앙과도 비슷했으며 기독교의 창조 신앙과도 유사했다. 생각해 보면 서귀포(西歸浦)에서 동쪽 바다를 향해 항해 해 갔던 서복장군 일행은 그후 어찌된 셈인지 역사의 기록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2천 2백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 대륙의 대평원에서 버젖이 살고 있으며 일부는 알라스카에서 살고 있다. "와? 그래요? 어떻게...." 진시황이 보낸 중국사람들이 불로초는 안 캐고 태평양을 넘어 여기 대평원에 와서 살다니 이게 무슨 조화란말인가요? 이 역사적인 사실이 소위 '세계 7대 불가사의(7大 不可思議)'중의 하나로 < 수. 인디안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넜을까?>라는 명제이다. (영국 런던 대학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논문) * 그러나 백인들이 미국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순박한 원주민, 인디안들과 공존하기는커녕 엉큼한 욕심을 품고 오히려 인디안들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죽이고 빼앗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뜻밖에도 백인, 커스터(Custer) 장군이 수 인디안에게 패해 몰살을 당하자 화가 난 미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수.인디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와이오밍의 도시, 샤이엔은 원래 원어로 Sheyenne이라고 표시하며 그 뜻은 수 인디안의 아름다운 여자란 뜻인데 백인들이 와이오밍의 수 인디안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후 도시의 이름을 샤이엔(Cheyenne)이라고 고쳐 불렀다. 백인들은 수 인디안의 말까지도 철저하게 유린했다는 말이다. * 샤이엔에서 기차가 머무는 동안 일본 사람, 다카야마는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왜, 인디안들과 공존하지 못하고 학살을 해야 했는가? 왜? 버팔로와 같이 평화롭게 살며 선 댄스를 추며 와콘다 신을 위해 축제를 드렸던 수 인디안들을 왜? 백인들은 죽여야 했던가?' '그야,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죠. 불랙 힐스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보니 백인들의 눈은 온통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긴거죠.' '그렇다면 다카야마씨? 당신들 일본 사람들은 왜 조용한 나라,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조선을 그렇게 무참하게 멸망 시켰소? 왜?' '예? 일본이 왜 조선을 그토록 멸망을 시켰느냐고요?' '그뿐인가?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의 성씨를 일본식으로바꿨을 뿐만 아니라 조선말까지도 다 말살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선말(한국말)을 쓰면 감옥에 집어 넣고 오로지 일본 말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아- 그렇군요.' '그러니까, 백인들이나 일본 사람들이나 백보 오십 보, 다 그게 그거란 말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백인들이 수 인디안들을 학살하고 말까지도 빼앗으려고 했던 그 잔학한 행동이나 일본이 조선 사람에게 한 그 잔악한 행동이, 무엇이 다르단 말이요?' '그렇군요.' '그러니, 김상환씨가 당신을 싫어 한 이유를 아시겠죠?' '예. 충분히.....' 다카야마는 백인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소수 민족으로 받는 인종 차별을 증오해 왔는데 수 인디안들과 백인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악순환의 역사를 알고 나니 마음속 깊이에서 솟구치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 백인들이 수 인디안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빼앗았는데 일본도 마찬가지의 죄악을 저질렀구나! 문화와 전통이 있는 조선을 총 칼로 빼앗았으며 잔인한 방법으로 조선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백인이 저지른 그 죄악이나 일본이 조선에게 저지른 죄악이나 무엇이 다를까? 그러기에 김상환씨가 일본 사람인 나를 그토록 피하고 싫어 했었구나. 내가 그에게 큰 사죄를 했어야 했는데. 게다가 아픈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김상환씨를 위로는 못할 망정 야속하게도 나의 농장까지 관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내가 사람인가? 