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근친결혼의 비밀 제 2부

2012.01.22 14:52

연규호 조회 수:1130 추천:22

근친결혼의 비밀 2부.6장.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렵니다. 잠시 후, 입가에 묻은 쥬스를 손으로 닦으면서 목사님이 말문을 다시 열었다. "잠간! 의사선생님? 할 말이 더 있습니다. 나는 이 두 사람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답니다." "예? 배운 것이 있다 구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애절한 사랑이었습니다." "애절한 사랑이라 구요?" "순애보와 같은......" - 마침내 목사님은 애절한 사랑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김정순 소아과 의사님? 언젠가 이런 설교를 했었는데 사실 나는 그 설교에 인용했던 예화의 참 뜻을 모르고 말로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만난 후 내가 했던 설교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됐답니다. 외로움과 위로, 그리고 사랑에 대한 것이지요. 무작정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처음 본 사람을 보고 그의 뒷 배경도 모르는 채 사랑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이유는 묻지 말라. 그냥 너를 사랑하련다' 라고 한다면 말이 됩니까? ' '물론 안 되는 듯 하지만 때로는 말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무작정 사랑하겠노라.'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무작정의 사랑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니요? 무슨 사연이 있는겁니까?" 목사님이 되물었을 때 김정순 씨는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에서 이제 사위가 될 이철진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그 사진의 주인공이 이철진의 생부(生父)라면 사촌사이에 이루어지는 근친결혼(近親結婚)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아닙니다. 목사님. 계속하십시오." "........." 목사님은 이상하다는 듯이 김정순 씨를 흘낏 바라보고는 말을 계속하였다. "내가 한 설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노예제도가 번성하던 시절, 어느 날, 노예시장을 지나가던 백인 신사가 있었다. 그는 불과12-13살 된 흑인 소녀를 경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35달러의 값을 지닌 흑인 소녀가 노예들이 잘 보이게 만든 작은 무대 위에 올려 졌다. 마침 지나가던 백인 신사는 어디에서인가 본 소녀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전에 죽어 장사지낸 백인 신사의 여자 흑인 노예가 애타게 찾고 있던 딸이라고 생각했다. "주인님? 제 딸을 찾아 주세요. 주인님에게 오기 전에 각각 흩어져서 팔여 갔습니다. 세 살짜리 계집애도." "세 살짜리 딸을?" "예. 주인님, 세 살짜리를...." "어디에 팔려갔나?" "모릅니다. 주인님..." "그래? 찾아 주마. 찾아 주마." 그러나 그 딸을 찾을 길이 없었다. 백인의 눈에는 분명 죽은 자기 여자 노예가 찾고 있던 딸이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으련만... 죽은 흑인 노예의 이름은 그로리아였으며 착실했다. "글로리아? 너는 자유인이다. 네 마음대로 가서 살거라. 너는 자유다. 가서 딸을 찾아 자유롭게 살거라."라고 백인은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건만 그녀는 "아닙니다. 주인님, 제가 혼자 나가 산들 저는 또다시 노예가 되여 팔려 갈겝니다. 차라리 주인님의 노예가 되어 살겠습니다." 그녀는 자유를 주었건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작년에 병들어 죽게 됐을 때, "주인님, 제 딸을 찾아 주세요. 주인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백인 주인에게 간청을 한 후 그녀는 가엾게도 죽었다. "그래, 찾아 주마!" 백인 주인은 또 다시 약속을 했다. 우연히 노예 시장을 지나가다 소녀를 보게 됐다. 백인의 눈에 비친 그 소녀는 분명 죽은 노예의 딸이라고 단정했기에 그는 경매에 뛰어 들었다. 35딸라 짜리 흑인 노예 소녀를 무려 1350딸라를 주고 샀다. "저 친구, 미친 놈 아냐? 1350달러를 주고 사다니?" 백인 신사는 비싼 값에 소녀를 사게 됐다. 그리고 그 백인 신사는 소녀 노예에게 말했다. "소녀야, 너는 이젠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자유인이다. 자유인.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서 자유롭게 살거라." "예. 자유롭게?" "그렇다네. 자유를 주마...." "주인님? 아닙니다. 나는 주인님의 노예가 되렵니다. 아니 노예로 살게 해 주십시오. 차라리 주인님 밑에서 노예가 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노예가 되는 것이...")- 안전이 보장 되지 않은 약자에게는 오히려 노예가 되는 것이 더 자유스럽다는 말입니다." * "그리고 언젠가 내 마음 속에 떠오른 글귀가 생각납니다. -(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과 그의 양녀 고제트였다. 어렵고 힘든 중에 만나 약속했던 어느 직공과 장발장의 대화가 생각났다.. '부디. 세상에 나가면 내 딸, 고제트를 구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그리고 여직공은 죽었다. '고제트라고 했던가? 고제트?' 장발장은 외로움을 서로 달래 주었던 그 여직공의 부탁을 들어 주었음은 물론 고제트의 일생까지도 책임지고 말았다. '장발장은 왜 그랬을까요? 왜? 왜? 그리고 그 백인 신사도 왜 그랬을까요?' 바보 같은 짓이었지요. 손해 보는 짓이었지요마는 왜 그랬을까요?' '아! 그거야, 사랑의 약속이었으니까요. 사랑의 약속...' '사랑의 약속?' '그렇소. 무조건의 사랑. 아무런 이득도 없는 순수한 사랑.')-" * "김정순 의사님? 나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이들, 현정운과 세실리아 박을 통해 들었답니다. 바보 같은 질문과 대답을.... 그리고 나는 느꼈답니다. '이것이 바로 아카페 적인 사랑이다.'라고." 목사님은 일단 말을 여기서 끊었다. "그 청년과 세실리아라는 여자가? 아가페의 사랑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아가페의 사랑이었습니다. 소아과 의사님." * 목사님은 그들의 사연을 계속해 말하고 있었다. -리오데자네이로 항구에 있는 작은 호텔방의 전등불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밝은 불빛 아래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죄스럽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세실리아는 정운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그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사랑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마음 속 깊이 묻고 살아온 죽은 남편에 대한 연민과 평생 기억에서 잊고 싶었던 한국과 그 주위의 가족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깨끗이 청소를 해 주듯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밖으로 밀어 내주는 그 큰 힘이 정운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운의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감격이 되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눈물을 씻은 후 세실리아는 현정운의 손을 궂게 잡으면서 말했다. "정운씨, 고마워요. 