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청공-아오소라 제5

2012.01.22 07:38

연규호 조회 수:571 추천:23

아오소라-제 5제 10장: 이태리-프랑스 전투. (유럽에서 피어 오르는 전쟁의 입김.) "몬트레알 언덕에서 한 사람이 태어난다. 깊이 연구하고 심계가 깊어 폭군이 된다. 밀란의 진군에서 힘을 키우고 파엔자와 플로렌스의 금과 남자를 다 소모한다." -From the bank of Montereale will be born one who bores and calculates becoming a tyrant. To raise a force in the miracles of Milan, to drain Faenza and Florence of gold and men.- 이 시(詩)는 이태리의 독재자 뭇소리니의 탄생을 정확히 예언한 시이다. 몬트레알의 언덕은 이태리의 몬톤(Montone River)강을 가르킨다. 뭇소리니는 바로 몬톤강의 하변의 불리성의 Dovia Preddipo에서 출생했다. 밀란에서 뭇소리니가 파시스트 당을 조직하고 정권을 탈취했다. 1942년 뭇소리니는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국가 원수가 된다. 물론 더 일찍이 1938년 이태리 파시스트와 독일의 나치스는 동맹을 맺고 전쟁을 준비했다. 독일의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헝가리,보헤미아를 합병했다. 1940년 5월10일 독일의 A.B.C세개 군단은 마지노 방어선(Maginot Line)을 우회하여 벨기에, 네델란드, 룩셈부르그 그리고 프랑스를 침공했다. 그 해 5월 24일 프랑스의 북부 항구 던커키(Dunkerque)에서 영국은 후퇴하고 만다. 유럽은 독일의 천하가 되고 만다.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며 선전 포고를 했으며 덩달아 독일도 미국에 대해 선전 포고를 했다. 이태리도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 유럽대륙의 상황을 방관과 관망으로 일관하던 미국도 독일과 이태리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군대를 유럽에 파병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442연대도 이태리 전선으로 투입됐다. 일본계 미군들은 (442연대) 아이젠하워 장군의 휘하에서 이태리와 독일 군대와 싸워야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총알받이가 돼야 했다. 442연대가 참전한 전선은 이태리와 불란서 국경에 있는 알프스 산악지대여서 눈이 오고 추운 2월의 알프스는 일본인들에게 너무나 힘든 전투였으며 수많은 일본계 미군은 총알받이로 죽어 나갔다. 제임스 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인들이 바라다본 알프스 산과 매섭게 불어 오는 추운 바람은 그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위축시켰으며 앞으로 닥쳐 올 불길한 운명이 코 앞에 걸려 있는 듯 했다. 그것은 바로 이름도 없이 아무런 값도 없이 죽어야 하는 개죽음이었다. '죽음, 죽음, 죽음..........' 그러나 뜻밖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죽음이 이젠 무서워지지 않기 시작했다. 죽음이 제임스와 일본 사람들 옆에 같이 있다보니 죽음이란 단어는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아니요 같이 가는 동반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마체에 두고온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히토미의 얼굴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일본계 미군의 442연대는 독일과 이태리 군대의 공격 대상이었음은 물론 같은 미군들에게도 혼동이 되어 가끔 공격을 받는 초라한 아군이었다. 백인들이 본 일본계 미군은 아군이라고 보기보다 문득 일본 군으로 보였기에 적군으로 오인되어 백인이 주축이 된 미군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듣기로는 이태리와 스위스의 국경에 접한 유명한 코모 호수(Lake Como)근처에서 아주 큰 전투가 있었는데 많은 전사자가 속출했으며 이태리 군대가 남쪽으로 후퇴했다고 했다. 이틈을 이용해 사기가 떨어진 후퇴한 이태리 군대를 완전히 섬멸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아이젠하워 장군은 마침내 442연대에게 특별 명령을 하달 했다. 특히 제 3 그리고 4대대에게 내일 새벽에 치오르라노 근방의 보레르노(Borerno)강을 도강하여 독일 진지를 습격하라는 명령이 442연대장으로부터 하달 됐다. 작전 수행을 위해 저녁을 먹은 후 밤늦게까지 잠을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야 했으나 제임스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막사에서 뒤척거리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혹시라도 죽을 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더 불안해 지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갈까.' 그러나 자신이없었다. 일본계 미국인도 미국을 사랑한다는 애국심을 보여 주고자 여기까지 왔는데 도망을 가려고 하다니 갑자기 부끄러워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개죽음을 당하느니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아! 어쩌나, 어째. 아버지도 보고 싶고, 루시도 보고 싶고....탈영을 할까?' 제임스는 벌렁 누어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많은 별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마치 콜로라도와 캘리포니아에서 보던 그 별들이 제임스에세 다가와 유혹하는 듯했다. '그래! 탈영(脫營)을 하거라...탈영을...개죽음을당하느니보다....' 보고 싶었으며 외로운 마음이 격하다보니 눈물이 솔솔 나고 있었다. 볼이 뜨거워 짐을 느끼고 있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숨이 콱콱 막히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탈영을 할까? 탈영을.......' 순간 누군가가 제임스의 가슴을 탁 치는 손이 있었다. "제임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하나? 잠도 자지 않고..." 눈앞에 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황소위였다. "아! 소대장님!" 제임스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 났다. "아니! 그냥 누어서 쉬거라.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전투에 가려면...." ".................." "겁나나, 제임스?" "........................" "겁을 내면 오히려 죽는법. 나를 죽이면 오히려 사는법. 자네는 사무라이의 아들이 아닌가?" "사무라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조선에서는 화랑이라고 부르지. 신라시대의 화랑(新羅時代의 花郞)." "화랑(花郞)?" "그래. 사무라이나 화랑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조국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히 바친단다." "목숨을?" "그래. 