아! 내가 몹쓸 놈이구나!' 다카야마는 와이오밍에서 마침내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조선 민중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 '아! 나는 조선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그들과 친구가 되겠다고 했으니 조선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를 증오했구나....' 다카야마는 수.인디안들이 무참하게 학살됐던 샤이엔에서 마침내 일본 사람들의 잔악한 인종 차별과 조선에 대한 범죄를 절실히 느끼게 됐다. * 샤이엔에서 석탄과 물을 공급 받은 기차는 콜로라도를 향해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려가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뵈는 럭키 산맥은 일본의 후지산보다 더 높고 웅장해 보였으며 아름다웠다. 산록에는 아직도 눈이 쌓였으며 찬바람이 매서운 듯 했다. 그러나 조선사람의 고통과 김상환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니 다카야마는 자신의 가슴이 따슷해 옴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을 조금 열고 남을 진심으로 받아 드리면 마음속이 따듣해 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마음을 더 활짝 열고 보면 아무리 어려운 적이라도 친구가 되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오후 늦게 기차는 콜로라도의 덴버(Denver)시에 도착했을 때 기차는 물과 석탄이 떨어졌는지 힘든 염소처럼 비틀 대는 듯 했다. 해발 일 마일(1 mile) 높이 있다고 하는 '마일 하이(Mile High)' 덴버시는 샌프란시스코 못지 않은 빌딩들이 여기저기에 보였으며 저 빌딩중의 하나가 아들 제임스가 공부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덴버 의과대학과 그 부속병원일거라고 생각하니 반갑고 마음이 뿌듯했다. '제임스? 아버지가 여기에 왔어. 넌 어디 있느냐?' 다카야마는 마치 아들을 보고 있듯이 말을 하고 있었기에 옆에 있던 쥰꼬가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 보았다. 덴버 역에 도착한 기차는 생각보다 오래 정차했으며 친절하게도 그 사이에 음식을 푸짐하게 나누어 주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몇시간 더 내려가면 캔사스주와 인접한 그라나다(Granada city)시가 나오며 그 시의 남쪽에 있는 아마체(Amache)라는 수용소로 이동 된다고 했다. 뜻밖에도 기차로 가려던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는지 모든 일본 사람들을 기차에서 내리게 했다. 수많은 군용 트럭이 쌀쌀한 바람이 부는 정거장으로 행렬을 지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트럭에 22명씩 비교적 빽빽하게 옮겨 태우고는 어둑어둑한 저녁에 남쪽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초생달이 콜로라도의 산위에 걸려 있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일본 사람들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찬 바람이 불어와 얼굴이 시리고 와들와들 떨려 서로의 몸을 부등켜 안고 갖고 온 모포를 뒤집어 써야 했다. 밤새 달려간 트럭은 아침 동녘이 틀 무렵 그라나다시의 외곽에 있는 아마체 수용소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헌병들이 총을 들고 일행을 바라다 보고 있는 모습이 섬찢했다. 마치 일본 사람들을 미국을 배반할 원수라고 생각하며 능멸하듯이 바라다 보는 눈초리였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이웃이 이토록 180도 달라지다니..... 동녘에 본 수용소는 철조망으로 처져 있었으며 광활한 평원에 먼지가 많이 날리고 있었다. 수용소 철조망을 들어 서는 순간 다카야마씨는 앞으로 올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평탄치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 콜로라도 그라나다 일본인 수용소(Amache Japanese Internment Camp, Granada, Colorado)라고 크 게 쓰인 입구를 통과하면서 다카야마는 눈을 감았다. -주: 아마체 일본인 캠프는 콜로라도 남쪽 아칸소 강 계곡과 인접한 그라나다 시 외곽의 광활한 평원에 건설된 수용소로 1942년 8월부터 1946년 1월까지 이곳에 미국 정부가 7597명의 일본인을 강제로 수용하였다. 