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 핀 동백꽃은 제 6부

2012.02.02 14:22

연규호 조회 수:621 추천:30

"뭐라고? 미 해군?" 타이 해적들은 망원경으로 바다를 정찰하여 보았으나 어디에고 미 함대는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속은 것을 안 해적 하나가 화가 난 듯이 '미 함대라고 소리친 월남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 남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해적들은 미군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말에 귀가 거스렸는지 아니면 약탈을 할 만큼 다했는지 급히 자기들의 배로 돌아 갔으며 얼마후 해적선은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퀴 목사는 여기에서 일단 설명을 멈추고 허탈한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 "아니! 닌이 죽었다구요? 그렇게 비참하게!" 닥터.강은 큰소리를 지르더니 지금까지 참고 있던 울음이 폭팔하고 말았다. "죽다니! 죽다니! 내가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데.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내가 그녀를 그토록 기다렸는데... 죽다니...죽다니..." 닥터.강의 울음 소리는 밖에서도 들릴 듯하였다. 너무나도 허탈하였다. 1969년 7월 20일, 저녁 달라트에 있는 소피 호텔에서 혜어진후 지금까지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 뜻밖이었다. 말을 멈추고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있던 퀴.레 목사는 고개를 들더니 그의 말을 계속하였다. [ 16살의 소년, 퀴.레가 간신히 정신이 들어 눈을 떳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어선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흐느껴 우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지쳐있었다. 해적선이 사라지고 난 후의 어선은 마치 베트콩에 의해 쑥대 밭이 된 전쟁터와 같았다. 해적선의 침범으로 3명의 여자들이 강간을 당한 후 칼에 찌려 죽었으며, 5명의 남자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또 다른 6명의 남자는 칼에 찔려 죽었다. 건장한 7명의 남자들은 손이 묶인채 해적들에게 끌려갔으며 2살 된 사내아이는 질식되어 죽었다. 그리고 몇 명의 노인들이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그 결과 배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96명이었다. 죽은 시체들을 선주와 선원들은 선장실에 따로 모아 두고 밤을 새운 듯 하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죽은 닌의 유품이라고 하며 퀴에게 작은 가죽 지갑을 가져 왔는데 그 지갑이 바로 문제의 그 지갑이었다. "제길헐! 이 지갑 때문에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었는데...이게 무슨 필요가 있담!" 퀴는 투덜거리며 유품을 받아 멀리 남지나 바다로 던져 버렸다. "누나가 죽다니! 죽다니. 나쁜 놈들, 도대체 동족들끼리 얼마나 더 싸울거냐? 해적 놈들! 내가 복수를 하마!" 그리고 그는 누나의 시체를 미국으로 가지고 가서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피비릿내 나는 긴 밤도 동녘에서 떠 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아침이 오고 있었다. 바다로 축출된지 나흘이 되는 아침이었다. 그러고 보니 피난민들은 나흘째 꼬밖 굶었다는 말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굶어야 하는지 막연하였다. 파도가 제법 높았다. 어선은 파도에 밀려 출렁거리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꼭 잡고 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선장이 나오더니 총을 공중에 대고 한 방 쏘았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들으라! 너희들 중에 스님이 있느냐? 죽은 사람들을 위해 염불을 드리고 수장(水葬)을 해야겠다. 시체는 벌써 썩고 있다. 어차피 죽은 사람들인데 어디까지 끌고 다닐 수는 없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으며 퀴는 소리를 쳤다. "안돼! 내 누나는 내가 데리고 다닐거요!" "뭐라구? 네가 데리고 다닌다구? 이것봐! 사람은 죽으면 썩는 거라구. 벌써 냄새가 난단 말야! 너, 잔소리를 하면 너도 함께 바다에 처 넣어 주마!" "..........." "보아하니 스님이 없는 모양인데 내가 대신 하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이 사람들을 극락에 가게 해 주세요. 극락에...하하하" 그리고 그들은 시체를 한구씩 들어 바다에 던지고 말았다. "안돼! 안돼!" 퀴 레와 다른 몇몇 가족들도 울면서 소리를 쳤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선장은 다시 총을 하늘에 대고 한방 쏘았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또 소리를 치면 죽여 버리겠다!" 라고. 그 순간 곁에 서 있던 선원이 가냘픈 몸매의 닌을 들어 남지나 바다에 던져 버렸다. "누나! 누나!" 퀴는 소리를 치다가 까무라치고 말았으며 곁에 있던 휴이 트랜은 자지러지게 울고 말았다. 잠시 후 퀴는 라이씨의 가슴에서 눈을 떳다. "아! 이놈들! 내 누나를 바다에 던지다니, 바다에!" 그는 누나를 삼켜 버린 남지나 바다를 노려다 보았다. 누나를 삼켜버린 바다는 말이 없었다. 28살의 아름다운 달라트의 아가씨, 닌.