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샤이엔이 언덕. 제1파트

2012.01.22 15:34

연규호 조회 수:633 추천:24

샤이엔-2 장편 소설. 샤이엔(Sheyenne)의 언덕 (The Hill of Sheyenne) 목차: 책 머리에(프롤로그) 1.푸른 언덕의 작은 집 2.나는 수. 인디안 3.새로운 침략자, 한국 사람들 4.추방(追放), 인디안 부족회의 5.침략자가 만난 또 다른 인디안, 마야(Maya) 인디안 6.잃어 버린 나의 과거 7.두 어머니(Two Mothers) 8.불랙이글의 가문 9.샤이엔과 쉐난도아의 별들을 사랑한 인디안 아버지 10.인디안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 11.한국전쟁의 와중에서 12.어머니, 샤이엔-그녀는 한국 사람 13.와콘다 신의 저주 14.와콘다 신을 배반하면 죽는다 15.또 다른 수.인디안 어머니와 우울증 환자, 아버지 16.수.인디안은 죽은 후 어디로 가나... 17.수.인디안이 읽은 성경과 천국 18.샤이엔에서 추방된 수.인디안이 갈 곳. 19.에필로그, 나의 영원한 고향, 샤이엔 심사평 소설을 마치면서 발문 책머리에(프롤로그) 미국으로 이민 와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지 어느덧 37년, 생각해 보면 한국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더 간절해져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가리라고 다짐해 본다. 의사(醫師)일을 하면서 틈틈이 나는 인디안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디안들이 받은 고통을 통해 한국의 억울했던 역사를 조명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디안 중에 ‘수. 인디안(Souix)’ 그리고 ‘마야 인디안(Maya)’을 소재로 쓴 소설이 ‘샤이엔’, ‘마야의 눈물’ 그리고 ‘마야의 꿈’인데 소재와 구성 그리고 테마가 조금은 색달랐다고 생각한다. 소설 ‘샤이엔’을 통해 인디안들이 백인 정복자들로부터 상상 못할 고난을 받은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민족적인 굴욕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나는 우리와 같은 처지였던 인디안들을 사랑하는 소설가, 그리고 인디안들을 돕는 의사가 되었다. 그 동안 공부해 온 수. 인디안의 역사, 종교, 풍습 그리고 사랑을 소설로 써 보려고 한다. 2010 년 10월 30일 장편 소설: 샤이엔(Sheyenne)의 비극 (The Tragedy of Sheyenne) 1. 푸른 언덕의 작은 집( A Little House on the Prairie) -들소들 노는 내 고향 그리워, 사슴 떼, 산양들이 노는, 용감한 사람 사는 나의 고향, 빛은 온 종일 비치인다. Oh, give me a home, Where the buffalo roam, Where the deer and the antelope play; Where seldom is heard A discouraging word And the skies are not cloudy all day.- * “여러분! 나는 제임스 와이트도브(James Whitedove)라는 외과 의사(外科 醫師)로 이 노래를 아주 좋아 하여 흥얼흥얼 자주 부른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歌詞)가 알려 주는 곳이 미국의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 덩치 큰 들소들이 한가로이 떼를 지어 다니며, 눈망울이 큰 사슴들이 여기저기 맑은 호수(湖水)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따슷한 햇볕이 비쳐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는 곳,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언덕 위에, 화살의 과녁처럼 둥근 나이테가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통나무로 지은 이층집과 하얀 백향목 나무로 목장의 울타리가 에덴 동산의 경계처럼 드리워 있는 곳, * 히글리(Higley)라는 시인이 그의 고향을 생각하며 쓴 시이기에 여러분은 캔사스주의 스미스(Smith County)카운티라고 말하겠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곳은 미국 농촌 어디를 가든지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답니다. 손 때가 덕지덕지 묻은 장총(長銃)을 옆구리에 비껴 찬 카우보이들이 검은 말을 타고 먼지를 휘 날리며 끝도 없이 수 많은 소 떼들을 몰고 이리저리 초록색의 목초를 찾아 다니는 대평원(大平原)의 어느 곳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유명한 백인 여류 소설가, ‘로라 잉갈스 와일더’(Laura Ingalls Wilder)가 본인의 가족들의 얘기를 소재로 쓴 장편 연재 소설, [푸른 초원의 작은 집]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수 많은 오색의 꽃들이 만발한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 10 살쯤 돼 보이는 작은 백인 소녀가 챙이 큰 모자를 뒤 편 목이 보이지 않게 깊이 쓰고, 유럽식의 긴 앞치마를 입고 멍하니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셨겠지요? 나도 거기, 푸른 초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평생 살아 봤으면 하는 욕망이 솟는 그 대평원의 어느 곳이지요. * 그러나 그 드라마를 보노라면 항상 따듯한 햇볓만이 비치는 평화로운 곳은 결코 아니더군요. 때로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 치고 궂은 비가 쏟아지는 음산한 대평원에 먹을 것이 없어 창자를 들어 내 놓고 얼어 죽은 야생 동물들의 모습이 애처럽기도 하더군요. 소름끼치도록 예리한 도끼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성난 인디안들과 장총을 든 음흉해 보이며 웃음이 없는 백인들이 피를 뿌리며 처절하게 싸우기도 하며 때로는 역설적으로 예쁜 백인 여성과 흉악해 보이는 인디안 남성의 맺지 못할 애틋한 사랑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 복수심에 불탄 백인들에 의해 예리한 칼로 무참히 살해되어 공중을 맴도는 독수리의 밥이 되는 인디안 남성의 죽음도 있었습니다. * 얘기가 길어졌지만 내 고향은 들소들과 사슴들이 한가로이 뛰어 놀며 푸른 초원의 집들이 여기 저기에 널려 있는 미국 남 다코타(South Dakota)주에 있는 이글 뷰트(Eagle Bute)라는 작은 도시입니다. 유명한 디 스메트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주도(州都) 피에르(Pierre)로부터 북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뷰트란 말은 인디안 말로 산(山)이란 뜻이기에 결국 ‘독수리 산’이 됩니다. 이글뷰트 서쪽에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불랙 힐스 국립공원(Black Hills National Park)으로부터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은 용맹스러운 수. 인디안(Souix Indian) 전사(戰士, Warrior)들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 오는가 하면 멀리 동쪽에 있는 대평원으로부터 말을 탄 카우보이들이 총을 쏘며 소 떼를 몰고 달려 오는 듯한 샤이엔 강의 수 인디안(Cheyenne River Sioux Indian)들만이 모여 사는 조그만 도시입니다. ‘아! 인디안 보호구역(保護區域)이로구먼!’ 여러분은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나는 여기, 이글 뷰트에서 태어 났으며 이글 뷰트 인디안 병원에서 외과 의사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여기, 이글뷰트, 고향에 묻히고 싶습니다. * 여러분! 그만 제가 큰 실례를 했군요. 나를 제대로 소개도 하지 않고 떠들어 댔으니까요. -나는 수. 인디안 남자로 금년(2000년) 봄에 46살이 되는 외과(外科) 전문 의사(專門醫師)로 여기 나의 고향, 이글뷰트에 있는 ‘인디안 병원’에서 벌써 13년간 나의 동족인 수. 인디안을 위해 진료를 하며 살아 왔답니다. 20병상을 갖고 있는 이 병원에는 99%가 인디안 환자들입니다마는 인디안 의사는 나 하나 뿐이며 4만명 인구의 수. 