160에이커의 부지와 10000에이커의 농사지을 땅을 가진 거대한 캠프였다. 마치 형무소처럼 6개의 감시소가 있으며 짚차가 순시 및 감시하며 돌아 다녔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560개의 작은 빌딩에 운영사무소 150베드의 병원, 우체국, 학교, 소방서, 경찰서 그리고 상점들이 있는 작은 마을과도 같다. 물론 50%의 주민은 일을 하여 월 12$에서 19$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30개의 주거 지역이있으며 각 주거 지역마다 12개의 주택(Barracks)이 있어 그곳에 가족 단위로 생활을 했다. 구역마다 빨래터,샤워장,오락소가 있으며 boy scouts, YMCA,유치원 그리고 교회가 있다. 주민의 25%는 학생들로 백인과 일본 선생이 가르쳤다. 고등학교는 특별히 잘 지어졌으며 성인교육 센터도 있으며 타이프,영어, 양복제조 그리고 그림 그리기도 할 수 있다. 식사는 미국식과 일본 식으로 공급했으며 일정한 시간에 식당에서 같이 먹어야 했다. 일본인 이민 일세 중심으로 2세 대표들이 모여 자치적으로 운영을 했다. 수용된 일본인 중에 10%는 자발적으로 미국 군대에입대하여 이태리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그중에 34명은 전사했다. 수용된7000명중, 120명이 사망했다. 1946년 이후 캠프는 폐허가 되었으며 지금은 자취만 찾아 볼 뿐 황량한 유령의 타운이 되었다.- 제 9장: 제니퍼의 할아버지, 제임스 다카야마(이시카와) (조국(祖國)이 적국(敵國)이 된 세상에서) 밤새 흔들리는 트럭에서 추운 바람에 시달리다 동녘이 트는 이른 아침에 아마체 수용소에 도착한 500명의 일본 사람들은 배고프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숙소를 배당받고 보니 잠시 다리펴고 쉴 수가 있었다. 방이라고는 하지만 옛 마굿간을 개조하여 만든 듯 했으며 급히 건축을 한 보록과 나무들이 조잡했기에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여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 바락(Barack)마다 한 가족씩 배당되었기에 다카야마의 가족 세명과 혹시 만날 제임스까지 같이 살 수가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식당과 변소, 세면장과 샤워장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써야하며 모든 것이 군대식으로 시간 시간을 체크하며 절도 있게 움직여야 했다. 잠시 잠을 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건만 다카야마는 물론 아내 그리고 히토미도 뜬 눈으로 잠을 자지 못함은 제임스가 여기에 와 있는지 아닌지 궁굼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수용소로 가 있던지 아니면 몸을 다치거나 죽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제임스야! 너, 살아있지? 여기 있지?' 늦은 아침이 되어 공동 식당에서 일본 사람들은 첫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다카야마는 식사보다도 아들을 찾는 것이 더 급했다. 제임스는 아무리 보아도 눈에 띄질 않았다. 양은으로 만든 트레이에 음식을 받았으나 앞으로 닥칠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돼 일본 사람들은 성조기가 꽃혀 있는 아마체 행정 사무소를 지나 공동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다카야마와 그 가족은 두리번두리번 어디에서 튀어 나올 듯한 아들을 찾고 있었다. 그 때, 다카야마를 향해 달려 오며 소리치는 젊은이가 있었는대 그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아버지! 어머니! 히토미!" 그 목소리는 분명 아들 제임스의 목소리였다. "살아 있었구나, 제임스?" 다카야마도 큰 소리로 외치면서 아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힘'�끌어 안았다. 뒤 미쳐 달려온 어머니와 히토미도 제임스를 뒤에서 옆에서 끌어 안고 있었다. 아니, 망망 대해에서 헤메고 헤메다가 가까스레 만난 구조선과도 같았다. 도리켜 보면 지난 2년간, 콜로라도 의과대학으로 진학한 후 학비를 벌기 위해 집에도 오지 않고 콜로라도에서 힘든 일을 했기에 그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제임스는 가족과 연락도 못하고 콜로라도로 끌려 온 것이 어느듯 일주일이 됐다. 아무리 일본 사람을 못 믿는다고 해도 미국 시민으로 의과대학 2학년생인 제임스를 수용소로 끌고 오다니.... 제임스는 분통이 터졌다. 