하나뿐인 목숨을......" ".................." 순간 볼레르노 강 남쪽 편에 있는 이태리와 독일 연합군 진지로부터 포탄이 무지막지하게 캄캄한 밤을 쪼개면서 쏫아져 날라 오고 있었다. "기습이다. 참호에 엎드리라!" 전령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기세가 꺽여 아무런 힘도 없을 거라고 추측했던 적군인 독일군과 이태리군이 무슨 이유인지 기습 공격을 하다니... 아니면 은밀하게 도강하려는 442연대의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적은 생각밖의 선제 공격을 감행해 포격을 가해 오고 있었다. "엎드려, 제임스!" 황소위는 큰 소리로 외치며 제임스를 끌고 참호로 들어갔다. 꽤 오랜시간 포탄이 진지로 날라왔다. 모르긴해도 많은 사상자가 났으리라고 추측이 됐다. 그리고 얼마후 포성은 쥐죽은 듯이 끊기고 적막이 엄습해 왔다. 새벽 4시가 되었을 때였다. 선제공격으로 주춤한 442연대는 도강하려던 작전을 포기 했으리라고 추측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예정된대로 도강하여 이태리 진영을 기습하라고 하는 변함없는 명령이었다. 442연대가 도강하여 진격해 오리라고적은 뻔히 알고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도강하여 공격하라고 하는 명령은 분명히 무모한 줄 알지만 상부에서 명령을 내린 것은 어짜피 일본게 미군은 총알받이로 개처럼 죽어도 좋다는 명령과도 같았다. 그러나 명령은 군대의 생명이기에 442연대, 제 3.4대대 병력은 예정대로 도강을 시작했다. 컴컴한 새벽에 얼음처럼 차거운 강을 가까스레 도강하여 강언덕을 기어 올라가 보니, 앗뿔싸, 닛세이 부대는 적이 쳐놓은 지뢰밭에 들어온 꼴이었다. 뿐만 아니라 잠잠하던 이태리 진영에서도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포성이 일며 기관총 포탄이 3.4 대대 근처에 떨어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10여명이 소리를 치면서 땅바닥에 쓸어지고 말았다. 그와중에 일본 '천황(天皇)을 만세'하며 죽는 병사도 있었으며 '성조기(星條旗)여 영원하라'를 부르며 쓸어지는 군인도 있었다. '친구들이 죽다니!안돼!' 제임스는 두 손을 불끈 쥐었으며 피가 끓고 있었다. '아- 아마체에서 온 친구가 죽다니...여기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그중 하나는 제임스의 고향 친구, 나가사마(長政)였다. 달려가 그의 목을 감싸 안았을 때 그는 이미 죽어 가고 있었으며 싸늘해지고 있었다. "아니, 나가사마? 네가 여기서 죽다니...나가사마!" 그의 몸은 점점 더 더욱 차가워지더니 마침내 너무 차가와서 제임스는 그의 손을 놓고 말았다. 죽은 나가사마를 그곳에 포기해 둔채 강뚝으로 기어 올라왔다. 적은 보이지 않았다. 엄포로 기관총을 쏘았을 뿐 적은 후퇴하고 있었다. 가까스레 강뚝에 오른 닛세이 병사들은 4마일 전방에 있는 그들의 목적지인 85번 국도를 향해 대오를 정비하고 진격하기 시작했다. 역시 황소위는 용감했으며 지혜로웠다. 부대의 최 선봉에서 철모대신 닛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최 선봉에서 따라 오라고 명령하는 확고한 지휘관이기에 일본계 미군들은 그의 손에 모든 것, 목숨까지도 걸고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백인 장교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슬슬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백인 장교들에게는 일본계 미군이란 단지 애물단지일 뿐이었으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 죽지 않고 안전하게 귀가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442연대를 맡은 백인 장교들의 태도였는데 조선인 장교 황소위는 전혀 다른 헌신적인 장교였다. 그런데 황소위는 어느새 돌담 꼭대기에 올라가 소대원들에게 전진하라고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 순간, 독일군이 쏜 총알이 공기를 둘로 가르더니 돌담위에서 지휘하던 황소위가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독일병사들이 눈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이젠 육박전을 벌려야 할 상황이 됐는데 황소위가 쓸어지다니, 닛세이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말았다. "황소위님! 소대장님!" 참다 못해 제임스는 분을 참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 그러나 소대장으로부터 대답이없었다. "소대장님!" 제임스는 또 외쳤으나대답이 없자 이를 바라본 다른 닛세이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전멸할 위기였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닛세이 군인들의 사기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제임스는 깊이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일본 군인들이 애국심을 유도하여 쓰던 방법이 떠 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다!' 제임스는 큰 소리로 일본 군인들이 하던 그 방법대로 큰 소리로 외쳤다. "착검(着劍)! 반자이(만세)! 돌격!" 제임스는 일본 말로 만세(반자이)라는 공격 명령을 내리자, 닛세이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착검을 하고 독일군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자이란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구호인데 우렁찬 '반자이'라는 소리에 닛세이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니 독일 군들은 대경실색을 하고 패퇴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담을 넘어 그 아래를 보니 죽었다고 생각했던 황소위가 어느새 일어나 수류탄을 적의 기관총좌에 던져 박살을 내고 있었다. "황소위님! 살아계셨군요." 제임스는 황소위를 붙잡고 반가와 소리를 치며 얼싸 안았다. "제임스, 장하다! 네 덕분에 우리가 이겼어. 네 기지 때문에....." 이번엔 황소위가 제임스를 부등켜 안았을 때 황소위의 허벅지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만세(반자이)돌격은 천황을 위한 가미가제식의 공격 방법이었는데 일본계 미군(닛세이군대)들에게 공통된 애국심이었다. 일본인 제임스와 조선인 황소위의 관계는 목숨을 개의치 않는 전우애였다. "제임스, 자네는 나의 친구일세. 목숨을 살려준 친구." "소대장님, 우리는 압니다. 소대장님은 우리 일본 사람들을 진정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압니다." "일본 사람을?" "예. 우리는 압니다." 막강 독일과 이태리 연합군은 이 전투 이후 알프스 산에서 각각 중부 이태리로,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후퇴를 함으로 독일과 이태리 사이에 금이 생기고 있었다. 유럽 전황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뿐인가, 황동균 소위는 영광스럽게도 중위(中尉)로 진급이 됐다. 