인디안을 통털어도 외과 전문의사는 나 하나 뿐이라고 합니다. 나는 수. 인디안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그렇다고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대평원에 테피(Tepee)라는 텐트 모양의 집을 짓고 수천 년 동안 들소, 산양, 그리고 사슴들과 더불어 살아온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들’이었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 나의 조상들이 살아온 ‘샤이엔 강(Cheyenne River)과 불랙 힐스(Black Hills)’는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산에 올라가서 동쪽 편을 내려다 보면 샤이엔 강이 한 눈에 보이는데 샤이엔 강은 마치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진주 목걸이로 만든 다리처럼 길게 동쪽으로 가물가물 흘러가다가, 멀리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서 흘러 나온 강물이 몬태나 산골과 북 다코타 주에서 물살이 빠르고 급한 미쥬리 강이 되어 이곳 남다코타 동편 대평원에서 샤이엔 강과 합류하게 되는데 그 물살은 배(倍)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형성된 웅대한 ‘오하에(Ohae)' 호수와 그 주위에 널려 있는 대평원의 초원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들소들과 사슴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으며 우리 수 인디안들은 지난 수천 년간 외부로부터의 침입없이 평와롭게 버팔로, 사슴 그리고 산양들과 더불어 살아왔답니다. * 반복하여 말하지만 서편에 있는 높고 검은 산, 불랙 힐스는 우리 수 .인디안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산이랍니다. 왜냐하면, 크고 작은 산 신령님들이 그곳에 살며 우리 수. 인디안들을 지켜주는 성산(聖山)인데 어느날부터인지 총칼을 든 백인들이 강도처럼 몰려 들어와 이곳에서 금과 은을 파내는 것은 물론 수 인디안의 영토에 있는 러쉬무어 산(Rushmore Mt)의 바위를 허락도 없이 깍아 ‘조지 워싱톤, 제퍼슨, 데오도르 루즈벨트, 그리고 아브라함 링컨’의 얼굴을 조각하여 ‘러쉬모어 국립공원’이라고 명명을 하였기에 분노한 우리 수. 인디안들은 백인들에 대항하여 커스터 산에 우리 수. 인디안의 영웅, 추장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狂馬)가 말을 타고 있는 씩씩한 모습을 조각하고 있답니다. 비록 돈이 딸려 앞으로 50년은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여러분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우리, 수 인디안족의 추장,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狂馬)는 미국정부의 백인 커스터 장군의 부대를 한 명도 안 남기고 모조리 전멸을 시킨 [수.인디안의 영웅]이기에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더 훌륭하고 자랑스럽답니다. * 그러나 나는 솔직히 정통 수. 인디안이기는 하지만 백인들이 지어 놓은 언덕 위의 집과 푸른 초원의 집을 좋아 한답니다. 아마도 백인들과 섞여 남 다코타 주 수. 훨스(Souix Falls)에서 의사공부(醫科大學)를 했기 때문에 백인들의 풍습과 문명이 내 몸에 조금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언덕위의 작은 집]이라는 이 노래를 좋아하여 자주 부르곤 한답니다. * 이제서야 나의 이름과 직업을 제대로 알려드리게 됐군요. 와이트도브(Whitedove), 즉 하얀 비들기라는 이름이 다소 촌 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수. 인디안들은 사람의 성(姓)을 험한 산이나 사나운 짐승, 새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답니다. [제임스 와이트도브(James Whitedove], 외과 전문 의사가 나의 이름이요 직업입니다. 수 인디안을 통털어 하나밖에 없는 외과 의사이지요. 그리고 영웅적인 전사였던 불랙이글의 손자가 된답니다. “ 주: 수 인디안들은 과거에는 이름만 있었기에 아버지 불랙이글, 아들 불랙이글로 구분이 되었음. 2. 나는 수. 인디안 -수. 인디안(Sioux Indian)의 역사와 나의 가문. -수. 인디안들이 존경하는 영웅적인 전사(英雄的 戰士), 불랙이글(후에 와이트도브로 개명함)의 손자이며 전체 수. 인디안을 통해 하나밖에 없는 외과 전문의사(外科專門醫師)인 나, 제임스 와이트도브(James Whitedove)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수. 인디안 특유의 정통 가정 교육을 할아버지로부터 받았기에 여러분들을 위해 수. 인디안은 어떻게, 언제부터 미국 대륙에서 살아 왔는지 그 역사(歷史), 지리(地理), 종교(宗敎) 그리고 수. 인디안과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끈끈한 관계를 갖고 공존해온 버팔로(들소)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설명할 수가 있다. 아울러 평화롭게 살고 있던 수. 인디안의 세계에 뛰어 들어 잔인하게 학살을 감행했던 백인과의 피비릿내 나는 투쟁의 역사를 실감나게 설명하려고 한다. * - 수. 인디안들은 다른 아메리칸 인디안들과는 달리 멀리 아시아에 있는 중국에서 흘러 들어온 민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 수. 인디안은 본래부터 여기 미국 대륙에서 창조되어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 왔다. 진시황(秦始皇)이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동남동녀 3000명을 동방으로 보냈다느니, 아놀드 토인비 역사 학자는 ‘수. 인디안은 중국에서 흘러 왔다’라고 하는 학설을 가지고 열을 올리는 모양인데 그것은 한 갖 그들의 추측일 뿐 오히려 우리 수. 인디안들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수. 인디안이 가장 존중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모시는 불랙힐스(Mt. Black Hills)는 광활한 대평원에 우뚝 솟은 높은 산들이기에 평시에도 산 봉우리에는 짙은 안개가 끼여 있으며 윙윙 거리는 강한 바람 소리는 와콘다 신의 목소리라고 수. 인디안들은 믿고 있다. 여기 불랙 힐스에 살고 있는 ‘와콘다 신’은 수. 인디안을 창조한 후 그 인간들을 샤이엔 강이 흐르는 대평원으로 내 보내 평화스럽게 살게 했다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와콘다 신은 수. 인디안들을 위해 옥수수와 채소를 대평원에서 자생하게 하여 배불리 먹게 했으며, 더 중요한 것은 대평원에 들소(Buffalo)들을 번식시켜 수. 인디안들에게 고기는 물론 가죽을 공급하여 수 인디안들은 그 가죽으로 의복과 테피라고 하는 천막 집을 만들어 추운 겨울을 나게 했다. 결국 버팔로(들소)는 수. 인디안들의 의.식.주(衣食住)가 되었기에 수. 인디안과 버팔로는 순치(脣齒)의 관계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우리 수. 인디안은 와콘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수. 인디안들을 위한 용맹과 희생을 강조하였기에, 수 인디안과 와콘다 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죽는 것을 오히려 영광스러운 순교라고 생각을 하였다. 수. 인디안이 다른 아메리칸 인디안들에 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만큼 용맹스럽고 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용맹스러운 전사가 되어 수. 인디안들을 위해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고 창과 활을 가지고 들소들을 사냥하든지 다른 인디안들과 싸워 종족을 보존하다 죽으면 일단 와콘다 신으로부터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는 약속을 받는다고 믿는다. 수. 인디안들은 죽은 후에 그 시체를 불랙힐스에 있는 돌 제단(Arta)에 올려 놓으면 와콘다 신이 보낸 선배 전사의 혼령이 찾아와 그 시체를 거두어 불랙힐스에 있는 영원한 세계로 데리고 간다고 믿는다. 반면 수. 인디안을 위해 아무런 공로가 없는 평범한 수. 