그리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제임스는 살리나스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으나 불행하게도 불가능했으며 편지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소처럼 수용소로 끌려와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 부모님을 여기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 의과대학도 못 다니고 강제로 수용소로 끌려 간 것도 억울한데 제임스에게 더 가슴 아픈 안타까운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그가 사랑하던 애인, 루시(Lucy Jones)와의 껄껄한 이별이었다. -버클리 대학에서 만난 루시는 영국계 백인 여학생으로 졸업반(4학년)인 제임스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콜로라도 의과대학에 입학하기로 예정 됐던 제임스와 의과대학에 역시 들어 가고 싶어 하는 신입생(1 학년) 루시는 '의사(醫師)'가 되고 싶은 공통점 때문에 자연스레 연인이되었다. 약 일년동안 그들은 데이트를 했으며 이젠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됐다. 다음해, 루시는 버클리 대학, 이학년으로 그리고 제임스는 콜로라도의과대학으로 진학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편지와 전화로 통했으며 종종 기차를 타고 덴버와 버클리를 찾아 갔다. 서로 결혼을 하기로 결심도 했을 만큼 깊은 사랑을 했는데, 제임스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자 철석같이 믿었던 루시의 마음이 변하여 제임스를 가차없이 배신을 하게 됐다. 엄밀히 보면,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리치몬드의 부유촌에 살고 있는 루시의 아버지는 일본 학생과 연애하는 딸을 좋아 하지 않았다. 더구나 변호사로 일하는 루시의 아버지에게 뵈는 일본사람 2세는 마치 노동자의 아들로 보였기 때문에 딸 루시에게 제임스를 만나지 말라고 누차 경고를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사건이 발단하자 누구보다도 좋아한 것은 루시의 아버지였다. 수용소로 가는 제임스를 보면서 루시도 앞날이 모호한 제임스에게 자연스럽게 단절을 선언하게 됐다. "제임스, 내가 비록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나 당신은 지금 미국을 배반한 일본 사람의 한 부류에 속해. 당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배신이란 말이지요. 이건 개인의 차원이 아닌 민족적인 그리고 국가 정책에 따른 거요. 그러니 부디 나를 잊고 수용소에 가서 몸 건강하게 지내세요." "아니? 그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않겠다는 말이요?" "사랑합니다마는 법이 허락치 않는군요." "법이?" "예." "루시! 난 당신만을 사랑해요. 무슨 말을 하는거요?" "제임스, 이젠 그만 헤어집시다." "헤어지다니요?" "더 이상 데이트를 못 한다는 말이지요, 제임스!" "더 이상?" "그래요, 제임스. 자, 안녕!" 루시는 매정스럽게 '안녕'이란 말 한마디를 한 후, 훌쩍 사라졌으며 그후 편지도 전화도 그리고 찾아 오지도 않았다. 결국 제임스는 사랑하는 애인 루시로부터 가슴 아픈 배신을 당한 셈이었다. -의과대학도 못 다니고 수용소로 끌려 가는 것도 억울한데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헌신짝처럼 배신을 당하다니, 마치 하늘이 노하여 천둥 번개를 동원해 벌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역시 백인들은 정보다는 이성적이기에 싫으면 과감하게 끊고 차겁게 돌아 선다고 했는데 믿었던 루시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살 맛이 없어졌다. 극약(劇藥)이라도 먹고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해졌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며칠후, 의과대학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중에 예상했던대로 헌병이 찾아와 짚차에 타라고 명령을 했을 때, 제임스는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이것보소! 의과대학생인 내가 어찌 미국을 배반하겠소? 아닙니다. 그래도 나를 수용소로 보내겠다는거요?" "의과대학생이건 미국 시민이건 우리는 상관 안는다. 단지 법을 집행하는 거다. 잔말 말고 짚차에 타거라. 안타면 강제로 태운다." 권총을 찬 미군 헌병은 겁에 질린 제임스를 욱박 질렀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철석같이 믿었던 콜로라도 의과대학 당국의 애매모호한 처사였다. 학생이 잡혀 가는 판에 도와 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잡혀 가도록 도와 주고 있었다. "의과대학은 일단 퇴학 된 것으로 간주하겠네.