황동균, 미국 육군 중위로......... * 프랑스의 작은 마을, 비퐁텐느에도 독일군의 입김이 서리고 있었다. 영국으로 쫓겨 갔던 프랑스 저항 세력도 마침내 프랑스를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닛세이 부대, 442 연대도 프랑스 전투에 참가하게 됐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비퐁텐느는 끈질긴 독일군의 요새로 이곳을 뚫지 못한다면 리용이나 빠리로 갈 수가 없었기에 반드시 함락해야 하는 군사적인 요충지대였다. 이곳을 함락하려면 일대일의 전투, 즉 유격과 육박전(肉薄戰)만이 가능했기에 총알받이 부대 442연대가 차출되어 명령을 하달 받았다. 특별히 442연대중 2개 대대를 특공대로 공격하여 길을 트게 했다. 황동균 중위의 탁월한 전투력을 인정한 연대장은 제 3대대를 황동균 중위에게 그리고 제 4대를 백인 장교 대위에게 명령을 했으나 백인 장교는 아주 비협조적이었으며 뒤로 빼고 있었다. 야밤을 이용해 비봉텐느 독일 진지를 공격하기로 한 황중위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 했던 백인 대위는 공격 도중에 비겁하게도 슬그머니 뒤로 빠진 것을 제 3대대 황동균 중위는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공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반쪽만의 공격을 알게 되자 갑작스레 역 공격을 해오니 승리를 눈 앞에 두었다고 생각했던 제 3대대는 당황하여 뒤 로 물러나게 됐다. 독일 병사가 던진 수류탄이 "퍽 퍽" 소리를 내며 날아 오더니 "뻥" 소리를 내며 수많은 파편들이 병사들을 향해 날라 오고 있었다. "악!" 소리를 내며 쓸어진 몇 명의 병사중의 하나가 바로 제임스였다. "엄호(掩護) 사격하라!" 황중위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기관총 부대는 독일 진영을 향해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탄알을 이미 다 소비한 독일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응사에 주춤 뒤로 밀리고 있었다. "제임스! 죽으면 안돼!" 얼굴이 상기된 황중위는 쓸어진 제임스를 향해 쏜 살같이 질주했다. 제임스의 어깨와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몹시 괴로워 하고 있었다. "제임스? 나를 보라! 나를!" "대대장님?" "내등에 업히거라. 내등에...." "'냈享윱求�. 다른 친구를 먼저 살리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황중위는 피투성이가 된 제임스를 등에 업고 본진을 향해 빠져 나왔다. "죽으면 안돼! 살아야 해. 너는 콜로라도로 가야해.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꼭 살아야해." 황중위는 본진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으며 퇴각하던 독일 병정이 쏜 탄환이 가끔 주위의 공기를 매섭게 가르고 있었다. 잠시 비겁하게 퇴각을 했던 백인장교가 지휘하는 제 4대대가 마음을 고쳐 먹고 기관총을 쏘며 다시 합류하자 두배로 증강된 화력 앞에 독일 군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퇴각하였으며 많은 무기를 버리고 일부는 투항했다. 비봉텐느 전투는 황중위의 심리적인 작전이 주효하여 생각보다 쉽게 승리로 이끌었다. 비봉텐느가 미군의 수중에 떨어지자 많은 프랑스 주민들이 나와 성조기와 프랑스기를 들고 환영하며 마음을 다해 치하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더 놀란 것은 정작 승리로 이끈 그 주역이 생소한 동양 사람, 특히 조선에서 온 이민자의 후손임을 알았을 때, 눈이 휘둥글해 졌다. "조선에서 온 황동균 중위, 그가 이끈 일본계 미국군인! 코레아(Corea)? 코레아? 그리고 일본 사람들?" 조선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프랑스 사람과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기한 일이었다. * 제임스는 천만 다행으로 어깨와 뒷 가슴에 수류탄 파편을 맞았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피를 많이 흘렸고 어깨를 쓰지 못함으로 앰뷰란스에 실려 본대 의무실에서 응급 처리를 받은 후 이태리 북부, 밀란에 있는 미군 후송병원에서 파편 제거 및 인대 복구 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으며 경과도 좋았다. 2주 후, 황동균 중위는 밀란(Milan)으로 달려가 미국 후송병원에 누어 있는 제임스를 만나 위로했다. 어찌보면 두 사람의 생명은 본인의 것이라기보다 친구의 생명이라고 생각을 했다. 전투에서 만난 친구, 그리고 죽음 앞에서 만난 친구의 생명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두 생명은 하나가 되었다. 어느 누가 다치든지 둘이 다 다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술은 잘 됐다고는 하나 어깨의 상처가 생각보다 컸기에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물리 치료와 요양을 위해 병원에 더 있어야 했다. "대대장님? 회복되는 대로 곧 달려가겠습니다. 제 생명은 대대장님과 같이 할 것입니다." "고마워, 제임스!" "대대장님 건강하소서." "제임스? 대대장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친구여라고 부르게." "아닙니다. 대대장님." "제임스, 다시 봄세." * 제임스가 다시 황중위의 대대로 다시 복귀 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였다. 제임스는 밀란에서 영국 런던 근교의 후송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은 후 미국 본토로 후송이 되기로 되었는데, 뜻밖에도 제임스가 미국 본토로 가기 보다 최전방으로 원대 복귀하겠다고 우겼기 때문이었다.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미국 본토로 서로들 가고 싶어 했는데 목숨을 내건 최전방 442연대제 3대대로 돌아 가겠다고 우기는 제임스를 군의관들은 처음에 정신 나간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이것봐! 제임스! 너는 이제 미국 본토로 가면 최전방도 피하고 조금 있으면 제대가 될 터인데, 왜 바보처럼 전방으로 다시 간다는 거야? 왜? 너 바보야?" "아닙니다. 아직 제가 할 일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할 일이 더 있다고? 그게 무엇인데?" "전투에 승리하여 일본 사람들도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만천하에 보여 주는 일이지요." "애국심을 보여준다? 아! 그래, 일본 사람들을 우리는 믿질 못했지. 그러나 이젠 아녀, 아냐! 우리도 일본 사람들을 믿어요." "감사합니다. 군의관님." "감사하긴, 일본 사람처럼 정직하고 부지런한 민족이 또 있을까? 일본 사람임을 제임스! 자랑스럽게 생각하게나......자긍심을 갖고." * 프랑스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황동균 중위는 대위로 특진되었으며 로마로 공격하는 전투에서 또 한차례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로마로 진격하는 길......... 