인디안들의 시체는 제단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가 짐승들과 새들의 밥이 되어 없어진다고 한다. * 그뿐인가, 우리 수. 인디안들은 종족 보존과 종족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와콘다 신을 믿는 우리 수. 인디안들은 다른 종족과 결혼은 물론 성 관계를 하지 않는다. 설령 강제로 강간을 당했다고 해도 수. 인디안의 순수성을 잃었기에 와콘다 신에 의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짐승의 밥이 된다. 수. 인디안의 종족 보존과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가차없이 버릴 뿐만 아니라, 반대로 다른 종족을 이유없이 해치지 않는 의리가 있는 종족임을 강조하고 싶다. * 이토록 평화스럽게 남 다코타 주와 와이오밍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수. 인디안들의 세계에 잘 돌아 가고 있던 역사의 수레바퀴가 삐걱거리게 된 것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이 성경책을 들고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를 찾아 뉴.잉글랜드로 이주해 온 백인들은 순수했던 그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점차 돈에 눈이 어두워지자 공갈과 학살로 그들을 도와 주었던 인디안들을 서쪽으로 몰아 내더니 드디어 그 여파가 대평원을 지나 평화로운 우리 수. 인디안의 영토에서 충돌하게 되었다. * 이것이 1830년 경이었으며 용맹스러운 수 인디안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수. 인디안들과 ‘라라미 평화협정(1851년)’을 맺었다. 다급해진 ‘수 인디안들은 백인들이 서부로 가는 길을 허용해 주는 대신, 불랙힐스와 샤이엔은 수 인디안의 성역임으로 백인들은 결코 침범하지 않는다’ 라는 협정을 받아 내었다. 그러나 욕심 많고 음흉한 백인들과 미국 정부는 번번히 약속을 어기면서 수. 인디안과 다른 아메리칸 인디안들을 짐승을 죽이듯이 학살했으며 가까스레 살아 남은 인디안들을 인디안 보호 구역으로 보내 그곳에서 주는 밥이나 먹으며 살도록 제한시키고 있었다. * 1862년, 리틀 크로(작은 가마귀 little craw))가 1865-67년에는 레드 크라우드(붉운 구름,Red Cloud)가, 1866년에는 하이 백본(high backbone, 높은 등뼈)과 같은 추장들이 목숨을 걸고 백인들을 상대로 봉기를 이르켰으나 안타깝게도 참패를 당고 말았다. 불랙 힐스에서 금광(金鑛)이 발견되자 돈에 눈독이 들은 음융한 백인들은 라라미 협정을 위반하고 마침내 수. 인디안의 성산(聖山)에 침입을 하자 분노한 수. 인디안들은 1876년, 추장 크레이지 홀스(狂馬)의 지휘로 ‘리틀 빅 혼’ 전투에서 백인 장군 커스터(Custer) 부대를 한 명도 안 남기고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 전투로 인해 백인과 미국 정부를 분노케 하여 오히려 대규모의 군대를 파견한 미국 군대에 의해 수 인디안들은 그해 10월 31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미국 정부에 항복을 하게 되었으며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마치 길 잃은 동물들 처럼 들어가게 되었다.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 크레이지 홀스, 골(쓸개,Gall)등은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들어 가기를 거부하였기에 하나 둘 미국 정부에 의해 처벌되기 시작했다. 1890년 운디드 니(Wounded Knee)에서 수. 인디안족은 대 학살을 당하면서 100년에 걸친 피눈물나는 저항은 마침내 끝나고 말았다. * 당시 나의 증조 할아버지는 불랙 이글(Black Eagle)이라는 이름의 젊은 전사였으며 몰살 당한 인디안들의 세계를 이끌고 나아갈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할아버지 불랙 이글도 10대의 젊은 전사로서 미래의 인디안을 이끌고 나갈 전사였다. 그러나 증조 할아버지는 미군에 의해 체포되기 전에 수 많은 인디안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칼을 들은 후 “우리 수. 인디안은 영원하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목을 스스로 찔러 자결하였다. 그의 아들인 나의 ‘할아버지 불랙 이글’은 죽은 그의 아버지(나로 볼 때는 증조 할아버지)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무모하게 미국정부와 싸워본들 무엇이 남을까? 결국 수. 인디안은 씨도 남지 않고 다 죽을 것이 뻔한데.... 결국, 1900년 초, 할아버지 불랙 이글은 수. 인디안이 살아 나갈 길은 전쟁이 아니라 교육이라고 생각을 했다. 인디안들도 공부를 하여 경제, 정치, 군사적인 성장을 해야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이름을 불랙 이글에서 와이트 도브로 바꾼 후 다른 지도자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우리 수 인디안들이 살 길은 교육이며 국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전사들은 “비겁한 놈, 배신자. 그렇게 겁나면 차라리 죽어라. 자살로 깨끗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죽은 너의 아버지 불랙이글의 명예를 더럽히는 놈”이라고 비판을 하였으며, 인디안 사회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자 이를 갈며 스스로 수. 인디안이 별로 없는 아이다호 주로 이주하여 은신하였다고 한다. * 수. 인디안의 씨를 말리는 방법으로 백인들은 버팔로(들소)를 먼저 죽여버렸다. 그리고 옥수수와 채소 밭을 없애 버리고 그곳에 카우보이들을 보내 목장을 만들어 소를 길렀으며, 옥수수밭을 밀밭으로, 인디안의 보금자리인 테피를 없앤 자리에 백인들의 보금자리,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건축했다. 그리고 온갖 꽃들이 활짝 핀 초원에 백인들이 모여드는 교회당과 푸른 초원의 하얀 집을 만들었기에 인디안들은 이제 더 이상 설 곳이 없어 지고 말았으며 보호구역에서 목숨이나 유지하며 짐승처럼 살게됐다. 그러기에 나는 언덕 위의 하얀집을 볼 때마다 피를 흘리며 죽은 인디안들의 테피를, 얼룩얼룩한 고기소나 젖소를 볼때마다 백인들이 무참하게 쏘아댄 장총에 의해 죽은 버팔로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눈을 감는다. ‘백인? 살인자!’ 우리 인디안들은 이렇게 부른다. 인디안 최고의 지성이라는 나, 와이트도브도 속 마음으로는 백인을 증오하며 살아 왔음을 솔직히 고백을 한다. * 나의 가문: 불랙 이글이라고 불렸으며 후에 와이트도브로 개명한 나의 할아버지도 아이다호 주 포카텔로에서 쓸쓸히 죽어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아버지는 일찍 죽은 것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만큼 나의 할아버지는 영웅적인 수. 인디안이었으나 나의 아버지는 인디안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볼 품 없는 남자로 멀리 몬타나주 가디에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술이나 마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알코홀 중독자에 불과했다. *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한 가지가 우리 수. 인디안과 나의 가문을 잘 이해 시킬 것 같아 소개하고자 한다. - 할아버지는 나를 용맹스러운 정통 수. 인디안으로 교육 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수. 인디안은 용맹해야 하느니라. 죽음도 불사하고 정의를 위해 그리고 수.인디안을 위해 너는 네 목숨을 버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손자야?” “예. 할아버지!” 나는 늘 “예”라는 대답만 했지 “아니오”라는 대답은 한 일이 없었다. * 내 나이 15세---, 9학년(한국에서는 중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아이다호(Idaho)의 7월은 몹시 더웠으며 밤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할머니(나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살았다)가 나에게 오늘 저녁은 특별히 할아버지와 같이 겸상을 해 먹으라고 하며 아이다호산 감자. 