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파트 5

2012.01.24 12:58

연규호 조회 수:516 추천:26

15. 신시내티 레즈의 강타자 한스 던발. 1999년 4월 3일- 미국 프로야구팀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스는 피츠버그 파이레츠의 중견수로서 첫 게임을 시작하였다. 상대 팀은 뉴욕 메츠였는데 이 경기에서 한스는 한 개의 홈런과 한 개의 안타로 인해 2개의 타점을 기록하였으니 척 경기는 대 성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4,5.6월 그리고 7월초에 이르는 전반기 타율은 3할 1분 2리였으며 무려 50개의 타점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올 스타팀에 선정되는 행운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올스타 게임에서는 내내 벤치에 앉아 있다가 9회에 대타로 나와 내야 땅볼로 죽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한스가 소속한 내쇼날 리그팀은 7:3으로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에게 패하고 말았다. 7월 중순 이후에 계속된 후반기 시즌에서도 꾸준한 실력으로 10월말의 그의 성적은 3할 1분 4리, 타점 98, 홈런 30개로 아주 좋은 결과를 내었지만 피츠버그 파이레츠 팀은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 2000년- 21세기의 시작이라고 하여 유난히 분주하였으며 말도 많았다. 4월 3일 피츠버그 파이레츠는 전통적으로 신시내티 레즈와의 첫 경기를 신시내티 레즈의 구장, 리버프론트 스태디움에서 방문 팀으로 갖게 되었다. “레즈 구장!” -한스의 고교 시절, 교교 대항전 결승전이 기억에 생생한 구장이었다. (1992년 5월, 어머니의 임종을 목전에 두고 이곳에서 결승 이루타를 때렸던 것이 기억에 새로웠다. 경기를 마치고 병원으로 달려 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 싸늘한 시체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 한스가 여기에 또 왔습니다. 어머니!“- 신시내티의 4월은 아직도 바람이 차고 추었으나 한스는 역시 기대 했던대로 첫 회에 나와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와-와-” 그리고 이어지는 아우성 소리, “한스-하안스 하안스-”라는 구호가 신시내티 구장을 뒤 덮었다. 이날 경기는 피츠버그가 4:3으로 신시내티를 제압하여 첫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2000년도 전반기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타율, 3할 1분, 52타점, 홈런 21개였으며 파이레츠 팀에서는 유일하게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작년에 이어 또다시 올스타가 되면서 그의 몸값도 크게 뛰었다. 올스타전 이후위 후반기 성적도 우수하여 10월말 파이레츠는 불과 1게임차로 아트랜타 브레이브스에게 내쇼날 리그 결승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다. 2000년도의 성적은 이러했다. (타율.3할 2분 , 타점 103, 홈런 43개.) 뜻박이었다. 신시내티 팀에서 한스를 트레이드 해 달라고 파이레츠와 협상을 하더니 마침내 성사되어 2001년도 부터는 신시내티에서 중견수로 뛰게 되었다. 신시내티 레즈의 중견수가 된 한스! 레즈의 중견수 포스터가 되고 싶다고 맹세하였던 한스 던발, 마침내 그 굼을 이루게 되었다. “이모! 그리고 매기! 나,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되었어, 그래서 나도 조지 포스터가 되는거야! 조지 포스터....” 다음날 신시내티 데일리 뉴스에 실린 한스 던발에 관한 기사는 이러했다. 신문기사: -“마침내, 꿈은 이루어졌다.” 신시내티에 사는 여러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1992년 교교 야구 결승전에서 극적인 이루타로 우승은 물론 난소암으로 죽은 어머니의 꿈을 풀어 주었던 그 소년, 한스 던발을. 바로 그 소년이 마침내 피츠버그에서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여 빅 레즈 머신(Big Reds Machine)을 재현시키려고 한다. 우리의 영원한 중견수 조지 포스터를 닮은 신시내티의 자랑스러운 소년, 한스 던발이 마침내 신시내티의 중심타자가 되었다. 신시내티 데일리 뉴스.- 또 다른 신문 기사: -한스 던발! 한국 여자와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았지만 미국으로 이민와 영어도 못하는 어머니와 같이 피눈물 나는 유아기를 보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죽은 후 한국계 백인 혼혈의 여의사 수지 디메트리우스의 도움으로 오하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를 거쳐 여기 고향, 신신내티로 이적되었다. 이적료와 연봉은 4년 계약에 1200만 달라가 되며 광고료와 모델료를 합치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얻게 된다고 한다. 한스, 던발! 그는 우리 데이톤이 배출한 야구의 영웅이다. 데이톤 뉴스 - * 2001년 4월 3일, 신시내티 레즈는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신시내티 구장에서 서부의 강자 로스앤젤스 다저스와 첫 게임을 하였으며 이 게임에서 정식으로 한스 던발은 소개 되었다. “한스 던발, 중견수, 데이톤과 신시내티가 배출해 낸 야구의 영웅”이라고.... . 16장: 무지개 저편에.... 말리를 다녀온 수지는 그 후 몇 차례 석호 오빠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잘 통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차례 전화 통화도 하고 보니 마음이 평안하였다. 그러나, 풍차는 거꾸로 돌고 있었다. - 1993년 3월말이 되었을 때였다. 정확하게 말리를 다녀 온지 일개월 반이 되는 어느 날부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매달 나오던 월경이 그치고 말았다. “월경이 나오지 않다니...임신을 하였나? 내 나이가 이미 46세가 넘었는데...그렇다면? 아니! 석호 오빠의 애를 가졌나?” 수지는 마음 한구석에 기쁨이 넘쳤다. 말리에서 보낸 며칠로 인해 혹시 애기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으련가....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그녀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소변을 받아 검사를 해 보니 실망스럽게도 음성이었다. “임신이 아니군...아니구먼.” 비록 음성 반응이기는 하나 석호 오빠의 애를 가질 수도 있었다는 그 가능성이 너무나 기뻣다. 모든 것을 그에게 다 주었으며 그로부터 모든 것을 받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벌써, 폐경이 되었나? 그렇다면 나의 청춘은 이것으로 끝이 나는 구나. 와! 이렇게 세월이 흘러 갔나? 허탈하구나...” 수지는 화살같이 흘러간 인생의 한 단면을 느껴 보았다. * 2000년 중순, 매기는 딸을 나았는데 이름을 제인(貞花)이라고 불렀다. 예쁜 아이였는데, 한국-흑인-푸에르토 리코-자마이카의 피를 받은 국제적인 혼혈아로 태어났는데 이 아이를 보면서 수지는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아무리 무지개가 아름답다고는 하나 그것은 멀리 잡히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일 뿐....우리가 잡을 수 없는 피상적인 실제일 뿐이다.’ 애정이 꽃피던 그 시절도 ‘서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그 사랑은 시들어 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 석호로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있었다. 석호는 멀리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갔는지 그로부터 두 달째 소식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초 수지는 자궁 출혈로 인한 자궁 근종 수술을 동료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받았다. 자궁은 물론 두 개의 난소도 적출 되고 보니 영락없는 여성 홀몬이 없는 폐경의 여인이 되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녀의 자궁속에 석호 오빠의 아기를 갖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술후 수지는 우울증과 폐경기 증상으로 잠을 못 이루며 누구에게인가 쫒기는 듯하였으며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하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한스와 매기가 수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수지를 기쁘게 해 주려고 무단히도 노력을 하였으나 허사였다. 