로마를 함락 시킨다면 이태리 전부를 정복하는 셈이며, 이태리가 항복하면 독일도 항복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전체 유럽은 평화를 찾을 수가 있는 법인데, 연합군이 로마로 진격을 할 때마다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지 후방에서 교란되고 기습을 받아 연합군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 로마를 함락하기가 좀체로 쉽지가 않았다. 첩보부대로부터 온 보고에 의하면 연합군의 동정을 여우처럼 면밀히 탐지하여 보고 하는 독일 특수 부대를 먼저 섬멸하지 않으면 로마 공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보고서에 따라 연합군 사령관은 지략이 있다고 인정한 황동균 대위에게 특별 명령을 부여했다. 황동균 대위는 여러명의 참모들과 협의한 결과 '분명, 적의 첩보 부대는 성당을 은신처로 하여 작전을 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마침내 로마 북방 50마일에 있는 작은 성당이 그 은신처였음을 알아내고 말았다. 깊은 밤을 이용해 황동균 대위와 특수 부대는 성당을 급습해 두명의 스파이를 잡아 냈으며 그 스파이들을 통해 로마 동북부에 있는 또 다른 성당에서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숨어 활동하던 스파이 약 200명을 잡아 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 스파이들을 잡아 내고 보니 보급과 병참이 끊긴 이태리 군대는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말았다. 물론 황동균 대위를 보좌한 사병중에 제임스가 거기에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 1944년 12월, 제임스는 이태리 전선으로부터 442연대의 본대가 있는 노스 캘로라이나로 당당하게 원대 복귀하게 됐다. 원대 복귀 전날, 제임스는 황동균 대위의 방문을 받았으며 다음과 같은 우정의 말을 부탁 받았다. "제임스?, 어디를 가든지 일본 사람의 자존심과 나와의 우정을 잊지 말아주게." "우정과 자긍심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우정, 그리고 훌륭한 조선인의 자긍심을....." "고맙네" 황동균 대위는 442연대로 복귀하려는 제임스의 손을 꼭 잡았다. * 노스캘로라이나(North Calolina)로 돌아간 제임스는 몇 개월간 더 복무를 한후 명예 제대를 했는데 더 이상 아마체 수용소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제공하는 특별 장학금을 받아 콜로라도 의과대학으로 다시 복학하게 됐다. 이와 같은 특별한 특혜를 받게 된 배후에는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세운 제임스의 무훈(武勳)뿐만 아니라 황동균 대위가 보낸 간절한 편지가 국방부 당국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편지: 국방부 당국자 귀하. 제임스 다카야마는 콜로라도 의과대학 재학중 콜로라도, 아마체로 강제 수용된 의학도로 일본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442연대에 자원 입대한 후 이태리와 프랑스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이제 명예 제대를 하게 되는바 그를 콜로라도 의과대학으로 복학 시켜 줄 것은 물론이며 장학금을 주어 앞으로 유능한 의사가 되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선처를 요망합니다. 미 육군 442연대 대대장, 황동균 대위. 제임스가 콜로라도 아마체 일본 인 수용소를 되 찾아 오던 날, 수용소에서는 특별 환영을 해 주었다. '일본 사람의 애국심을 증명해준 군인, 제임스 다카야마를 모든 아마체의 일본 인은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1945년 4월, 파시스트, 이태리는 연합국에 항복을 했으며 나치, 독일은 패망 일보전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평화의 나라 조선을 삼킨 군국주의 일본도 태평양에서 본토로 후퇴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패망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도 섯불리 일본 사람들을 수용소에 강제 수용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일본 계, 미국인은 결코 매국노(賣國奴)가 아니다. 배반자도 아니다.'라고 1945년 8월, 제임스는 당당하게 콜로라도 의과대학 3학년으로 편입되어 덴버로 되돌아 왔으며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백인 여성 루시는 이미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후 의과대학은 포기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하여 어느 백인 남성과 연애 중임을 알게 됐다. "아- 루시가 나를 배반하다니....나를...." 제임스는 허탈한 마음을 가다듬고 의사 공부에 열중하기로 마음을 먹었음은 물론 '평생 결혼을 하지 읺으리라.'라고 굳게굳게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오로지 의사공부뿐이다! 그리고 여자란 내게 없다!'라고. 제 11장: 잊지 못할 이웃. (전쟁이 남기고 간 사랑의 씨앗) 아들, 제임스가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아마체(Amache)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너무나 반가워 큰 소리로 외쳐 보려고 했으나 일본의 자존심을 위해 군에 자원 복무를 하다 전사한 또 다른 일본인 청년들과 그 부모들을 생각해 보면서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제임스! 수고 했다."라고 속삭일 뿐이었다. 그러나 살며시 감싸 안은 아버지의 팔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똑 같은 아들인데 내 아들은 살아 돌아 왔지만 다른 집 아들은 죽어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 왔는데 아무리 기뻐도 참아야지..... 다카야마는 눈물을 흘리며 침묵을 지키고 말았다. *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日本天皇)이 무조건 항복(降伏)을 하자 아마체에 있는 일본일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여 주었다. 우선 전쟁이 끝났기에 수용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 가게 된다니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 두고온 조국 일본 본토가 전쟁의 폐허로 잿더미가 되고 만 것이 마음에 아펐다. 더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패전으로 아시아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고통의 멍애에서 벗어 났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아시아 전체가 이념의 혼돈에 빠져 중국, 월남 그리고 신생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말았기에 조선 사람들에게는 더 고통스러운 결과가 되고 말았다. *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온지 3년여, 마침내 다카야마와 아마체에 사는 7000여명의 일본 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되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상도 없었으며 인간 이하의 인권 유린에 대한 사과도 없이 그냥 돌아 가라는 명령 앞에 일본 인들은 또 한 차례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러나 2000여명의 일본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고 콜로라도에 그대로 남아 정부에서 준 땅을 경작하며 살기로 했으니 결국 5000명만 되돌아 간 셈이었다. 