당신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다니?" "슬픔과 절망의 과거에서 이젠 새로운 희망과 사랑을 찾았으니까..." "그래. 나도 당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우린 새로 태어낫어. 새로...." 정운은 세실리아를 강하게 허깅하면서 입술을 더듬었다. * -도리켜 보면 남편, 곽영준 대위를 잃고 인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세실리아는 한국을 등지고 브라질에 이민와 외롭게 살았으나 정운을 만나 삶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비실비실 말라가던 나무 가지에 물이 돋아 올라와 다시 제 원기를 찾게 되었으니 정운은 그녀에게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녀는 현정운의 의연한 사랑 앞에 그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았다. "정운씨? 저는 이제부터 당신의 노예가 되렵니다. 당신의 노예가..." "노예가 된다고?" "그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나의 주인이 돼." "세실리아! 나도 당신의 노예가 되겠어." "정운씨! 사랑해." * 사랑이란 국경도, 나이도, 학식도, 종교도 없다고 했듯이 바닷물에 흘러버린 과거에서 새로운 삶이 움트는 미래가 있게 마련이었다. 다음날, 둘은 리오를 떠나 상 파울로로 돌아오면서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이제부터 한국 사회에서 벗어나, 열심히 그리고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3년 동안 돈을 저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때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로...... 3년 후인, 1971년 3월, 마침내 그들은 김영빈 목사님을 찾아와 정식으로 결혼 주례를 부탁했다. 세실리아의 간청에 따라 어느 누구도 모르게 단 둘과 목사님만 아는 결혼을 했으며 정식으로 브라질 정부에 결혼 신고도 하였다. 참으로 특이한 것은 결혼식에서 역시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라고 굳이 친필 서약을 했다.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간 곳도 당연히 리오데자네이로 였으며 3년 전, 흘려보낸 성경책의 주인공 곽 대위를 만난 것도 특이했다. "여보! 여기 정운씨를 보세요. 나, 정운씨를 사랑합니다. 당신도 허락하겠지요?" 세실리아는 3년 간 찾지 않았던 항구에서 새로 결혼한 남편 정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들은 상파울로를 떠나 1시간 남쪽 해안에 있는 산토스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시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아내 세실리아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봉제업소에서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아파트도 구했으며 1973년 봄, 아들을 낳았다. 세실리아는 한국을 완전히 잊었으며 물론 상 파울로에 사는 한국 사람들도 모두 잊게 되었다. 오로지 그녀의 주인이 된 현정운의 노예로서 행복했다. 1975년 아들을 낳았다. 행복했다. 과연 브라질로 이민 온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했으며 잘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무작정 브라질에 이민 왔던 현정운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목적도 없이 자유를 찾겠다고 찾아 온 브라질이 이젠 자유의 나라가 됐다. 7장. 사고.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순조롭고 행복해 보였던 이들 부부에게 상상도 못할 불행이 찾아올 줄이야...... * 현정운, 세실리아, 그리고 두 아들이 어울려 사는 이 가족은 누가 보아도 행복한 가족이었으며 브라질 이민의 성공적인 사례가 됐다. 둘째 아들이 두 살이 되던 1977년 7월, 현정운 씨는 가족을 동반하고 멀리 리오데자네이로 여행했다. 곧게 솟은 빌딩과 바다가 어울린 세계 3대 미항이란 말처럼 포르트칼 풍의 항구와 높은 산위에 우뚝 솟은 예수님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사는 브라질 사람들의 신앙심이 흘러넘치는 성스러운 도시였다. 생각해보면 이민 오던 1963년 이후 어느새 13년이 되었으니 깜짝하는 사이에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갔음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어찌 보면 '이민'이란 마술가의 손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이민의 현장이니까... 반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곳도 바로 이민 현장이었다.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현정운과 세실리아는 내친김에 가족을 동반하고 조국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13년 전, 도망쳐 나오듯이 등졌던 고향에 당당하게 찾아가 부모님과 시집 식구들을 보란 듯이 만나보자고 다짐을 했다. 뿐만 아니라 속절없이 월남에서 세상을 떠난 전 남편 곽 대위의 무덤에도 찾아가 큰 절을 같이 올리자고 계획도 세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울렁거려 정운과 세실리아는 애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허깅을 하였다. '여보! 사랑해요.' - 산토스로 돌아가기 전에 현정운은 세실리아와 같이 몇 차례 찾아왔던 그 리오항구 해변으로 갔다. 등대가 멀리 뵈는 부두가 보였다. 순간 곽 대위의 목소리가 멀리서 가늘게 들려오는 듯했다. '현정운 씨, 고맙습니다. 내 아내, 점덕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었으니.....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 닫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저녁노을이 항구 저편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여보! 어서 서둘러 갑시다. 아니면 하루를 더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데.... 괜히 비싼 돈 내지 말고." 아내 세실리아가 남편 현정운을 재촉하고 있었다. "곧 캄캄해질 텐데....하루 더 자고 가면 어떨까, 여보?" 현정운은 아내를 바라보며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괜히 비싼 돈 쓰지 말고 갑시다. 여보." "알겠소......" 리오항구는 캄캄해지고 있었으며 리오를 떠난 현정운 가족 일행은 상파울로와 산토스를 향해 차를 몰았다. "5시간이면 산토스에 도달해요. 5시간이면....." "알겠어, 갑시다." 달리는 승용차에 두 아들은 잠이 들었으며 아내 세실리아도 옆 좌석에서 선잠이 들었나보다. 현정운은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순간,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은 두고 온 고향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곁에서 다독거려주던 모습도 떠올랐다. - "공부 좀 해라! 녀석아!" 형님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났다. "그래,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누나처럼..." " 누나처럼" "그렇다니까......"- 그 순간 고속도로 반대편에서 성난 사자처럼 환한 불빛을 비치며 달려오는 큰 트럭이 마치 현정운의 차를 받을 듯 했기에 현정운은 무의식적으로 신호도 주지 않고 옆 차선으로 차선을 바꾸고 있었다. 본인은 생각도 못 했기에 뒤에서 빨리 달려오는 다른 트럭을 보지 못했으니, 현정운이 탄 자동차는 순식간에 부딪치면서 '붕' 하고 공중에 떠 반 바퀴 회전을 하면서 고속도로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꽤 큰 폭팔음이 들리면서 자동차는 불길에 휩쌓였다. 