레는 이렇게 죽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 강석호 중위를 기다리다가 언젠가는 다시 만나 사랑의 계곡을 걷겠다고 약속했던 닌 은 이렇게 죽었다. 남지나 바다에서, 타이 해적선의 예리한 칼에 찔려,,,,] * "뭐라구요? 바다에 던지었다구? 바다에!" 닥터.강은 퀴에게 물었다. "예, 그래요. 남지나 바다에..." "아_ 닌! 닌- 그렇게 죽다니? 달라트에서, 사랑의 계곡에서 당신은 내게 말했었지요. ' 이 손을 놓지 마세요. 이 손을 놓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못 만납니다.'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시는 못 만난단 말입니까?" 닥터.강은 결국 목놓아 울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깝고 허무하였다. 34년을 기다려 온 닌이 해적에 의해 욕을 당한 후 칼에 찌려 죽다니.... "그렇습니다. 닥터.강? 누나는 이렇게 죽어 남지나 바다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숨이 막혀 그곳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발버둥을?" 닥터.강은 마침내 머리를 숙으리고 말았다. 그녀의 인생이 이것으로 종말을 지었다고 생각을 하고 보니 더 이상 울 이유도 없었다. * 그리고.... 약 오 분이나 지났을까...퀴.레목사는 또 다시 말문을 열었다. 또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닥터.강? 더 안타깝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이라고요? 아니? 무슨 일이 또 일어 났나요?" "그렇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이..." 그리고 퀴는 해적선이 떠난 후에 생긴 일을 자상하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수장을 지내고 난 후 가족들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다. 그 때였다. 선주와 선원들이 밖으로 나와 큰 소리로 말을 하였다. "이것들아! 울지만 말고 빨리 선창으로 내려와 숨어들어 오는 바닷물을 퍼내라! 갑판에는 노인들 몇 명이나 남아 흰 샤츠를 벗어 흔들고 있거라. 혹시 지나가던 큰 배가 너희들을 구조 할 지도 모르니까...알겠느냐!" 그러나 너무나 지친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자 그들은 총를 쏘며 위협을 하였다. 결국 퀴.레와 라이씨 가족들도 배 밑으로 내려와 물을 퍼내기 시작하였다. 물은 점점 더 고여 들고 있었기에 얼마 되지 않아 배는 침몰 할 것 같았다. 그 때였다. 피난민이 타고 있는 어선보다 두 배는 족히 커 보이는 외국 어선이 근처를 지나는 것이 이들 노인들에게 포착되었다. 분명히 해적선은 아닌 듯 하였기에 흰 셔츠를 열심히 흔들어 구조를 요청하였다. 외국 어선은 이들을 발견하였는지 피난민을 실은 어선 쪽으로 가까이 오는 듯 하더니 웬일일까? 외국 어선은 기수를 돌려 어선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 배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서도 외면을 하는지 시야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아-아- 웬놈의 배가 그냥 가다니! 빌어먹을!" 피난민들은 제각기 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피난민들은 절망이었다. 더구나 배 밑창에서 흘러 들어오는 바닷물이 제법 많아지고 있었기에 피난민들은 더더욱 안타까웠다. 어짜피 피난민들은 바다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다. 언뜻 보니 그 배는 일본이나 아니면 한국에서 온 참치잡이 어선같아 보였었다. "빌어 먹을 일본 놈들! 아니 한국 놈들! " 그들은 계속하여 저주를 하고 있었다. 또 한차례 소나기가 쏫아지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맑은 하늘이 되었다. 기진 맥진한 월남 피난민들은 자포자기하여 갑판과 선창에서 쓸어지고 말았다. 무려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또 한 척의 배가 어선을 향해 가까이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가까이 오다가 갑자기 선수를 돌려 멀리로 사라졌던 바로 그 외국 배였다. "큰 배가 온다! 큰배가!" 갑판에 있던 노인들이 소리를 쳤으나 선주는 물론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매 밑창에 있게 하였다. 혹시라도 해적선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마침내 큰 배는 어선 가까이로 와 갑판에 있는 6명의 노인들을 구출하여 큰배로 옮기고 있었다. 아- 뜻밖이었다. 그 배는 한국에서 온 참치 잡이 원양어선이었다. 남양어업 소속, 통영호라고 쓰여 있었으며 젊은 선장의 지시 하에 노인들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를 구하러 온 큰 배가 왔다. 빨리 나오라!" 라고 배 밑창에 있던 어느 남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월남 피난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줄을 지어 배 밑창에서 갑판으로 나오고 있었다. 통영호의 선장은 난감하였다. 그들은 여섯명의 노인들이 전부인줄 알고 구하러 온 것인데 뜻밖에도 예상 못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들은 모두 96명이나 되었다. 96명의 월남 피난민들은 통영호로 옮겨지자 이제 살았다는 듯이 즐거워하였으며 허기를 못 참고 여기저기에 쓸어지고 말았다. 통영호 선원들은 갖고 있던 물, 그리고 음식을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나 96명을 한꺼번에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피난민 어선의 선주와 선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표류하던 어선을 고치더니 지금까지 고장이 났다고 하던 모터가 돌기 시작을 하였다. 