살리나스로 돌아가는 다카야마의 가족들은 두고온 농장 때문에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과연 조선 사람, 김상환에게 부탁하고 온 농장은 어떻게 됐을까? 조선 사람? 못 믿을 사람들이라고 했는데.....설령 다 털어 먹었다고 해도 이젠 우리는 자유로우니 다른 곳에서 다시 재기해도 되겠지.....' 다카야마는 일단 조선 사람, 김상환이 자신의 농장을 다 털어 먹었거나 망쳐 놓았을 거라고 단정을 하고 보니 마음이 허전했으나 조선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리고 싶었다. '살리나스 농장이 없어지고 김상환 마저 모른다고 한다면........' 다카야마는 생각만 해도 모든 것이 허탈했다. "여보, 쥰꼬? 설령 농장이 없어 졌다고 해도 걱정마소. 다시 일으켜 봅시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나는 김상환씨를 믿습니다." "그를 믿는다고요?" "그래요." "조선 사람인데?" "물론이죠." 웬일일까? 쥰꼬는 조선 사람, 김상환을 이다지도 믿는다니, 확실하게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 무슨 근거로 아내 쥰꼬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조선 사람, 김상환을 이토록 확고하게 믿고 있는지 다카야마는 의아해 했다. 쥰꼬가 조선 사람에게 무슨 약점을 잡히고 있어나?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 다음날, 다카야마 가족은 일단 덴버로 나가 아들 ,제임스가 사는 작은 아파트에서 며칠을 보내게 됐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에 다니다가 자진해서 이태리 전선에 출전했는데 천지신명의 덕분에, 아니 가미사나의 은총으로 살아 돌아 온 것도 대견했다. 그런데 이젠 한술 더 부쳐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의과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크게 자랑스러웠다. 머지 않아 의사가 된다니, '제임스야! 훌륭하다!' 다카야마는 눈시울이 붉어 졌다. 덴버에서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리고 김상환에게 사전에 연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 가기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김상환이 자신들의 농장을 가로 챘을 거라고 단정했기 때문이었다. 3년전, 수용소로 끌려 올 때 타고온 허름한 기차와는 구조 부터가 달랐으며 시설도 월등히 훌륭한 객실에 앉고 보니 감개무량한 눈물이 쏫아지기 시작했음은 다카야마뿐만 아니라 모든 일본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1946년 1월----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기차 차창 박으로 뵈는 경치라야 눈 덮힌 록키산맥과 황량한 유타주와 그리고 네바다 주였다. 밤마다 서글픈 일본 노래를 불렀던 일본 사람들은 이번에는 조용히 기차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피곤함을 풀기위해 잠을 자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자유로워져서 잠만 자는지 구분이 가질 않았지만 수용소로 들어오던 그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들이었다. 구속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자유함이 이렇게도 마음을 평안하게 하다니, 자유의 소중함을 실감하고 있었다. 올 때와는 정반대로 기차가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 경계로 들어 서면서 다카야마는 가슴이 붕붕 뛰며 떨리기 시작했다. 조선 사람 김상환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른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 두근거렸다. 사크라멘토(Sacramento)를 지나 기차는 어느새 오클랜드(Oakland) 다리를 건너면서 눈에 뵈는 금문교(Golden Gate)가 마치 수십년간 잃어 버렸던 기억을 되 돌려 주는 듯 했다. '아- 금문교, 금문교.' 놀랍게도 금문교를 바라 보면서 옛 고향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뵈는 알카레즈(Alcarez)섬이 인상 깊었다. 많은 죄수들이 이곳에 수감돼 살다가 이곳에서 죽어 나간다는 미궁(迷宮)의 섬, 알카레즈..... 그 유명한 도둑, 알. 카포네도 이섬에서 탈출을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섬속에 같혀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외로움 속에 같혀 있는 것'이 더큰 형벌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벌이 바로 '외로움'이라고 했다. '외로움.......외로움.' 그랬다. 다카야마도 지난 3년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비록 아내와 딸이 곁에 있다고는 하나 외로움 앞에서는 그들도 궁국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바로 외로움의 연속이라고 느껴 졌다. 어찌보면 알카레즈에 같혀 있는 죄수들 중에 무고하게 잡혀 온 사람들도 있으리라. 무고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보낸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 할꼬? 우리가 겪은 3년간의 수용소 생활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이 될까? 몇가지 상념을 하고 있다보니 기차는 어느새 샌프란시스코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마중 나와 준 사람은 없었다. 마중 나와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고독하며 더 처량했다. '이천지에 나를 반겨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한 사람도, 단 한사람도....' 3년전, 헌병들이 감시하는 가운데 덜덜 떨며 기차에 오르던 그 아침은 꽤 나 추었는데 오늘은 덜 추었다. 그래도 서편에 해가 걸려 있었기에 일단 살리나스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2시간을 달려 내려가니 어둑어둑해 지기 시작했으며 살리나스라는 싸인(표시)이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더 뛰기 시작했다. 며칠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들판에 깔려 있어 농장의 구분이 힘들었으나 그래도 눈에 익은 농장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살리나스 시로 들어오면서, "와! 다왔구나. 다 왔어." 라는 탄성이 튀어 나왔다. 여기가 다카야마 가족의 미국 고향이었다. 