몬태나산 쇠고기, 와이오밍의 버팔로 고기 그리고 찐 옥수수를 저녁으로 준비해 주었다. 웬 일인지 오늘 저녁따라 할아버지는 독수리 깃털로된 전사 옷을 입고 손자인 나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저녁을 마치고 나니 7시, 아직도 저녁 해가 서편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손자야? 오늘 저녁 나와 같이 갈 곳이 있느니라. 따라 오거라.” 할아버지의 얼굴은 몹시도 굳어 있었으며 오늘 따라 집에 장식으로 놓아 둔 긴 창과 활을 자동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밤에 추울테니 긴 샤쓰와 쟈켓을 갖고 나오거라”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쟈켓을 들고 할아버지의 오랜된 고물 자동차. 쉐보레, 앞자리에 가 앉았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자동차를 몰고 포카텔로 동편 쪽으로 운전해 가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점점 산 세가 험해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빽빽 했으며 인적은 드물었다. “수, 인디안은 용맹하니라? 알겠느냐?” “예.” 나는 예라고 대답을 했다. “수,인디안은 겁이 없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손자야? 오늘 너는 나와 같이 포카텔로 산 중으로 가 하루밤을 지 새거라.” “예? 밤을 새운다고요? 할아버지와 같이?” “아니, 너 혼자서 새우느니라.” “저, 혼자요?” “그렇다.” “아니, 늑대와 이리가 나오는 산 중에서, 저 혼자요?” “그러느니라. 너는 늑대와 이리를 무서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예? 할아버지!”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자동차는 포카텔로 높은 산 중으로 들어 가더니 인적도 없는 산 중턱 나무 숲 속에서 정차했다. 더 올라갈 길이 없었다. 눈에 뵈는 것은 큰 나무와 그 밑에 돌로된 사각형의 제단이 있었다. “할아버지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가 옛날 수 인디안들이 죽은 시체를 갖다 올려 놓았던 제단(祭壇)이니라. 시체를 여기다 놓으면 독수리나, 이리 그리고 늑대가 와서 먹었느니라.” “예? 할아버지!” 나는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가 미쳤나? 나는 무서웠다. 죽은 사람을 갖다 놓는다는 제단에 나를 데리고 오다니.... 마침내 저녁 햇살이 서편으로 지고 나니 캄캄해 지면서 동편에서 둥근 보름달이 떠 올라 훤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긴 창을 주면서 “이 창을 가지고 밤을 새우거라. 혹시 이리가 오거든 이 창으로 찔러라. 아니 늑대가 와도 마찬가지다. 밤새 자지 말고 너 스스로를 보호 하거라. 와콘다 신이 너를 보호해 주시리라. 알겠느냐?” “..........” 나는 벌벌 떨며 대답을 하지 못 했다. “못난 놈! 그래서야 어찌 네가 용맹스러운 수.인디안이 되겠느냐?” “..........” “제임스? 못난 놈이 되겠느냐? 아니면 용맹스러운 수.인디안이 되겠느냐?” “용맹스러운 수.인디안이 되겠습니다.” “그래야지...불랙이글의 손자가 돼야지!” 할아버지는 나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용맹한 수.인디안, 불랙이글이 되거라!‘라고 말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남겨 두고는 자동차를 몰고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러나 그는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물러간 후 캄캄한 밤이 되었다. 조용했다. 달빛이 환했으며 별들이 총총했다. 바람 소리가 거칠었으며 가끔 승냥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리들이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아니 죽었던 사람들의 혼이 울고 있는 듯했다. ‘으흐흐-으흐흐---’ 한과 서러움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다 죽은 수 .인디안들이 울고 있는 듯했다. 달은 중천에 떠 있어 모든 것이 환했기에 오히려 긴장감이 돋아 점점 더 무서워 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긴장감이 축척되다보니 눈 앞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독수리 깃털을 머리에 꽂은 인디안 청년이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고 달려 오고 있는 듯했다. 순간 내 눈 앞에 보이는 동물이 있었다. 카요티 같아 보였다. 나는 살기 위해 창을 꼬나 쥐고 카요티를 향해 소리를 쳤다. “야, 이놈! 물러가라!” 그러나 카요티는 엉기정 엉기정 내게로 가까이 닥아 왔다. 잇발이 사나워 보였다. 조금도 눈을 팔 수가 없었다. 언제고 이놈이 달려 들 것 같아서 였다. “야, 이놈!” 나는 창을 들어 찌르려고 했다. 다행이 카요티는 겁을 먹고 도망을 가고 말았다. “휴!” 나는 한숨을 쉬고 제단에 걸터 앉았다. 잠시 눈을 부치는 듯 했는데 이번에는 “와우-와우-”하는 소리가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늑대가 사람 냄새를 맡았는지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였다. “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카요티를 물리친 경험이 그래도 나를 위로했다. “와우- 와우-” 한 놈이 나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정체를 들어 냈다. 검은 놈의 코가 삐죽하며 입이 길어 보였다. 나는 창을 들고 늑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늑대도 산 사람인 것을 알고는 섯뿔리 달려 들지는 않았다. 나는 돌 제단을 방패 삼아 뒷편에서 늑대의 공격을 막으려고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나무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나를 공격해 오는 늑대로 생각이 들었다. “와우- 와우-” 늑대의 소리는 점점 더 근처로 옮겨 오고 있었으며 불가분 놈들은 둘이 합하여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앞에 있는 돌 제단이 큰 보호막이 되었다. 어디 불(火)이라도 없을까? 늑대는 불을 무서워 한다는데...그러나 불도 없었으며 다른 무기도 없었다. 나는 가까스레 주먹만한 돌들을 몇 개 더 돌단에 준비해 두었다. 만일 창을 잃거나 불리한 경우에 돌을 던지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먼동이 틀려면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은 듯 했다. 해가 뜨면 동물들은 숲 속으로 사라지겠고 대신 사람들이 올라오겠지만 깊은 밤, 달이 훤하게 밝아 오히려 동물의 표적이 슆게 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늑대 한 놈이 내 눈에서 뵈는 근거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를 바라다 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겁을 먹으면 안 된다. 이놈들이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명령을 하면서 늑대를 주시했다. 조금있으려니 또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와! 두 마리....” 나는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으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꼬집기도 했다. 한 마리가 내 근처에까지 닥아왔으며 마치 나를 빤히 보는 듯하였다. “야. 이놈, 꺼져!” 나는 늑대를 향해 긴 창을 꼰아 들고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놈이 분명 돌 제단을 향해 뛰어 오르리라. 그리고 나를 공격하리라.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가까이 있던 늑대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높이 뛰어 오르며 공격을 감행했다. 