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 온다고 해도 받아 줄 수가 없어. 우리도 단지 법을 집행하는 것일뿐이네. 제임스!" "아니? 그럼, 복학이 안된다는 거요?" "일단 그렇게 알고 가게. 자 우리는 더 이상 관여 할수가 없네. 잘가게. 제임스!" "안됩니다. 그게 무슨......" "이것봐! 자 짚차에 타라구! 아니면 강제로 태울터이니....." 철석 같이 믿었던 의과대학 당국도 외면을 하고 보니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을 하며 군용 짚차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수용소에 가면 부모님들과 히토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실낱 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수용소에 들어와 밥도 제대로 못먹고 우울하게 며칠을 보내고 있던중 칼리포니아에서 500명의 일본인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히토미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른 주에 있는 수용소로 가지 않고 여기 콜로라도로 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그는 뛸 듯이 기뻣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라고 가족들을 여기서 만나 같이 살게 된것만 해도 루시로부터 받은 악몽을 떨쳐 버리고 재생을 할 것 같았기에 닛세이(2세) 대표로 잇세이(1세)들과 어울려 수용소를 운영하는 자치회에 관여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히토미는 버클리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이곳 수용소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 월 25달라를 받을 수가 있었다. 제임스는 의과대학생이기에 수용소 사무실에서 정부 직원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으며 월, 30달라를 받았다. 다카야마 부부는 들에 나가 뙤약볕에서 채소를 재배하든지 다른 농작물을 가꾸는 값싼 노동자가 된 셈이었다. 노력하면 그래도 금전이 생기기에 다카야마 가족 뿐만 아니라 근면한 일본 사람들은 열심히 노동을 하여 한 푼이라도 더 수입을 만들었다. * 아마체에 들어온 일본 사람들은 이제 한 가족처럼 친해 졌으며 공동체로서 협동정신이 강했다. 뜻밖의 정치적인 질문(잇슈)이 자연스레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부각되었다. '과연 일본 사람들은 배신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 시민이 될까? 그렇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세가지 질문이었다. 아마체에 수용된 7597명의 일본 사람중, 66%가 미국 시민이었으며 나머지대부분은 영주권자였다. 극히 적은 숫자의 일본 사람만이 불분명했다. "미국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는 밥이나 먹지 말고 청년들은 미군에 입대하여 전선으로 나가자!"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실제로 하나둘 미군에 입대를 하기 시작하니 정작 미국 정부가 곤난해 졌다. 믿지 못할 일본 사람, 스파이일지도 모르는 일본 청년들을 일본 전선에 보낸다면 오히려 총부리를 거꾸로 돌려 미국 군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10 곳에 있는 수용소에서 젊은 이들이 군에 입대를 하기 시작하니 미국 정부는 1943년 초에 442전투 연대와 여성부대 그리고 간호부대를 창설해 일본 사람들만을 그곳에 입대 시켰다. "일본 사람들도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시민(愛國市民)임을 보여주자!" 일본 사람들이 부르짖은 표어였다. * 제임스에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심한 갈등이 화산재 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군에 입대한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는데 문제는 애국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군대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 혼자 잘 살기위해 바둥거리는 이기주의자라는 소문에 시달릴 것이기에 어찌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군에 가기 보다 오히려 배신한 연인 루시를 찾고 싶었다. 수용소를 탈출하여 멀리 버클리에 가서 그녀를 한번 보고 싶었다. 아니 한번 가서 '루시야? 