3년간 수용소에서 하루도 잊지 못하고 돌아 가고 싶었던 고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느새 저녁 8시를 가르치고 있었으며 해가 서산에 지고 보니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오솔오솔 추운 느낌에 내일 있을 걱정까지 "후〈�정신이 핑 돌았다. 이늦은 시간에 김상환을 찾아 갈 수도 없고 두고온 집을 찾아 간들 열쇠도 없으니 부득이 인근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 하루 밤을 지내기로 했다. 시골에 있는 고급 호텔이라고 해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3류 호텔보다 못했지만 다카야마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질 않았다. 살리나스에 살 때 알고 지냈던 주인과 마니저도 모두 낫선 사람들로 바꿔져 있었기에 서먹서먹했다. "3년전에 수용소로 갔던 다카야마입니다. 혹시 내가 갖고 있던 농장이 어찌 됐는지 아시나요?" 급한 마음에 새로온 지배인에게 물었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손님."이라는 예의적인 대답 뿐이었다. "김상환씨에게 전화를 하면 어떨까, 준꼬?" "이 시간에 무슨 전화를 ? 우선 잠부터 자고 내일 찾아 가도 늦지 않습니다. 여보!" "그럴까?" 다카야마 부부는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쉽사리 오질 않고 온통 농장에 대한 환상만 떠오르고 있었다. -장미 농원과 카네이숀 농원이 눈에 선했으며 그 옆으로 넓게 펼쳐진 딸기 밭이 눈에 아른 거렸다. 봄이 되면 푸른 순이 돋고 5월이면 만개하던 장미와 다른 꽃들이 향기를 내 뿜고 있는 듯 했으며 여기 저기로 날라다니며 꿀을 따던 꿀벌들이 눈에 뵈는 듯했다.- "여보, 한잠 자요. 그러다가 꼬박밤을 새우려고?" 보다 못해 아내 쥰꼬가 잠을 자라고 남편에게 재촉했다. "차라리 잠을 안자고......." "그래도 잠을 잡시다. 여보" 준꼬는 남편을 위로 했으나 허사였다. 남편, 다카야마는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아침이 되었다. 커피와 잉그리쉬 머핀(English Muffin)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다카야마 부부는 택시를 타고 김상환의 집으로 주저주저 겁먹은 얼굴로 찾아 갔다. 덜 녹은 눈으로 길은 다소 미끄러웠지만 어제 밤에 잘 뵈지 않던 그 길들이 밝은 햇살을 통해 바라다 보니 새삼 눈에 익었다. 마침내 택시는 김상환의 집 앞에서 멈춰 잠시 요금을 내는 동안 훔쳐본 그의 집은 3년전에 비해 더 깨끗했으며 그동안 개축을 했는지 입구가 더 커 보였다. 산뜻하게 칠해 놓은 페인트로 인해 마치 새 집처럼 느껴졌다. '와! 혹시 이자가 우리 농장을 팔아 자기 집 개축하는 대 썼나? 그리고 더 부자가 된거 아닌가? ' 김상환에 대한 의심이 더 부풀어지고 있었다. '혹시 이자가 나를 모른다고 하면 어찌 될까?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조선 사람인데....' '게다가 서면으로 써놓은 계약서도 없는대....모든게 구두로 한 것이니....나는 <모르오>라고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떨리는 마음으로 주저주저하면서 다카야마가 감상환의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김상환 부부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카야마씨? 언제 오셨나요?" "어제 왔습니다." "아니, 소식을 주셨으면 마중이라도 나갔을 것을..." 마중을 못해 미안해 하는 김상환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이자들이 내 농장을 다 팔아 먹고 다른 소리를 시작하려나.'라고 의심 스러운 생각을 하며 그가 이끄는 대로 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생각보다 깨끗이 정돈 된 방에 가지런히 눈에 띄는 고급스러운 자개상과 자개농이 다카야마의 마음을 더 혼란하게 했다. '이자들이 돈을 꽤 먹은 모양이구먼, 이자들이 이렇게 좋은 가구를 갖추고 살다니...' "고생 많은셨죠? 다카야마씨?" "예.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사, 건강하게 돌아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밖이 몹시 추웠지요?" "아, 뭘......" "잠시 기다리시면 따슷한 차를 올리겠습니다. 다카야마씨." 그리고 그는 방으로 들어 갔으며 그의 아내는 말도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좀채로 나오질 않았다. 5분---10분---- 좀체로 나오질 않으니 다카야마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 지고 있었다. '이자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나? 아니면 우물주물하다가 나를 따 돌리고 그냥 가라고 하려나?' 다카야마의 머리속에서는 공상과 상상이 그네를 타고 있었으며 '틱탁 틱탁'거리며 1초 2초를 달리고 있는 벽시계의 둔탁한 소리가 마치 다마이나마이트가 터지는 듯한 느낌으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김상환씨 부부가 다시 눈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다지도 길고 지루한지.... 마침내 김상환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두터운 서류를 뭉치를 들고 방문을 열고 나왔으며 그의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차와 과일을 쟁반에 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뒤 따라 나오고 있었다. '웬 서류뭉치를? 내 재산을 다 팔아 먹은 모양이군....드디어 거짓말을 시작하려나보군.....' 다카야마의 마음속에 엉뚱한 의심이 솟아 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사람, 김상환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다카야마씨? 여기에 농장 서류가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가 노력하여 관리했기에 농장이 번창하여 배(倍)가 됐습니다." "예? 농장이 배가 돼요?" "예, 그리고 여기에 저금 통장이 있습니다. 3년간 농장에서 얻은 수입금을 입금해 놓았습니다." "예? 농장은 배가? 그리고 3년간의 수입금을?" "그렇습니다. 다카야마씨." "....................." 다카야마는 자신의 귀와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농장을 관리하기도 힘든데 남의 농장을 맡아 두배로 키워주고 그동안의 수입금도 은행에 입금하여 내게 주다니, 과연 김상환, 이사람이 조선 사람인가? 거짓말하고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더러운 조선사람인가? 김상환의 부인이 가져다 준 홍차를 한잔 마시다 보니 감격하여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센진은 거짓말을 잘하고 도적질도 잘한다고 조상들이 가르쳤는데, 과연 김상환은 조선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사람인가?' '사실, 일본은 조선을 송두리채 거짓말과 위협으로 다 먹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일본이야말로 거짓말과 협박으로 남의 물건을 강탈해간 도적이 아니든가?' 