그리고 쏜 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이들 선주와 선원들은 거짖말로 고장이 났다고 하였으며 배밑창도 고의로 물이 들어오게 한 것 같았다. 월남 피난민들은 한국 어선 통영호로 옮긴 후 5일만에 물을 마셔 본 셈이었으며 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4일간을 더 버틴 후에 7함대 군함을 만나게 되었다. 4일 동안 한국 어선 통영호는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다보니 갖고 온 식량과 물을 모두 소모하고 말았다. 미군 함대에 인계되던 날, 한국어선의 선장이란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였다. "월남 피난민 여러분! 부디 잘 가세요. 그리고 기억해 주세요. 월남전쟁에 가서 젊은 나이로 한줌의 재가되어 한국으로 돌아 와 묻혔던 한성민이란 중위를...우리는 그의 죽음을 생각하며 여러분들을 잠시나마 도와 줄 수가 있었습니다. 한가지 부탁은 여러분들도 언젠가 성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요."라고. 그는 35세의 젊은 선장이며 이름은 정진성이라고만 말하였을 뿐, 말이 없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였다. 그리고 통영호는 사모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기수를 돌려 한국으로 되 돌아 가고 있었다. "정진성 선장님! 고맙습니다!" 월남 피난민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 "아니! 퀴 레목사님? 불과 하루를 못 견디고 닌은 죽었단 말이군요! 하루만 일찍 정진성 선장을 만났더라면 살았을 텐데.. 하루만.." 닥터,강은 울부짖고 말았다. "그리고, 정진성 선장이라고요? 그리고 한 성민 중위?" 닥터.강은 너무나 놀랐다. 얼마 전 정진성 선장을 만났을 때, 그는 한 성민에 대한 얘기를 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퀴를 통해 듣고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 아-, 하루만 일찍, 정진성 선장을 만났더라면 닌은 살았을 텐데, 아, 하루만.." 닥터.강은 머리를 책상에 파묻고는 울고 말았다. * [미군 7함대에 의해 구출된 월남 피난민들은 마침내 괌(Guam)으로 옯겨 진 후, 그곳에서 한달간, 그리고 칼리포니아의 캠프 펜딜톤에서 6개월간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되어 각각 웨스트민스터 그리고 사크라멘토등지로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닌의 아들인 휴이 트랜은 같이 고생하였던 누엔씨의 집에 입양이 되어 그 이름을 제임스 누엔(James Nguyen)이 되었다. 제임스 누엔(휴이)은 칼라포니아에서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법과 대학으로 진학하여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을 하여 당당하게 월남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사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퀴.레는 여러차례 설명이 되었듯이 UCLA에 다니던 중에 불행하게도 뇌하수체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아 생명은 건졌으나 실명을 하게 되었으나 다나라는 혼혈의 처녀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목사가 되어 많은 불구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2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월남 피난민들은 그들을 구하여 주었던 한국사람 선장, 정진성씨를 찾기 시작하였다. 트랜, 누엔 그리고 퀴레등, 남지나바다에 빠져 고기 밥이 되었어야 했던 이들 보트 피플들은 마침내 동백꽃이 피는 한국의 가장 남쪽에 있는 거문도에서 고기를 잡으며 등대직이를 하고 있는 정진성씨를 찾아 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를 미국으로 초대하여 고마움의 일부를 표시 하였다. ] * "퀴레 목사님? 감사합니다. 닌의 죽음을 알려 주어서...그녀는 죽었지만 나의 가슴속에 아직도 살아 있군요. 그리고 영원히 간직 할 것입니다. 그리고...그리고...반드시 남지나 바다에 찾아가 그녀를 만나겠습니다. 그녀를 만나 손을 잡고 사랑의 계곡을 걸으렵니다." 닥터.강은 퀴레목사와 다나의 손을 꼭 잡고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한 4월의 저녁이었다. 13장. 가든그로브의 수정교회(Cathedral Church)에서. 닥터.강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악몽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사랑했던 두 여인에 대한 생각으로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 여인 중의 하나인 순해가 한말이 또렷이 생각났다. "석호 오빠? 나, 나는 오빠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누구인가를 선택하여야 해. 오빠나 종일 오빠 중에서...그런데 나는 아무래도...아무래도..." 그리고 그녀는 김종일을 선택하였을 때, 강석호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말았었다. 