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샤이엔의 언덕 파트6

2012.01.22 15:53

연규호 조회 수:449 추천:21

15. 또 다른 수.인디안, 어머니와 심한 우울증 환자가 된 아버지. 사랑스러운 한국인 아내를 잃고 난 밥(Bob)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행동도 느렸으며 아들 제임스를 돌보는 것도 힘들었다. 옆집 밀러 부인에게 아들을 잠시 맡겨 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를 못했으며 마침내 직장에서도 쫒겨 나고 말았다. 외롭고 한스러운 밥(Bob), 그는 죽음을 생각해 보았으나 어린 아들을 두고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도 죽어 버리자! 죽자 아내를 따라가자!”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바위에서, 낭 떨어지에서 뛰어 내려 죽을까?” 그렇다고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기도 그렇고 입양을 주기도 힘들었다. “여보? 당신을 따라가기도 힘드네....바보처럼...” 결국 밥(Bob)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말았다. * 강제로 재혼을 한 밥: 아버지, 불랙이글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포착되었다. 와콘다 신이 내려준 절대 절명의 기회라고 생각을 했다. -아들, 밥(Bob)을 설득하여 인디안 여성과 결혼을 시켜 아이를 양육하며 철저히 아이의 과거와 한국여성에 대한 비밀을 유지한다면 인디안 사회는 손자, 제임스만큼은 순수한 인디안으로 길러 낼 수가 있으며 불랙이글이라는 가문도 이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불랙이글은 아들 밥(Bob)을 철저하게 설득을 하였다. 평소에 알고 있던 인디안 여성이 있었다. 몇 년전 남편을 잃고 홀로된 인디안 여성으로 밥(Bob)보다 세 살이 더 많으나 자식이 없고 말 수가 적은 여성이었다. 결국 밥(Bob)은 아버지 불랙이글이 하자는 대로 과부가 된 인디안 여성과 결혼을 하기로 얼떨결에 허락을 하였다.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으나 어린 아이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으며 인디안의 정통성을 누구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불랙이글의 뜻을 무조건 따르는 편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아내가 죽은지 몇 주 안 되는데 결혼을 하다니...내가 미친 놈인가? 아니 미쳤지... 죽은 샤이엔의 무덤에 잔디가 돋기도 전에 결혼을 하다니...어떻게 만난 아내였는데...내가 배신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결혼을 한 밥(Bob)과 새 며느리인 인디안 여성에게 불랙이글은 엄중하게 말을 하였다. “너희들은 남들에게는 재혼하였다고 말하지 말라. 입을 꼭 다물고 처음부터 초혼(初婚)인 부부로 행동을 하거라. 그리고 여기 와이오밍을 떠나 북쪽, 몬태나로 아무도 모르게 이사를 가서 살거라. 손자, 제임스에게는 결코 한국인 어머니가 있었음을 말하지도 말고 증거가 될 만한 사진이나 어떤 기록도 말살 시키거라. 그 길 만이 우리 가문이 순수한 수. 인디안으로 대를 이어 가는 유일한 길이니라. 그리고 와콘다 신에게도 속죄 받는 길이니라.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예.” 밥(Bob)과 새 인디안 며느리는 머리를 굽혀 맹세를 하였으며 남들의 눈을 피해 몬태나주 가디에르시로 깜쪽같이 이주하였다. 새로 결혼한 인디안 여성은 밥(Bob)보다 3살 더 많았으나 천성이 곱고 말이 적었다. 뿐만 아니라 15년 전에 결혼한 첫 남편이 3년전에 발생한 위암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고생하다가 극도로 말라 죽자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 자신도 남편을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픽엎(봉고) 트럭을 몰고 언덕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시도를 했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복부 파열과 갈비뼈 골절로 혼수에 빠져 응급실로 실려가 급히 수술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여자였다. 죽은 남편을 따라 가지 못하고 다시 살아난 그녀는 인간 세상을 비관하고 홀로 포카텔로에서 조용히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려 잠을 자지 못하였으며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였다. 어느 누구도 만나기 싫었으며 홀로 버려진 사막속의 한 여인이었다. 인간의 정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남편만을 생각하며 죽기까지 이렇게 살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이사실을 알게된 불랙이글은 마침 며느리가 죽자 기회를 포착하여 결혼을 시켰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인디안 여인은 모든 것이 와콘다 신이 내려준 운명이라고 생각을 하였으며 오로지 순종과 인내로 새 남편과 처음 가져보는 아들, 제임스를 진정 자기의 아들로 받아 들였다. 암으로 참혹하게 죽은 남편에게 못 다한 여인으로서의 사랑과 순종을 새로 맞이한 밥(Bob)에게 다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외로움을 떨치고 새로 시작하는 인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비오는 날, 가슴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워 했던 인디안 여인은 새로 맞은 남편을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말대로 제임스에 관계된 과거의 사진 등은 철저하게 없앴으며 과거를 아주 잊어 버리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죽은 한국인 여인을 대신해 최선을 다했다. 교통사고로 죽은 한국 여인, 샤이엔을 마치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생각을 했으며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들 제임스를 이제는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잘 기르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멀리 한국에서 여기 와이오밍으로 왔던 한국 여성의 애틋한 혼이 쇼쇼니의 집에서 맴돌다가 이젠 마음을 놓고 샤이엔의 공원묘지에서 잠들기를 기원하며 가끔 찾아가 꽃을 꽂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 밥(Bob)은 아버지의 기대와는 아주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맹세한 그말대로 “내가 샤이엔(성숙), 당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산다면 나는 바보가 되리라.”라고 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그는 인생을 포기했는지 술이나 마시며 게다가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마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직장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늦게 일어나 빈둥빈둥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아내, 인디안 여성은 처음에는 우울증에서 곧 벗어나리라고 생각을 하고 참았으나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았다. 시아버지 불랙이글이 생활비를 도와 주어서 겨우 겨우 살아가게 됐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불랙이글은 아들 밥(Bob)을 불러 놓고 훈계를 했다. “정신을 차리고 집안을 다스려야지. 직장도 갖고....”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새 부인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아버지, 제 마음 속에 두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의무적으로 대할 뿐.....” “그러면 안 되지!” 그래도 아버지와 새 부인은 밥(Bob) 이 분명 변하여 옛날처럼 건강하며 부지런한 남성으로 가정을 돌 볼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인디안 부인은 스스로 팔을 걷고 직장을 구하고 살림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새 남편, 밥(Bob)이 비록 무능하다고는 하나 위암으로 죽은 전 남편을 새롭게 섬긴다고 생각을 하였다. “죽은 사람보다는 그래도 살은 사람이 좋다. 