네가 그럴수가 있니?'라고 한번 호통을 치고 싶었다. 생각보다 수용소 주위를 감시하는 눈이 매서웠으며 설령 탈출을 한다고 해도 일본 사람의 신분으로는 어디고 가서 밥 얻어 먹기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군에 입대하면 혹시 자유롭게 밖에 나가 루시를 한번 만날 수가 있을텐대...' 군에 입대하여야 하는 또 다른 그럴사한 이유를 찿아 내게 되었다. 결국 그는 군입대 원서를 제출하고 아버지에게 보고 했다. 아버지는 반대도 동의도 하지 않았음은 '일본 사람의 애국심의 표시와 아들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군에 입대하기는 하지만 마음은 몹시도 불안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본 군인은 유럽 전선으로 보내지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총알 받이로 죽었다고 했다. 아니면 일본 사람과 전쟁을 위해 일본 사람을 식별하는 군견(軍犬)에게 일본사람의 냄새를 구별하게 하는 실험용 일본 사람으로 근무하는 아주 비인간적인 근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총알받이? 군견 실험용(軍犬實驗用)으로? 안되지!' 제임스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1942년 10월, 제임스는 마침내 미국 육군에 입대했다. "잘 싸우고 오너라." 아버지 다카야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격려하면서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역시 울면서 아들을 보냈으며 여동생 히토미는 오빠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살아서 돌아와 오빠!" "엉, 살아서 돌아 오마. 나를 위해 기도하거라.히토미!" "엉, 기도할게, 가미사마(神)에게." "가미사마? 너, 언제부터 기독교신자가 됐니?" "아니, 아니 그저 가미사마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가미사마에게 의지를 한다고?" "그래, 오빠, 가미사마를 의지해요...어느 전선에 가든지..." "...................." 제이스는 가미사마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해 관심도 없었으며 일본 사회에서는 가마사마를 믿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동생 히토미의 입에서 가미사마란 말이 나오다니........ "가미사마? 가미사마?" * 다음날 새벽 그는 군용추럭에 실려 몇 명의 일본인 청년들과 같이 켄터키주 훠트 넉스(Fort Knox)로 가서 약 10주간의 고된 훈련을 받았다. 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포복, 낙하, 구보와 같은 특수한 훈련을 받은 후 미육군 일반병으로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첫 배속지가 악명 높은 켄터키 훠트넉스에 있는 군견 훈련부대였다. 말이 훈련부대이지 개를 훈련시는 것이 아니고 훈련 된 개가 일본 사람들의 냄새를 맡아 구분을 하게 끔 강도 높은 훈련시키기 위한 실습용 일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납고 영리한 쉐퍼드가 일본 사람, 즉 제임스의 엉덩이, 얼굴, 가슴, 배 그리고 어느부분이든지에 코를 대고 일본 사람 냄새를 맡도록 해 개가 스스로 일본 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분하도록 하는 비참한 실험 물품이었다. 으르렁 컹컹 거리면서 검은 쉐퍼드가 제임스의 중앙 국부를 향해 코를 대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을 때, 제임스는 오싹하는 느낌으로 눈을 감곤 했다. '아- 이게 미군인가? 이렇게 해야만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보여 주는 것인가?' '말도 안되지, 콜로라도 의과대학생을 일반 병으로 받아 들인 것도 유감인데, 기'�군견 실험용으로 쓰다니.....일본 사람의 냄새는 뭐가 다른가? 말도 안되지.....' 더 괴롭고 참기 힘든 인간 이하의 굴욕은 백인 일반병들이 제임스가 의과대학생인 것을 알고 짓궂게 비인간적인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이, 쨉! 너, 의과대학생이라면서? 어이, 여기와서 개밥이나 먹지!"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흑인 병사와 희죽희죽거리며 야유하는 백인 병사들이 야속했다. '아- 이건 아닌데. 나도 미국 육군 병사인데....똑같은....' 