석호로부터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에 수지가 받은 편지는 고작 한 통뿐이었으며 마친가지로 수지도 의욕이 없었다. “왜? 소식이 없는가?” 거의 일년동안 편지와전화가 없었다. 2002년 초에 받은 강석호의 편지를 통해 가까스레 그간의 사정을 다소 짐작 할 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편지: “사랑하는 수지에게. 그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였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오늘, 나는 말리의 남쪽에 있는 가나와 토고를 방문하여 그곳 병원에 머물면서 수술을 하게 되었지. 아마도 최소 3-6개월간 그곳에 머무르며 수술을 한 후 다시 말리로 돌아오겠지. 돌아 오는대로 곧 편지를 하리니 수지. 걱정마소. 그리고 의사의 일을 열심히 하소서. 수지. 사랑해. 오빠가.“ 너무나 간단한 편지였으며 그 후 수지는 일체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무슨 일이 있기에? 편지도 안하고...전화도 없담!” 수지는 석호가 야속하였다. 혹시라도 오빠의 사랑이 식었나? 아니면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는가? 많은 궁굼증이 있어 그녀는 다시 말리로 가 사실을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말리로 가 오빠를 만나리라. 무슨 일이 있는가? 혹시 게릴라에게 잡혀서?” 석호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일고 있었다. “제발, 건강하게 버텨 주기라도 한다면...” 수지는 오빠가 더 보고 싶었다. *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여 온 한스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하였다. 조지 포스터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한스로서는 조지 포스터의 기록에 도전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다. 전통대로 신시내티 레즈는 로스앤젤스 다저스와 첫 경기에서 한스 던발이 날린 두 방의 안타에 힘입어 4:3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2001년도 전반기 시즌의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타율 3할 2분 2리, 62타점, 홈런 20개. 7월에 있는 올스타에 선발이 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그를 질시하는 뉴욕과 로스앤젤의 팬들이 몰표를 그들 선수에게 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10월 31일에 끝난 시즌은 아깝게도 1게임차로 아트랜타 브레이브스에게 패하였다. 후회스러운 한해 였지만 한스로서는 최선을 다하였기에 2002년도 시즌을 기대 하는 수 밖에 없었다. * 추운 겨울이 지나, 2002년 봄이 되었다.- 신시내티 팀은 전통적으로 뉴욕 메츠를 상대하여 첫 게임을 신시내티 구장에서 가졌는데 역시 한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1회에 나온 한스는 좌익수로 날라 가는 훌라이 볼로 아웃이 되었으나 3회에 나와서는 2런 홈런을 때렸다. 그리고 8회에서 또 한차례 싱글 힛트를 쳐 2루에 있던 주자를 홈인 시켜 무려 3개의 타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신시내티는 뉴욕 메츠를 7:5로 물리쳐 첫 승리를 맛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레즈는 계속 동부조에서 선두를 달렸으며 올스타 게임에 한스도 선발되었다. 2002년은 신시내티가 마침내 동부 내쇼날 리그의 우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서부 승자 산프란시스코 자이안츠와의 경기에서 아깝게도 강타자 배리 본즈에게 투런 홈런을 얻어 맞으면서 무릎을 끓고 말았다. 아시다시피 본즈는 세계적인 강타자였다. 물론 한스도 이날 경기에서 한 개의 홈런을 때렸으나 불행하게도 싱글 홈런이었는데 비해 본즈의 홈런은 투런이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2002년도 한스의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타율 3할 2부 타점 118개 홈런 46개. 신시내티 데일리 뉴스의 스포츠란에 쓰여진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신문기사: -2002년도 신시내티 레즈! 아까웠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쇼날 리그는 물론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을 할 수가 있었는데... 신시내티가 월드 시리즈에 나가려면 우선 커브와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투수가 하나 더 있어야 하며 한스 던발곽 같은 강타자가 하나 더 있다면 레즈는 1970년대의 그 유명하였던 빅 레즈 머신의 전성기를 만끽하리라. 스포츠 담당 기자.- 아쉬운 2002년은 잊어버리고 결국 2003년도 시즌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다. * 2002년 11월 초-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켄터키 다리의 관망대로 한스와 수지는 함께 찾아갔다. 오하이오강은 구불구불 마치 구렁이가 기어가듯이 인디아나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곳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저 노을이 끝나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느냐구요, 이모?” “그래, 무엇이 있을까?” “한국이 있겠죠. 수지 이모.” “한국? 아냐, 내게는 말리가 있어, 말리(Mali).” “말리라고요? 아- 아프리카?” “그래, 그런데 웬일일까? 말리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이모? 석호 아저씨를 생각하고 있군요?” “엉” “이젠 두분도 결혼식을 올려야겠죠?” “그랬으면 좋으련만...” -사실이 그러했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이따금씩 편지도 오고 전화도 왔었는데 금년에는 전혀 편지도 전화도 없었으니까...단지 말리 병원 당국자의 말로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는 소식뿐이었다. “왜 소식이 없는거죠?” 한스가 물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어. 토고와 가나로 출장을 간다고 한 후부터 전혀 소식이 없으니...그래서 한번 가보려고 해.” “혹시, 테러라도? 아니면 납치라도 당하지 않았을까요?” “나도 그것이 마음에 걸려.” 수지는 마음이 더 더욱 불안해 지고 있었다. * 며칠 후, 수지는 말리 정부에 공식으로 편지를 보내어 석호 오빠의 소재를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어찌된 나라인지 편지도 전화도 공적인 질문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 테러라도 받아 어디에 납치되었나? 아니면 죽지나 않았을까?” 회교 국가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였는데 사실이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납치되어 행방을 모르다가 어느날 갑자기 돈을 가져오라는 협박성 전화를 받게 됨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보통의 일들이었다. “말리로 가야겠다. 오빠를 찾기 위해...오빠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는....” 수지는 말리로 갈 계획을 세웠다. *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마음의 고리였다. 이런 대화가 있은지 4주 후, 수지는 사랑하는 석호 오빠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놀라고 말았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였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수지에게. 그동안 나는 토고와 가나에 가서 외과 수술을 하며 거의 8개월을 보냈어. 워낙 의료 시설이 열악하다보니 할 일이 많았어. 