왜냐하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김종일은 강석호보다 더 똑똑하며 부유 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감종일은 강석호가 순해를 알기 이전부터 이미 가족같이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소위 기득권(旣得權)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강석호는 먼 발치에서 순해를 좋아하며 사랑하여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순해는 김종일을 배반하고 마크라고 하는 미국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하여 미국으로 왔으며, 그 결과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는 정신병 환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월남여인, 닌은 남지나 바다에서 해적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후 바다에 던지워 졌다니...) * 아침이 되었다. 닥터.강은 마음이 아파 진료실로 가는 것을 포기 하였다. 그리고 무작정 어디로인지 가고 싶었다. 그 때였다. 은은한 챠임 벨(Chimebell)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든그로브 수정교회(水晶敎會, Cathedral Church)에서 울려오는 아침 종 소리였다. 닥터.강은 수정교회를 좋아하여 자주 그곳에 가서 앉아 있고는 하였었다. 수정 교회는 이름그대로 특수 유리로 지었기에 안이 다 들여다 보이며 그 곳에 우뚝 솟은 종탑에서 울려오는 찬송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청주에 있는 성공회당과 그곳에 서 있던 종탑을 생각하였었다. 그리고 아침 6시, 정오12시 그리고 오후 6시마다 종을 쳐 주었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를 성공회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곳에 원색으로 그려진 성자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오빠! 이 사람이 베드로, 이분은 스테반"이라고 설명 해 주었던 순해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가 하면 월남 퀴 호아에 있던 나병환자촌에서 손을 잡고 같이 거닐었던 월남 여인, 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기에 여기 수정교회는 닥터.강에게 있어서는 마치 고향을 옮겨다 놓은 듯한 포근함이 있는 곳이었다. 그뿐인가 눈을 들어 북쪽을 보면 디즈니랜드의 백조의 성이 빤히 보이며 조금 남쪽으로 내려 오면 그의 진료실이 있기에 그는 퇴근길에 피곤을 풀기 위해 이곳을 잠시 들리곤 하였었다. 챠임 벨에서 흘러 나오는 찬송이 그의 귀에서 맴돌았다. [ 당신이 외로히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네 홀로 외로워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 ]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 "아! 누군가 나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기도하네." 그는 수정교회로 향하여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 종탑 아래에 앉아 조금전에 그곳에서 흘러 나왔던 이 노래를 되 새겨 보았다. 그리고 그는 브레아 정신병원에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순해를 위해, 그리고 멀리 남지나 바다에 수장(水葬)되어 바다 깊숙히 외로히 누어 있을 닌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눈물이 주르르 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외로운 마음에 진정 그의 마음도 무너지는 듯 하였다. 닥터.강이 지금까지 살아온 60년, 오늘처럼 간절하게 남을 위해 기도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하였던 예수님을 오늘처럼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다. "인간이 이토록 무기력한가? 조물주 앞에서 한갓 돌 하나와 마찬가지구나. 주여! 순해를 말끔하게 회복 시켜주소서. 그리고 멀리 남지나 바다에서 숨막혀 하는 닌에게 호흡을 주소서!" 그가 드린 기도들은 너무나 순박한 기도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너무 간절하게 기도를 하시는 군요. 기도실로 가시지요.?" 얼굴이 희며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아- 아닙니다. 다 했습니다. 이제 가려고 합니다." "그러세요. 나, 여기 목사입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Schuler)라고 합니다." "아- 슐러 목사님!" 닥터.강은 깜짝 놀랐다. 그 유명한 슐러 목사를 이렇게 만나다니... "어떻소. 내 방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합시다.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이 바로 굿 후라이데이(Good Friday, 성 금요일)임을 실감하는군요." 결국 그는 슐러 목사님을 따라 그의 방으로 가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닥터.강이라고 하셨죠? 저 벽에 걸린 십자가를 늘 바라 보세요. 그리고 옛날 당신과 만났던 그분들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세요.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그렇습니다. 남지나 바다에서 죽은 그분은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서 떠나 보내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녀의 영혼을 부탁하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순해씨는 그녀가 속한 그녀의 가정으로 돌려 보내세요. 