비록 무능하다고 해도 내게는 숨쉬는 남자가 곁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시아버지 불랙이글은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너무나 가엾고 불쌍해 매달 일정한 금액의 돈을 보내주어 살게 해 주었다. 결국 새 어머니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불랙이글-와이트도브의 가문은 순수한 인디안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가문을 이어 갈 수가 있었다. 철저한 비밀 속에서, 한국여성의 비밀은 더 이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어린 제임스는 인디안 어머니의 사랑과 봉사로 인해 한국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100% 기억하지 못한 채 순수 인디안으로 알고 살았다. 그리고 새 어머니를 통해 얻은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술이나 마시며 마약이나 하니 할아버지, 불랙이글은 마침내 큰 결단을 내렸다. 아들 밥(Bob)에게 선언을 하였다. “가정을 버린 너로부터 나는 손자 제임스를 데리고 가마. 그리고 내가 교육을 시켜 좋은 사람으로 만들겠다.” 그때 나, 제임스의 나이 겨우 5살이었다. 결국 나는 5살 때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또 한차례의 이주를 하였다. 아이다호의 포카텔로로 이사와 이번에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으며 그후 아버지를 본 것이 몇 차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를 통해 수.인디안의 정통 교육을 받았으며 술과 마약을 하는 아버지를 미워했으며 의도적으로 만나지도 않았음은 물론 아버지가 죽었기에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다고 남들에게 말을 하였다. “나의 아버지은 어려서 죽었습니다.”라고. 다행히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 훨스(Souix Falls)로 가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코타 대학과 다코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 훨스에서 인턴과 외과 레지덴트(수련의사)를 마친 후 외과 전문의사가 되어 이글뷰트에 있는 인디안 병원에서 큰 대우를 받으면서 정통 인디안으로 살아왔다. 물론 인디안 추장의 딸과 결혼까지 한 인디안의 최고 지성인으로써.... (서 약사의 증언. 끝) * 이상의 내용이 바로 서 약사가 몬태나와 한국에 들려 알아가지고 온 나의 아버지의 비밀이었으며 숨겨진 사진 속의 비밀의 실체였다. 그리고 서 약사는 옆에 놓여 있는 인디안 차를 한 숨에 마셔 버렸다. “자! 닥터.와이트도브?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것이 다입니다.” * “어머니, 어머니!”-----“어머니! 어머니!”------ 나는 서약사의 진술을 들으면서 간간히 흘러 내리는 눈물을 겨우 겨우 참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눈물을 밖으로 내 놓고 말았다. 내게도 이토록 훌륭했던 어머니가 있었음을 알게 되니 지난 세월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더 더욱 나를 눈물나게 한 것은 평소에 그토록 저주하고 멸시했던 아버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얘기와 그로 인해 생긴 우울증이 아버지를 그 처럼 비참한 알코홀 내지 마약 중독자로 만들었다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 더더욱 서글프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했던 아버지를 조금도 위로는 못하고 잔인하게 저주의 돌을 그에게 던졌으니 나는 못할 짓을 한 셈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나는 아버지를 또 다시 불러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몬태나에 가서 보았던 아버지는 깨끗했으며 술과 마약도 깨끗이 끝낸 후였기에 본래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마침내 안정을 찾고 눈물을 닦았다. *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제임스! 시아버지가? 그리고 당신!” 아내, 실비아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나 나와 아버지의 이름만 부르며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아버지의 감추워진 비밀을 알고 나니 사랑하는 아내 실비아도 크게 동요하였으며 우리의 문제가 더 커지고 있었다. 이토록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정통 인디안 추장의 딸과 결혼을 했으니 실비아도 이젠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남편인 내가 순수한 인디안이 아닌 한국 여자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비아도 죽어 와콘다 신이 부르는 영생의 세계에 들어 가지 못 하고 무참하게 독수리와 짐승의 밥이 될 것이니...... 결과적으로 나는 이런 비밀을 속이고 실비아와 결혼한 셈이기에 실비아의 가문에서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 뻔햇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분명 나와 나의 가문에게 원한을 품고 보복을 해 올 것이 틀림 없었다. 나의 장인은 전사 출신의 부족장이기에 누구보다 더 과격하며 다혈질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나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옆에서 열심히 듣고 있던 나의 아내에게 고개를 떨군 채 용서를 빌었다. “실비아? 당신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큰 죄를. 정통 수. 인디안인 당신과 장인에게....” 나는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 우리의 관계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리 나의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분명히 그녀는 나를 버릴 거라고 단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뜻밖의 대답을 들으면서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제임스! 당신이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던 순수한 인디안이던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설령 와콘다 신이 우리를 버린다고 해도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멍하니 서 있는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으며 가슴속 깊은 곳,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실비아! 미안해.”라고 나는 속삭이듯이 용서를 빌고 있었다. 당황 한 것은 이 사실을 알려준 서 약사와 그 부인이었다. 인디안의 규율을 잘 모르는 그들에게 있어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기독교를 전도하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이긴 하지만 와콘다 신의 세계에서 타인종과의 결혼이 이토록 큰 죄가 되는 줄을 그들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살려준 나에게 큰 보답을 하고자 사진 속의 비밀을 알아 온 것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전혀 예측을 하지 못했었다. 나와 실비아에게 있어서는 생(生)과 사(死)의 문제가 걸린 중대한 비밀이었다. 16. 수.인디안은 죽은 후 어디로 가나.... 서 약사와 혜어진 후 나는 조마조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행여나 나의 출생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나의 인생은 여기서 가련하게 끝날 뿐만 아니라, 이일로 인해 피를 보아야 할 사람들이 나의 아내, 그리고 장인 가족까지도 확대되는 것이 불을 보듯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으면 쉬쉬하며 몸을 움추리고 조용히 있어야 했는데 엉뚱하게도 이 소식이 순식간에 인디안의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닥터.와이트도브는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여성이었다.”