나는 창을 할 수있는 한 늑대 가까이에 찔렀다. 뛰어 오른 늑대가 나를 온통 가리운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돌계단 뒤로 나 뒹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나보다. 아니 늑대에게 물렸는가보다.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떴다. 멀리 동편에서 먼동이 서서히 트고 있었으며 주위가 밝아 오고 있었다. 나는 제단을 의지하고 일어나 주위를 살펴 보았다. 쥐죽은 듯이 조용했으며 달도 이젠 태양빛에 밀려 점차 희미해 보였으며 바람 소리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분명 나는 늑대의 공격을 받았는데 전혀 다친 데도 없이 살아 있다니.... .두 마리나 되는 늑대의 공격을 받았는데... 다시 주위를 살펴 보니, 아뿔싸, 늑대 한 마리가 벌렁 쓸어져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창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고, 웬 일일까? 화살이었다. 독수리 깃털로 만든 수.인디안의 화살이 몸통을 꿰뚤고 있었다. “아니? 수 인디안의 독수리 깃털의 화살에 죽다니. 화살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숲을 둘러 보았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다른 동물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돌 제단을 방패 삼아 창을 들고 또 다시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늑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해가 오르면 분명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했는데, 점차 동녘에 붉은 해가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수.인디안의 용맹을 터득하기 위해 산 속에서 혼자 버티는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었다. 그 때였다. 숲 뒤에서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나타났다. “손자야! 밤을 잘 새웠느냐?” “예. 할아버지.” 나는 천군만마의 군사를 만난 듯이 기뻣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할아버지의 존재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었다. 할아버지가 이토록 나의 버팀목이 되다니.... “장하다! 손자야, 너는 담력 테스트에서 훌륭히 합격을 했느니라. 장하다, 너는 전사가 될 수 있어.”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에게 달려 들어 그의 넓은 품에 안기었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등 뒤에 있는 활과 화살을 보았다. 분명, 독수리 깃털로 된 그 화살이었다. 그렇다면 어젯밤 늑대를 죽인 그 화살은 할아버지가 쏜 그 화살이란 말인가? ‘아- 아- 할아버지가 밤새 내 뒤에서 나를 보호해 주셨구나. 나 몰래.....’ 산 아래로 내려가는 척한 할아버지는 밤새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같이 밤을 새우면서. 결국 할아버지는 손자의 용맹과 담력을 기르기 위해 밤을 새워 위험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나를 보호 해 준 분은 와콘다 신이 아니었어....할아버지였어.....’ 나는 그 날 이후 지금까지 할아버지를 전폭적으로(100%) 믿으며 존경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을 나는 100% 순종하며 살아왔다.’- * 1850년 이후, 수 많은 백인 선교사들이 우리가 사는 수. 인디안 영토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우리 인디안들은 어느 누구도 기독교 신자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많은 백인 선교사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잔혹한 수법으로 죽여버리곤 했다. 천주교나 기독교란 우리 인디안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백인들이 신봉하는 종교이기에 우리 인디안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침략자요 강도들이기 때문에 이는 이로 갚듯이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백인들이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우리, 인디안들의 세계를 강탈해 간 침략자요 강도이기에 전능한 와콘다 신에 의해 저주를 받아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들이다. 그러기에 백인 선교사를 죽이는 것은 아주 정당하다” * -백인들의 침략을 말하다 보면 수. 인디안으로서 꼭 한마디 집고넘어 가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은 샤이엔이란 말의 뜻이다. 샤이엔-Cheyenne-Sheyenne이란 두가지 다른 단어는 발음은 같으나 완전히 다른 뜻을 갖고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 샤이엔(Sheyenne)이란 말의 본 뜻은 ‘아름다운 처녀(處女)’란 말인데 오늘날 우리 수. 인디안들은 더 이상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백인들은 와이오밍 주의 주도인 샤이엔(Cheyenne)시로 알고 있다. 본래 수. 인디안이 사용하는 샤이엔이란 영어로 Sheyenne이라고 쓰는데, 수. 인디안의 축제인, '선 댄스(Sun Dance)'에서 선출된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처녀에게 주어진 이름으로 최고의 미인, 사랑하고 싶은 인디안 여인이란 아름다운 뜻이다. 그런데 백인들이 인디안 지역으로 침범하면서 그들은 철도를 놓기 시작했다. 철도 노동자란 중국, 아이리쉬 등,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로 술꾼, 깽단 그리고 마약 중독자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을 샤이엔(Cheyenne)이라고 부르더니 마침내 와이오밍 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같은 발음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샤이엔을 우리 인디안들은 잘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까지도 혼탁하게 만든 음흉한 백인들을 우리 인디안들은 증오하고 있다. 그러나 나, 와이트도브는 수. 인디안이 사랑했던 ‘샤이엔(Sheyenne)’이란 말을 내 마음에 꼭 간직하고 끝까지 아름답게 지키려고 함은 영웅적인 전사 불랙 이글의 손자로 인디안으로서의 자부심(Pride)이 크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이젠 백인이든 인디안이든 샤이엔이란 와이오밍의 주도(州都)요, 수 인디안들의 삶터요, 또 한 가지는 나에게 예기치 못 할 운명이 기다리는 이름이 되었다. 샤이엔---샤이엔---샤이엔-----아름다운 여인--------- * 나에게 닥쳐올 운명의 여인이요, 나의 모든 것이 될 이름이기에 마음껏 여러번 반복해서 불러본다. 아-샤이엔(Sheyenne)!!!!!!. 아- 나의 모든 것, 샤이엔(Sheyenne)!!!!! 용맹스럽던 인디안 전사 불랙이글(와이트도브)의 손자요, 인디안 전체에 유일한 외과 의사인 제임스 와이트도브의 마음 속에서 작은 샘물처럼 흘러 나오는 사랑과 슬픔의 결정체(結晶體)가 또한 샤이엔이란 말이다. 3. 새로운 침략자, 한국 사람들 도저히 믿지 못했던 사건이 이곳 인디안 보호 구역에서 발생하였다. 비록 수. 인디안들은 백인들이 세운 미국정부에 의해 강제로 인디안 보호 구역으로 쫒겨 들어와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식량과 생활비를 받아 일도 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며 사는 미국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디안들은 흑인과 히스페닉 보다는 우월하다는 인종적인 자부심을 갖고 있다. ‘히스페닉과 흑인들? 너희들은 2등 국민이야! 