제임스는 비록 모욕을 받았지만 입을 꼭 다물고 참아 낸 것은 어서 속히 버클리에 가서 보고 싶은 루시를 만나야 한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반드시 그녀를 만나 정성을 다해 그녀를 대한다면 그녀도 마음을 돌릴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서 휴가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추운 켄터키(Kentukey)의 겨울도 해를 넘겼다. 오하이오(Ohio) 강에도 루이빌(Louisville)에도 많은 눈이 내렸으며 매서운 바람도 불었다. 여름에 보던 오하이오 강의 유람선은 얼음에 묶여 장승처럼 멍하니 서 있었으며, 아브라함 링컨이 어려서 살았던 허전빌에도 많은 눈이 내렸기에 관광객도 뜸했다. 켄터키, 오하이오 그리고 콜로라도의 추운 겨울은 이렇게 제임스를 지루하고 힘든 하루로 만들고 있었다. * 들려 오는 소문에 의하면 유럽 전선과 동아시아 전선도 고전의 연속이라고 했다. 독일, 이태리 그리고 일본은 예상대로 동맹을 맺고 강력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1943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 육군 442연대가 일본 사람들을 위해 창설되면서 제임스는 지긋지긋한 켄터키를 떠나 442연대로 전속이 됐다. 442 연대란, 순전히 일본 사람들로 구성된 전투 부대로 일본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시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전투부대였다. 노스 캘로라이나 라파에트에 신설된 이 연대로 제임스는 전속이 됐으며 그가 배치된 부대는 제 3대대였다. 같은 일본 사람들만 모였으며 비인간적인 군견 실험용 군인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었기에 제임스는 비로서 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다. 442연대에서 뜻밖의 군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제임스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다. 2차대전 당시에 동양 사람으로 미국 육군의 장교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인데 3전투 대대의 소대장이 뜻밖에도 조선계 미국인(朝鮮系美國人)이었다. "조선사람이 소대장이라니? " "아니 거짓말 잘하고 냄새 난다고 경멸하는 조선 사람을 일본계 미국 군인들이 복종을 할까?" "아니죠?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의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겠죠. 당연히....." 그런데 제임스를 비롯해 소대원들이 절대 복종해야 할 조선계 소대장의 이름은 황동균(黃東均) 소위(少尉)라고 했다. "조선인 소위? 황동균!" 그런데 또 한번 놀란 것은 황동균 소위는 엄연히 미국 육군 소위로 당당한 장교였다. 제임스도 처음 황동균 소위를 보았을 때,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품을 느꼈으며 존경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있었다. 황동균 소위는 분명히 일본 사람들보다 훨씬 키가 컸으며 얼굴에는 더덕더덕 군살과 상처가 있었는대 팔과 다리에도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듯해 보였다. 황 소위는 가끔 분대장을 거느리고 소대 막사에 들렸는대 위풍당당해 보였다. 사실, 일본인으로 구성된 442연대에서 조선 계 미국 육군 소위로 소대장을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은 처음부터 조선 사람들을 믿지 않으려는 민족적인 자존심 때문이었다. "입에서 마늘 냄새 나는 거짓말 쟁이 조센진 소위밑에서 전투에 임하느니 차라리 자살해 죽지....." 그러나 황동균 소위와 단 며칠을 같이 보내고 나면 "아- 황소위? 믿을만한 장교다!"라고 마음을 바꾸리만큼 황소위는 당당한 장교였다. * 제임스도 다른 일본 사람들 처럼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며 켄터키에서 받은 미국 백인들로부터 받은 모욕적인 편견이 더 마음 아팠기에 성격이 강팍해 지고 있었다. 마음 아프다 못해 이젠 반항심까지 생기고 있었다. 더욱이 버클리로 가서 루시를 만나보고 싶어 군대에서 탈영하고 싶은 마음이들었다. 훈련에도 뒤로 처지다보니 잦은 기합을 받았으며 결국, 문제 투성이의 군인으로 낙인 찍혀 하사관에 의해 제임스를 징계하든지 불명에 제대를 시켜 달라고 하는 청원서가 황소위에게 정식으로 올라왔다. "소대장님? 제임스를 제대 시키든지, 아니면 좋은 군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황소위가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임스를 만나게 된 것은 뜻밖에도 선임하사로부터 기합을 받고 있는 막사 뒤에서 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제임스는 엎드려 있었으며 선임하사는 몽둥이를 들어 강하게 제임스의 엉둥이를 내려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강한 몽둥이로 엉둥이를 내려치자 제임스는 "아! 