가엾게도 현정운의 자동차는 작은 계곡으로 처박히면서 타버리고 말았다. * 교통사고로 인해 현정운, 세실리아 그리고 큰 아들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기적적으로 둘째 아들은 뒷 자석 귀퉁이에서 잠을 자다가 밖으로 튕겨 나오면서 기적적으로 큰 상처 없이 살아 있었다. 응급차가 달려 왔으며 경찰차가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현정운의 가족을 아는 사람들이 근처에는 없었기에 브라질 정부는 죽은 세 식구들을 일주일 간 보관했다가 시립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그리고 생존한 아들은 정부 가 관여하는 싸구려 고아원에 수용하였다. 산토스에 있는 아파트가 나중에 발견이 되기는 했으나 흐지부지 잊혀졌다. 고아원으로 실려 간 생존한 아들은 말세리노 루나(Marcerino Luna)라는 이름으로 고아원에서 살게 됐다. 상파울로 신문에 잠시 교통사고 소식이 보도되긴 했으나 산토스에 사는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6개월 후 리오데자네이로에 사업차 갔던 이진경 씨가 우연히 고아원에 들렸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한국아이를 발견하였다. "동양 아이가 하나 있소. 원하면 입양을 하시지요?" 고아원장이 친절하게 소개를 하였다. "동양 아이라고요?" "그것도 아들이요. 아들...." "제가 데리고 가렵니다." 자식이 없는 이진경 씨는 자청하여 한국인 아이, 말세리노 루나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상 파울로로 데려오게 되었다. * 목사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김정순 의사선생님? 말세리노를 내게 데리고 온 이진경 씨는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이철진이라고 지었답니다. 세례를 주면서 나는 과연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였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득 나는 언젠가 읽었던 신문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가끔 내게 연락을 주었던 현정운씨 부부가 행방불명이 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그들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그 생각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이진경 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진경 씨가 설령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까요." 목사님의 긴 설명이 대충 여기서 마무리 되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이 사실을 홀로 비밀로 간직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겝니다. 김정순 씨." "아, 목사님! 감사합니다. 소상하게 설명을 해 주셔서...." 8. 비밀은..... 의사는 환자가 일러준 비밀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언에 나오는 필수 의무지만 목사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기에 더더욱 비밀에 철저해야 했다. 김영빈 목사는 1971년 그를 찾아 왔던 현정운과 세실리아가 6년 후인 '1977년에 발생한 교통사고'의 주인공임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비밀을 지켜 준 것이 너무나 훌륭해 보였다. * 그러나 몇 가지 이해 못할 의문점이 있었다. - 현정운이라는 남자가 김정순 씨가 찾고 있는 남동생 김정우와 여러모로 일치하는 듯하나 이해 못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현정운과 김정우와는 성도 이름도 다르다는 점이며 더 큰 의문점은 어떻게, 어떤 경로로 한국에서 여기 브라질에 왔는지 설명이 되질 않았다. "목사님? 내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드나 어떻게 보면 아닐 수도 있군요. 어떻게 여기 브라질까지 왔는지, 그 사연을 아시는지요?" "그러고 보니 사실, 현정운 씨는 어떻게 여길 왔는지 한번도 내게 말해준 기억이 없군요." "그럼, 어느 누가 아시는 분이 없을는지요?" "꼭 필요하다면 알아보도록 하지요. 김정순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많은 사실을 알게는 됐으나 100% 확실한 답은 얻지 못한 셈이었다. * 사돈네 집에 돌아오니 아직도 남편은 관광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사돈 이진경 씨와 부인을 바라보면서 문득 감사의 마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부모를 잃은 2살 반짜리 남자 아이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입양해 이토록 훌륭하게 성장시켜 결혼을 시킨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친아버지처럼 똑같은 애정을 갖고 길렀으니 친 아버지보다 오히려 더 끈끈한 관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현정운이 그녀의 남동생 김정우와 같은 사람이라면 이철진은 분명 그녀의 딸과는 사촌지간이 되기 때문에 결혼이 불가능하리라. "사촌끼리? 안되지! 그럴 수가 없지!" 그러나 이둘은 진심으로 사랑하여 약혼까지 했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결혼식을 11월로 정했는데, 어쩌나....." 목사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고 물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 놓고 고백하면 어떨까... 남편이 알면 무어라고 대답을 할까..... 얼마 후 관광에서 돌아온 남편은 무엇이 그토록 좋은지 연실 웃고 있었다. "와! 상.파울로? 이건 꼭 서울하고 똑같구먼......." 남편은 서울과 상 파울로시가 여러모로 비슷한 것 같다고 관광중에 본 것을 설명해 주었다. 밤새 그녀는 근친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 동생, 김정우와 사진속의 남자, 현정운은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 그러기에 이 둘의 결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상파울로를 방문한 10일의 기간이 마치 몇 년이나 되는 듯했다. 남편과 같이 동행한 북부 브라질의 아마존 장글, 이과수 폭포, 리오데자네이로, 산토스 그리고 쿠리티바를 관광객들과 같이 다니기는 했으나 그녀는 억지로 끌려 다니는 고행 길과 같았다. '목사님을 한 번 더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해야 되는데....어쩌나.....' 그러나 다음날, 그녀는 남편과 같이 브라질을 떠나 한국으로 되 돌아 가야 했기에 사돈과 같이 브라질 특유의 소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브라질(포르투갈) 풍의 음식점으로 가야 했다. 브라질 특유의 먹음직한 고기들이 웨이터들에 의해 권유 되었으나 그녀는 '배부르다는 말로' 사양하다보니 한 턱 크게 쓰려고 나온 사돈은 내가 마음이 상했나 하는 우려의 마음으로 불편한 듯해 보였다. 다음날, 상 파울로에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길고도 먼 비행을 시작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도 그녀는 딸의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또 다시 답답했으나 남편에게는 속 시원하게 말도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꽁꽁 묻어두고 말았다. 서울(인천)공항에 내리니 기대했던 대로, 환한 웃음을 띈 딸과 티 없는 소년처럼 기쁜 얼굴을 한 사위 후보가 그들을 반겨 주었다. '아! 저토록 행복한 두 사람에게 사촌지간이란 말을 해야 하나? 