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문도에 핀 동백꽃 제 5부

2012.02.02 14:00

연규호 조회 수:603 추천:28

11장. 우울증 환자로 만나다니! 그리고 2003년 3월의 사건들을 계속해 보자.- * 그리고 보니 닥터.강은 지난 며칠 사이에 너무나도 뜻밖의 큰 사건들로 인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1969년 7월20일, 월남 달라트에서 헤여진 닌의 동생, 퀴와 닌의 아들이라고 하는 제임스 누엔(James Nguyen)을 만나게 된 것도 눈물겨운 사건이었는데, 1969년 7월20일날, 마크와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순해를 이렇게 정신과 병동에서 우울증 환자로 만나게 된 것은 더 현실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닥터.강은 최근 며칠 동안,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몹시 피곤하며 한탄과 원망뿐이었다. "아니! 그토록 아름다웠던 순해가 바로 저 말도 없으며 표정도 없는 우울증 환자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아침 일찍 닥터.강은 브레아 정신병원으로 로즈(순해)를 보기 위하여 찾아갔다. 역시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더러운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로즈? 아니, 순해! 나. 나. 강석호 오빠야! 오빠. 알아보겠니? 나를? 청주에 살던 오빠란 말야!" 그러나 로즈(순해)는 물끄러미 바라다만 볼 뿐 전혀 말이 없었다. 알아보는 듯도 하였으며 반대로 아주 모르는 듯도 하였기에 안타까웠다. 얼굴은 며칠째 씻지를 안 했는지 더덕더덕 때가 끼었으며 눈가에는 안질에 걸렸는지 눈껍이 붙어 있어 마치 고아원에서 온 소녀처럼 보였다. 소변을 침대에 흘렸는지 찌린내가 나는 듯 하였으며 악취도 나고 있었다. "순해야? 나야! 나, 석호 오빠! 나를 몰라보겠니? " 그러나 순해의 눈은 아직도 눈먼 고기같아 보였다. 초점을 잃고 멍하니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러웠다. "아! 아!' 이 사람이 순해란 말인가? 아! " 순해는 아주 바보같이 퇴행되었으며 사람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동물처럼 보였다. 너무나 우울증이 심하였다는 말이다. * 마침내 닥터.강은 울분이 솟구치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사랑했던 순해의 모습이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니..... 뜻밖에도 그 울분은 로즈(순해)의 남편인 마크에게 향하고 말았다. 닥터.강은 마크 맥.나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브레아 정신병원 앞에 있는 데니 레스트랑에서 만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아주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다. "마크? 나의 마음은 찢어지도록 아픔니다. 순해는 당신의 아내이지만 나의 연인입니다. 돌계단을 걸으며 사랑하였던 여인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요. 분명히 당신은 우리가 월남에 있을 때 편지를 보내어 '순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 라고 약속을 하였는데....이게 뭡니까? 우울증으로 마치 바보처럼 말도 없이 나를 보고도 모르니 말입니다. 어찌 된거요?" 강석호의 강력한 항의에 마크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말좀 해보소! 마크?" 얼마후 마크는 고개를 들더니 용서를 구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물론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된 것은 닥터.강이나 멀리 한국에 있는 김종일 의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이 순해를 진정으로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면 그녀를 홀로 한국에 남겨두고 월남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순해는 잘 알다시피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살았으며 오빠마저 멀리 월남에 가서 전사를 하였기에 그녀는 늘 외로움 속에서 누구인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성격이 되었지요. 비록 김종일 의사와 결혼을 약속하였지만 그가 월남에 가 있는 동안, 그녀는 늘 불안함 속에서 살았지요. 그러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겆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그녀는 김종일 의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멀리 월남에 있었지요. 물론 그녀는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나보죠.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으며 마침 그곳에 있던 나를 택하고 말았지요. 나는 그녀가 진심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지금까지 강석호. 김종일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면에서 나는 피해자란 말입니다. 어찌 보면 속았다고도 볼 수 있고요. " "피해자? 그리고 속았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순해와 마크의 결혼은 이렇게 되어 이루어 졌다고 마크는 설명을 하여 주었다. (1968년 3월, 대학을 졸업한 순해는 미 공보원에 취직을 하였으며 은밀하게 김종일 중위와 데이트를 하였으며 마침내 결혼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성민 오빠와 그의 애인이었던 '민현숙 언니'를 생각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김종일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안정을 찾은 듯 하였는데 김종일 중위가 월남으로 자원하면서 또다시 우울하기 시작하였다. 