회교도와 기독교의 갈등이 심하였는데 나는 어쩌다가 종교적인 문제에 말려 들었어. 회교도들에 의해 사하라 동북부에 있는 수단이란 나라로 끌려갔어. 강제적으로 나는 수단의 회교도 병원에서 외과 수술을 하였어.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대접은 좋았으나 편지, 그리고 전화는 절대 금물이었어. 그들은 내가 기독교 신자이기에 나를 24시간 간섭하였으며 서신과 전화는 일제 못하게 금하였어, 나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외과 수술을 하였기에 그들은 나를 최고로 대해 주었으며 8개월 후 나는 말리 정부의 항의로 인해 말리로 돌아오게 되었어. 말리 정부는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어. 나는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하였으며 쇠진하였기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놀라운 것은 나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사람도 있다는 거야. 금년 주에 한차례 한국에 갔다가 올까하오.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그러나 약속은 지켜야겠지. 그리고 일년 후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결혼을 합시다. 수지, 사랑하오. 사랑하오. 사랑하오. 내가 수지, 당신에게 할 말은 오직 이것 뿐이야. 이 말은 내가 수지를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였어. 멀리 공도에서 수지가 태어나던 그 날부터였어. 나의 마음속에는 수지, 당신의 모습은 아직도 코 흘리개 소녀,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혼혈의 소녀, 그리고 내 손잡고 학교에 같이 가야 하는 작은 소녀의 모습일 뿐이요. 또 한가지, 수지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은 인생은 덧 없이 흘러 갔다고 생각은 드나 그래도 우리의 인생은 결코 짧은 것 만은 아니었어. 그리고 의미도 있는 값진 인생이었어.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아주 소중한 다이아몬드 같은 귀한 것이었어. 몇 년전, 그대와 나, 미국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하였어. 그리고 그날 저녁, 같이 지나면서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었지. 그러나, 수지, 당신은 당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었어. 꼭 알아야 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그대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알고 싶은 비밀이었다고 하였어. 그리고 그대는 그 비밀을 듣고 난 후 실망과 낙담으로 나와의 결혼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말았지. 그리고 그대는 멀리 멀리 나를 떠나 가 버렸어. 한국으로 돌아 온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었지. 그러나, 내게는 그 비밀이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았어. 단지 네가 태어난 과정이 그 시대에 맞지 않는 비극이었을 뿐이었지.... 그후 나는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였어. 너와 나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수지는 나 없이는 결코 살 수가 없는 어린 아이이기에 나에게 맞겨 달라고... 어느날, 나는 주님의 목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어.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모든 것 헛된 줄 알고 버리네.” 그 후 나는 내가 갖고 있던 명예, 돈, 욕심을 모두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남은 인생을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 주겠다고 예수님께 서원(誓願)을 하였어. 그리고 찾아 간 곳이 바로 아프리카, 말리였어. 왜, 말리냐구? 그건 나도 몰라, 어느 교회에서 신문에 낸 광고를 읽은 것 뿐이었어. “아프리카의 오지, 말리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할 외과 의사를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보면서 나는 “바로 여기로구나.” 나는 수지 너를 잊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어. 그러나 잊으려고 하면 그럴수록 더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었어. * 수지- 여기는 위험한 곳이야. 부디 이곳에 더 이상 오지 말라. 지난번에 찾아 온 그 한번으로 나는 족하구나. 남은 일년만 더 기다려 주기 바래. 그러니 이곳에 오지는 마라. 아프리카. 말리에서. 사랑하는 석호 오빠가.....“- * 편지를 읽은 수지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수단에 잡혀가 8개월 이상을 그곳에서 외과 진료를 하였다니....그래도 몸 성하게 살아 온 것이 다행스러웠다. 예정대로 수지는 말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야 말았다. 처음 갔던 그 길대로 뉴욕, 빠리 그리고 바마코에 도착하여 석호를 만나고 보니 감격의 눈물이 솟았다. 강석호의사는 많이 초최해 보였으나 그래도 의욕적이었으며 수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각오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도의 마지막 달,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수지와 석호에게 있어서는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정확히 1년후 수지와 석호는 한국에서 만나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비록 늦었지만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서 아프리카의 옛 대국, 말리 제국의 겨울은 눈도 없었으며 뜨거운 태양빛에 새로운 약속을 두 사람에게 내려 주고 있는 듯 하였다. 수지는 감사의 기도를 시로 표시하여 보았다. 시: 오직 당신만을.... 혼자만의 노래로/개울 물 되어/당신 만을 옹알대며/ 아래로 흐르면서/ 끼인 때를 씻어내고/ 모난 곳을 갈아내며/ 단련한 마음// 사랑의 밭둑에다/해바리기 키워서/줄기의 혈관을 타고/꼭대기에 올라/ 당신만 바라보는/ 꽃을 피웁니다.// (시인 종파. 이기윤의 시집에서.) 석호 오빠, 오직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오직 당신만을.... 17. 2003년에 생긴 일들. 2003년 정월, 말리에서 돌아 온 수지나 말리에 있는 석호는 모두 금년은 축복 받는 좋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2003년 2월이 되면서 수지는 또다시 불길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말리에 있는 석호로부터 편지가 오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전화 연결이 잘 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국립병원 직원이 일러준 소식이 있었다. “강석호 의사는 세네갈로 파견되어 갔습니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릅니다마는...” “예? 세네갈로요?” “세네갈에 가서 여러군데 지방 병원을 순회하고 와야 한답니다. 그러기에 현재 어느 곳에 있는지 알아보기가 힘들군요.” “어떻게 알아봐 주시면.....” 순간 “툭” 소리가 나며 전화는 끊겼으며 또다시 통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도통 연결이 되지를 않아 할 수없이 단념을 하고야 말았다. 세네갈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 2003년 4월 3일- 전통적으로 신시내티와 피츠버그 파이레츠의 첫 경기가 그레이트 아메리칸 팍(Great American Park)에서 거행되었다. 