너희들은 우리 인디안의 땅에서 우리 덕분에 사는 거여!’ * -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칼리포니아에서 온 평화 봉사단(平和 奉仕團)이 수. 인디안 센터에서 컴퓨터, 봉제등을 가르치며 인디안들을 위해 노동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미국 이민 한국인들이었다. ‘한국 사람들이라니? 3등 국민도 안 되는 주제에 건방지게 우리 인디안들을 가르치고 봉사를 한담, 주제 넘게...’ 나는 울컥 목구멍 깊숙이에서 불같은 화가 울컥울컥 솟았다. 백인들도 여기 인디안 구역에 와서 노동 봉사와 기독교 선교를 포기하고 돌아 가는 판인데 감이 ‘3등 국민인 한국 사람’들이 은근 슬쩍 우리 구역에 들어 와서 근로봉사를 한답시고 뒷구석에서는 우리 인디안들을 피 말려 죽인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다니.... ‘말도 안 되지! 한국? 3등 국가밖에 안되는 주제에, 우리 인디안들을 가르친다고? 와! 말도 안 되지...’ 나는 평소에 극동 어디에 위치하고 있다는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 사람을 싫어했다. 아니 거지 같은 나라라고 깔보며 살아 왔었는데, 우리를 도와주겠다니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 -생각해 보면, 나는 수. 훨스에서 다코타 대학과 의과 대학을 다니면서 백인들 학생, 그리고 선생들로부터 터놓고 인종 차별을 받은 적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어이! 와이트도브? 흰 비들기! 인디안들은 놀고 먹어도 되는데 왜 어려운 의사 공부를 하나? 힘든 공부를?” “인디안도 의사가 필요하니까...” “인디안들은 의사보다 무당이 더 필요하겠지?” “뭐라고? 네가 인디안을 깔보는 거냐?” “어이! 흰 비들기? 조류(鳥類) 때문에 생기는 병이 무엇인지 아나?” “뭐라고?네가 이젠 나를 깔보는거냐?” “아냐! 조류 독감(毒感)에 걸릴까봐서 하는 말이야....” “와! 네가, 나를 희롱하다니.” 나는 백인 학생과 교수가 농담삼아 던지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하지 않았음은 내 마음 속에 그간 겪었던 분노를 차곡차곡 마음속의 창고속에 쌓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백인들이 신봉하는 기독교와 천주교도들이 북미와 중미에서 저지른 악마와 같았던 인디안 학살을 나는 언젠가는 유감없이 하나하나 갚아 주리라고 벼르고 있었다. 기독교와 천주교가 우리 인디안 타운에서는 발을 붙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인디안들과 와콘다 신이 분통 터지도록 노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아왔다. * 잠시 백인들의 인디안 침략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인디안들이 얼마나 백인들을 미워 하는지를 상상 하리라고 생각한다. -1492년 콜럼브스는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마리엔 왕국)들은 신기한 배와 이상한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줄 알고 전원을 초대하여 성대한 환영 만찬을 베풀어 주었으며 콜럼브스가 타고 온 배 중 한 척이 폭풍우에 파선되었을 때 온 국민이 나서서 구조해 주고 배 수리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며칠 후 콜럼브스의 일행은 배은망덕하게도 원주민 촌을 포위하여 거의 전 주민들을 불태워 죽이거나 칼로 학살한 후 그 왕국을 점령해 버렸다. 그 후 백인들의 만행과 학살로 350년 동안 2천 5백만 명이 넘는 중미의 인디안들이 끔찍하게 죽었으며 땅과 모든 것을 백인들은 차지해 버렸다. 북미에서도 백인들의 만행은 마찬가지, 아니 더 심했다. 1600년초 종교의 자유를 찾아 뉴 잉글랜드로 이주해온 청교도들을 인디안 원주민들은 성심껏 도와 주었으며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더 많은 영토와 부를 축적하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찬사를 했던 원주민(인디안)들을 마귀와 사탄이라고 칭하며 총 칼, 그리고 천연두 균을 고의로 퍼뜨려서 잔인하게 학살을 했다. 결국 350년 동안 1억이 넘는 원주민들의 목을 잘라 죽이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여 지금 북미에는 250만 명의 아메리칸 인디안들이 남았을 뿐이다. 300여만 명이 넘었던 우리 수. 인디안들도 무참히 죽어 현재 4만 명만이 살아 남았을 뿐이다. * 와콘다 신을 신봉하는 수. 인디안, 제임스 와이트도브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여호와 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주기 위해 그 곳에서 이미 살고 있던 아무 죄 없는 원주민들을 몰살 시킨것과 청교도들의 후손들이 우리 인디안들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른가?’ 둘째, ‘아메리칸 인디안들은 사탄의 아들이므로 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정당하다고 설교했던 청교도 목사들은 진정 양심이 있는 사람인가?’ 셋째, ‘이렇게 수 많은 인디안을 죽인 기독교는 과연 사랑의 종교인가? 믿을 만한 종교인가?’ 우리 수 인디안들은 물론 나의 대답은 “아니오”일 뿐 그리고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 350년 간에 걸친 백인 침략자들로 인해 우리 인디안들은 거지 같은 노예로 전락하였다가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국력을 배양하여 독립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지! 하잘 것 없는 한국사람들이 또 다시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우리 인디안의 세계로 들어오다니..... ‘또 다른 침략자! 새로운 침략자! 백인을 대신한 꼭두각시 같은 놈들! 백인 놈들에게서 겨우 벗어났는가 했는데 감히 동양 놈들이 기독교를 앞세우고 들어 오다니.....’ 나는 불끈 손을 쥐고 말았다. * 백인을 대신해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우리 인디안의 세계로 들어 온 황색 인종, 한국 사람, 평화 봉사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준 사람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글 뷰트 인디안 병원]의 간호사로 수술하는 도중에 내게 알려 주었다. “닥터. 와이트도브? 우리 인디안 보호 구역에 평화 봉사단이 들어 왔는데 백인이 아니고 칼리포니아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뭐라고요? 한국 사람? 웃기는군. 정말 이자들이 우리 수. 인디안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군....” 나는 이곳 다코타에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한국 사람들이 마치 백인들이 했던 그 수법대로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하는 것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한국이란 나라는 6.25 전쟁으로 다 망해 가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국민 일인당 GNP가 80달라도 안 돼 미국이 보낸 원조 물자로 겨우 목숨을 유지했던 거지같은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요즘 보면 자동차, 전자 제품과 컴퓨터 기술을 미국에서 훔쳐다가 모방하여 만들어 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다코다와 와이오밍의 큰 도시에 가면 삼성. 현대. 기아등 한국산 제품을 보게 되는데 제법 쓸만하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수술 중에 40 살이 조금 넘은 간호사가 덧붙여 말해 주었다. “닥터? 한국인 봉사단이 가르치는 컴퓨터 교실에 많은 인디안 청소년들이 등록을 했으며, 봉제, 그래픽 디자인 교실에는 많은 여성들이 모였다고 하던군요. 그리고 특이한 것은 우리 인디안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약과 도박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계몽을 한다고 하던군요.” “그래요? 