약혼자 김중위가 월남에 가있는 사이에 미국에 있던 마크가 한국으로 나와 가끔 순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부모, 오빠 그리고 선배인 현숙의 죽음이 엄습하여 왔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맥.나이트 신부가 그녀를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크의 친절과 보호로 인해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서 다소 회복을 하게 되었으며 결국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1969년 7월 20일, 그들은 결혼을 한지 삼일 후 그들은 뉴욕으로 와 신혼 살림을 하였다. 그러나 일은 점점 더 삐뚤어지고 있었다. 순해는 딸을 나은 후부터 더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병원을 드나들게 되었다. 마크는 그녀를 위해 복잡한 뉴욕을 벗어나 한가한 칼리포니아 옥스나드로 이주를 하여 시골 사람들 처럼 살았다. 꽃을 재배하였으며 시아버지가 봉직하는 성공회당에서 일도 하며 미술 공부를 계속하였다. 남편 마크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으며 아내를 정신과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진료하게 하였으며 그는 갈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였다. 사실, 마크의 말대로 그는 피해자요, 순해로부터 깜쪽같이 속은 셈이었다. 마크는 비록 순해를 동생처럼 좋아하였지만 그녀와 결혼을 하리라고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데 운명이랄까, 한 신부님이 죽은 후 고독과 외로움으로 자신의 몸조차도 주체 못한 순해가 마크에게 손을 내 밀며 도움을 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은 몹시도 떨렸으며 가여웠기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기 때문에 결국 결혼을 하였으며 마치 쫒기듯이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다. 결국 그는 동정심에 의해 그녀와 결혼을 한 셈이었다. * 마크의 설명은 제법 길었으나 닥터.강은 그의 심정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크? 당신은 피해자이군요. 피해자. 그리고 나는 그녀를 놓친 낙오자였군요. 그렇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닥터.강? 당신은 의사이니, 부디 순해를 치료해 주세요. 나와 같이 말입니다. 나 혼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닥터.강?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겠습니다. 같이 해 봅시다." 마침내 두 남자들은 손을 잡고 그들이 사랑하였던 순해를 심한 우울증에서 치료를 해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정신과 의사인 제임스 야마시로의 충고가 하루종일 닥터,강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닥터.강? 옛날에 있었던 아주 인상적인 사건을 그녀에게 다시 보여 주어 그 기억을 되새기게 해 보십시오. 그것을 통해 그녀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겠지요." "인상적인 사건?" 그렇다면 한순해와 강석호의 인상적인 사건이란 무엇일까?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고귀한 사건들이 강석호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사건이란 청주, 성공회당과 그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 닥터.강은 정신병원으로부터 특별한 허락을 받아 우울증 환자인 순해를 데리고 훌러톤에 있는 성공회당으로 갔다. 놀라운 것은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순해가 웬일인지 닥터.강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 나선 것이었으며 자동차 성공회당 앞에 멈추어 서자 그녀는 얼굴을 실룩거리며 반가워하였다. 우뚝 솟은 성공회당 건물과 그곳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보며 더 더더욱 반가워하는 듯 하였다. "순해야! 옛날에 우리 이 돌계단에서 같이 놀았었지? 기억에 나니?"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으로 대답을 하는 듯 하였다. "말 좀 해 보려무나! 말 좀!" "..........................." 역시 그녀는 대답을 하지 많았으나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순해야? 너와 나, 옛날, 이 돌계단에서 같이 놀았었지? 가위바위보를 하며 돌계단으로 올라가기도 하였었지. 그리고 공기돌을 가지고 놀이도 하였었어. 기억나니? 돌계단이?" "..........."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으나 입을 다소 벌리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는 듯 하였다. "와! 순해야? 말을 하려고 하네? 순해야? 그렇지?" "......................." 순해는 이번에도 입을 씰룩거렸다. "자! 우리, 이 돌계단을 같이 걸어 올라가자! 자, 내 손을 잡고." 닥터.강은 순해의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나, 둘, 셋, 넷.... " 뜻밖이었다. 평소에는 움직이지도 않았던 순해는 닥터.강의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닥터.강은 그녀의 손이 아직도 따슷하다고 느꼈다. 마치 30여년전 청주에 있는 그 성공회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잡아 본 그녀의 손과 같다고 느꼈다.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 서른셋!" 마침내 그들은 돌계단의 꼭대기까지 올라와 성공회당 본당 앞에 서게 되었다. "서른셋? 아닌데?" 아주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순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라고? 순해? 아-그리고 말을 하였네? 말을?" 닥터.강은 큰 소리로 물었다. "서른셋? 아닌데?" 순해는 대답을하였다. "서른셋, 아니라고?" 닥터.강은또다시 물었다. "......." 