내쇼날 리그의 우승자인 신시내티팀은 금년에는 월드 시리즈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신시내티와 데이톤의 신문들은 격려를 하고 있었기에 첫 게임은 예상외로 쉽게, 7:1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 경기에서 한스는 중견수로 그리고 4번 타자로 출전하여 1개의 홈런과 한 개의 안타 그리고 한 개의 삼진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수비에서는 아주 힘든 홈런성 안타를 펜스에서 잡아 내었기에 박수 갈채를 받았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작년보다 홈런이 더 쉽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세인트루이스의 맥과이어, 그리고 쉬카고의 새미 소사와 홈런 경쟁에서 불 꽃이 튀고 있었다. 7월초에 벌어진 올 스타 게임에 임하는 한스 던발의 성적은 작년보다 훨씬 좋았다. 타율, 3할 2분 1리, 타점 70, 홈런 28개였다. 그러기에 그의 이름은 “ 이주의 선수, 이달의 선수‘로 스포츠 매가진에 오르내리곤 하였다. * 그러나 수지의 경우는 악화 일로였다. 7월이 되었는데도 말리에 있는 강석호 오빠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수지는 말리로 전화를 걸었으나 대답은 “세네갈에 갔다”“한국에 갔다”라는 대답이었다. “어찌 되었는가? 납치가 되었나?” 걱정이 되어 수지는 마침내 평택으로 전화를 걸었다. “강석호 의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참다못해 수지는 2003년 8월 중순, 말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야 말았다. 역시 뉴욕-빠리 그리고 바마코에 도착하여 국립병원으로 찾아갔으나 대답은 실망적이었다. “강석호 의사는 여기에 없다. 세네갈에 있다. 아니다. 모른다”라는 무책임한 대답뿐이었다. 21세기인데, 이곳 아프리카는 아직도 옛날처럼 살고 있는 듯하였다. 세네갈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하였으나 막연하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수지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며칠 후 오하이오로 돌아 오고 말았다. “제발, 석호 오빠? 무슨 일이 없기를.....” 수지는 마음이 답답하여 데이톤의 목사님을 찾아 갔다. “수지, 하나님게 맞기십시오. 돌보아 주실 겝니다. 분명히...” 그리고 목사님은 수지의 손을 꼭 잡았다. 수지의 눈 가장 자리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 2003년도 프로야구 후반기 시즌은 의외로 신시내티 팀에게 행운이었다. 내쇼날 리그 동부조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한스의 성적도 최상의 콘디숀을 유지하고 있었다. 10월 중순인데도 신시내티는 일찍암치 동부조의 수위가 확정되었으며 서로 치고 받으며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서부조 1위를 확정지은 콜로라도 로키 팀과 내쇼날 리그의 결승전이 벌어졌다. 5전 3 선승으로 결정되어 지는 게임이었다. 게임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1차전: 신시내티 구장, 3:1 신시내티 승리. 2차전: 신시내티 구장, 7:2 신시내티 승리 3차전:콜로라도 구장, 5:3 콜로라도 승리 4차전:콜로라도 구장, 6:2 신시내티 승리 최우수선수: 한스 던발 최우수 투수상:페드로 허난데즈(신시내티) 데이톤 데일리 뉴스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마침내 데이톤이 배출한 야구의 영웅 한스 던발은 신시내티를 내쇼날 리그의 참피온으로 그리고 본인도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 * 문제는 아메리칸 리그의 승자 뉴욕 양키즈와의 결승전인 월드 시리즈였다. 양키즈는 전통의 야구팀으로 월드시리즈의 참피온을 제일 많이 한 팀이며 선수 하나하나가 미국 프로야구의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11월초 월드 시리즈는 신시내티 구장에서 제 일차전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추운 날씨에 때로는 비도 오는 악천후였다. 듣던 대로 뉴욕 양키즈는 막강의 팀으로 투수, 타자들이 프로야구 최고 선수들이었다. 시리즈는 신시내티에서 4게임(1.2.6.7차전), 뉴욕에서 3게임(3.4.5차전)을 하는 7전 4선승제였다. 신시내티는 물론 뉴욕, 아니 온 미국 전역이 떠들썩하였으며 일간 신문들은 각 팀의 투수진과 타력을 상세하게 비교 분석을 하였다.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은 6:4로 뉴욕 양키즈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여섯 번째 게임인 신시내티 구장에서 뉴욕 양키즈가 승리를 하여 샴페인을 터트리리라고 예측을 하였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고 있었다. 제 1차 게임: -첫 게임은 예상대로 팽팽한 투수전으로 시작되었다. 양키즈와 신시내티의 선발 투수들은 사력을 다해 공을 던지고 있었기에 좀처럼 점수가 나지를 않았으나 5회가 되면서 먼저 무너진 것은 신시내티팀(레즈)이었다. 양키즈의 강타자 지터와 로드리게즈의 연속안타와 레즈의 내야 실책에 의해 레즈는 무려 3점을 주고 말았다. 구장은 일순간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레즈도 분발하였는지 연이은 공격에서 한스를 포함한 6명의 선수가 나와 2루타, 그리고 두 개의 싱글을 퍼붓고 역시 3점을 만드니 승부는 다시 3:3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투수를 바꾼 두 팀은 역시 투수전으로 점수가 나지를 않았다. 이날의 영웅은 역시 한스 던발이었다. 8회 말 1사후에 한스는 방맹이를 들고 나와 통렬한 싱글 홈런을 터뜨렸으며 결국 이 한 점이 승점이 되었다. 4:3으로 신시내티 레즈가 예상을 깨고 첫승을 거두었다. 제 2차 게임: -일차전에서 역전승한 레즈팀의 선수들의 사기는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막강의 양키즈는 레즈 투수의 강속구에 눌려 방맹이를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신시내티에게 5:1로 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역시 한스는 한 개의 안타와 2개의 고의성 포볼을 얻었으며 한 개의 데드볼을 얻었다. 제 3차 게임: - 3차전은 뉴욕 브롱스에 있는 양키즈 구장에서 양키즈의 복수전으로 끝나고 말았다. 뉴욕으로서는 필사적으로 싸운 추격전이었기에 선수들 하나하나가 모두 열심이었음은 물론 관중들도 소란스럽게 응원을 하였다. 4:1로 신시내티를 일축해 버렸다. 이번 게임에서 한스는 치욕적인 게임으로 싱글 안타 하나에 두 개의 삼진 아웃 그리고 한 개의 범타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제 4차전 게임: 사기가 오른 뉴욕 양키팀에게 힘 한번 못쓰고 신시내티는 무릎을 끒고 말은 아주 싱거운 게임이었다. 양키 투수의 호투에 눌려 겨우 안타 3개를 뽑아 냈으나 그것도 산발이었으며 한스는 안타 한 개에 두 개의 삼진 아웃을 당하였으며 신시내티는 뉴욕에게 영패를 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적은 2:2 가 되고 보니 다시 시작하는 시리즈가 되고 만 셈이었으며 뉴욕에서의 5차전에 진다면 남어지 2게임을 홈에서 이겨야 하는 큰 부담이 생기게 되었다. “한 게임이라도 이겨야 한다! 뉴욕에서!” 감독은 큰 소리로 격려 하였으나 신시내티팀은 사가기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제 5차전 게임: 너무나 뜻밖의 사람이 신시내티 선수들을 찾아왔는데 그는 다름 아닌 1970년대, 전설같은 레즈의 코치였던 스파키 앤더슨(Sparky Anderson)의 방문과 그의 격려였다. “게임에 저도 좋다. 그러나 이기는 것이 더 좋다. 생각해 보라, 신시내티, 빅 레즈 머신을! 그러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뿐인가? 그는 한스에게 닥아와 특별한 격려를 하였다. “한스? 자네는 조지 포스터를 좋아 한다고 하였지? 조지 포스터를...” “그렇습니다. 감독님.” “그렇다면 그의 기록을 깨거라! 너는 깰 수 있어, 알겠느냐?” “”예.“ 그 후에 시작된 제 5차 경기는 정신력의 게임이었듯이 레즈는 양키즈를 4:0, 셧 아웃 시키고 말았다. 뉴욕 타임즈와 데일리 뉴스는 스포츠 톱기사로 이렇게 기술하였다. -뉴욕 양키즈, 치욕의 패배를 당하다. 그 패배의 원인은 해이한 정신력이었다. 신시내티의 정신력...가공할 공격을 이끌어 내었다. 한스 던발, 그가 때린 투런 홈런은 양키즈를 무참하게 밟아 버렸다. - 제 6차전 게임: 방심은 금물이라고 하였듯이 신시내티에서 벌어진 제 6차전은 치열한 투수전으로 진행되다가 8. 9회에서 홈런을 주고 받으면서 1:2로 뉴욕에게 패배하고 말았으며 시리즈 전적은 3:3으로 비기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한스는 무안할 정도로 저조하여 두 개의 삼진과 1개의 범타를 기록하였을 뿐이다. 제 7차전 게임: 월드 시리즈 마지막 경기는 한 게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게임 그리고 일년을 마무리 짖는 의미 깊은 게임이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반드시!” 