한국 사람들이 뭘 알기는 아는 모양이군.”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으나 아직도 마음은 불편했다. “닥터? 대원들이, 버클리, 스탠포드, UCLA 그리고 USC 대학 출신이라고 하던 군요. 그리고 단장은 뜻밖에도 약사랍니다. 이름이? 아, 로버트 서(Robert Suh)라고 하는데, 약사에다 컴퓨터 박사랍니다.” “뭐라고, 약사? 그리고 컴퓨터 박사? 약사라면 병원에서 약봉지나 쌀 것이지, 여기 와서 애꿎은 젊은 애들을 꼬신담!” 나는 기분이 상해 혀를 차고 말았다. “아니? 닥터.와이트도브? 그들이 뭐 잘 못 한 게 있는 거요? 자비로 여기까지 와서 무료 봉사를 하는데...” “무료? 어쨌거나 나는 한국 사람을 싫어하니 그만 합시다. 간호사님?” “...........” 간호사는 어이 없다는 듯이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씰쭉거렸다. 핀잔을 받아가면서 간호사가 계속해서 들려준 정보에 의하면, 봉사단 단원은 로버트 서 외에 5명이 더 있는데 칼리포니아에서 자비로 여기 남 다코타 주의 주도 피에르(Pierre)에 와서 머무르면서 갖고 온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구를 일일이 인디안 보호 구역으로 운반하여 가르치며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심리학과 사회사업을 전공한 여성도 있는데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들 대원들은 반드시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신자라고 생각되어 수. 인디안 대추장, 오레겔은 처음에는 추방을 선언했다가 간곡한 그들의 간청을 받아 들여 조건부 허락을 해 주었다. -봉사 대원들끼리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보는 것은 미국 헌법이 보장해 주는 종교의 자유이기에 눈을 감아 주겠으나, 봉사를 핑계로 수. 인디안들에게 기독교 전도를 한다면 가차없이 추방이 될 것이며 더 조심 할 것은 수. 인디안 전사들의 예상 못 할 테러 행위를 비록 대추장이라고 해도 책임 질 수 없다는 각서를 썻다고 했다.- * 예상 못 할 전사(戰士,Warrior)들의 테러 행위란? -수. 인디안의 지난 수 천년간의 역사를 보면 ‘전사’들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전사들 중에서 추장이 선출 됐으며 전사들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전사란 한마디로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하여 머리는 바보같아도 힘만 쓰는 무사들인데 과거에는 인디안을 지켜주었으며 들소들을 사냥하여 고기, 의복, 테피를 만들었다. 그러나 백인들에게 정복당한 이후, 보호 구역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깡패에 불과 했다. 신체만 건강했지 공부를 하지 않아 문명의 이기를 깨우치지 못한채 음식이나 축내는 ‘식충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부족장이나 추장은 전사들에의해 전사들중에서 선출되었기에 아직도 전사들이 여기저기에 눈을 부릅뜨고 도사리고 있는데, 가끔 법을 어기고 테러를 자행하여 돈을 뜯어 내곤했다. 대추장, 오레겔(Oregel)은 혹시라도 이들 무식한 전사들에 의해 봉사단원들이 폭행을 당하거나 칼에 맞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전사들을 제외한 인디안 남자들과 여성들은 컴퓨터. 봉제 그리고 교양 강좌에 등록을 하였으나 공부하기 싫은 전사들은 오히려 봉사단원을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새로운 침략자라고 소문을 내며 악담을 하기 시작했다. 칼 맛을 보여 주겠다고 협박의 말도 하였다. * 역설적으로 이들 봉사단을 통해 우리 인디안들이 배우게 된 것중에 하나는 인디안이 가진 종교관과 다른 종교의 차이를 어렴푸시 알게 된 것이다. ‘수. 인디안의 와콘다 신은 수. 인디안을 위해 공로를 세운 전사들을 특별히 선택하여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로 데리고 간다’ 라고 했는데, 아무런 공로도 못 세운 일반 인디안들은 죽은 후에 동물과 새들의 밥이 될 뿐인데, 기독교의 내세관(來世觀)은 ‘공로가 없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니 내 귀가 번쩍 뜨였다. ‘반드시 칼을 가지고 싸워야만 인디안을 위한 영웅적인 행동인가?’ ‘아니다. 공부 많이 하여 의사가 돼 남을 도와 주는 것도 영웅적인 행동이다.’ 나의 할아버지가 주장했듯이 공부를 하여 의사, 변호사, 박사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인디안들은 도태되지 않는다. 무위도식하는 근육질의 깡패, 전사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나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못 하고 살아 온 것은 ‘정통 인디안’의 체면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 새로운 침입자(侵入者)---, 로버트 서(Robert Suh)를 만나게 된 것은 2000년 3월 말, 아직도 살에 외듯이 추운 밤이었다. 남 다코타 주의 춘 삼월은(春 3월) 말이 봄의 시작이지 한겨울처럼 모든 것이 얼어 붙어 있었다. 겨울 내내 내린 눈으로 인해 샤이엔 강도 불랙 힐스도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들소들과 산양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인해 다코타 주는 영하 2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의 이글뷰트 인디안 병원도 온통 흰색이기는 마찬가지였다. 20 병상이 있는 이 병원에는 주로 인디안 환자들만 입원하는데, 반 이상의 병상이 비어 있으며 외래 환자도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들어닥치는 응급 환자를 위해 당직 의사들은 언제나 긴장 가운데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건물 맨 끝에 있는 숙직 의사의 방에도 찬 바람이 불어치고 있었으나 성능 좋은 히터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로 인해 방 안은 제법 훈훈했기에 런닝 셔츠만 입고 있었다. 10 명도 안 되는 입원 환자도 안정 상태이고 응급 환자도 없다보니 숙직실에 틀어박혀 책을 보기도 하며 때로는 TV를 보기도 했다. 자정이 넘고 보니 피곤한 느낌이 엄습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마자 나는 코를 드르렁 드르렁 하마처럼 크게 골며 잠을 자고 있었나보다. 피곤한 하루가 평안한 휴식으로 들어 간다고나 할까, 한참 곤하게 자고 있는데 당직 간호사로부터 급히 응급실로 달려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벌떡 일어 나 전화를 받았다. 10 분 전에 응급차에 실려 온 환자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 외과 의사가 직접 진찰을 해 달라고 하는 응급실 간호사의 부탁이었다. 급히 옷을 주섬주섬 입고 응급실로 달려가 보니 보기에도 끔찍하도록 여기저기에 흉기로 찔려 정신을 잃은 50 살이 돼 보이는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X-ray 검사 결과 불행하게도 왼쪽 가슴의 갈비뼈 두 개가 골절 되었으며 더 심각한 문제는 비장(脾臟,Spleen)이 파열되어 복강에 피가 많이 고였으며 혈압이 너무나 낮아졌기에 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 보였다. 결국 나는 서둘러 수술을 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간호사? 이 환자, 인디안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환자가 인디안이 아닌 것 처럼 보였기에 무심코 물어 보았다. “그렇습니다. 닥터. 와이트도브, 한국인이요. 한국 사람.”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내게 대답을 하였다. “한국인? 그렇다면, 인디안이 아닌데. 피에르(Pierre)로 후송합시다. 수 인디안이 아닌데, 내가 수술을 할 이유가 없어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뭐라구요? 닥터!, 이 사람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를 도우러 온 봉사 단원이란 말이요.” “어쨌든 나는 한국 사람이라면 싫소. 