이번에도 역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피곤한지 돌계단에 주저 앉을 듯이 휘청거리고 있었기에 닥터.강은 그녀를 부축하여 돌계단을 다시 내려와 자동차를 타고 브레아 정신병원으로 되 돌아 왔다. "잘자! 순해. 잘자. 내일 오빠가 또 올게. 알았지?"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하라고 대답을 하는 듯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닥터.강은 너무나 충격적이며 고무적이었다. "서른 셋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그는 하루 종일 이 수수께끼같은 말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 날 저녁 그는 마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물어 보았다. "그래요? 가끔 내 아내는 숫자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닥터.강에게도?" "그래요. 마크? 무슨 숫자를 말하던가요?" "사십사(44)라는 숫자였지요. 44!" "44요? 44? 아! 알겠습니다. 청주에 있는 성공회당의 돌계단의 숫자가 바로 44개였지요. 가위바위보를 하며 끝까지 올라간 숫자가 44개였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의 아내는 아직도 그 성공회당을 기억하며 살아 왔다는 말이군요. 불쌍한 로즈! 로즈!" 마침내 마크는 전화를 통해 울고 말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가 지내온 세월과 아내의 집착을 비교하면서 그가 보낸 세월이 너무나 허망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 다음날 아침, 닥터.강은 그의 진료실에 가지 않고 브레아 정신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리고 순해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순해야! 그래, 그 성공회당으로 가는 돌계단은 44개였어. 마흔 네개! 그렇지?" 그 순간이었다. 순해는 잃어버린 망각의 미로에서 현실로 혜쳐 나오는 듯 하였다. 과거라는 갑주 속에 깊이 쌓여 있던 기억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였다. "그래! 마흔 네 개였어. 마흔 네 개!" 그리고 그녀는 마치 큰 진리를 발견한 듯이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얼마 만인가... 그녀의 입술에 웃음이 돌며 말을 하다니....놀랍게도 그녀는 우울증의 갑주를 스스로 벗기고 있는 듯 하였다. 그리고 며칠후,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크, 제니퍼, 그리고 간호원들도, 마침내는 정신과 의사인 야마시로까지도 그토록 변한 순해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뿐인가, 그녀는 닥터.강과 남편, 마크에게 시간이 되면 청주에 같이 가자고 요구를 하기도 하였다. 놀랄만한 회복이었다. 불과 일주일의 기간에 그녀는 강석호를 알아보게 되었으며 마침내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우울증 환자의 입에서 오빠라는 말이 나오면서 그녀는 마침내 웃음을 찾게 되었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누구보다도 반가와 한 것은 남편인 마크였다. "닥터.강? 고맙소. 그리고 순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였는지를 실감합니다. 그리고 한편, 질투심도 느끼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녀는 어쨋건 나의 아내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마크는 며칠후 자기가 한말을 후회하였다. (마크는 물론 순해도 닥터.강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더더욱 소스라쳐 놀랐다. 그가 지금까지 혼자 살아 온 것은 분명, 순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순해는 생각하였다. '석호 오빠는 평생을 나를 기다리며 살아 왔는데, 나는, 나는 석호 오빠를 배신하고 종일 오빠를 택하였다가 그것도, 그가 월남에 가있는 사이에 또 다시 종일 오빠마저 배신을 하고 마크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중, 삼중으로 죄를 지은 셈이었어. 나 하나로 인해 세 오빠들이 모두 불행한 과거를 갖게 되었구나..나는 몹쓸 죄를 지은 셈이었어. 그리고 우울증으로 고생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 그러고 보면 석호 오빠가 가장 큰 희생자였어.' 마침내 순해는 강석호와 김종일에 대해 큰 죄를 지었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쁜 년이었구나! 내가. 용서받지 못할 나쁜 년이었어.... " 경과가 좋아진 순해는 브레아 정신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몇 년만에 그녀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셈이었으며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강석호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석호 오빠! 우리는 옛날, 청주 성공회당으로 다시 찾아 온 것 같군요. 그리고 성공회당의 기도실에서 오빠와 기도를 했던 그 기억이 생생하군요." "기도실에서?" "예." 기도실이라면? 소년 강석호와 소녀 한순해가 처음으로 포옹을 해 본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해 본 곳이었다. "아-아-" 의사 강석호는 신음을 하였다. 기도실이라면, 청주와 그리고 멀리 월남에 있는 퀴.호아의 천주교당이 동시에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반면, 순해는 마음속에 다짐하였다. "석호 오빠는 평생을 결혼도 않고 나를 기디리며 홀로 살아 왔구나.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에게 보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석호 오빠의 지난 세월을 보상해 줄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없군요? 아무 것도!" 그녀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2장. 남지나 바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 2003년, 3월과 4월은 닥터.