신시내티는 물론 인근의 도시, 데이톤, 인디아나폴리스, 콜럼브스 그리고 켄터키의 작은 도시들까지도 들썩 거렸다. “자! 마지막 게임이야, 한스!” 수지와 매기는 한스의 손을 꼭 잡고 격려를 하였다. 문득 한스의 머릿속에 1992년에 있었던 고교 야구 결승전 게임이 생각났다. (-병든 어머니는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긴박한 사정이었는데 한스는 시니내티 구장으로 부 코치를 다라갔다. 숨을 헐떡이는 어머니를 중환자 실에 남겨두고 야구장으로 온 한스는 ‘운명할지도 모르니 어머니를 위해 홈런을 한방 날리거라!“라고 부탁하던 코치의 격려가 기억에 났다. 그런 상황에서 한스는 회심의 한방을 날린 것이 바로 결승 2 루타였으며 데이톤 고교는 정상에 우뚝섰었다. “한스 던발, 최우수 선수! 최우수 선수!”) 과연 월드시리즈 제 7차전(마지막 게임)을 응원하러 찾아 온 관중들로 인해 신시내티 구장은 입추에 여지도 없이 만원이었으며 미국의 3대 TV방송사와 지방 방송사, 그리고 스포츠 기자들로 인해 전 미국의 초점이 되고 있었다. 마침내,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의 승자 뉴욕, 양키즈와 내쇼날 리그의 승자, 신시내티 레즈의 게임을 시작합니다”라는 소개가 있은 후 양키즈의 공격으로 게임은 시작되었다.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의 직구. 커브, 슬라이더, 넉클 볼등...볼의 변화구에 타자들은 감히 방맹이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취점은 3 회초에 뉴욕 양키즈가 취하였으며 4회초에 또 한 점을 얻어 2:0으로 유리하게 게임을 이끌고 있었다. 좀처럼 안타를 치지 못하던 한스는 마침내 7회말, 4구로 가까스레 1루에 나간 주자를 두고 힘 껒 친 볼은 2 루타가 되었으며 한스는 힘을 다하여 달려 일 점을 만회하는가 했는데 연이어 생긴 유격수의 실책으로 한스는 3루로 달려가 세이프가 되었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친 희생 후라이 볼로 인해 한스는 홈으로 달려 들어와 2:2 동점을 만들고 말았다. 신시내티 구장은 환성의 도가니가 되었으며 패배를 목전에 둔 레즈팀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저력의 양키즈는 11회초에 로드리게즈의 홈런으로 인해 3:2로 앞서기 시작하였다. 신시내티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하였다. “혹시, 지지나 않을까?” 관중들은 불안하였으며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11회말--, 1점을 뒤지고 있는 레즈의 마지막 공격에 처음으로 나온 타자는 힘없이 삼진으로 아웃이 되고 보니 “질지도 모른다?‘라는 의구심이 더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타자는 운 좋게도 훠볼(4구)로 인해, 1 루로 진출하였다. 한 가닥의 희망을 갖고 관중들은 환성을 지르며 응원을 하였다. 그러나 다음 타자는 2루 앞으로 가는 땅볼로 인해 주자는 2루에 도달하기 전에 죽었으며 가까스레 주자는 1루에서 세입이 되었다. “다음 타자는 한스 던발입니다.” “와! 와!” 관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11회말, 주자는 일루에 그리고 투 아웃이기에 여기에서 점 수룰 못 낸다면 경기는 끝나며 게임은 완전히 지는 셈이었기에 투수나 타자나 똑같이 마음이 무거운 한 방의 승부였다. 한스는 뱉트를 들고 나와 양키즈 투수를 뚫어지게 바라다 보았다. 잠시 후 볼 카운트는 3:2가 되었다. 이젠 ‘아웃이냐 안타냐? 죽느냐? 사느냐? 이기느냐? 지느냐?. 기로에 서있었다. 투수도 역시 크게 부담을 느끼는지 양키즈 투수는 투수 코치를 바라다 보았다. 그 순간 양키즈 감독은 운동장으로 뛰어 나오더니 투수 교체를 하였는데 다시 나온 투수는 시속 96-100마일로 던지는 괴물 투수 ‘구스 가세지(Goose Gossege)'였다. “아-!” 한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까지 구스 가세지의 볼을 제대로 맞춰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꼼짝 없이 삼진 아웃이 되려나? 아냐! 아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그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안타를 치자!” 그 순간 한스에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스? 엄마다! 엄마. 기억나지? 1992년의 그 날, 고교 야구 결승전에서 너는 결승 안타를 쳤어. 나를 위하여..한스야? 기억나지?“ “어머니! 어머니! 하겠습니다.” 한스는 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한스는 괴물 투수 가세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던져라! 가세지! 그래 내가 쳐주마!” 괴물 투수 가세지는 시속 98마일의 직구를 가운데를 향해 던졌다. “죽던지, 살던지...” 한스는 힘껒 공을 향해 빼트를 휘둘렀다. 순간 공이 아주 크게 보였기에 공을 맞추기가 쉽다고 생각이 들었다. “딱---”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중견수의 머리를 넘어 담장 밖으로 떨어졌다. 투런 홈런이었다. “와! 와!” 신시내티 새 구장은 하늘을 찌르는 함성으로 뒤 덮혔다. 7차전, 아니 시리즈는 한스 던발의 홈런 한방에 의해 신시내티 레즈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챔피온이 되었다. 양키즈 선수들은 고개를 떨구었으며 어느 선수는 울고 있었다. 반대로 레즈선수와 관중들은 모자를 던지기도 하며 폭죽을 터트리며 좋아 하였다. 그 순간 전광판에는 ‘2003년도 월드 시리즈 우승팀, 신시내티 레즈’‘최우수 선수, 한스 던발’이라고 쓰여 있었다. 전광판을 바라다 본 한스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축하합니다. 최 우수 선수 한스 던발! 소감을 말해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쁨니다. 이 기쁜 소식을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돌립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이 었습니다. 아버지도 없는 나를 길러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價値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비록 배운 것도 없이 한국에서 온 볼 품 없는 여인이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전부였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대견합니다. 모든 것이 어머니 때문이었으니까요..어머니!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예? 모든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고요? 축하합니다.” 아나운서는 큰 소리로 축하해 주었다. “하아안스 하아안스” 관중들은 소리를 쳤다. 마침내 한스는 덕 아웃에서 나와 관중들을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다. “더어언바알- 던발- 더언바알-” 이날 밤, 월드 시리즈를 구경한 관중들은 물론 이 경기를 밤 늦게 까지 지켜 본 일억이 넘는 미국 사람들은 한스 던발의 소감을 듣고는 숙연하였다. -한국 사람의 피를 받은 흑인 혼혈, 한스 던발은 마침내 2억 5천만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한스 던발, 그는 6피트 3인치의 키에 195파운드의 체중을 가지고 있으며 2003년도 시즌에 그는 타율 3할 2푼 2리, 타점 149, 그리고 52개의 홈런을 날렸는데 이 기록은 1977년 조지 포스터가 최우수 선수가 되던 그해의 기록과 아주 유사하였다. 18장. 고국에 찾아 와서. (마침내 이 소설의 원점, 제 1장으로 돌아가 보자.) 2003년도 프로 야구의 최우수 선수가 된 한스 던발에 대한 신문 기사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알려 지게 되니 한스는 일약 야구의 영웅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뿐인가, 한스와 이모 수지 디메트리우스는 한국 정부와 사회 단체에 의해 공식으로 초청을 받아 2004년 2월 14일, 한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다음날인 2월 15일을 ‘한스 던발의 날’이라고 선포하였다. 한스와 수지의 고국 방문은 분명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과거에는 흑인이던 백인이던 혼혈아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차별을 하였기에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으며 직장을 잡기는 더 더욱 힘들었다. -“한스처럼 야구에 성공하면 인종의 벽도 헐게 된다!