라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문은 뜻밖에도 철저히 비밀을 지켜주기로 맹세했던 서 약사의 일행 중에서 새어 나온 듯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찢겨도 분수가 있지 서 약사, 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그를 두둔해 준 것이 원망스러웠다. 일단 소문이 난 이상, 나는 인디안들로부터 강한 질타와 공격을 받아야 했는데 웬 일일까? 피해 당사자인 나에게는 동정어린 위로가 있었는데, 오히려 이일을 발설한 서 약사와 그 일행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병원으로 찾아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 어느 여인의 말을 들어 보자. “닥터? 비록 당신의 어머니가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에서 살려 주었다고 하니 오히려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지요. 당신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주 불쌍한 유년기를 지냈으니 오히려 내 마음이 안타깝군요. 그런 당신을 어떻게 욕하겠습니까?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그런 역경을 이기고 의사가 되었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같은 동족인 우리. 수.인디안들을 위해 계속 이곳에 계셔 주세요. 아시겠죠?“ 또 다른 인디안들은 이렇게 말을 하여 나를 위로 했다. “쓸데없이 우리들의 건강을 지켜준 의사를 모함하는 서 약사라는 사람.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있을 것이지. 의리도 없이 남의 비밀을 밝혀 내다니.....” 한가지 눈에 띄게 느껴지는 변화는 타인종과의 결혼에 관한 유화적인 변화였다. 다른 인종과 결혼하면 순수 인디안이 아닌 것과 와콘다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종교적인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점이었다. * 기적과 이변: 늦은 저녁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인디안 병원에서 숙직을 하고 있었다. 숙직할 때마다 넘겨다 보았던 창 너머로 총총히 빛나는 밝은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울한 마음으로 바라다 본 불랙힐스의 별들이 오늘따라 서글픈 만남과도 같았다. 불랙힐스의 산 정상에서나 보인다는 쉐난도아의 별이 오늘 저녁에는 뵈지를 않았다. 웬 일일까? 늘 보던 그 별도 죽어 없어지다니, 아팔라치아의 소녀, 쉐난도아처럼.... 결국 모든 인디안들도 죽으면 어디로인지 가는 곳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비록 불랙힐스가 아니라도 좋다. 어딘가로 우리 인디안들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있단 말이다. “어디로? 어디로?” 나는 오늘 저녁 비로소 죽음 후의 세계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외과 의사로서 수 많은 환자들을 수술하여 살리기도 했으며 안타깝게도 죽은 환자도 많았는데 나는 죽은 다음의 세계를 생각해 보질 않았었다. “과연 수 인디안은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46세의 인디안 외과의사, 제임스 와이트도브는 과연 무엇인가? 수. 인디안중에 나처럼 공부 많이 해 의사가 된 사람도 없었으며 인디안 부족장(추장)의 딸과 결혼하여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갖고 있는 인디안이 몇이나 될까? 그뿐인가 나는 은퇴 후에 쓸 많은 돈을 저축하였으며 연금도 두둑히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그런 나도 죽으면 나뭇 잎처럼 땅에 떨어져 썩을 뿐이라니.....-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으며 멀리 보이던 아름다운 별들도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허무했으며 의사란 직업도 의미가 없었다. 너무나 외로워 아무 것이라고 손에 짚히면 잡고 싶었다. 문득 나는 나의 아내가 곁에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 나의 괴로운 심정을 들려 주어 위로를 받고 싶었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아내가 잠들어 있다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다행이도 아내는 잠을 자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의 고충스러운 마음을 전화를 통해 일러 주었다. “실비아! 당신은 나를 잘 못 만나 죽은 후에 와콘다 신에게 가지 못하고 나처럼 죽어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지고 말 터이니....” 나는 진심으로 사죄를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의 아내는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제임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갈 곳이 있습니다. 서 약사가 말한 복음(福音)을 들어 보세요.” “복음? 무슨 말이요, 실비아?” 나는 뜻밖의 대답에 반가운 마음으로 되 물었다. 무엇인가 나를 이끌어 주는 마력과 같은 대답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성경(聖經)속에 있다고 합니다.” “성경?” “무슨 말인데, 실비아?” 그 순간 응급실로부터 긴급 전화가 울려와 나는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쏜살같이 응급실로 달려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성경 속에 무엇인가 있나보군. 무엇인가?” 진흙 구덩이에 빠진 나를 누군가가 꺼내 주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힘차게 응급실로 달려 가니 죽음 직전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환자를 발견했다. “닥터 와이트도브? 이 환자, 응급 수술이 필요합니다. 장 파열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낭떨어지로 뛰어 내려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왜?” “사랑하는 여인이 난소암(卵巢癌)을 수술을 받는 도중에 수술대에서 죽자 그녀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나 우울하며 사는 의미기 없기에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고 하던군요.” “스스로의 목숨과 바꿀 만큼, 그 여인을 사랑한 남자라니,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이라고 했는데, 부럽구먼.” 나는 간호원에게 말을 한 후 급히 수술방으로 들어 갔다. “저 남자를 살리고 보자! 살리고 보자! 그토록 여인을 사랑했는데, 너무나 사랑이 고귀해서....” 나는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환자를 통해 크게 깨닳았다. 나는 그 환자의 복부를 메스로 크고 길게 자르면서 “아- 당신은 고귀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귀한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17. 수.인디안이 읽은 성경과 천국 나에 대한 소문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과 비례해서 나는 근래에 성경을 읽어 보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이 죽은 후에 찾아 갈 세계를 기독교도들은 어떻게 믿고 있는지 나는 궁굼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아내가 성경을 한번 읽어 보라고 충고를 했을 때 나는 마치 옛날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유태인들의 역사를 나열한 얘기 속에 무슨 진리가 있을까 반신반의 하였었다. 더욱이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를 읽으면서 말도 안 되는 가상의 얘기이며 마치 와콘다 신의 창조를 베껴 쓴 듯해 입맛이 씁쓸했었다. 아담이 지은 죄가 오늘날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당치도 않는 괴변이라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읽으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롯(Lot)이란 사람이 아내를 잃자 동굴 속에서 자신의 두 딸과 성 관계를 맺어 자식을 낳은 대목에서 나는 기독교에 대한 환멸을 느꼈었다. 