강에게 있어서는 마치 지난 33년의 긴 세월을 압축기에 넣고 만든 씨디( CD)라고 불러도 될 만큼 바쁘고 의미 있었던 두 달이었다. 비록 그는 한순해를 만났으며 월남사람인 퀴와 제임스를 만났다고는 하나 한 사람, 닌.레는 아직도 만나지도 그리고 생사를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동생인 퀴.목사를 만나 그녀에 대한 생사를 들을 기회가 있었으나 웬일인지 퀴는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듯 하였었다. 그가 아는 것은 그녀의 동생, 퀴.레는 맹인 목사가 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은 웨스트민스터에 살며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뿐이었으며 그들이 주동이 되어 한국인 선장, 정진성씨를 이곳 미국으로 초청하여 성대하게 환영을 하여 준 것뿐이었다. * 아무래도 오늘은 퀴.레목사를 만나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물어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닥터,강의 추측으로는 그녀는 아직도 사이공에 살고 있던지 아니면 보트 피플이되어 미국으로 피난을 와 텍사스 어디에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한가지 의문은 그녀는 분명, 트랜 대위와 결혼을 하였기에 그녀의 아들이라면 트랜이라는 성을 가져야 하는데 어째서 누엔이란 말인가? 궁굼하였다. 마침내 그는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월남 교회를 찾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퀴레목사를 만나 소식을 꼭 듣고 싶었다. 마침 퀴레 목사는 그의 사무실에 있었으며 그의 아내인 다나 벌티니도 같이 있었다. "아- 닥터.강? 죄송합니다. 지난번에는 제 얘기만을 하였군요. 그러나 다 끝내지 못하였지요. 그래서 오늘은 못다한 제 얘기를 다 하렵니다." "아! 그것 말고...니이...." 닌이란 말을 하는 도중에 퀴레목사는 어느새 그의 얘기를 시작하고 있었으니 참고 들어야만 했다. "저는, 맹인이 되어 고생을 하던 중, 여기 천사같은 다나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눈을 갖게 되었지요. 비록 나의 눈은 멀었지만 나는 더 밝고 환한 세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더 환한 세상을 말입니다." "예? 환한 세상을?" 닥터.강은 깜짝 놀라 되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나를 만나면서 나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으며 예수를 믿게 되었지요.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고 보니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원한과 미움이 사라지고 남을 용서하며 이해하게 되던군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베트콩까지도 용서하게 되었답니다. 다나를 통해 나는 절망에서 벗어났으며 우울했던 나의 인생을 환하고 밝은 세상에 사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던군요.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보세요! 헬렌 켈러여사를! 그녀는 귀, 눈, 그리고 혀까지도 못쓰는 삼중의 불구자이지만 나보다 더 큰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이 찬송을 좋아한답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생명을 얻은 몸, 옛것은 버리고 새 사람이로다.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았던 것, 이제는 값없다.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 따라 가리라.' 어떻습니까? 환한 세상을 느끼는 나를 이해하시겠지요?" 듣고 보니 퀴.레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아내, 다나도 고달픈 역경을 이긴 그런 여자였다. -다나는? 몸을 파는 월남여자와 미국 군인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서 다낭(Danang)에 있는 공군기지 뒷문에 버려진 갖난 아이가 바로 다나였다. 다낭에서 태어 났기에 미군들이 다나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으며 운 좋게 미국, 칼리포니아주 산 버나디노에 사는 이태리계통의 백인 집으로 입양이 되어 18세까지 살았는데 어느날, 그녀는 그가 입양되어 온 사실을 알게 된후 집을 뛰쳐나와 마약을 입에 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날, 산 버나디노에 있는 침례교회의 목사님을 만나면서 그녀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불구자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절망에 빠진 맹인 퀴.레를 만나면서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맹인인 퀴.레와 결혼을 하면서 그의 눈이 되어 주겠노라고 결심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그의 지팡이가 되어 주었다.- 눈물 나는 얘기였지만 닥터.강은 몹시 답답하였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그가 사랑하였던 '닌.레' 와 그녀의 아들이라고 하는 '제임스 누엔'에 대한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닥터.강은 퀴.레 목사의 말을 중간에 다로 채고 말았다. "퀴. 목사님! 부탁입니다. 누나, 닌에 대한 소식을 알고 싶습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요? 어디에!" "예? 어디에라고요?"퀴는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그렇소! 어디에 사느냐구요?" "모르셨나요? 닥터.강?" 옆에 있던 다나가 이번에는 되물었다. "모르는데요. 제발,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세요. 그리고 제임스란 누군인지요?" 닥터.강은 큰 소리로 물었다. "아! 누나, 닌과 조카 제임스에 대해... 