아냐!, 아냐!' 잠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 나야 어머니!" 보다 못해 딸이 큰 소리로 말하면서 어머니를 얼싸 안았을 때 비로소 그녀는 서울에 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아냐!' 시내로 돌아오면서 뵈는 빌딩들과 사람들이 마치 상.파올로의 한 구석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설사, 현정운이 내 동생 김정우라고 해도 내 입에서 그렇다는 말은 못하리라.....' 김정순 씨는 굳게 입을 다물기로 결심하였다. 그 비밀을 지키는 것만이 딸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 딸과 이철진의 결혼식은 하나하나 예정대로 진척되었으며 마침내 11월이 가까워 왔다. 큰 규모의 결혼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친척들만 모이는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할 것인가,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가능한 큰 규모의 결혼식을 해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하자고 했으나 김정순씨는 작은 결혼식을 강력하게 주장했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9. 근친 결혼 김정순 씨는 소아과 의사답게 근친결혼으로 생기는 아이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신체의 기형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이브, 롯과 그의 딸,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과 같은 근친결혼이 많았기에 유태인들에게 유달리 기형아가 많았다. 중동 사람들이 근친결혼을 더 좋아 하는 이유는 잘 모르는 부족에게 딸을 주어 고생시키는 것보다 서로 잘 아는 친척끼리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가깝게는 이웃나라인 일본 사람들은 4촌 이상이면 아무 스스럼없이 근친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근친결혼으로 인해 네 발로 걷는 사람, 심장 질환, 지능저하 그리고 다운 증후군과 같은 바보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혹시라도 딸과 사위에게도 그런 유전인자의 결함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아과 의사로서 오는 걱정이 자연스레 생기기 시작했다. 만일 이런 이유로 기형아가 태어난 사실을 남편이나 다른 친척들이 알게 된다면 미리 알면서도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그녀는 영락없이 배반자가 되는 셈이었다. 아무리 절대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치부를 감싸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그녀는 고민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결혼식 날이 찾아 왔으며 결혼식은 예정대로 가족과 친지들만의 작은 결혼식으로 약혼식을 거행했던 우아한 남산 하야트 호텔에서 성공리에 치러졌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결혼 뒤에 숨겨진 비밀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혹시라도 결혼 후 사진을 소유한 사위가 본인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딸과 사위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으며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온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속에 그들은 각각의 일을 시작했으며 브라질에서 살기보다는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는데, 브라질에 사는 사돈들도 역시 그렇게 허락을 해 주었다. "아무렴! 조국에서 살아야지, 브라질은 이민으로 와 잠시 살다갈 곳이었을 뿐....." * 그러나, 웬일일까? 딸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부터 김정순 씨는 행방불명이 된 남동생의 생사를 규명하고 싶은 마음이 더 솟구치고 있었다. 사진속의 남자가 정말로 그녀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런지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설령, 사진속의 남자가 그녀의 동생이던 아니던 생각보다 멋있는 사나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와 결혼한 세실리아 박도 역시 정이 듬뿍 드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둘은 진정한 사랑, 아니 조건 없는 사랑을 했으며 결국에는 고귀한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을 하니 부러움이 앞섰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가진 것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브라질에서 일세 이민으로 만난 가난뱅이였던 이들 두 사람은 내 놓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었던 밑바닥 인생이었다. 오로지 가진 것이라고는 '외로움' '한', '자유를 갖고 싶은 열망', 그리고 조건 없이 외로움을 다독거려 준 '우정과 사랑' 뿐이었다. 조건부의 사랑은 가진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아 조건이 충족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사랑으로 존재하지 못하나 무조건의 사랑은 조건 자체가 없다보니 영원한 사랑이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의 사랑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 그 작고 멍든 가슴에 철없는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외로움과 한을 현정운이라는 사나이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밑바닥까지 쭈그러진 세실리아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이만큼 훌륭한 애정이 어디에 있을까? 김정순 씨와 세실리아는 동갑 나이의 여성인데, 동생 정운으로부터 숭고한 사랑을 받았던 세실리아가 한 없이 부러웠다. 이와 같이 순수한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 이철진이 바로 그녀의 사위가 되었는데, 어찌 그들의 비밀을 굳이 밝혀 불행을 초래할 이유가 없었다. 동생이 어떻게 해서 실종이 됐는지 천천히 알아보기는 하지만 그녀가 습득한 그들의 비밀은 영원히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감춰두려고 했다. 10. 진실. 딸과 사위는 결혼한 후 분가하지 않고 친정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위와 딸을 볼 때마다 김정순 씨는 근친결혼이라는 껄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식과 같이 살고 있으니 좋으면서도 근친결혼의 비밀이 밝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아주 불편했다. 마침내 김정순 씨는 2005년 12월에 심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마지못해 소아과 진료실을 닫고 은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남편에게 멀리 미국에 가서 한 5년만 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민이 안 된다면 장기체류를 해서라도 날씨가 따스하며 골프도 일 년 내내 마음대로 칠 수 있는 남가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집요하게 요구를 하니 나중에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여보 그렇게 합시다. 