도대체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나는 궁굼하다 못해 이번에는 서 약사를 만나 개인적으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를 맞춰 인디안들 사이에서 들리는 소문은 이러했다. “외과 의사, 제임스 와이트도브는 인디안의 절대 신인 와콘다 신을 믿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에 심취했다.”라는 소문이었다. 이런 소문이 대추장에게 보고가 된다면 나는 결국 인디안 사회에서 파멸되어 추방이 될 것이 명약관화 했다. 결국 나는 밤잠을 제대로 자기도 힘들었으며 신체에 이상이 오고 있는지 수술 중에 손이 떨리기도 했기에 간호사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닥터. 와이트도브? 어서 수술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예?”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수술을 계속했다. “아니? 여보, 웬 한숨을 쉬고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요?” 아내 실비아가 물었다. “그래요, 실비아. 나 요즘, 그 대답을 얻어 보려고 성경을 읽고 있어요.” “그 대답이라니?” “아- 사람이 죽은 후에 나같은 인디안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요.” “죽은 다음에?” 아내는 아직도 남편이 와콘다 신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 실비아.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가는지....” 나는 솔직한 고백을 하였다. “제임스! 사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막연했었지요. 아니 사실은 겁을 내고 있었지요. 제임스! 죽은 후에 불랙힐스에 시체를 갖다 놓으면 독수리와 짐승들이 와서 쪼아 먹던지 아니면 갈기갈기 찢어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서웠어요. 그런데 근자에는 우리 인디안들도 샤이엔강가에 있는 공동 묘지에 매장을 한다고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아- 그래. 나도 그랬는데....” “우리는 같은 인간이니까.....” 결국 백인이던 흑인이든, 아니 인디안이든,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죽음이었다. 나는 뜻밖에도 이글뷰트 병원에서 수술중에 나와 같이 15년간을 같이 일해온 간호사 이글록(Eaglerock)여사가 내게 말해준 것이 인상깊었다. “사실 나는 요즘 서 약사가 말해준 성경을 읽었지요. 그런데 와콘다 신과 비슷한 교리라고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보면 많이 다르더군요.” “그럼, 이글록 간호사도 성경을 읽었단 말이요?” “예. 틈틈히...” “와! 서 약사라는 사람, 대단하군요. 그런데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우리 와콘다 신은 용맹한 행위를 바라지만 기독교는 단지 예수를 믿는다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던군요.” “그렇다면 아주 다르군요?” “닥터? 조심하십시다. 무분별한 인디안 전사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으니, 언제고 당신을 해칠지도 모르니까요.” 이글록 간호사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피에르에 사는 서 약사의 아파트로 찾아 갔다. 가는 길에 샤이엔 강이 미쥬리 강과 합류되어 드넓어진 오하에 호수를 보면서 ‘한국인이건 인디안이건 어디에서인가 만나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 한국 사람이건, 인디안이건 똑같은 인간이기에 우리는 만나 대화를 하는 거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과 인디안의 결혼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단지 다른 풍습. 피부 색갈등이 불편한 것일 뿐.’ 나는 수. 인디안의 생각이 옹졸하며 너무나 인종적인 생각이기에 다른 인종과 화합을 하지 못 하고 늘 호전적이며 반항적이었다고 단정을 하였다.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놀란 것은 서 약사였다. 그는 그가 나의 비밀을 밝혀 놓은 결과로 내가 인디안 사회로부터 곤욕을 치루고 있기에 항의를 하러 온 것으로 생각을 했는지 지례 겁을 먹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만 연발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의 곁에 있는 부인은 몸둘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오히려 나의 비밀을 파 혜처 주었으며 그 결과 내가 성경을 통해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한다고 하자 어색했던 분위기는 반전되어 웃음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 약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꺼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성경은 인디안들이 믿는 것처럼 죽은 후에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천국(天國)이라고 했다. 천국이란 하늘이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를 말하며 그곳에서는 죽음도 없으며 늘 평한함으로 영생(永生)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영생은 어떻게 하게 되는가? 와콘다 신은 인디안을 위해 무력으로 용맹스러운 공로를 세워야 한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단지 인간을 위해 대신 죽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시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군요. 서 약사님?” “그렇습니다. 아주 쉬운...” 너무나도 쉬운 진리를 배우고 보니 기독교가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서 약사의 집을 나올 때 서 약사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을 했다. “당신들에게 복음의 씨앗이 들어갔습니다.”라고. 그리고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18. 샤이엔에서 추방된 수 인디안이 갈 곳 호사다마라고 햇듯이 뜻하지 않은 나쁜 소식이 들려 오는가 하면 한걸음 한걸음 닥아 오는 위험의 발자국이 내귀를 어지럽혔다. -간호사, 이글 록 여사가 내게 전해 준 말에 의하면 며칠 전에 피에르(Pierre)에서 만났던 서 약사가 어제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들어 왔다가 저녁 늦게 피에르로 돌아 가는 길에 인디안 전사들에게 납치되어 구타를 당하고 인디안 보호구역 어디엔가 갇히어 있다고 했다. 납치를 당하고 구타를 당했다니 제발 다치지 않기를 비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까지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제발 무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절부절하는 마음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울그락불그락 거리면서 인디안 전사들이 나의 집으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를 하였다. 나를 찾아온 전사란, 말이 전사이지 교육도 받지 않고 술이나 담배를 피우며 심지어 마약까지 하는 깡패들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 어째서 예수쟁이, 서 약사란 놈을 감싸고 도는 거요? 게다가 당신도 듣자하니 성경도 읽고 예수도 믿는다고 하던데, 어쩔라고 그러슈? 와콘다 신의 노함을 받고 죽을려고 그러우? 알겠소!”라고 큰 소리리로 떠들며 가끔 그들은 예리한 칼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나이도 어린 젊은 전사들의 무지막지한 항의에 나는 감히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얼마 후 그들은 썰물처럼 물러 갔지만 그들의 거친 말 속에서 나는 내게 닥아올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나를 범법자(犯法者)처럼 취급을 하고 있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오늘 일어 났던 일들을 얘기해 주니 아내는 이번에도 뜻밖의 말을 하였다. “제임스! 걱정마세요. 당신은 진리를 알고 싶어 했던 것일 뿐....잘못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이 어디로 가던 상관 없습니다. 죽은 후 불랙힐스로 가지 못한다고 해도 실비아는 당시이 가는 곳으로 같이 갑니다.” “실비아, 고마워.” 실비아는 나의 강력한 동반자요 후원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힘의 원동력이었기에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 그러나 3일 후에 더 난처한 일이 생겨 꼬이기 시작했다. -실비아의 아버지요 나의 장인이 되는 부족장(추장)이 처남들을 데리고 나의 집으로 씩씩 거리면서 찾아 왔다. 