아-아-" 퀴는 괴로운 듯이 아-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목사님은 누나의 끔찍한 사연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지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으니까요..." 옆에 있던 다나가 이번에도 덧"殼�말하였다. "그래요? 끔찍했다고요? 그래도 나에게는 알려 주어야지요. 나는 지난 34년간을 이렇게 기다렸으니까요!" 닥터.강은 진심으로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사실이었다. 그는 지난 34년간을 그녀를 만나려고 기다려 왔기 때문이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붉은 강의 계곡(Red River Valley)'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으며, 사랑의 계곡(The Valley of Love)에서 손을 잡고 영원히 같이 걷겠다고 한 약속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닥터.강? 이번이 마지막이 됩니다. 더 이상 누나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마지막이요?" "그래요.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며 잠시 말하겠습니다." * [퀴.레 목사가 들려 준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1968년 8월1일.... 사이공에서는 아주 호화로운 결혼식이 있었다. 비록 통킹만에는 폭탄이 떨어지며 사이공 시내는 술렁거리고 있었지만 상원의원의 아들과 장군의 딸의 결혼식은 누가 보아도 호화스러웠다. 월남 국사(國寺)가 옆에 있는 맥스 호텔에서 달라트의 레장군의 딸, 닌과 사이공의 실력자, 트랜 상원의원의 아들 칸 트랜 대위는 불교식으로 결혼식을 마치고 하와이에서 사흘을 보낸후 사이공에 마련된 저택에서 신혼의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0년 5월, 아들을 나았는데 그 이름은 휴이 트랜(Huy Tran)이라고 하였으며 시아버지인 트랜 상원의원은 머무나 기뻐, 며느리, 닌을 위해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사하였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우아하며 행복한 살림이었다. 그러나, 1973년 미국은 마침내 월남에서 군대를 빼내기 시작하였다. 단지 군사 고문단만 남겨둔 채... 결국 월남 공화국은 점점 삐걱거리며 여기저기에서 월맹과 베트콩에게 영토를 조금씩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하였다. 1975년 월맹은 마침내 구정(테드) 대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으며 월남은 많은 영토를 잃고 마침내는 사이공과 그 주위의 영토만 남게 되었다. 월남의 지도층과 부유층은 불안하였으며 갖고 있던 금과 보석들을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빼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뿐인가 만일의 경우를 위해 미국이나 프랑스등으로 망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트랜 상원의원과 레장군의 가족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75년 4월 30일은 월남 공화국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침내 월맹군은 사이공으로 진격하여 들어오고 있었으며 월남 사람들은 어제까지 그들의 적이었던 월맹군대를 환영하고 보니 삽시간에 사이공은 월맹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월남 공화국은 더 이상 이 지구상에 존재 할 수가 없었다. 사이공은 없어지고 호지민 시티가 되었다. 월남 고위층들은 며칠 전부터 본격적으로 영국, 불란서 그리고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는데 강직한 트랜 상원의원 부부, 레장군 부부 그리고 닌의 남편인 트랜 소령은 권총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식들만큼은 미국 대사관으로 가, 미국이 제공하는 비행기로 망명을 하도록 사전에 준비를 해 두었다. 결국, 4월 30일... "누나! 우리 나라는 망했어! 아버지가 말했었지. 나라가 망하면 준비한 가방을 들고 미국 대사관으로 가 그곳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탄손누트(비행장)로 가라고... " "마침내, 퀴. 누나, 닌 그리고 조카 휴이 트랜은 가방을 들고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 가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갔을까...누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잠간만! 내가 중요한 것을 뺏뜨리고 왔어. 잠간만 기다려. 곧 올테니까..." 그리고 누나, 닌은 집으로 달려갔다. 꽤나 오래되어 누나는 헐레벌덕이며 달려왔다. "누나! 중요한게 무엇인데?" 퀴는 화가나서 소리를 쳤다. "엉, 이 지갑. 이 지갑..." "지갑?" 퀴는 되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 갔는데 앗뿔싸! 대사관 정문은 이미 궂게 다쳐 있었으며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 있었기에 도저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험상궂은 미국 대사관 직원은 소리를 쳤다. 너무 늦어 헬리콥터는 더 이상 없으니 탄손누트로 가면 비행기를 탈수가 있다!라고. 결국 퀴와 일행은 탄손누트 공항으로 달려갔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비행기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마지막 군용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아 멀리 사라지고 나니 공항 주변은 점점 어두어 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그런데, 그 때 누나가 가지고 온 지갑이란? 그게 말입니다. 그 지갑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지요. 그 지갑 때문에..." 갑자기 퀴 목사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닥터.강을 노려 보는 듯 하였다. "지갑 때문에?"닥터.강은 그의 위압감에서 벗어나려고 반복하여 보았다. "그렇소! 그 지갑이란! 닥터.강? 그 지갑에는 바로 닥터.