딱 5년만 미국에 가서 살다 오는 거요. 늙은 나이에 미국에 가서 무었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나..." 남편은 불만스러웠으나 얼굴을 붉히지 않고 허락했다. 2005년 12월 20일경, 한국의 추운 날씨를 피해 따스한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브라질을 다시 한차례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이번에는 김정순 씨 혼자서 브라질을 방문했다. 마음이 답답해 어디고 멀리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친구를 만나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실.비치 시(市)(Seal Beach city)를 방문해 그곳에 있는 노인타운을 둘러보았다. 노인타운(Silver town)은 이름그대로 은퇴한 노인들만이 모여 사는 곳으로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눈에 띄는 노인들의 볼품없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황혼을 보는 듯 했으며 저 모습이 바로 그녀의 앞으로 올 모습일거라고 생각하니 처량했다. 그래도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여기 실버타운에서 5년간 살기로 작정하고 다음날,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를 탓다. 두 번째 가는 브라질은 덜 생소했으며 오히려 친근한 마음이 생기고 있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동생, 김정우가 그곳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사위가 보여준 사진을 통해 동생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살아 있을 거라는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과연 동생, 정우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현정운과 김정우는 같은 사람인가?' 상 파울로 공항에 내렸을 때 어쩌면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흥분되었다. * 이번에는 사돈에게 알리지 않고 상 파울로 시내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으며 비밀리에 전번에 만났던 김영빈 목사를 호텔 식당에서 만나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전,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목사님이 설명을 자세히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그들이 여기 브라질로 왔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던 바 목사님은 더 이상의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정운 씨는 한국에서 여기 브라질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과거가 없는 셈이군요." "그렇다면 현정운과 내 동생, 김정우는 다른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겠군요." "어떻게 알아낼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아! 혹시 현씨 성을 가진 봉제업자를 만나보면, 혹시...." "현씨 성을 가진?"- * 마침내 김정순 씨는 김 목사님의 소개장을 들고 한인 타운에서 꽤 벗어난 곳에서 은퇴해 살고 있는 현씨라는 분을 만나게 됐다. 혹시, 현정운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고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김정순 씨의 가슴은 두방맹이를 치고 있었다. 로베르토 현(Roberto Hyun)이라고 불리는 85살의 체구가 큰 노인이었는데 다행히도 기억력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현정운이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멀리 한국에서 찾아 왔습니다. 현정운이라는 사람을 찾으려고요." "그렇다면 댁은 뉘십니까?" 로베르토 현 노인은 경계하면서 물었다. "정운이의 누나입니다." "누나? 누나?" "예." "그런데 무엇이 궁금합니까?" "정운이를 아시는가해서요?" "알다마다요, 정운이는 나의 아들입니다." "예? 현 선생님의 아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아-" 김정순 씨는 신음 소리를 크게 내고 말았음은 큰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로베르토 현씨의 아들이라면 더 이상 물어 볼 이유도 없었다. 현씨와 김씨는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현씨와 김씨는 결코 같을 수가 없으니...... "정운은 나와 같이 이민선을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물론 내 며느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손자도요?" "물론이죠. 손자도 같이 죽고 말았습니다." 김정순 씨는 더 이상 물어 볼 기력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 사진속의 남자가 그녀의 동생일거라고 거의 확신을 하고 찾아 왔는데 뜻밖에도 얼굴만 비슷했지 성씨도 다를뿐더러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버젓이 여기 브라질에 살고 있으니 동생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호텔로 되돌아 왔으나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사진속의 남자, 현정운과 내가 찾는 동생 김정우는 다르구나.....그런데, 어쩌면 그토록 얼굴이 비슷할까. 그렇다면, 나의 딸, 용연과 사위 철진의 결혼은 정상적인 결혼이었어.' 눈물겹도록 동생 찾는 일은 실패했으나 근친결혼이라는 껄껄한 윤리적인 압력은 깨끗이 사라진 셈이었으니 한 가지는 잃고 한 가지는 얻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내 동생, 김정우는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죽었구나...죽었어. 불쌍한 녀석.' 뜬눈으로 잠을 못 이루고 온밤을 새우고 말았다. 아침 늦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11시나 되어 아침 겸 점심으로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은 게 다였다. '이제, 무엇을 한담? 가기 전에 사돈이라도 한번 만나볼까?' 그녀는 힘없이 포르트갈 풍의 폭신한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천장을 멀건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창문가에 비치된 작은 냉장고에서 삐-삐-하는 잡음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가까스레 일어나 테레비존의 스위치를 올려보았다. TV 챠넬 4에서 무슨 교양 공부를 가르치는지 어느 중년의 여성이 열심히 포르트갈 말로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건강증진에 관한 세미나 시간 같아 보였다. 동생 정우가 없다면 여기 브라질에 더 머물러 있기보다 차라리 미국으로 되돌아가 앞으로 살려고 계획한 노인 촌에 가서 며칠 더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호텔 로비에 있는 안내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시뇨라, 김정순? 여기 로비에 로베르토 현이라는 분이 찾아 왔는데, 급히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예? 로베르토 현?" "그렇습니다." 웬일일까? 분명히 어제 얘기는 다 끝냈는데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찾아 왔는지 궁금하다 못해 흥분이 되었다. 