“ ”돈도 많이 벌게 된다.“ 한스는 생각보다 더 자주 TV, 방송 그리고 신문에 출연하는가 하면 강연회에도 나가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 야구의 영웅으로 성공하게 된 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가 받은 대접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 받은 대가는 천문학적이었다.- 어쨋거나 혼혈에 대한 인식은 훨씬 잘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머리를 흑인처럼 하고 다니는 청소년은 볼 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갈색이나 금발로 염색한 경우는 많이 볼 수 있듯이 아직도 같은 값이면 백인과의 혼혈을 선호하고 있었다. * 수지에게 있어서 이번 방문은 그녀가 꼭 해결하여야 할 일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는 수지를 나아준 어머니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수지의 어머니.... 백인 병사에 의해 강간을 당하여 수지를 임신한 후 양색씨가 되었다가 수원에 사는 김씨와 결혼하였다고 하는 어머니... 1971년 입양 10년만에 어머니를 찾아 왔으나, 어머니는 딸 수지를 외면하였다. 그리고 그 후, 어머니는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같이 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머니를 만나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한국으로 와 수지는 TV와 라디오에 출연 할 때마다 “어머니를 찾습니다.”라고 호소를 하였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어머니를 반드시 만나리라고 기대를 하였다. 두 번째는 강석호 오빠를 만나는 것은 물론 그와 더불어 결혼을 꼭 하겠다고 하는 일이었다. -“석호 오빠를 만나 결혼을 하는거다!” 한국에 돌아 온 수지의 머리 속에는 34년 전인 1961년으로 다시 돌아 온 듯하였다. 마치 화성에 갔다가 돌아 온 우주 비행사와 같았다. 아니 죽음에 임박하여 냉동 처리하였다가 34년만에 다시 냉동에서 살아난 어느 사람과도 같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은 안성군 공도면, 그리고 그곳을 흐르던 안성천과 들판에 여기저기 서 있던 그 노적가리들이 그녀의 눈에서 아른 거렸다. 더 더욱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보잘 것 없었던 공도의 집과 그녀의 앞 집에서 같이 놀던 석호 오빠와 그의 어머니, 강씨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1971년, 미국으로 입양된지 10년만에 한국에 찾아와 어머니를 만나려고 하였던 그 모습이었다.) *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소식이 없었으며 석호 오빠로 부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에 수지는 점점 우울해지고 있었다. “아- 웬일일까? 어머니도 그리고 석호 오빠도 나를 외면하다니..‘ 수지는 울 것만 같았다. 아니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석호 오빠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2주...3주...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 “어머니! 오빠!” 나를 만나 주세요! 나를!“ 수지는 호텔에서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4주가 되던 날, 아침--- “강석호 의사가 평택에 있는 평택 외과 병원에 와 있다고 하던군요.” 여행사 직원이 수지에게 큰 소리로 알려 주었다. “예? 평택에? 석호 오빠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공도에 있는 고향 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여 놓았습니다. 수지씨!” “예! 공도에서? 석호 오빠를 만나게 된다고요? 석호 오빠를?” 수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석호 오빠는 말리에 있다고 하였는데...여기에 와 있다니.. 왜, 여기에? 언제부터? 의문 투성이였다.) 여행사 직원의 차를 타고 수지는 서울을 벗어나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마치 오하이오의 75번 고속도로를 달려 데이톤에서 신시내티를 지나 켄터키로 간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한국! 공도로 가는 길에서 본 주변은 몰라보게 변하였는데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고층 건물과 아피트 단지가 여기 저기에 건설되어 있었다. 평택에서 안성쪽으로 빠져 나와 옛 고향 공도에 도착하고 보니 공도는 완전히 변한 도시였으며 수지가 살았던 옛집은 온데 간데 없었으며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행사 직원이 안내하여 준 다방에 가보니 수지를 기다리는 일행이 있었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강석호 오빠는 안보였다. “강석호 오빠는 왜 안 보이는가요?” 수지는 급한 마음으로 물었다. “강석호 선생님은 오지 않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먼저 말을 꺼내면서 자기를 소개하였는데 그는 평택 외과 병원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무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얌전하게 생긴 간호사기 앉아 있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강석호 의사를 존경하고 있음을 이내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강석호 원장님은 아직도 말리에 계십니다. 그리고 내달에 아마 귀국할지 모릅니다. 5년간의 임무를 끝 맞치고.....” 사무장은 계속하여 강석호 원장의 근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예? 말리에 아직 있다고요? 여기에 계신다고 하여 일부러 달려 왔는데 우리들을 속이시나요?”여행사 직원은 언성을 높였다. “아닙니다. 속인 적은 없습니다. 정말로 그는 말리에 계십니다.” 사무장은 정중하게 대답을 하였다. “말리에? 한국이 아니고?” “그렇습니다.” 사무장은 다시 공손하게 대답을 하였다. “건강한지요? 아프리카에서?” “예, 얼마 전에 들은 말로는 건강하답니다. 세네칼에 가 수술을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이번에는 간호원이 옆에서 대답을 하였다. “감사합니다.” 수지는 서운하였으나 그래도 잘 있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결국 헛수고 였으며 여행사직원이 잘못 소식을 전한 결과였기에 여행사 직원은 미안하다고 거듭 거듭 사과를 하였다. * 서울로 다시 올라온 수지는 그날 저녁 호텔 방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내일 아침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수원에 가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를 꼭 만나보고 가리라.....” 수지는 어머니가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밤새 생각해 본 어머니는 불쌍한 여인이었다. (한국 전쟁의 와중에 백인 병사에게 강간을 당해 보기도 싫고 저주 받을 혼혈아를 낳은 그녀의 어머니는 결코 죄를 지은 여인이 아니라 가련한 피해자 일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혼혈아인 수지는 어머니의 앞날을 망친 암적인 존재였다고 생각을 하니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뿐이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다. 나로 인해 생긴 어머니의 불행이었어요. 용서 해 주세요. 어머니를 이해 할 것 같아요. 용서해 주세요.” 만나 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하기보다 나로 인해 받았던 어머나의 불행을 용서해 달라고 빌고 나니 수지는 오히려 잠을 잘 수가 있었는데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수지는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갔다. 