세상에 속한 욕심이 헛된 것임을 아시고 다 버리세요. 당신을 위해 예수가 죽었듯이 그들을 위해서도 죽었습니다. 자- 안녕히 가시고 가끔 이곳에 들려주세요. 외로울 때마다..." 슐러 목사는 닥터.강의 손을 잡으며 이별을 고하였다. 그랬었다. 오늘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성. 금요일(Good Friday)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흘후, 무덤을 헤치고 부활을 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부활을? 그렇다면, 남지나 바다에 죽어 있는 그녀도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그녀도?" 그는 문득 부활을 생각해 보았다. ("닥터.강? 예수님은 당신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젠 당신의 마음에서 잊으시고 예수님께 맞기세요. 그리고 당신에게 맞겨진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당신을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을 잊지 마세요.") 슐러 목사님의 충고가 그의 귀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14장. 절망(絶望) 성 금요일!(聖 金曜日) 하루 종일 피곤하였기에 닥터.강은 그가 의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무단 결근을 하였다. 60년간의 인생이 너무나 의미가 없었으며 삶의 의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까? 목이 마르며 눈이 침침하였으며 무엇보다, 식욕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소변 색깔이 너무나 노랗게 보였으며 식은 땀이 나며 배가 조금은 부른 듯 하였다. 그뿐인가 요 며칠 사이에 무려 10 파운드나 몸무게가 줄었다. "너무나 피곤하구나!" 그는 몇 차례 뇌까려 보았다. 그리고 그는 침대에 정신을 잃고 누어버렸다. * 다음날.....병원 식당에서 친구 의사, 닥터.류(Liu, 劉)를 만났다. 그는 닥터.강과 같은 내과 전문의사로 멀리 대만의 가오슝(高雄)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에서 비슷한 시기에 전문의 과정을 수련한 친구 의사였다. "닥터.강? 아니? 왜 그렇게도 안색이 나쁘오? 다소 피부가 노란 것 같구요." 닥터.강은 그간에 생긴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닥터.강? 환자도 중요 하지만 본인의 몸도 추술어 보아야 합니다. 당분간 푹 쉬세요. 내가 환자들을 대신 돌볼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거의 반 강제적으로 닥터.강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실로 보냈다. * 사실이 그러했다. 닥터.류의 말대로 얼마동안 사람들이 없는 바닷가나 산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아니면 의사라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마크. 맥.나이트로부터였다. "닥터.강? 잠간 나 좀 만납시다. 보여 들릴 것이 있습니다. 브레아 정신 병원 앞에 있는 데니 식당으로 나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가고 싶지는 않았으나 가까스레 찾아 가 보니 마크는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닥터.강? 내 아내, 순해가 이젠 퇴원을 하였습니다." "퇴원을? " "그렇습니다. 이젠 말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완전히 정상이 되었답니다. 닥터.강? 다, 당신 덕분입니다." "그래요? 너무나 기쁘군요." 그리고 그들은 인근에 있는 마크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층집으로 꽤나 아담한 모습을 한 그의 집에서 만난 순해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말끔하게 단장을 하였으며 얼굴에는 옛날처럼 미소가 있었다. "순해! 이제 완치되었어!" "석호 오빠 덕분에..." 마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오랜만에 허깅을 하였다. 닥터.강의 심장은 빠르게 뛰는 듯 하였으며 순해의 가슴도 크게 요동을 하는 듯 하였다. '아- 순해...내가 너를 기다린지가 얼마인데...' 그 순간 그에게 들려오는 수정교회의 슐러 목사님의 말씀이 있었다. ("닥터.강! 모든 것을 잊으세요. 헛된 것은 다 버리세요. 당신 앞에 서있는 순해도 마크와 그의 가정으로 돌려 보내세요. 그의 가정으로...") (예? 순해를? 순해를 생각하는 것도 헛되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마크와 순해의 집을 나오면서 그는 마침내 참고 잇던 울음을 터 트리고 말았다. '다. 버려라...순해도....' 가든그로브의 작은 콘도 집으로 돌아 와 보니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닥터.강은 책상위에 놓여 있는 순해의 사진과 닌의 사진을 번갈아 바라다 보았다. 너무나 불쌍한 여인이라고 생각을 하였었으나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비록 남지나 바다에 수장되어 있으나 언젠가는 부활을 할 닌과 우울증에서 말끔히 회복이 된 순해의 모습이 이제는 싱싱한 꽃처럼 보였으며 진주와 보석과도 같아 보였다. "그래! 이제는 버려야 하는 구나. 모든 헛된 것을 버리라고 하였으니...." 마침내 닥터.강은 지난 30여년간 지니고 있었던 두 여인들의 사진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목놓아 울었다. "세상의 헛된 모든 것을 버리네......." 모든 것을 버리고 보니 손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닥터.