평소에 나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근육만 발달한 전사들인 처남들도 복수에 찬 매서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나의 처남들은 근육만 발달했지 공부를 하지 않아 머리는 텅 빈 깡패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공부를 많이한 의사인 나에게 복수를 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독수리 깃털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 장인은 마치 죽일 듯한 눈초리로 나에게 말을 하였는데 일방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보게, 제임스! 자네가 이렇게 나를 깜쪽같이 속일 수가 있는가? 자네의 아버지가 한국여인과 결혼을 해 자네를 낳았다니, 자네는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지! 자네도 문제지만 내 딸은 어떻게 되는 거야! 불랙이글이란 가문이 이렇게 형편 없는 줄을 몰랐어. 자! 잔말 말고 나는 내 딸을 데리고 갈 테니 그리 알게. 알았나!” “안 됩니다. 장인님!” 나는 실비아를 데리고 간다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되긴. 안 될 이유가 없어! 잔말 말어!” 장인은 고압적인 태도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똑같은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이미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나는 아내가 어떻게 말을 하는가에 따라 나의 처신을 해야 했다. “아버지! 나는 남편과 같이 살겠습니다.”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내가 대답을 했다. “뭐시! 네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잔말 말고 나를 따라 가야한다. 너는 순수한 인디안으로 살아야 하나까....” “아버지? 그래도 나는 여기에 있으렵니다.” 아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자! 너희들은 누나를 데리고 가거라!” 장인은 전사들인 두 아들에게 사정없이 명령을 내렸다. 대쪽같은 장인의 명령 앞에서 감히 누가 거역을 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그 명령을 꺾을 수가 없었기에 결국 아내는 오빠 전사들에 의해 끌려 밖에 세워둔 차에 오르면서 나를 향해 “여보! 여보!” 소리만 낼 뿐이었다. 나는 전사들에 의해 끌려가는 아내의 뒷 모습을 바라다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없는 남편의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다. 그리고 비참하다 못해 모욕적이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수. 인디안의 자격도, 아내마저도, 그리고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잃고 만 셈이었다. ‘도대체, 순수 인디안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나는 며칠 전에 ‘인디안도 다른 종족과 결혼을 할 수 있으며 권리가 있다’라고 인정을 했는데 오늘 또다시 현실 앞에서 이렇게 좌절되다니.... 아내가 가버리고 난 후의 나의 집은 마치 유령의 집처럼 조용했으며 싸늘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캄캄한 밤, 아무도 나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물 한모금도 먹지 않고 있었기에 허기가 짐은 물론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장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행히 장모였다. “자네, 식사는 했나? 어떻게 하지 자네 장인이 저토록 화가 났으니 말이네. 자네 어머니가 한국 여인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실비아는 잘 있나요?” “엉, 걱정말게나. 한국 여자가 어째서? 사람은 다 똑같은 건데....” 장모는 약간의 위로를 해주었으나 아내와의 통화는 허락하지 않았다. 불랙힐스의 산 꼭대기 위에서 빛나던 그 별, 쉐난도아는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비아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비아, 미안해. 그러나 사랑해. 사랑해. 차라리 나를 떠나 와콘다 신에게 갈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오. 내 비록 죽어 낙옆처럼 썩어버린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나는 오늘 비로소 나 자신의 존재가 인디안의 세계에서는 무참하게 버려진 하잘 것 없는 나뭇잎만도 못한 존재인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썩은 나무 잎새만도 못한 나, 제임스 와이트도브 외과 의사.......’ 이것이 나의 현주소였다. * 아내마저 빼앗기고 난 나는 불안하고 분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낸 후 용기를 내어 나는 장인집에 찾아 갔으나 처남들과 장인에 의해 거절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 차례 아내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많이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었으며 며칠 사이에 몹시도 여읜 모습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주었다. “제임스! 아버지와 식구들의 분노가 꽤 큰 듯하니 잠시 조용히 있으면 어느 정도 사건은 마무리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없는 사이에 식사를 제대로 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곧 당신의 곁으로 갈 테니까요.” 나는 나의 아내의 손을 잡고 울기만 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랑의 힘이 종교의 힘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가 평생을 같이 살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죽은 후에 있을 영생의 시간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은 것이 사람의 생명이지만 현세의 사랑도 간절하였다. 그래도 70년을 같이 사는 것 보다 영생의 삶을 와콘다 신과 사는 것이 수 인디안들에게는 더 중요하기에 나는 나의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갑시다”라는 말을 못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우리 수.인디안의 종교 앞에서 나는 무력한 존재였다. 결국 나는 13년간 근무해온 이글뷰트 병원에서도 떠나야 할 것이 뻔했다. ‘인디안 보호구역 병원에서도 나는 살 수가 없다.....’라는 압박이 점차 닥아 오고 있었다. * 최후의 통첩: 걱정하고 예상했던 대로 나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 들어왔는데 발신인이 대추장 오레겔이었다. 대추장 오레겔이 소집하는 인디안 부족 회의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이었다. 항간에서 떠도는 나에 대한 난무한 소문에 대한 인디안 부족장들의 결정 사항을 전달하겠다는 대추장의 판결문이었다. 대추장은 나의 할아버지 불랙이글과 비슷한 나이이기에 나를 잘 이해하고 있지만 그 밑에 있는 여러 부족장들은 아버지와 같은 연배로 나의 아버지를 경멸하는 비 우호적인 무리들이었다. 단지 내가 인디안으로서는 유일한 외과의사이기에 마지못해 용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느 부족장은 나의 장인과 경쟁 관계가 되다 보니 나에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장인마저도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판국에 나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음이 밝혀지고 보니 장인마저도 분노하여 나의 아내를 데리고 가버렸으니 이번 부족장 회의에서 큰 징계를 받거나 아니면 추방이 될 것이 뻔했다. 다음날 아침 무거운 발걸음으로 9시까지 이글뷰트 공회당으로 걸어가는 나의 마음은 마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형수의 심정이었다. 더욱이 아내마저 빼앗긴 지금의 나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절망감과 공포가 나를 짖누르고 있었다. 