강 당신과 나의 누나가 달라트와 퀴 호아에서 찍었던 사진 몇장이었습니다." "뭐라고요? 나와 누나가 찍었던 사진이라고?" "그렇소. 결국 당신의 그 사진 때문에 우리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단 말입니다. " "예?" 닥터.강은 예 소리를 하면서 닌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그녀도 닥터.강처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살아 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 불쌍한 닌!' 닥터.강은 신음을 하고야 말았다.- * 탄손누트에서 그들은 '닌'의 이웃으로 살며 장사를 하는 중국화교,'라이(Lai)'씨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도 불안한 월남을 탈출하여 어디로인가 가려고 이곳 탄손누트로 나왔으나 그들도 헛탕을 치고 말았다. 캄캄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가구는 모두 강탈당하였으며 전기도 끊겨 불은 들어오지 않았기에 무서운 느낌마저 감돌았다. 월남은 패망하였으며 통일 베트남이 되었다는 방송이 계속하여 울려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세상은 완전히 바뀐 셈이었다. '닌'은 육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와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은 항복보다는 죽음을 택하였으리라'라고. 그렇다면 이들의 시체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갈기갈기 찢겨 길거리에 버려져 무참하게도 밟혀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인생이 무상하였다. 1975년 5월 한 달은 월남 고위층이었던 '닌'과 그녀의 가족에게 있어서는 지옥과도 같은 세월이었다. 약탈과 도적, 그리고 위협으로 하루하루가 무서운 세월이었다. 대신 새로운 권력층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의 독수리같은 감시와 박해를 받아 왔던 '닌'은 어느날, 중국 화교인 '라이'씨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뜻밖이었다. 통일 월맹정부는 중국계 화교들에는 모든 자산을 남겨두고 베트남을 떠나도 좋다는 인정서를 발급하였는데,이 증명서를 가지고 바다로가, 어선이나 수송선을 타고 남지나 바다로 가, 미 제 7함대의 구조를 받아 피난민의 자격으로 미국으로 갈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요? 꼭 중국 사람이어야 하나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국 사람으로 가장을 해도 된다고 합니다. 물론 돈을 더 주어야 합니다만... 같이 가실까요? 우리는 이틀 후에 봉타오로 가서 배를 탑니다." "배를 탄다구요?" "그렇습니다. 어짜피 여기에서 죽을 바에야 미국으로 가렵니다. 그러기에 모험을 하여야합니다. 잘못 하다가는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오늘 월맹관리가 여기에 온다고 하니 같이 가도록 이름을 추가합시다. 물론 돈은 안 받고 귀금속만 받는다고 합니다." "라이씨? 우리도 같이 가게 해 주세요. 꼭요?" "그럽시다. 트랜 여사. 그대신 이름을 바꾸어야 합니다. 라이라고.. 내 조카라고 하겠습니다." 과연 몇 시간후, 월맹 관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추가 된 닌, 퀴. 그리고 휴이 트랜에 대해 몇가지를 묻더니 라이씨 가족이라고 쓴 증명서를 주었다. 물론 수수료로 그들에게 꽤 큰 보석이 건네 주었다. "이것봐! 라이씨! 모래, 봉타오항구로 가서 북쪽 끝에 정박해 있는 통통선 121번을 타야 하오. 121번을.. 물론 승선료는 별도요. 알겠소?" 월맹 관리는 이 말을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봉타오에는 어떻게 갑니까?" 닌은 라이씨에게 물었다. "아-예, 트럭을 하나 빌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배에 오를 때, 아무런 짐도 못 가지고 갑니다. 그뿐인가요. 음식도 안됩니다. 그러니 보석 같은 것은 몸 깊숙이에 지니고 가셔야 합니다. 혹시 빼앗기더라도 어쩔 수 없단 말입니다. 아예, 보석같은 것에는 미련을 버리고...목숨만 건지면 된단 말입니다." 닌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월맹 군인들이 월남 관리와 부자들을 총살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 아-, 아버지, 남편, 그리고 시아버지도 어디에서인가 저렇게 죽었겠구나. 시체도 찾기 힘들게...." 닌은 힘없이 말하였다. (월남이 망하자 통일 베트남 정부는 꼴 보기 싫은 중국사람들과 월남의 권력층 그리고 부자들에게 모든 것을 베트남에 남겨두고 알몸으로 마치 노예처럼 배에 태워 멀리 남지나 바다로 내 몰았다. 그러고 보니 화교들이란 마치 갈 곳 없는 동양의 집시였다. 라이씨는 물론 닌도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불쌍한 집시였다.) 내일 모래가 되면 결국 조국 , 월남을 떠나 망망 대해로 떠 밀려 나가게 되는 운명이었다. 그 날밤, 그녀는 가만히 잠자는 아들, 휴이의 얼굴을 바라다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달라트의 옛집과 부모님들, 그리고 그곳에서 보냈던 대학시절, 인자한 시부모님들, 그리고 젊고 훌륭한 남편 트랜 소령,,,그리고 그녀의 눈앞에서 조용히 잠자는 아들, 휴이...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큰 소리 치지 않고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모두 죽었으며 내일 모래 봉타오에서 배를 타고 망망한 남지나 바다로 쫒겨 나가면 그곳에서 미군 7함대를 만나면 살 수가 있으련만 만에 하나라도 타이 해적선을 만나게되면 죽는 다고 하였다. 결국 걱정을 하다보니 그녀는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닌이 지니고 있는 조그만 지갑속에는 보물처럼 간직해온 사진이 몇장이 있었다. 남편, 아버지 그리고 사랑의 계곡과 퀴 호아에서 같이 찍은 강석호 중위의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 휴이의 바지에 보석들을 교묘하게 감추어 두었다. 배를 타거나 혹시 미국에 가게되면 그곳에서 써야 할 보물이었다. 다음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약속했던 트럭이 도착하였다. 운전사는 역시 중국 사람이었다. 