강의 마음은 평안하였으며 다시 환자 진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닥터.강은 친구 의사 닥터.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닥터.강? 잠시 만나 할 말이 있습니다. 일주 전에 보냈던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 -그리고 그가 한 말은 너무나 뜻밖의 소식이었다.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나 닥터.강은 C형 간염(Hepatitis C)을 앓고 있었다. C-형 간염이란 수혈이나 피를 통해 전염이 되는 바이러스병인데 간에 전염이 되면 간염은 물론 간경화 그리고 마침내는 간암으로 진행이 되는 꽤나 치료가 어려운 병이다. 간염을 측정하는 수치인 지피티(GPT)가 무려 450(정상은 45이하)이 넘으며 알부민의 수치는 낮고 글로부린은 높아 간경화증이라는 상태로 진행이 되어 있었다. 불쌍하게도 닥터.강은 자신이 중증에 걸려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무리해 가면서 환자를 돌보아 온 셈이었다. 닥터.류는 알파 훼토푸로테인(Alpha Fetoprotein)의 수치를 알기 위해 혈액을 또다시 채취하면서 다음주에 서둘러서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하여 주었다. '아니, 내가 간염과 간경화증이라니...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간경화증 환자들이 있었다. (한 환자는 피곤하며 밥맛이 없다고 하여 피검사를 하였었는데 C형 간염과 간경화증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불과 2개월 후에 피를 토하며 빈혈이 심한 상태로 수혈을 받가도 하였으나 갑자기 혼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른 환자는 바로 닥터.강과 아주 절친하였던 친구 의사였다. (멀리 미쉬간주에서 내과 개업을 하던 그의 친구는 B형간염 보균자였는데, 너무나 무리하여 환자를 본 것은 물론 술을 자주 마셨었기에 그는 젊은 나이에 간경화증으로 죽었었다. 멀쩡하던 이 친구는 어느날, 환자를 진료하고 집으로 오던 중, 갑자기 피를 토하였다. 그리고 미쉬간 대학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을 하면서 4시간에 걸친 간 문맥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지금부터 15년전의 일이었다. 45살의 젊은 나이로 그가 죽었을 때, 친구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아니, 45세의 나이로 죽다니!")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환자도 있었다. ( 또 다른 환자란? 역시 간염과 간경화증으로 진단을 받고 에피비어(Epivir) 와 헵세라(Hepsera)그리고 근자에는 인터페론 주사를 맞아 정상 수치를 유지하며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는 환자를 말한다.) 그뿐인가 또 다른 환자는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환자도 있었다. (간염 B 형으로 간 경화와 마침내 간암이 발생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죽기만을 기다리던 52세의 남자가 있었다. 마침내 혼수에 빠져 빈센트 병원(Vincent)에 입원하여 거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마침 병원 응급실로 교통사고가 난 청년이 들어 왔으며 이내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친척은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축복이었는지 중환자 실에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 환자에게 싱싱한 간이 기증되었으며 그는 마침내 기적같이 살아나고 말았다. 간 이식에 의하여.....) * 닥터.강의 마음은 뒤숭숭하였다. 불과 지난 2-3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들로 인해 너무나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간염에 간경화증이라? 아- 이젠 그만이구나." 그는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것이 절망이었다. 절망(絶望)! 절망감으로 모든 것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울해지고 있었다. " 우울증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우울증이란...." 그는 울고 싶었으며 차라리 죽고 싶었다. * 그 때, 문득 생각 나는 사람이 있었다. 우울증 환자였던 순해였다. 이제는 오히려 순해를 만나 위로를 받고 싶었으며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붇들고 울고 싶었다. 얼마 전에 마크와 같이 갔었기에 그는 예고도 없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 갔다. 순해는 물론 마크도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마크가 곁에 있으니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으며 더더구나 울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순해는 마크라고 하는 남자와 한 몸이었다. 결코 그 옛날 성공회당에서 같이 놀던 순해가 아니었다. 얘기는 엉둥하게 흘러 옛날 성공회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숫자를 말하고 있었다. "44개였어! 오빠!" "그래, 44개였어." 한순해는 몹시도 즐거웠는지 깔깔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젠 완전히 우울증에서 회복이 된 셈이었다. 닥터.