평소에는 지나갈 때마다 친근해 보였던 공회당 건물이 오늘은 마치 나를 벌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심술 궂은 도살장(屠殺場)처럼 느껴졌다. 가까스레 공회당 입구에 도착하니 독수리 깃털로 머리에서 등뒤까지 온통 장식한 젊은 인디안 전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모습에서 나는 우선 위압감을 받고 말았으며 마치 나의 등뒤에서 어느 누군가가 비수로 퍽 찌를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등 뒤에서 진 땀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넓은 공회당에는 이미 대추장과 부족장들, 그리고 수 많은 전사들이 앞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수 많은 인디안들이 일반석에 자리를 메우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하고 궁굼해 하는 눈초리들이었다. 마침내 인디안 경찰이 나를 이끌고 가장 앞자리에 준비된 의자에 앉으라고 하여 껄끄러운 자리에 앉은 후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니 정면 단위에서 근엄한 대추장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며 더 놀라운 것은 마치 배심원처럼 정면을 향해 뒤에 놓인 7개의 부족장 의자중에 한사람이 바로 나의 장인이었다. ‘아- ’나는 신음을 하고 말았으나 장인은 내게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아주 싸늘한 분위기였다.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와! 될대로 되거라...’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보니 지난 13년간 여기 이글뷰트 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지내온 것이 활동사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젊은 나이로 여기 병원에 부임해 오니 인디안들이 “와! 인디안 의사래...인디안 의사.”라고 부러워 하던 모습들이 떠 올랐다. 그리고 텅 빈 병원에 혼자 앉아 인디안들을 위해 숙직을 도맡아 하던 때가 있었다. 백인 의사들은 어떻게 하던 휴가로 밖에 나가곤 했으나 나는 같은 인디안 동족들을 위해 정말 헌신을 했었다.- 꽤나 시간이 흘렀다고 느껴 질 때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는 듯하여 살짝 눈을 떠 보았다. 뜻밖이었다. -인디안 경찰에 의해 나처럼 끌려와 의자에 앉힌 사람은 바로 한국 사람, 남가주 봉사단의 서 약사였다.- “아니, 서 약사? 우리집에 왔다가 가는 길에 인디안 전사들에게 잡혔다고 하던데 어디 다친데는 없소?“ “아- 괜찮습니다.” “참으로 미안하군요, 우리 인디안들을 용서하세요.” “아닙니다. 오히려 나 때문에 닥터 와이트도브가 이렇게 됐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서 약사님. 당신은 나에게 진리(眞理)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진리(Truth)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진리(眞理), 진리(Truth).....” “감사합니다. 진리를 알려 주셔서.”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 나는 막상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하지 못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지요.” “예.”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 “자! 자! 조용히 하시오!” 부족회의 총무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면서 장내를 정리한 후 부족 회의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부족 회의가 소집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 인디안 회의는 인디안을 위한 회의지만 인디안의 권익을 위해 로버트 서를 이곳으로 소환했지만 미국 시민권이 있는 한국인이기에 결코 폭력이나 협박은 없을 터이니 변호사를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디안의 피를 나눈 나에게는 인디안 회의가 매우 중요했다. 인디안 법에 의해 결정된 사항은 철저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살기등등한 인디안 전사들을 바라다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혹시라도 칼을 들어 나를 찌를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부족회의 총무가 장황하게 밝힌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수. 인디안들은 수천 년을 샤이엔강과 대평원에서 와콘다 신을 섬기며 살아 왔는데 백인들이 침략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이 칼리포니아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인디안구역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는데 의사인 와이트도브도 추종하기 시작했으며 더욱이 그의 어머니가 한국인이었음이 판명되었는데 이것은 3대에 걸친 배신이었다. 한국 사람 서 약사는 하라는 컴퓨터, 봉제 봉사는 제쳐 두고 금지된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음으로 부족장들과 대추장의 모임에서 이들을 중징계 하기로 결정을 하였기에 많은 인디안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인디안 총무는 살기등등한 채 힘없이 앉아 있는 서 약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서 약사! 너는 일어나서 우리 인디안들에게 사과하라!” “예.” 서 약사는 대답을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비틀 거리더니 이내 땅바닥에 쓸어졌다. 추측컨데 젊은 전사들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하여 기력이 떨어진 듯 했다. 마치 길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어나서 정중하게 사과하라!” 이번에는 근엄하게 대추장이 명령을 했다. 서 약사는 주섬주섬 일어나 대추장을 향해 인사를 올린 후 떠듬떠듬 말을 하였다. “대추장님, 그리고 여러 부족장님! 나는 분명히 여러분들과 같은 수. 인디안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서 약사가 떠듬떠듬 말을 이르려고 하자 성질 급한 전사들이 고함을 쳤다. “집어치워! 무슨 소리야! 당신이 어떻게 우리와 같은 수. 인디안이란 말야? 사과나 할 일이지!” 결국 서 약사는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도로 앉고 말았다. 더 이상 변명도 못하고 서 약사와 봉사단원들은 영구히 추방되었다. “너희들은 영원히 추방이다. 당장 오늘부터!” 총무가 의기양양하게 선언을 했다. 갑자기 공회당은 조용해 졌다가 이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당장 꺼져! 꺼져!” 여기저기서 서 약사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대추장에게 말했다. “대추장님! 제게도 말할 기회를 주십시오.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할 말이 있다고? 자네가? 그래? 그럼 말해 보라!” 대추장은 뜻밖에도 내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여러분! 우리는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와콘다 신이란 인간이 만든 다원론적인 종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수.인디안들은 죽은 후에 시체를 불랙힐스의 돌 제담에 갖다 놓으면 혁혁한 공을 세운 인디안들만이 좋은 곳으로 불려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수. 인디안들은 죽어 나뭇잎이 썩어 없어 지듯이 땅에 묻혀 썩어없어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인디안들은 썩어 없어 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서 약사를 통해 들은 기독교는 믿음으로 대다수의 인간들이 천국에 간다는 겁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 “잠깐! 그 천국이란 어디를 말하는가?” 대추장은 내게 물었는데 정말 모르는지 퍽이나 궁굼한 표정이었다. “천국이란, 이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병도 없고 전쟁도 없는 곳으로 영원히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 “그렇다면 죽은 시체는 어떻게 된다는 거냐?”