남문(南門)옆에서 쌀 가개를 하는 김씨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던 말이 기억에 있었기에 근처에 있는 쌀 가개를 찾아 보았다. “아- 김씨 아저씨? 전 주인 말이군요? 벌써 5 년전에 가개를 팔고 어디론가 갔는데 소식을 알 길이 없군요.” 그뿐인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아-김씨 아저씨? 갑작스레 죽었다고 하던군..그래서 어머니는 과부가 되어 다시 공도로 갔다고 하던데...그후에 아는 사람이 없군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수지는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다 보며 한 숨을 쉬었다. * “아-어머니?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은데. 어디로 갔어요? 공도로? 아니면?” 수지는 택시를 타고 공도로 달려갔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았으며 미국으로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옛 고향을 보고 싶어서 였다. 비록 안성과 공도는 현대식으로 변하였지만 안성천은 그래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3월초의 안성은 다소 추웠다. -어머니! 나는 이 시냇가에서 석호 오빠와 같이 미역도 감고 고기도 잡았어. 언젠가 거머리에 물렸을 때, 오빠는 거머리를 떼어 주며 피나는 부위를 입으로 쪽쪽 빨아 주었어. 거머리의 독을 뽑아 낸다고, 어머니!“ 국민학교(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말끔히 초장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학교 건물은 온데 간데 없어졌으며 그곳에 큰 건물들이 들어 서 있었다. -어머니! 나는 이 거리에서 남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곤 하였어. 아이노꼬, 튀기라고 부르면서 어떤 아이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곤 하였어. 그 때마다 오빠가 나를 구해 주었어, ‘야 이놈들아! 돌을 던지지 말아! 내 동생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라고 오빠는 외치면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었지. 오빠가...- 수지는 홀로 공도의 길을 걸어 보았다. 왜냐하면,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찾아 온 조국, 한국에 찾아 온 수지는 어머니도 못 만나고 석호 오빠마저도 못 만났으니 수지로서는 세 번째 당하는 모욕이요 배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더 이상 한국은 나의 조국이 아니다. 한국은 나를 세 번씩이나 버리고 배신하였어, 결국 나의 조국, 아니 내가 살아야 할 곳은 한국이 아니요 미국이다. 그래, 켄터키와 오하이오일 뿐이다. 이번에 가면, 다시는 켄터키 다리에 가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관망대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다 보지도 않으리라. 어머니도, 석호 오빠도 못 만나다니....아, 아- 오빠, 어머니! 어디에 있소. 어디에?- 서울로 올라온 수지는 호텔 침대에 머리를 박고 울고 또 울었다. 오늘도 한스는 혼혈아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 때문에 늦게 들어 온다고 하였다. 19장. 무지개 저 편에, 무엇이 있을까? 비록 수지와 한스는 대한민국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고는 하나 수지에게는 기쁨보다는 안타까움 뿐이기에 어서 속히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머니와 석호 오빠, 어느 누구도 만나지를 못하고 이틀 후에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이틀 후면 한국을 떠나야한다! 안간다면 어찌되나?” 수지는 남 몰래 소리를 질러 보았다. 이토록 허무하게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 안타까웠으며 억울하였기에, 한번 더, 평택 병원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수지는 평택 병원에 있는 의사, 간호사들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수지의 방문을 받은 평택 병원의 의사, 간호사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강석호 선생님은 여기에 안 계십니다. 아직도 아프리카, 말리에 계십니다. 금년 9월경에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앵무새처럼 똑 같은 대답들을 하고 있었다. “말리에 있다고요?” 수지는 어디에서인가 강석호 오빠가 달려 올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으나 석호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 시골 도시의 다방에도 은은한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랑과 슬픔을 표현한 애절한 가요를 들으며 차 한잔을 마시는 동안 수지는 지난 40년을 함초롬히 느끼고 있었다. 낙담과 한숨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지에게 중년의 간호사, 김순애씨가 들려준 평택 외과 병원은 이렇게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젊은 외과 전문의사 강석호가 서울을 버리고 평택(시골)에 와서 병원을 개설하였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다고 한다. (“아니, 젊은 외과 의사가 왜, 시골로 와서 고생을 하나? 서울에 가서 돈을 벌어 좋은 집 사고 예쁜 규수와 결혼을 하여 떵떵거리고 살 일이지...바보처럼, 시골로 오다니...” 그뿐인가? 몇 년후. 평택 외과 병원과 강석호 의사의 소문이 좋게 나기 시작하면서 인근 서정리 안성 등지에 있는 많은 환자들이 찾아 왔다. 뿐만 아니라 외과 병원도 점점 규모가 커졌으며 또 다른 외과 의사와 간호사들을 더 고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석호 의사에 대한 뜬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원장이란 사람말여.. 왜 혼자 사는거지? 장가는 안가고?” “어- 그게 이유가 있다는 구먼. 사랑하는 여자가 멀리 미국으로 입양되어 갔는데, 아직도 그녀를 기다린다는 구먼...” “입양을?” “아-그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튀기라고 하던데...” “예? 튀기?” 그러나 강석호 의사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알게 된 주민들은 마침내 그를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아- 강석호 의사님? 정말 훌륭하군요. 외과 실력도 좋지만 온유하며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군요.” “그렇소! 강석호 의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슈바이쳐 박사랍니다.”) 40이 갖 넘은 김순애 간호원은 말을 이었다. “수지씨? 저는 22살의 나이로 이곳 평택 병원에서 간호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강석호 의사님을 남몰래 사랑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저도 결혼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단지 강석호 의사님 곁에서 같이 일을 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석호 의사님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다소 실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그녀를 단념하리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그는 정말로 그 여인을 기다리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수지, 당신인 것을 알았을 때 질투가 생겼습니다. 어느듯 5년, 아프리카 말리로 간다고 하였을 때 저는 깜짝 놀랐으며 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프리카로 갔을 때, 저는 분명히 느꼈답니다. ‘나는 아니다. 강석호 의사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혼혈의 여인, 수지라는 사람뿐이다’라고요. 그런데 오늘 나는 그것을 또 다시 느꼈답니다. 수지씨의 마음 속에도 오로지 강석호 의사뿐이니까요....” “김순애씨? 