강은 차마 본인이 간 경화증에 걸린 사실을 말도 못하고 순해의 집을 나오면서 또 한번 수정교회의 슐러 목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닥터.강? 헛된 것은 버리시오. 순해라는 여인은 마크라는 남자와 짝지어 있습니다. 당신이 감히 그들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닥터.강은 집으로 돌아 와 밤새 말도 없이 지난 생애를 생각해 보았다. 한마디로 '외로움의 연속'이었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 개업을 하는 둥 마는 둥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닥터.강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말았다. 이젠 개업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혼자 사는 몸, 무엇을 더 먹겠다고 그토록 바쁘게 뛰어 다녔는지 회의가 들었다. 개업을 하며 모아둔 연금과 부동산 하나를 처벌하고 나면 그 돈으로 평생을 살수가 있는데...그런데 그 평생이란 것이 얼마나 더 남았느냐 하는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났다. 1967년 2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외치면서 의사 생활을 해 온지가 어느듯 36년이나 되었으니 의사의 일은 할만큼도 했다고 생각을 하였다. * 친구, 닥터.류가 예약한 대로 방사선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하였는데 별 특별한 덩어리는 없는 듯 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병원 검사실에 가서 알파훼토푸로테인 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하였다. "닥터.강? 보소. 단지 간경화증일 뿐... 간암은 아니라고 하는 군요. 자 살았소. 그러니 이제부터는 푹 쉬소. 당분간." 닥터.류는 기뻐서 말하였다. "아- 내가 이젠 중증 환자가 되어 개업을 그만 두다니..." 닥터.강은 씁슬하였다. 매일같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뛰어다니던 것을 그만두고 집에서 쉰다고 생각하니 직업이 없어 집에서 빌빌하며 살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할 것 같았다. * 2003년 6월이 되면서 칼리포니아도 여름을 맞게 되었다. 여름이라고 해야 단지 해가 길어 졋다는 것 뿐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3월 달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심한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있었던 한순해는 이제 말끔히 좋아져 집에서 정상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에 있었던 그 우울증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배신이라고 하는 단어였다. 배신(背信)! 그렇다. 그녀는 강석호 오빠를 배신하였으며 김종일 오빠도 배신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남편 마크 맥, 나이트마저도 배신하며 살아 온 셈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여 보았다. (어떻게 하면 그녀는 배신으로 인해 받은 피해를 보상 해 줄 수가 있을까? 특별히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강석호 오빠와 김종일에게 어떻게 하여야 사죄를 할 수가 있을까 생각을 하여 보았다. 그녀는 김종일에게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녀는 김종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었다. 김종일은 편지에서 말하였다. '순해! 나는 한 때 너를 몹시 원망도 하였으며 분노를 느끼기고 하였으나 오히려 좋은 규수를 만나 잘 살고 있으니 순해 너 자신이라도 부디 잘살아 달라고 하는 답장을 통해서 용서를 하였다.) 그러나 정작, 가까이 사는 강석호 오빠에게는 편지도 전하지도 못하였으며 마음속으로 만 아파 할 뿐이었다. (한순해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강석호 오빠는 나로 인해 그의 60평생을 희생하며 살아 왔다. 그러기에 나는 무엇이라도 오빠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나의 목숨이라도 드리리라....목숨이라도......') * 마침내 서울에 사는 김종일로부터 닥터.강에게 온 편지가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 석호에게. 세월이 빠르구나. 그리고 모든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먼. 한순해의 우울증이 호전되었다니 반갑다마는 너에게 간 경화증이 있어 개업을 포기하고 쉬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나는 울고 말았다. 너의 노력으로 순해가 그토록 호전되었다니 역시 너는 순해를 마음 속에서부터 사랑하였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더구나 네가 사랑하였던 달라트의 아가씨의 죽음을 듣고 나도 역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배신에 대한 원망도 기다림에 대한 슬픔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헛된 것으로 알고 모두 버리고 보니 마음이 너무나도 평안하구나. 슐러 목사님의 말대로 버릴 것은 모두 버리자. 그리고 석호야! 나는 너에게 진 빚을 갚고자 한다. 빗이라니? 그래, 빚이 있었어. 용서받기 힘든 빚이 있었어. 네가 그토록 사랑하며 갖고 싶어하였던 순해를 내가 가로챈 빚을 갚고자 한다. 나로 인해 너는 가정도 갖어 보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친구여! 부디, 한국으로 돌아와 나와 같이 살자. 