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이세상에 찾아 올 때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와콘다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마는....” “그래?” 대추장은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대추장님? 나는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가 주신 인디안의 영예인 독수리 깃털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순수한 인디안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3대째 우리 인디안들을 속이고 살아왔기에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깃털을 대추장님께 돌려 드릴 뿐만 아니라 인디안 병원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 가겠습니다.” 나는 인디안의 법대로 무릎을 끓고 대 추장에게 독수리 깃털을 돌려주고 말았으며 가련하게도 인디안의 세계에서 추방이 되고 말았다. “닥터 와이트도브는 인디안 병원과 인디안 구역을 떠나 멀리 가서 살라. 더 이상 우리 수.인디안이 아님을 선포한다.” 인디안 부족 총무가 대추장을 대신해서 큰 소리로 선언하였을 때 여기 저기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나와 서 약사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인디안 구역으로부터 추방이 되었다. ‘수 인디안 구역에서 추방된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어디로 가야하나.....’ 갈 곳이 없었다. 나서 자라고 교육을 받고 결혼한 나의 고향에서 떠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앞이 캄캄해 지면서 나는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19. 에필로그, 나의 영원한 고향, 샤이엔. 생각해 보면 지난 일년은 나에게 있어, 어처구니 없는 악몽의 해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남가주에서 온 증오의 대상이었던 한국인으로 구성된 평화봉사단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인디안 병원에서 평생 보증된 전문의사라는 직위, 아내, 집 그리고 명예.....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 버리고 정처없이 정착할 곳을 찾아 가야 하는 유랑민이 된 셈이었다. 내가 살던 집은 인디안 재단에서 시가에 맞게 인수한 후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으며 아내는 처가집으로 잡혀간 후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처가집에 전화를 해도 바꿔 주기는 커녕 욕설을 퍼부었으며 집 근처에 갔다가는 인디안 전사인 두 처남으로부터 밀려 나게 되었다. 아마도 아내는 연금 상태로 살고 있는 듯했다. *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서 약사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면서 변변한 인사도 못하고 혜어졌었다. 겨우 한 말이 기억에 나고 있었다. -“서 약사님! 몸 건강하시고 캘리포니아로 돌아 가더라도 나를 잊지 마시고 가끔 연락을 주십시오.” “닥터. 와이트도브?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닙니다. 당신은 나의 참다운 존재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지요. 자.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단 몇 분간의 인사를 하고 인디안 공회당을 나와 각자의 길로 갔었다.- 이것이 전부였었다. * 나의 추방 소식을 들은 나의 아들이 수. 훨스(Souix Falls)로부터 달려온 것이 그래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지난 몇 개월간 그는 훌륭한 대학생으로 성장했으며 으젓한 남성이었다. 사정을 알고 난 후 아들은 조금도 당황하지도 억울해 하지도 않은 채 나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아버지! 아버지는 훌륭한 외과의사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밥.Bob)는 아주 멋진 남성이었군요. 참사랑을 하신 분이군요. 그렇다면 아버지가 가실 곳은 당연히 샤이엔( Cheyenne)이군요. 아버지 샤이엔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가시면 죽은 할머니(김성숙)의 사랑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겠군요.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세요.” “뭐라고, 어머니의 냄새를?” “그렇다니까요, 아버지!” “그래...그래...아들아.....” 나는 마침내 아들로부터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와이오밍주, 샤이엔 시로 이사하기로 결정을 했으며 차근차근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할까? 궁리를 하였다. 전통적인 백인의 도시 샤이엔에 가서 인디안 의사로서 와과 병원을 개업하려고 하니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아들의 말을 생각하면서 나는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 샤이엔에 가서 할머니의 냄새를 맡으세요....할머니의 냄새를.....” 이글뷰트의 병원을 떠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 아펐다. 그리고 아담한 나의 집을 나와 아내도 없이 와이오밍으로 간다는 것도 서글펐다. 이글뷰트를 떠나 불랙힐스의 남쪽 방향으로 달려가다 보니 샤이엔 강의 근원지가 되는 작은 개울들이 아름다웠다. 마침내 나는 와이오밍의 주도(州都)인 샤이엔(Cheyenne)시에 도착하였다. - ‘그래, 인디안을 몰살 시킨 원수, 백인들이 사는 여기 샤이엔(Chyenne)에서 인디안인 나 제임스 와이트도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련다.- ’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나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 2의 인생이라고 할까.....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살았던 쇼쇼니(Shoshone)마을로 가 작은 집을 빌려 살게 되었다. 46년 전에 내가 태어났던 마을에 나는 나의 인생의 둥지를 다시 트게 되었다. * 그로부터 3개월 후, 멀리 남캘리포니아 주 아나하임시에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슬비였다. 말이 겨울이지 남가주의 겨울은 대평원에서 만나는 혹독한 겨울에 비하면 너무나도 따듯하지만 그래도 칼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몹시 춥다고 호들갑을 떨곤 한다. 디즈니랜드 근처에 있는 서 약사의 집으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되어 왔는데 아주 뜻밖의 편지였다. 발신자의 주소를 보니, 멀리 와이오밍주의 샤이엔시에서 왔으며 발신자는 놀랍게도 닥터. 제임스 와이트도브라고 쓰여 있었다. 편지를 먼저 받은 사람은 서 약사의 부인이었다. “여보! 로버트! 편지, 닥터 와이트도브로부터 온 편지요!” “뭐라고, 닥터. 와이트도브?” “그래요. 제임스........” “제임스가?” 서 약사도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되고 있었는지 멍하니 편지를 들고 있었다. 어느덧 4개월 전, 살기등등한 인디안들로부터 추방을 받고 아나하임으로 돌아 온 서 약사는 엉뚱하게 덩달아 추방된 닥터 와이트도브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편지를 보낼 수도 없었으며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에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존경받는 외과 의사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와이트도브 의사를 도와 준 것이 오히려 그를 추방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편지를 받으면서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아내가 건네준 편지를 뜯어 서서히 읽기 시작했다. * 어머니의 향기를 찾아: 편지: -사랑하는 수.인디안의 후손, 한국인 서 약사님, 그리고 나의 어머니의 모습을 한 사모님(미세스 서)에게! 안녕하셨습니까? 저, 제임스, 제임스 와이트도브입니다. 인디안 회의에서 추방되면서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어영부영 헤어진 지 벌써 4개월이 지났군요. 그 동안 잘 계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캘리포니아에 계시면서 인디안보호구역에서 추방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굼하시겠지요? 