급히 로비로 내려가 보니 로베르토 현과 김영빈 목사가 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 침으로 신기한 일이 있었다. -어제 저녁, 로베르토 현은 우연히 김영빈 목사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평범한 인사치례 전화를 하던 중에 "어제 한국에서 나의 아들 정운에 대해 알아보고자 찾아 온 여의사가 있었는데, 왜 죽은 정운이에 대해 자꾸 묻는지..."라고 말을 건네자 듣고있던 김영빈 목사는 자지러지게 놀랐다고 한다. - "잠간 현 장로님? 소아과 의사라고 했나요?" "예. 소아과 의사라고 하는데, 죽은 정운이가 자기 동생이 아닌가하고 묻던군요. 목사님." "아- 현 장로님!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김영빈 목사는 재차 물었다. "내 죽은 아들이라고 했더니 실망스럽게 고개를 떨구드니 그냥 가던군요." "잠간! 그 여의사분 아직도 여기 브라질에 있습니까?" "예, 다운타운에 있는 H 호텔에 묶고 있습니다." "장로님? 내일 나하고 같이 그분을 만나야겠습니다. 꼭요..." 김영빈 목사가 재촉을 했다. - 로비에서 만난 로베르토 현씨는 무척이나 미안한 듯이 김정순 씨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김 의사님? 어젠,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현정운은 나의 양아들입니다." "예? 양 아들라구요? 그러면 본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 김정우라고 했지요. 정우......" "예? 정우? 김정우!" "그렇습니다. 정우." "맙소사! 하나님!" "그렇다면 정운이가 바로 당신이 찾던 동생 김정우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목사님!" 마침내 그녀는 동생, 김정우를 찾아내고 만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동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26년 전에 교통사고로 이국 만 리 브라질에서 죽고 말았으니..... 설마설마 했던 것이 현실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왜? 정우는 여기 브라질로 왔었는지? 부모 형제를 속이고 이민으로 와야 했던 사연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객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세실리아 박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교통사고와 고아로 남은 이철진... 그의 과거가 궁금했다. 어떻게 여기에 왔었는지....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차피 로베르토 현씨의 증언을 들어야만 했다. * 동생, 김정우가 현정운이란 이름으로 브라질에 이민 오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1963년 봄, 동생, 김정우는 D고교 3학년으로 진급 됐으나, 다음 해에 치러야 할 대학 입학시험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으며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아버지의 눈도 피하기 힘들었지만 명문대학을 졸업한 성공적인 두형과 의과대학을 다니는 누나를 볼 때마다 부담이 더 컸다. '에라, 어디라도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유! 자유!'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같은 반의 현성룡이란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7월 달에 브라질로 가족 이민을 가게 됐다고 말했다. "브라질로 이민을 간다고, 성룡아?" "그래."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겠니?" "뭐라고? 너도 가고 싶다고, 정우야?"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는데 더 이해 안 되는 것은 현성룡의 아버지였다. "정우라고 했나? 너도 가고 싶다고?" "예. 저도 같이 가게 해주세요. 성룡이 아버지?" "이민가려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부모님의 허락만 받으면 같이 가는 거지요?" "그래. 같이 가마." 며칠 후 정우는 현성룡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아버지가 허락을 했으니 나도 같이 가게 네 아버지에게 부탁 좀 하자."라고. 1963년도의 한국은 어수룩한 것이 많았다. 김정우는 호적계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 현성룡과 형제가 되어 브라질 이민에 합류하게 됐다. 현성룡의 등치가 크고 뚱뚱하기에 마치 형처럼 보였다. 자연스레 정우는 한 살 어린 동생이 되었다. 물론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형님에게도 비밀로 했으며 학교에도 알리지 않았다. 철저히 거짖말로 비밀리에 일을 추진했다. 정우는 약 10년 간 브라질에 가서 자유롭게 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려고 했다. "너, 정말 브라질에 갈거야? 너의 아버지가 알면 어쩌려고 그래, 정우야?" "걱정마라. 나는 공부보다는 외국에 가서 모험을 하고 싶어. 그리고 반드시 성공을 할거야." "후회 하지 말어. 정우야!" "후회? 걱정마라! 녀석아. 내가 좋아서 가는 건데..." 결국 김정우는 성룡이와 이민가기 위한 편법으로 형제가 되었다. 현정운이라는 이름이 익숙치 않아 많은 연습도 했으며 성룡이의 가족 상황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야 한가족이라는 증명을 하게 되었기에 역시 가족 연습을 하였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비밀로 했으며 이민가는 비용도 성룡의 아버지가 부담을 해 주었다. 마침내 브라질로부터 비자가 나왔으며 여권도 갖추고 보니, 이제 남은 것은 출발하는 것뿐이었는데 가는 날까지 정우의 가족들에게는 깜쪽 같이 비밀로 부쳤다. *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7월 달에 부산 항구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서울역에서 현성룡의 기족을 만난 정우는 부산으로 내려가 현정운이란 여권으로 브라질 이민선에 몸을 싣게 됐다. 큰 이민가방 하나에 옷가지와 책 몇 권 그리고 라면 봉지 등이 들어 있었다. 35세대의 이민자들은 큰 여객(상)선 아래층에 마련된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이민자들을 위한 선실에서 63일 간의 긴 여행을 같이 하게 되었다. 부산항에서 수많은 환송객들이 울고불고 하는 이별을 뒤로 하고 긴 고동소리를 내면서 바다물결을 헤치며 이민선은 남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시작한 이민이기에 지난 몇 개월간 가족들을 깜쪽같이 속였지만 지금쯤 집에서는 큰 난리가 났을 것이 뻔했다. 며칠째 아들 녀석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무리 제껴놓은 말썽꾸러기 아들이라고는 해도 아들은 아들인법, 행방불명이 된 아들을 찾느라고 야단일 것이 뻔했다. 배는 부산항을 떠나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홍콩-싱가폴-인도양-케이프타운-대서양-리오데자네이로를 향하는 길고 먼 항해였다. 배가 몹시 흔들리자 점점 메식거려지며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토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하였으니 너무나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하루를 꼬박 굶은 셈이었다. 침대에 누워 고생을 하다 보니 어디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배 싻을 적게 냈으니 밥을 줄 것 같지 않았으며 매번 사 먹어야한다고 생각을 하고 보니 암담했다. 혹시라도 양자로 서류를 위조한 것이 탈로 날까봐 성룡이네와는 얼마동안 별도로 행동을 하였다. 배가 한국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집을 나온 것이 후회스러워 지고 있었다. 