아! 아!"라고 소리를 쳤으나 반항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쉰 후 선임하사(先任下士)는 또 다시 몽둥이를 들고 내려 치려고 하는 순간 이었다. "선임하사! 잠시 멈추시오!" 황소위는 큰 소리로 외쳤다. "황소위님?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잠시 멈추시오! 할 말이 있오." "예, 멈추긴 합니다마는 황소위님? 장교의 세계와 사병의 세계는 다릅니다." "알겠소! 내가 잠시 제임스를 만나할 말이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지요." "그렇게 하십시오. 소대장님." 선임하사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제임스로서는 아주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무식한 선임하사로부터 몽둥이 세례를 받고 있는 중에 조선인 소위를 만나게 되다니.... "제임스? 내가 알기로는 자네는 의과대학생인데, 그리고 군에 입대한 것도 일본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하던대. " "..................." 제임스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부끄러울 뿐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알기로는 조센진은 거짓말을 잘하고 더럽다고 한다네. 나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죽도록 변명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참된 행동을 통해 그게 아님을 증명하려고 하였다네." "............" 제임스는 역시 부끄러워 말을 못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제임스? 자네도 최선을 다하는 군인이 되게! 그래야, 일본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지 않겠나? "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긴...다시 말하지만 자네도최선을 다하게." "......." "왜, 대답이 없나?"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좋다. 자 긴장을 풀게나." "그러겠습니다." "좋은 군인이 되는거지? 제임스!" "예. 명심하겠습니다. 소대장님?" "고맙네. 제임스." 황동균 소위는 제임스의 손을 꼭 잡았다. 곁에서 불만스럽게 쳐다보 있던 선임하사도 웃으면서 "소대장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눈치가 빨라 두 사람이 더 담소를 하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선임 하사가 자리를 비켜주니 분위기가 갑자기 더 친숙해 졌다. "제임스? 자네, 혹시 좋아하는 아가씨라도 있나?" 뚱딴지같은 질문이 황소위로부터 나왔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혹시라도 제임스, 자신에 대한 뒷 조사를 한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예? 아가씨요?" "그래. 자네 좋아 하는 아가씨가 있느냐고 물었어." "..........." "이것봐, 있어, 아니면 없어?" "아, 예. 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더 더욱 사랑하는연인을 위해 건실한 군인 생활을 해야지." "건실한 군인 생활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매일 하루가 건실한 하루가되도록 노력해야지." ".........." "허! 왜 대답이 없나?" "아, 미안합니다." 제임스의 눈에서는 구슬같은 눈물이 몇방울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안됐군. 그래도 군인이 되려면 잊어야지. 사내 자식이 그까짖 계집 때문에 울긴? 기회는 또 오는것이니까." "또 온다고요?" "그래. 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지." -마침내 제임스는 그가 겪었던 실연을, 아니 루시의 배반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해 주었다. "아주 마음이 아프구먼. 그렇다고 그것으로 자신의 전 인생을 바꿀수야 없지. 깨끗이 잊어 버리라구. 사나이가 그깐 일에... 제임스? 불편한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나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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