아니 간호사님도 강석호 오빠를 사랑한다고요?” “아- 아니? 아닙니다. 강석호 의사는 오로지 수지 당신만을...사랑한답니다.” 김순애 간호사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김순애 간호사...그녀도 석호 오빠를 사랑한다니...” 수지는 서울로 올라오면서 오늘 다방에서 만났던 김순애 간호사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석호 오빠가 여기 김순애 간호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를 피하고 있는게 아닌가?” * 수지는 호텔방에 누어 있을 뿐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았다. 차라리 한스와 같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웬일일까? 수지는 강석호 오빠가 이곳 평택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였다. “혹시, 평택 병원 사람들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김순애 간호사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에? 아닐거야? ” 그리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다. 내일 모래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리고 석호 오빠를 만나지도 못한 수지는 힘없이 이른 아침에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 이젠 나와는 인연이 없는 나라가 되는 셈이다. 나와는 인연이 없어. 나는 이젠 미국 사람일뿐...한국사람은 아니다!” 수..지.는 한국과의 인연을 모두 끊고 미국 사람이 되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 그 순간.....수지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강석호 오빠로부터 온 전화였다. “수지? 나, 석호 오빠야, 석호.” “예? 석호 오빠? 지금 오빠는 어디에 있어? 어디에?” “수지, 나, 지금, 한국에 있어. 그리고 나, 수지 네가 온 것을 알고 있어. 자랑스러워.” “오빠? 왜, 나를 만나지 않는 거야? 왜?”“ “수지. 나, 너를 보고 싶어. 그러나 너를 만날 수가 없어.” “만날 수가 없다고? 왜? ” “이번에 만나지 말고 그냥 가거라. 다음에 만나자. 수지.” “오빠? 무슨 말을 하는거야! 오빠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어.” “알고 있어. 수지,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거라. 켄터키로...아니 오하이오로...” “오빠! 그건 안돼! 그리고, 오빠? 나의 어머니는 어찌 되었어. 나의 어머니?” “어, 너의 어머니? 6개월 전에 돌아 가셨어. 내가 말리에 있는 동안에...” “오빠?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래, 너를 보고 싶다고 ...이름만 부르다가....” “묘지는 어디에 있어?” “죄 지은게 많다고 화장하여 안성천에 뿌려 달라고 하여 그렇게 해 주었대.” “아- 맙소사. 오빠. 그런데 오빠는 나를 왜 못 보겠다는 거야?” “나, 너를 많이 보았어. 너 참 예쁘더구나, 그러니까, 그냥 미국으로 가거라. 다음에 그곳에서 만나자.” “그냥 가라고? ” “그래, 그냥가거라. 나는 너를 내 마음 속에 간직하겠어. 영원히 죽을 때 까지...” “오빠! 안돼!” 수지가 소리를 치는 순간 전화는 딸깍 끊어지고 말았다. “아니- 아니- 전화가?” 끊긴 전화기를 들고 수지는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 수지는 평택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석호 오빠는 평택에 있을 거리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택 병원에서 수지는 또 다시 김순애 간호사를 만나 석호 오빠의 전화 통화를 알려 주었다. 김순애 간호사는 흠찢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잘 모른다”라고 말하였다. 수지는 울면서 애원하였다. “김 간호사님? 분명 석호 오빠는 여기에 있을 겝니다. 여기에...” “모릅니다. 강석호 의사는 말리에서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없습니다. 분명코....” 김순애 간호사도 울먹이며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전화는 말리에서 온 전화였군요? 말리에서....” “.............” 김순애 간호사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김 순애 간호사님! 안녕히 계십시오.” 석호 오빠는 이곳 평택에 있는 것이 확실 한 듯 하였으나 누구도 알려 주지 않으니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배신을 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 김순애 간호사는 알고 있을 텐데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석호 오빠가 오히려 더 원망스러웠다. * 평택 병원을 빠져 나온 수지는 택시를 타고 고속 뻐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길에 평택 미군기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오하이오나 켄터키에서 흔히 보던 건장한 미군 사병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는데 그들이 입은 군복에 미국 육군(US Army)이라고 쓰인 글자를 보면서 번뜩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 미국 육군? 미군?” - 52년 전이었다. 어느 늦은 저녁, 술을 마신 후 욕정을 참지 못하고 총을 들고 공도로 쳐들어와 죄 없는 처녀를 겁탈 하였던 그 백인과 흑인 병사들을 눈으로 다시 보는 듯 하였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출생한 “원치 않은 혼혈의 아이‘가 수지 앞에서 울고 있는 듯 하였다. 흑인 혼혈의 아이와 백인 혼혈의 아이, 그리고 강간을 당한 어느 처녀가 울면서 울고 있는 아이를 잡으러 쫒아 오는 듯 하였다.- * 호텔로 돌아 온 수지는 마침내 한국을 포기하고 짐을 싸고 말았다. 더 이상 한국에 머문다는 것은 고역일 뿐이었다. 한스의 일정도 끝났으니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오하이오 강가에 아름답게 나타나곤 하였던 그 무지개를 다시 보고 싶었으며 옥수수, 밀 그리고 담배가 자라는 켄터키 옛 집이 그리웠다. * 3월 15일 오후 3시,- 수지와 한스는 로스앤젤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 나온 신문의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 야구의 영웅, 한스 던발과 수지 포스터 디메트리우스의 한국 방문은 많은 혼혈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야구의 영웅 한스와 이모 수지 디메트리우스는 오늘 오후 비행기 편으로 미국으로 돌아 간다. - 인천 공항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환송을 하여 주었다. 대단한 환송이었다. 라디오, 신문 그리고 텔레비존 방송에서 나온 기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수지와 한스에게 취재를 하였다. -“야구의 영웅, 한스씨?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떻습니까? “한국요? 나는 이제 한국을 나의 조국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시 올 겁니다. 와서 혼혈아동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겠습니다.” 한스는 웃으면서 당당하게 말하였다.- -“수지 의사님? 한국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국에 와서 어머니와 오빠를 만나셨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쁘셨습니까?” “............................” “한국? 사랑하시죠? 조국으로?” “......................” 수지는 대답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어머니와 오빠를 만나고 보니 너무나 행복하여 울기만 하시는 군요? 어쨋든 잘 가시고, 다시 오세요. 수지씨?” “........................” 수지는 대답을 못하고 역시 울기만 하였다.- * 수지와 한스는 마침내 비행기 표를 들고 비행기 속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4
전체:
59,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