차라리 무서운 아버지라고 해도 참고 집에 있을 것을, 괜히 자유를 찾아 간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 더 후회스럽기 시작됐다. 무엇보다도 누나에게 얘기를 못하고 나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최소한 누나에게는 이민 간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누나에게는..... 구토증이 멈추게 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이민선에 탄 다른 가족들과 하나하나 친하기 시작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북에서 피난 나왔던 사람들로 어차피 타향인 이남에서 힘들게 사느니 보다 멀리 브라질에 가서 마음껏 일해 재산을 모으겠다는 강력한 마음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됐다. 이민자들은 아래층 후진 곳에 있는 선실과 갑판의 일부만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많은 돈을 내고 여객선을 탄 다른 손님들과는 구분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아침 이민선은 홍콩 항구에 도달하고 있었다. 홍콩에 도착했으나 이민자들은 배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이민자들은 줄을 서서 7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정우는 배 싹으로 200딸라를 지불했기에 배 싹에는 식사비가 없는 것으로 알고 그동안 갖고 온 라면으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남들이 밥을 먹으러 7층으로 간다니..... 그도 뒤를 따라가 보았다. 사람들은 각각 둥근 테이블에 있는 이름을 찾아 그곳에 앉으니 중국식으로 된 버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문득 바라다보니 "와! 현정운"이란 표시가 테이블에 있었다. "성룡아! 내 이름이 여기에 왜 있는 거니?" "임마! 네가 낸 배 싹에 음식 값도 포함되었으니까." "그래? 배 싹에 식사비가 포함된 것도 모르고 꼬박 하루를 굶었어, 성룡아." "이런 바보! 나는 그것도 모르고...네가 구토를 하기에 일부러 안 먹는 줄 알았지...."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선실로 내려가 갖고 온 포르트갈 말 배우기 책을 꺼내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해야 했다. 이민선은 홍콩을 지나 남지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보이는 곳에 베트남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곳 베트남에도 한국 군인들이 파견되기 시작했으니 어찌보면 한국 민족은 어딘가로 흩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싱가폴에 정박하였으며 하루를 지난 후 이번에는 말레지아의 페낭에 정박을 했다. 휴식도 하고 배에 기름도 넣고 유람선에 탄 고객들에게 줄 채소도 구입하느라고 유람선은 꽤나 바쁜 듯 했으나 정작 이민자들에게는 냄새나는 배안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오히려 고역이었다. 밤하늘에 초롱초롱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다보면서 정운은 고향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아버지는? 그리고 누나는?' 문득 고등학교 동창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가면 언제나 볼 수가 있을 런지..... -자유가 무엇인가? 공부하기 싫어 부모를 떠난 것이 과연 자유가 될까? 어쨌든 대학 시험공부를 안 하는 것이 자유스러웠다. 어느 정도 이민자들 사이에 친근감이 생기다보니 '같은 운명의 배를 탄 것'이 비록 성씨는 다르나 한 형제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이민자. 한 솥 밥을 먹는 한 식구....' 원래 친구였지만 성룡과는 완전히 한 형제가 되고 있었다. 페낭을 지나 인도양으로 나온 이민선은 마침내 망망대해 인도양을 횡단하고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가끔 만나는 폭풍우를 보면서 인생도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는 두고 온 부모님들이 원망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우야(정운)? 너, 어디 있는 거니?" "아버지, 나, 이민선에 있어요. 10년만 기다리세요. 성공해서 돌아 갈게요. 10년만....." 그는 바람 속을 향해 소리를 쳤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밤이면 찾아오는 인도양 상공의 별들을 보면서 그는 역시 같은 말을 되 새겼다. "아버지, 어머니, 성공하여 돌아갑니다. 10년 후에...." 지저분한 냄새가 풍기는 싸구려 선실에서 성룡의 식구들과 같이 기거하다보니 이젠 스스럼없이 그들과 한 식구가 된 셈이었다. "너는 브라질에 가서 무엇을 할려고 하니?" 성룡의 어머니가 물었을 때 정우(정운)는 대답을 못하고 쭈삣거리기만 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니? 너 정말 어머니에게 말을 안 한 거여?" "예. 말을 안했습니다." "너, 불효하는 거여. 대신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돌아가거라." "예." 밤마다 정우(정운)는 선실의 천장을 바라다보다가 잠시 갑판으로 나와 넓은 바다를 바라다보기도 했으며 때로는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누나! 누나!' 그는 가장 사랑하고 만만했던 누나를 불러 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멀리 밖 앗 세상 밖으로 나오고 보니 누나의 모습은 더더욱 크고 높게 보였으나 반대로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게 보였다. 인도와 세일론(스리랑카)에 각각 하루를 정박했던 이민선은 마침내 망망한 인도양을 가로질러 남쪽 방향에 있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선실에서 틈틈이 공부를 한 포르트칼 말이 꽤나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저러나, 브라질에 가면 무엇을 한담....농사? 내가 언제 농사를 지어봤던가? 성룡이 아버지도 그렇지, 그 양반 농사를 지을 사람이 아닌데....'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큰 섬 마다카스칼 섬을 지난다고 했는데 나흘 후에는 남아연방의 큰 도시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50일이나 걸린 항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의 생활에 이젠 익숙해지기도 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여 이(2)박을 하는 동안 이민자들은 잠시 도시에 나가 바깥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마는 차라리 잠을 자는 편이 더 좋은 듯했다. 지구 남반부는 점점 여름으로 접어들기에 바닷 바람도 뜨거웠으며 수시로 만나는 바다의 강풍과 폭풍도 이젠 익숙한 일과였다. 희망봉을 지나 대서양으로 나간 이민선은 일주일간을 쉬지 않고 항해를 하여 마침내 세계 3대 미항중의 하나인 리오데자네이로에 도착했다. 선창을 통해 바라본 리오데자네이로는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높은 산위에 우뚝 서있는 '예수님의 동상'이 눈에 띄였으며 맑은 바다와 푸른 산위에 있는 녹색의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항구였다. 부산도 아름답지만 처음 와본 정운(정우)에게는 리오데자네이로는 꿈속에서 보는 그림 같았다. 바닷물도 깨끗했지만 스페인풍의 도시 건물들이 동양 사람의 눈에는 이채로웠으며, 특히 진한 붉은 색의 지붕들이 눈에 선뜻 띄었다. 