트럭 요금으로 금부치를 하나 주었다. 트럭이라고는 하나 짐승들이나 운반 할 아주 허름하고 누추한 차로 덜덜 거리는 것이 과연 이차가 사이공을 벗어나 봉타오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는지 의심이 갔으나 라이씨 가족과 같이 차에 올랐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이미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누엔(Nguyen)'씨 가족이었는데 이들은 음악가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같은 처지가 되고 보니 이내 한 가족이 되었다. 사이공 강을 따라 봉타오로 가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트럭은 달렸다. 여기저기에서 총소리가 들리기도 하여 움출어 들었다. 새로 진주한 월맹군과 베트콩들이 여기 저기에서 눈에 띄였다. 월남 공화국 깃발은 내려지고 월맹(통일 베트남)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봉타오 항구를 통해 탈출하려는 피난민들을 잡아 보물을 가로채려고 불심 검문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조공 바치듯이 금부치를 주어야 했다. 고엽제로 인해 죽은 나무들이 처량하였으며 마치 월남의 패망을 말해 주는 듯 하였다. 3시간 만에 도착한 봉타오 항구의 선창은 많이 폐허가 되어 있었으며 어선들도 약탈을 당했는지 허술하기만 하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떼를 지어 땅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증명서를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합법적으로 추방이 되는 셈이나 어떤 사람들은 무작정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마침내 라리씨 가족들은 지정된 선착장에서 121번이라고 쓴 어선을 발견하였다. 배는 낡았으나 60피트의 길이에 25피트 정도의 넓이를 가진 고기잡이 배를 개조하여 만들었는데, 약 120여명이 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건실한 배같아 보였다. 100여명이 이미 와서 승선을 기다리고있었는데 기관원인지 아니면 선주인지 일일이 증명서를 확인하며 승선료를 받고 있었는데 물론 금부치나 보석을 요구하였다. 라이씨 가족은 보석 한 개와 금반지 하나를 승선료로 지불하였으며, 닌의 가족도 갖고 있던 보석을 지불하고 보니 이제 남는 것이라고는 아들 휴이의 옷 속에 감추어 놓은 보석 두 개 뿐이었다. 허기도 지고 기진 맥진 하였다. 선주와 항해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피난민들을 마치 소떼를 밀어 내듯이 배 안으로 밀어 부쳤다. 참으로 놀란운 것은 (평소에는 단합을 못하였던 월남 사람들이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한 가족처럼 서로 돕고 아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선실과 갚판에 서로 등을 대고 오밀 조밀 앉아 있었다. "너희들은 들으라! 너희들은 베트남에서 추방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디로 가던 원망을 말라! 너희들은 이곳 베트남에서 좋은 세월을 보냈었다. 너희들은 중국 화교이니 이렇게 너희 나라로 보내는 것이니 살아서 추방 되는 것 만도 행복한 것이니라!" 기관원 하나가 눈을 부릅뜨고 악을 쓰며 말하였다. 어느 누구도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자칫 저들의 비위를 거스린다면 언제 총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르는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주와 항해사들을 결코 믿을 수는 없었다. 과연 이들이 피난민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언제 굶주린 이리나 승냥이로 변하여 피난민들을 죽일는지.... 배에 오를 때, 선주와 선원들은 몸을 수색한다고 하며 여자들의 유방을 만지며 킥킥 웃기도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반항을 하거나 항의를 할 수도 없었으며 오히려 추가로 요구하는 승선료를 지불해야 만 하였었다. 한차례 소나기가 쏫아 졌으나 피난민들은 피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오후 늦게나 되어 어선 121호는 그들의 오랜 조국이요 지금까지편안하게 살아 왔던 월남 땅의 봉타오 항구를 서서히 떠나고 있었다. 피난민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한나절을 굶었기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생리적인 문제였다. 소변은 그런대로 깡통에 누어 버릴 수도 있지만 대변은 그렇지가 않았다. 할 수없이 참아야 했다. 어선은 점점 봉타오 항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이던 송신탑이 가물가물 멀어지더니 이내 보이지를 않았다. 드디어 어선은 남지나 바다로 나온 셈이었다.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참고 있었던 피난민들은 마침내 긴 한숨들을 쉬었다. 죽음의 지옥, 월남을 탈출한 것이다. 라이씨 가족은 물론 닌의 가족도 모든 것을 월남에 그대로 두고 알몸으로 탈출한 것이다. 파도가 높아 질 때마다 배는 침몰이라도 될 듯이 심하게 흔들렸다. 토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왔으며 토한 분비물로 인해 냄새가 온통 어선을 뒤 엎었다. 인내심이 강한 듯 하였던 휴이도 마침내 울다가 지쳤는지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배는 어디로 가는 지 아무도 모르고 믿지 못할 선장의 얼굴만 바라 보다가 한 남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라고. "어디로 가느냐구? 그건 나도 모른다." "모른다니요? 선장이!" "그래, 선장인 나도 모른다. 어디로 가다가 운이 좋으면 미 해군 7 함대를 만나 구조가 되는거구...운이 없으면 타이 해적선을 만나 몰살 당하는 거라구! 그러니 잔소리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잘 가면 말레지아의 어느 섬에 가던지..아니면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에 가는거야. 알겠어, 이 바보야!" 피난민들은 섬찢 하여 조용하였다. 