다카야마와 그의 아내 준꼬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재산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좋아서 우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김상환을 조센진이라고 의심했던 자신의 꼴이 비참하여 울고 있는 듯했다.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다카야마는 그의 참회의 눈물이 찻잔에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 둥그레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친구, 그리고 이웃의 우정이구나. 친구의 우정.' 다카야마는 벌떡 일어나 김상환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김 선생님, 용서 하십시오. 못난 놈을..."이라고 말했다. "용서라니요? 제가 할 일을 당연히한 것 뿐인데." "용서하세요. 용서하소서." 다카야마는 차마 조센진이라고 의심했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러고도 내가 일본 사람이라고....' 그는 중얼거렸으나 김상환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카야마씨, 우리는 이웃입니다. 이웃. 그리고 친구입니다." 잠시 후, 김상환부부는 다카야마 부부를 차에 태우고 다카야마의 농장으로 달려갔다. 놀라웠다. 장미 농원과 카네이숀 농원이 정말로 두배나 늘어나 있었으며 깨끗하게 정돈이 돼 있어 콜로라도에서 온 옛주인을 활짝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더 놀라운 것은 김상환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 말이었다. "다카야마씨? 당신의 농장은 여기 살리나스에서 가장 훌륭한 농장이 됐습니다. 이제 주인이 오셨으니 제 마음도 놓이는 군요. 그동안 잘 못 되면 어쩌나 마음 조렸습니다. 자, 여기 농장의 열쇠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서류들도 여기 다 있습니다. 휴! 저희들은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김선생님? 제가 선생님께 무엇으로 사례를 해야 할는지, 농장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다카야마는 아주 정중하고 겸손하게 일본 사람답게 농장 관리를 해준 것을 사례하고자 물었다.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저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 준 것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자,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상환 부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농장을 빠져 나갔다. "김선생님? 가지 마십시오!" "다카야마씨? 자, 사요나라!" * 김상환 부부가 사라진 후, 다카야마와 부인 쥰꼬는 감격하여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 준 것일 뿐입니다." 김상환의 말이 아직도 뱅뱅 메아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웃'이란 말이 더 감격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이웃으로 생각했었나?' '아니었다. 아니었어. 우리? 우리? 아냐! 우리는 그들을 이유 없이 멸시했어. 거짓말 잘하는 조센진이라고, 더러운 조센진이라고......' 다카야마는 이내 준꼬의 손을 꼭 잡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준꼬? 우리는 그들, 조선 사람들의 이웃이 아니었어. 침략자의 근성을 갖고 그들을 대했어. 못된 일본 사람의 섬나라 근성을 가지고......" "여보! 우리는 큰 죄를 지었군요. 큰죄를....." 준꼬도 같이 울고 있었다. '그래, 나는 조선 사람, 김상환을 믿었어. 그는 반드시 우리를 도와 줄거라고.... 그래, 나는 그를 믿었어. 그리고그는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어.....' 준꼬는 김상환이 기대했던 대로 약속을 지켜준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울고 있었다. 12장: 배신(背信)-오해(誤解)? ( 생애의 마지막 터전- 남가주의 토렌스로 이주 moving to Torrance, Southern California.) 다카야마는 다음날, 김상환(金祥桓)을 다시 찾아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식으로 무릎을 꿇고 또 한차례 참회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진심이었다. "이 큰 은혜를 사례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김상환 선생님!" "다카야마(高山)씨? 우리는 이웃입니다. 같이 돕고 사는 이웃입니다." "그래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꼭요!" "우리는 이웃입니다. 그리고 친구입니다. 다카야마씨?" "그래도....." 다카야마는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고 감사한 표시를 마음에 깊이 새기었다. * 며칠후 다카야마의 아들, 제임스가 콜로라도에서 김상환의 집으로 찾아왔다. 겨울 방학중, 잠시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만날 뿐만 아니라 좋은 이웃으로 전재산을 보호 해준 진정한 이웃, 조선사람, 김상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는 조선인 황동균 대위에 대해서도 아버지에게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장교가 있었더냐? 그런대 그도 조선 사람이라고?" "아버지, 그렇습니다. 황동균이라고 하는 조선계 미국 사람입니다. 442부대 대대장 황동균 대위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자는 일본의 식민지라고 깔보았던 조선 사람들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구나. 큰 은혜를........." 참으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자신 만만한 일본 사람, 다카야마와 아들은 식민지 출신인 김상환과 황동균으로부터 그토록 큰 은혜를 받다니..... 아마체에 수용된 동안 도와준 조선인, <김상환>, 그리고 이태리 전선에서 목숨을 구해준, 조선인 <황동균>.....- 마치 살리나스와 이태리 전선이 일직선이 되어 서로 끈끈하게 연결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콜로라도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간 제임스에게 김상환은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제임스? 부디 좋은 의사가 되게.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좋은 의사가 되게나. 그것이 나에게 보답하는 길일세." "그러겠습니다. 어르신!" 제임스는 무릎을 꿇고 공손히 작별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콜로라도로 다시 돌아와 의사공부에 몰두했다. '좋은 의사가 되라?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의사란 말인가? 