이민선이 항구로 접근할 때는 새벽녘이어서 항구를 인도해 주는 등대가 눈에 선명했으며 마치 정운(정우)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고 보니 아침이라고 하며 배에서 내리기 전에 아침 식사를 7층 식당에서 지금까지 항해를 같이 한 선원들과 함께 하였을 때, 그래도 63일간 돌보아준 선원들이 가족과 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와! 63일...63일.' 길고 긴 항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 항해는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브라질 땅에서 언어도 안 통하다보니 은근히 겁이 났다. 이민객들은 복잡하면서도 지루한 입국수속을 시작했는데 혹시라도 여기서 가짜로 위조해 온 사실이 들통 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민국 직원이 큰 소리로 물었다. "형제? 성룡과 정운?" "예스, 우리는 형제입니다. " "그래? 몇 살 차인가?" "한살 차입니다." "한 살? 한 살? " "예." "알았어. 입국을 허락하마." 마침내 정우와 성룡은 형제로 브라질에 입국하게 됐다. 현정운이라는 이름으로...... * 어정쩡한 상황에서 이민자들은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무려 8시간을 달려 적도가 가까운 빅토리아(Victoria)라는 농장에 가서 정착하게 됐다. 브라질의 농토는 비교적 옥토였으며 산림도 우거진 곳이 여기저기에 있으며 광물질도 풍부했으나 개발되지 않은 미래의 나라로 보였다. 한국인의 농업 이민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 본래 일본 사람들이 브라질에 농업 이민을 와 농장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브라질 정부에서는 비슷한 얼굴 모양을 한 극동의 나라 한국과 중국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국 사람을 농업 이민으로 받아 드렸다. 브라질 사람들, 아니 포르트갈 사람들과 여기 원주민들은 아시안에 비해 다소 게으른 듯 한 것이 문제였다. 일본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여기 브라질에서 아주 모범적인 민족으로 칭찬을 받고 있었다. 일본사람과 한국 사람이 비슷하다보니 한국 사람을 다소 과대평가한 결과였다. 빅토리아에 도착한 한국 사람들은 텐트로 된 가건물에서 임시로 머물면서 정착하게 됐다. 미리 사둔 땅이 이민자들에게 분배 되었다. 생각보다 넓은 농토를 받았으나 농사라고는 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이민으로 왔으니 농토를 개간할 수가 없었으며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국 이민자들은 어떻게 하면 여기를 빠져나가 도시로 가서 장사를 하려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농사지을 의욕도 없다 보니 괜히 주위에서 발견되는 애꿎은 뱀이나 잡아 철조망에 말려 뱀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으니 브라질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 사람들? 이건 아닌데, 아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빅토리아에 정착한 한국 사람들은 어느새 농토를 포기하고 상 파울로라는 도시로 가려고 서로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2개월이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농토를 포기하고 무작정 상파울로로 가기 시작했다. 현성룡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도 농토를 포기하고 도시로 가서 다른 사업을 해 봅시다. 우리는 농사꾼이 아녀. 농사는 잘 몰라." "비싸게 주고 산 땅은 포기하고요?" 아내가 물었다. "물론이지! 원래 여기 땅을 준 놈들도 황무지 같은 땅을 사기 쳐서 우리에게 준거여. 약속을 깨기는 피장파장이지......" 알고 보니 땅을 판 사람이나 이 땅을 사도록 유도한 브라질 사람들도 한국 이민자들을 우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한국 사람들로부터 거짓말로 돈이나 빼앗은 결과였다. 현성룡의 집안도 역시 짐을 꾸려 상파울로로 무작정 내려갔다. 작은 아파트를 구하고 막 노동을 시작했을 때, 정운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성룡의 아버지 혼자 벌어서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도 쉽지 않았기에 정운은 스스로 판단을 하였다. '이집에서 나가 주는 것이 성룡이 아버지를 돕는 것이다.' 결국 정운은 성룡의 아버지에게 집을 나가 자립하겠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를? 네가 어디 가서 산다고? 너 혼자서?" "예. 혼자 살아 보겠습니다. 아버지(성룡 아버지)." 결국 성룡이 아버지도 못 이기는 척하고 정운이 홀로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힘들면 언제고 돌아 오거라. 너도 현씨니까. 현정운이니까." "감사합니다. 성룡 아버지." 그리고 그는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나오고 보니 막연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마침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일하고 있는 자동차 정비소였다. 주인은 브라질 사람이었으며 여기에 알베르토 정(Alberto Chung)이라고 불리는 한국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일 좀 시켜 달라고 떼를 썼다. 마침브라질 사람, 정비소 주인은 한국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 것을 알기에 이제 18살 조금 지난 정운을 채용하여 막일을 시키기 위해 싼 임금을 주고 고용을 했다. 싼 임금이기는 하나 먹고 살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30살이 된 알베르토 정은 알젠틴에서 살다가 작년 여름 여기로 이사와 정비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정운을 불쌍하게 보아 작은 아파트이지만 같이 기거하기로 허락해주었다. 알베르토는 알젠틴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낭비벽이 강하여 남편 몰래 돈을 빼돌렸다. 참다못해 그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고 알젠틴에서 브라질로 도망을 나왔다고 했다. 결국 현정운은 알베르토 정씨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알베르토 형님!'이 공식적인 호칭이었다. -알베르토 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는데 정운으로서는 행운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브라질로 온 정운에게 기회가 되면 반드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라고 강력하게 충고를 했으며, 가능한 정비소 기능공이 돼 자격증도 하루 속히 빨리 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를 해 주었다. 결국 현정운은 자동차 정비공이 되는 것이 희망이요 꿈이었다. 11. 인연 1967년 6월, 브라질로 이민 온지도 어느듯 4년이 되었을 때, 현정운은 웬만한 자동차를 스스로 만질 줄 아는 정비공이 됐으며 가까스레 고등학교 과정도 이수했다. 그리고 상 파울로 단과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말이 상파울로 단과 대학이지 수준도 없는 대학이었다.( 주: 상파울로 대학교는 아주 유명하지만 상파울로 대학은 이름만 그럴싸하지 돈만 주면 졸업장을 주는 보잘 것 없는 단과대학이다.) 작은 아피트에서 기거하며 그동안 착실하게 모은 돈도 꽤 되었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기기에 그는 월급으로 받는 돈은 무조건 저축했으며 먹고 사는 것도 아끼고 절약하였기에 언뜻 보기에는 아주 가난한 남자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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