사실 나도 쫒겨나면서 충격이 컷습니다. 집, 직장, 아내 그리고 명예도 잃어 버리고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하여야 할지 모든 것이 혼돈이었습니다. 서 약사님?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와잉오밍주(Wyoming State), 샤이엔 시(Cheyenne City)에 와서 와이트도브 외과 의원(外科 醫院)을 개원하였습니다. 이젠 인디안이냐? 백인이냐? 라는 신경질나는 대화도 필요 없으며 단지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자로서 환영을 하고 있답니다. 저는 인종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어느 인종이나 다 평등하며 특징이 있기에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외과 의원에는 멀라 다코타에서부터 찾아 오는 환자도 있으며 와이오밍의 전통적인 백인들과 중국사람, 그리고 아이리쉬 노동자의 후손도 찾아 온답니다. 더욱더 반가운 것은 나의 아내, 실비아도 여기 와이오밍으로 돌아와 같이 살고 있기에 우리집도 이젠 평화를 찾았답니다. 역시 구굼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인디안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답니다. 어떻게 해서 와이오밍으로 와 정착을 했을까요? 궁굼하시죠? 그런데 대답은 아주 의외로 쉽게 풀렸답니다. 나의 아들이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를 찾아왔을 때, 그가 한말이 바로 해답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외과 의사가 아닙니까? 어디를 가던 할 일이 많은 의사....그렇다면 아버지의 어머니(아들의 할머니)의 냄새를 맡으세요. 할머니의 냄새가 나는 샤이엔으로 가세요.” 아들은 나의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라고 하던군요. ‘아- 어머니, 샤이엔(김성숙)과 내가 살았던 그 곳, 샤이엔의 북쪽 쇼쇼니(Shoshone)로부터 죽은 어머니의 냄새가 나는 듯 햇습니다.’ “그래! 아들아! 샤이엔으로 가마! 샤이엔으로......” 나는 아주 쉽게 내가 가서 살 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나도 나의 생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래- 샤이엔(Cheyenne)으로 가서 나의 어머니 샤이엔(Sheyenne)을 만나 다시 내 인생을 시작하는 거다. 이삿짐을 실고 와이오밍으로 갔습니다. 샤이엔시 북쪽에 있는 쇼쇼니(Shoshone)마을로 찾아 갔습니다. 놀랍게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았다는 그 집이 그대로 있었으며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낳고 자란 곳이더군요. 나는 그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숨결이 서로 엉켜 있다고 생각하니 언젠가는 이 집을 구입하여 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 뒤로 보이는 숲과 옥수수 밭에서 나는 어머니의 손길을 더듬고 있는 듯 햇습니다. 나는 그 집 앞에서 한참 생각하고 있었더니 어느 백인 할머니가 나오더니 “누굴 찾습니까?”라고 묻던군요. “예. 밥(Bob) 과 샤이엔 와이트도브를 찾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여기, 이 집에 한 때, 아주 예쁜 여성이 살았다는 말은 들었는데......”라고 말하던군요. “할머니? 그분이 바로 샤이엔입니다. 나의 어머니...” “샤이엔?” 할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듯 고개를 흔들던군요. 그날 저녁 나는 쇼쇼니에 미리 세를 들어둔 집에 머물며 이글뷰트에 있는 아내에게 무조건 편지를 썻답니다. “사랑하는 실비아! 추방을 당한 후, 당신과 나의 아들이 나에게 말하던군. 아버지? 할머니의 냄새가 나는 샤이엔으로 가세요!”라고. * 사랑하는 서 약사님과 사모님! 더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나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샤이엔의 서쪽 편에 있는 넓은 공원묘지 한귀퉁이에서 (사랑하는 아내, 샤이엔 성숙.김. 와이트도브의 묘)라고 쓴 묘비를 발견하였답니다. 어머니의 이름이 쓰인 대리석 판은 반짝반짝 윤기가 있었으며 깨끗이 닦아진 것으로 보아 그 동안 누군가가 어머니의 묘를 찾아와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묘지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매년 몇차례씩 허름한 옷을 입고, 입에서는 술 냄새기 풍기는 겉늙어 보이는 남자분이 여러 차례 꽃을 들고 왔다고 합니다. 그는 묘지 주위에 있는 잡초를 말끔히 뽑아 내고, 묘지명을 윤기가 나도록 닥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인생의 실패자요, 한국 전쟁의 희생자였던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어머니는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던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낮에는 사랑하는 남편이 찾아왔으며 밤에는 쉐난도아의 별이 내려와 어머니의 손을 만져 주었으며 때로는 전설적인 마야의 새. 꿰챌이 날라와 어머니의 귀에다 노래를 들려주었으니까..... 사랑하는 서 약사님! 바로 여기 샤이엔의 공원묘지에서 나의 어머니는 43년간 아들인 나를 만나고자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나는 어머니의 숨결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나의 어머니의 따슷한 체온을 느껴 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이 샤이엔이었군요. 샤이엔!” 나는 샤이엔을 불러 보았습니다. * 서 약사님! 나는 쇼쇼니 마을에 있는 작은 집을 세내어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이었습니다. “딩동댕-딩동댕--” 현관문에 있는 초인종이 울렷습니다. ‘아니? 이 시간에, 누가?’ 나는 혼자 중얼대면서 현관 문을 열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나의 아내 실비아가 예고도 없이 찾아 왔는데 얼굴이 무척 수척해 보였으나 나를 보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실비아! 실비아!” 나는 아내를 보자 너무나 기뻐 달려들어 포옹했습니다. “제임스! 나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이젠 안 떠날 거야.” “실비아!” 전사 그리고 부족장의 딸인 나의 아내는 4개월 동안 연금 생활을 하다가 인디안이기를 포기하고 나의 아내가 되려고 부모님과 오빠들의 위협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죽은 후에 와콘다신에게 불려가지 못하고 나뭇잎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 없어진다고 해도 남편인 제임스와 같이 살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제임스? 당신이 무엇을 하던, 어디를 가던 나도 같이 가렵니다. 당신의 마음이 담은 곳에 내 마음도 담겠습니다.” “실비아!” 나는 나의 아내를 또 다시 포옹했습니다. “제임스? 나는 당신이 의사이기에 그리고 존경받는 불랙이글의 손자이기에 결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라는 한 남성을 사랑했기에 내 마음을 열고 결혼을 한겁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한국인의 피를 가진 어느 성직자가 말했지요. 돈, 지위, 인물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기쁨을 같이 나눌 뿐만 아니라 서러움, 번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 사랑은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 만큼 함께 괴로워 할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여보 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 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나와 반씩 나누어 지려고 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당신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렵니다. 내 목숨도 그리고 와콘다 신이 주는 영생(永生)까지도 희생하렵니다.” “실비아! 고마워.” 나의 눈가에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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