사이공에서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큰 파도를 만나 바다에 빠져 몰살을 하던지, 아니면 악명 높은 타이 해적선에게 약탈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더구나 어선 121호를 가지고 남지나바다를 헤쳐 나간다는 것은 무리였으며 어찌 된 셈인지 두 개의 모터 중, 한 개는 이미 고장이 나 작동이 되고있지 않는 듯 하였다. * 타이 해적선(泰國 海賊船)이란? (타이 사람들이 주축인 되어 중 무장한 쾌속의 보트를 타고 피난으로 나온 월남 피난민들을 습격하여 약탈, 강간을 하며 건장한 남녀를 납치하여 다른 나라에 종으로 파는 무리들을 말한다.) 총으로 무장한 타이 해적선에 희생된 월남 피난민들의 수가 엄청 많았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기에 121호 어선에 탄 피난민들은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제발, 피에 굶주린 타이 해적선을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부처님께, 천주님께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였다. 캄캄한 밤은 이들 피난민들을 더 더욱 불안하고 무섭게 만들었다. 비록 아열대 지방이라고는 하나 밤바람은 제법 쌀쌀하였다. 마침내 동이 트며 아침이 되어 혹시나 하고 미국 7함대 소속 군함들을 찾아보았으나 보이 지 않은 채 어선은 방향을 잃고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래층 맨 앞에 있는 선장실에서는 선주와 선원 두 명이 총을 허리에 찬 채 술을 마시며 킥킥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이들 눈에 보이는 피난민들이란 단지 돈벌이의 수단 일 뿐이었으니까... (피난민들을 배에 가득히 싣고 나갔다 오면 수 많은 보석과 금을 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억지로 착취한 보석과 금 부치는 배 밑에 교묘하게 숨겨두고 적당량의 보석을 갖고 있다가 타이 해적선을 만나면 상납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돌아오면 베트남 관리에게 보석 한 두개를 상납하면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이 된다고 하였다.)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이렇게 비좁게 앉아 파도와 싸우는 이들 피난민들에게 또 한차례의 소나기가 쏫아졌다. 결국 갑판에 고인 물을 퍼내어야 했다. 아직도 해는 서편에 걸려 있었으며 배는 그래도 남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 힘든 항해였으며 언제 파도에 몰살을 당할 지도 모르는 긴박한 시간들이었다. "석양이 비치는 바다는 마치 비단 같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우리는 큰 배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큰 배다! 큰 배다!' 피난민들은 너무나 반가워 '아! 드디어 우리는 구조를 받는구나!'라고 안도의 쉼을 쉬며 큰 배가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큰 배가 가까이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그게 아니었습니다. 닥터.강!" 퀴 목사는 큰 소리로 말하더니 계속하여 말하였습니다. "아! 닥터.강? 말로만 듣던 그 놈의 타이 해적선이었습니다. 타이 해적선 말이요! 해적들은 총을 쏘면서 우리 어선 가까이로 오는데 선장과 선원들은 총 한방 안 쏘며 반항을 하지 않던군요. 가까이로 온 해적들은 무조건 우리 피난민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습니다. '악!'하며 한 사람이 퍽 쓸어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배와 저들의 배에 밧줄을 매어 고정시켜 놓고 널판자를 가지고 와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도와 같이 우리 배로 들어와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꼼짝 말고 바닥에 엎드려라! 그리고 갖고 있는 보석들을 모두 앞에 내 놓아라. 아니면 죽일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선장으로부터 보석과 금부치를 상납 받고는 피난민들이 내어 놓은 보석과 금부치를 갖고 온 가방에 주워 넣었다. 개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피난민들을 구둣발로 차버리거나 총으로 쏘아 죽여 버렸다. 마침내 해적들은 우리 일행 앞으로 닥아 왔습니다. 그리고 앞에 놓아둔 보석을 주워 담더니 어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어?'라고 소리를 치면서 구둣발로 나의 가슴을 찾습니다. '헉'하고 나는 쓰러졌지요. 그런데 해적 한 놈이 누나, 닌을 바라다 보더니 '와! 인물 괜찮은데! 한번 시식이나 할까!'라고 하면서 누나의 손을 낙아 채고는 강제로 선장실로 끌고 가려는 것을 보고 나는 소리를 쳤지요. '안돼! 안돼! 이놈들아!'라고. 그 순간 해적은 나를 또다시 구둣발로 차버렸습니다. 나는 갚판으로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 해적들은 무참하게도 닌을 선장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이미 두 서너명의 여인이 끌려와 비참하게 강간을 당한 후 비수에 의해 가슴을 찔린 채 죽어 있었다. 불쌍하게도 닌은 똑같은 방법으로 강간을 당한 후 비수에 찔려 죽고 말았다. 어선은 마치 도살장처럼 피 비릿내가 낫으며 몇 명의 청년들은 납치 당하여 손이 묶인채 해적의 배로 실려 갔다. 보다 못해 어느 피난민이 소리를 쳤다. "미군이다! 7함대!"라고. "뭐라고? 미 해군?" 타이 해적들은 망원경으로 바다를 정찰하여 보았으나 어디에고 미 함대는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속은 것을 안 해적 하나가 화가 난 듯이 '미 함대라고 소리친 월남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 남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해적들은 미군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말에 귀가 거스렸는지 아니면 약탈을 할 만큼 다했는지 급히 자기들의 배로 돌아 갔으며 얼마후 해적선은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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