의학 지식이 많은 의학자? 수련을 마친 전문의사?' '아니면, 인간적이기에 환자들과 웃고 웃는 의사?' '둘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편에 속하는가?' 제임스에게는 아직도 어느것이 훌륭한 의사인지, 그리고 김상환씨가 바라는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를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비록 실력은 떨어진다고 해도 인간적이며 환자들과 같이 울고 웃는 평범한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으며 수용소 생활 3년의 외로움을 겪었던 콜로라도에 있는 콜로라도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1946년 4월이 되니 다카야마의 살리나스 꽃 농장에 있는 장미와 카네이숀의 잎새가 푸르게 돋기 시작을 했으며, 그 푸른 잎을 바라다 보노라니 수용소에서 받았던 악몽같던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고뇌가 사르르 사라지고 있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희망에 찬 듯 했기에 다카야마도 크게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다카야마의 꽃 농장에 키가 크고 뚱뚱한 백인이 찾아와 농장을 사려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 농장을 팔고 멀리 토렌스(남가주에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려고 해. 쥰꼬." "아니, 무슨 말을 하는거요. 농장을 팔다니, 어떻게 해서 보존한 농장인데...조선사람, 김상환이 애써 배로 늘려 놓았는데....." "아오. 그리고 토렌스로 이사를 가면 다카야마란 성도 바꾸려고 하오. 쥰꼬!" "아니, 무슨 말을 하는거요. 농장도 팔고, 이사가고, 그리고 성도 바꾼다니요?" "여보, 나는 지난 3년의 세월을 내 인생에서 모두 다 지워 버리고 싶어. 모두다." "지워 버린다고?" 다카야마는 수용소에서 나올 때만해도 살리나스로 돌아가면 열심히 꽃 농사를 계속하고자 했는데 막상 살리나스에 돌아 온 후, 훌륭한 이웃 조선인, 김상환씨 부부를 만난 후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조선인이라고 무시했으며 거짓말쟁이라고 깔보았는데,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눈으로 본 후 양심의 가책이 솟구쳤다. 더욱이 황동균 대위의 헌신적인 이태리 전투와 아들 제임스의 생명을 구해준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조선인 김상환씨를 쳐다 보는 것만도 부끄러웠다. 어디에가서 숨도 쉬지 않고 숨고 싶었다. '차라리 여길 떠나자. 빚진 마음을 갖고 사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남편의 의견을 들었을 때 아내 쥰꼬는 처음에는 안된다고 펄쩍 뛰었는데, 여러차례 간곡하게 말하는 남편의 의견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가게 되었다. 결국 이사가는 것을 동의해 주었으며 모든 것을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그들 부부는 일본촌을 형성한 남가주의 토렌스로 이사를 와 꽃가개를 운영하게 되었다. 역시 십여년 운영했던 꽃 농장과 꽃에 대한 마음때문에 꽃집을 운영케 했다. 더 큰 변화는 높은 산이란 의미의 다카야마(高山)를 버리고 냇가에서 돌을 깍는 석수(石手)라는 의미로 이시카와(石川)로 바꿨다. 다카야마(高山)를 버리고 이시카와(石川)으로........ "아니? 여보! 조상이 준 성씨를 바꾸다니요?" "그렇소. 사죄하는 의미로 성씨를 바꿨소. 쥰꼬." "사죄하는 의미로?" "그렇소. 쥰꼬상." "잘 하셨습니다. 이시카와? 좋습니다. 이시카와." 아내는 더 이상 반론을 하지 않았음은 남편의 불편했던 마음을 이해 했기 때문이었다. "여보! 나는 처음부터 조선 사람, 김상환을 믿었습니다." "그래. 조선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 * 다카야마의 꽃 농장이 어느 돈 많은 백인에게 값싸게 팔렸다는 소문이 김상환에게도 들렸기에 다음날, 농장으로 찾아갔다. 다카야마는 이사갈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아니? 왜, 농장을 파셨습니까? 혹시 제가 잘못 해 놓은 것이 있어서요?" "아닙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여길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이사가더라도 당분간 연락을 하지 않겠습니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입을 꼭 다물고 농사꾼 처럼 조용히 살겠습니다." "입을 다물고요?" "예." "꼭 그래야 하나요, 다카야마씨?" "예." "그래도 연락을 하면서 사십시다." "........." 다카야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기에 김상환은 다소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아냐, 나의 최선을 다했는데....' 1946년 7월, 다카야마는 김상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30여년간을 살아온 살리나스를 떠나 멀리 남가주 토렌스라는 도시로 이사를 했으며 이름도 다카야마에서 이시카와(石川, Ishikawa)로 개명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들과 다른 식구들에게 "조선 사람을 늘 존중(尊重)하라. 그리고 그 은혜(恩惠)를 잊지말라!"라고 가르쳤으나 정작 살리나스에 사는 김상환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으며 8년을 더 살다가 1954년에 죽었다. -김상환씨를 조선 사람이란 이유 하나로 무시하고 깔본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동경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스탠포드, 살리나스, 아마체 그리고 토렌스에서 그의 인생을 보낸 이민 1세대, 다카야마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행동은 그의 은인이었던 김상환씨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조요히 살고 싶다고 하여, 그들의 은인인 김성환씨를 찾아 보지도 않았으며, 명절에 선물도 없었으니 생명까지 구해준 은인을 모른척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도와 주었는데 왜? 말도 없이 이사를 갔나? 그리고 왜 연락도 없나? 배은 망덕한 놈! 그게 바로 일본 놈이다. 일본 놈. 달면 먹고 쓰면 버리는 놈들....' 김상환은 다카야마와 일본이란 나라 전체를 증오하였으며 손자에게도 이렇게 가르쳤다. "일본? 나쁜 놈들....상대도 하지 마라!"라고.- *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오해였다. 오해! 이 오해가 이처럼 큰 증오심과 복수심을 만들었다니.... 다카야마 아니 이시카와는 자신의 행동이 아토록 큰 결과를 초래 했을 줄을 전혀 모르고 죽은 셈이었다. 제. 13장 제임스 이시카와(James Ishikawa from Takayama)와 한국 전쟁, (빚인가, 우정인가?) 콜로라도 덴버로 되돌아가 의학공부를 하던 제임스도 아버지가 이사를 하고 개명을 한 것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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