평화스럽게 잘 살고 있는 수. 인디안의 세계로 침투해 들어온 강도 같은 침략자란 말이요. 침입자!” 나는 뜻밖에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닥터? 침입자라니요? 당신? 의사가 맞소.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 줘야지, 피에르로 후송을 하라니? 눈도 많이와 도저히 갈 수도 없는데....” 평소에는 얌전하게 순종하던 간호사가 오늘따라 이렇게 큰 소리로 강하게 내게 항의를 하니 나는 기세가 떨어지고 말았다. “할 수 없군.” 나는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았으나 간호사의 항의가 예상보다 강하여 무안함을 느껴 그 침입자, 한국 사람을 수술하기로 했다. 수술실로 급히 옮겨 마취를 한 후, 복강을 절개하니 예상대로 선지피가 가득히 고여 있었으며 아직도 출혈이 되고 있었다. 비장을 떼낸 후, 4 파인트(병)의 피를 수혈하였다. 마침내 혈압이 정상이 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수술도 끝나, 일단 회복실로 옮겨지니 새벽 3시였다. “빌어 먹을! 봉사단원? 침입자 주제에....” 나는 투덜대며 수술방을 나와 당직실로 엉기정 엉기정 걸어가 침대에 쓸어져 누워 깊은 잠에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웬 일일까?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를 않았다. 수술받은 환자가 봉사단원이요, 특히 약사라고 하니 어찌보면 의사와도 마음이 통할 것 같았다. 고된 공부를 한 약사(藥師)를 무식한 인디안 전사들이 인정 사정 없이 폭행을 했으니 의사인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따슷하고 살기 좋다는 칼리포니아에서 자비를 들여 모든 것이 얼어붙은 다코타로 온 봉사단원을 이토록 구타하여 갈비 뼈는 물론 비장이 파열이 됐으니 비록 내가 싫어하는 한국인이라고는 해도 마음 속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의 설명에 의하면 자원 봉사자들에게 인디안 대추장은 모든 것을 협조하겠지만 기독교 선교는 공개적으로 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 바보처럼 금년 48 살이라는 서 약사는 노골적으로 경고를 무시하고 인디안 청년들과 여인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다가 젊은 전사들에게 테러를 당한 셈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고도 계속해서 기독교 전도를 하던 그는 어제 저녁 공회당 근처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두명의 인디안 전사들에게 테러 공격을 받아, 칼에 찔려 길거리에 쓸어져 얼어 죽기 직전에 사람들에 의해 발견돼 응급실로 실려 왔다. 아무리 서 약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지만 인디안을 깔보고 와콘다신을 부정하며 엉뚱하게 예수를 운운하다가 예리한 칼에 찔려 죽게 된 새로운 침입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려서부터 한국과 한국 사람을 증오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아주 엉뚱한데 있었다. 나의 무능한 아버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신 것으로 알고 살았는 데 나의 할아버지가 내게 일러 준바에 의하면 나의 아버지는 수.인디안으로서는 가지 말아야 할 미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그곳에서 부상을 당하고 미국으로 귀국한 후 마약과 술중독자가 되었다. 그뿐인가 무능하다보니 아들인 나를 버리고 지금은 멀리 몬타나 주 산골에서 숨어 살고 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한국과 한국 사람을 증오하며 살아 왔으며 동시에 나의 아버지도 철저히 잊고 살았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한국과 한국사람을 증오한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죽었다.”- ‘백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죽어 마땅하지. 아무렴, 한국 놈들! 너희도 죽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결론을 짓고서야 깊은 잠에 들 수가 있었다. * 아침이 되어 나는 입원실에 들려보니 대 수술을 받은 한국 사람, 서 약사는 의식을 되찾고 경과도 좋아 말도 하였다. 그러나 몹시 수척해 보였으며 배가 아픈지 지렁이처럼 몸을 움칠거리고 있었다. “와, 끈질긴 사람이군!” 나는 비웃듯이 한마디 말을 던지고 나가려고 하였다. “닥터.! 살려 줘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말도 못할 것 같아 보였던 환자, 서 약사는 작은 소리로 말을 하며 고개를 움직여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있었다. “뭐라고, 예수? 이것 봐! 우리가 믿는 신은 와콘다 신이요.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아! 경과가 좋아지는 대로 퇴원시킬 데니까. 알겠소?” 나는 보기 싫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병실에서 나와 버렸다. 나는 3일 동안 의도적으로 로버트 서라는 환자를 은근히 불친절하게 박대한 후 7일이 되던 날 아침, 마침내 퇴원을 시키면서 강력하게 경고를 하였다. “이것 봐, 로버트 서! 퇴원하면 이곳 인디안 보호구역에는 다시는 오지 마소! 차라리 피에르에 가서 거렁뱅이들에게 봉사를 하시게. 알겠소?” “닥터.와이트도브?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이 은혜를 갚으러 한 번 찾아 오겠습니다.” “오지 않아도 좋소! 그냥 가시오.” 나는 못 볼 것을 본듯 불쾌한 듯이 대답을 했다. 이상이 나와 봉사대원 서 약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 그날, 오후 간호사는 내게 더 자세한 정보를 들려 주었다. - “인디안 경찰이 응급실에 와서 조사를 하긴 했지만 봉사 대원들은 결국 여기에서 추방이 될 겁니다. ” 40이 조금 더 된 가냘픈 인디안 출신의 간호사가 내게 귀띔을 해 주었다. “당연하지! 한국 사람이든 백인이든 저 사람들은 종교를 앞세운 침략자들이란 말이요. 그런데, 아나하임에서 왔다고요? ” 나는 문득 아나하임이라는 도시가 내 기억에서 떠 올랐다. “아, 거기, 거, 디즈니랜드가 있는........” 간호사도 그녀의 기억을 되올리면서 내가 아나하임을 잘 모르는 줄 알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디즈니랜드...” 나도 마침내 잊을 수 없이 감미로웠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곳이라고 불리우는 ‘디즈니랜드’가 눈에 떠 올랐다. 어느새, 15년이나 되었다. 다코타에서 결혼을 한 나는 아내 실비아와 같이 신혼 여행으로 남가주로 갔었다. 먼 길이었다. 덴버를 거쳐, 로스앤젤스로가 그곳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아나하임에 도착하니 꼬박 하룻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5일간의 휴가가 감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 약사를 비롯한 봉사대원들이 디즈니랜드가 있는 살기 좋은 아나하임에서 왔다고 하니 나는 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 아나하임에서 밥이나 먹으며 편하게 살지, 봉사는 무슨 놈의 봉사! 병신같은 놈들!” 나는 기분이 나뻐 이글뷰트의 인디안 간호사가 들으라고 신경질적으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4장. 추방(追放)-인디안 부족 회의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4주 후에 샤이엔 강의 수. 인디안 부족회의(部族會議)가 이글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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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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