나와 같이. 간경화증쯤이야 잘 먹고 잘 쉬면 되는 것 아니니... 부디 나의 가족이 되어 같이 살자꾸나. 서울에서 종일 씀. " ] "고맙다. 석호야. 석호야! 그럴 날이 있겠지...." * 며칠후, 닥터.강은 닥터류의 진료실로 찾아간 것은 그가 오라고 한 전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제 그는 갑작스레 배가 아프더니 약간의 검은 피를 토하였으며, 배가 불러 숨이 차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나오다니? 아- 간경화증이 점점 나뻐지고 있구나. 이제 죽는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인데...' 닥터.강은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닥터.강? 간기능 검사를 한번 더 해 보십시다. 벌써 일개월이 되었으니까요." 너무나 고마웠다. 시간과 날자를 맞춰서 이렇게 친절하게 불러 진료를 해 주다니... 역시 중국사람들은 친하기는 어려워도 한번 친해지면 목숨까지도 준다던데.... 닥터.강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다 보았다. "아무래도 복부 컴퓨터 촬영을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 큰 부담을 갖지 말고..." 그리고 그는 납치 하듯이 닥터.강을 데리고 방사선과로 가 촬영을 하였다. 사흘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는 혜어졋는데 그날 밤 그는 코피를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추워 벌벌 떨며 그 밤을 지새웠다. '간 기능이 너무 나빠졌나?' 마침내 닥터.강도 마음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3일후 약속대로 닥터,류의 진료실로 갔다. 그리고 그는 뜻밖의 결과를 받게 되었다. "닥터.강? 뜻밖이오마는 간에 작은 덩어리가 하나 있는 듯합니다. 혹시 간경화증에서 오는 가상 혹(Pseudo Tumor)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마는... 어쨋든 조직 검사가 필요 하군요." "예? 혹이라고요? 닥터.류?" "........." 닥터.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컴퓨터에 분명히 암 덩어리가 있었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거죠?" "닥터.강? 아무래도 UC얼바인 대학 병원에 가서 간 전문 교수와 한번 의견을 교환해 보아야겠습니다." "아- 닥터.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그리고 4일 후..... 닥터.류는 아주 미묘한 결과와 계획을 말하여 주었다. "아무래도 조직 검사를 하는 것이 순서이나 컴퓨터 사진으로 보면 간암으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조직 검사를 하던지 아니면 최소한 감마 나이프(Gamma Knife) 수술을 받아 보시는 것이 좋다고 하던군요. 감마 나이프 수술은 UC 얼바인에서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감마 나이프 수술을? 그렇다면 닥터.류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주에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약 이틀은 병원에 있어야 합니다." * 아내는 물론 자식이 없다보니 수술 중에 잘못되어 죽는다고 하면 갖고 있는 재산이 문제였기에 그는 서둘러 변호사를 만나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를 급히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주에 그는 얼바인 대학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뜻밖의 일은 어떻게 알고서 왔는지는 모르나 마크.맥나이트가 찾아왔다. "닥터.강? 그동안 당신에게 지은 나의 죄가 너무나 큽니다. 당신의 곁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죄하는 의미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병으로 입원하였는지를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니요? 혹시, 순해씨도?" "아내는 모릅니다. 비밀로 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마크!" 닥터.강으로서는 너무나 고마웠다. 비록 의사라고는 하나 막상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게되고 보니 외로움과 불안으로 옆에 누군가가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감마 나이프 치료는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다. 물론 마취를 한 상태였으며 감마 선(Gamma Ray)을 쬐여주기 전에 간 조직 검사도 병행하였다. 수술후 찍은 복부 컴퓨터 사진에 보면 간 조직에 있던 1X2cm 크기의 덩어리는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성공적이라고 보아야 했다. 다음날 나온 간 조직 검사는 역시 간암이었으며 알파훼토프로테인의 숫자도 역시 높았었다. 결국, 닥터.강은 간염, 간경화 그리고 간암에 이르는 환자라는 결론이 났다. 수술후 그는 복부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픔보다 더 큰 것은 외로움이었다. 그래도 마크가 곁에 같이 있어 주었다고는 하나, 아름다운 연인, 순해와 닌.레의 손길이 그리웠다. 수술 2일 후(시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음) 집으로 돌아 온 닥터.강은 내내 서글픈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다. 병원에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한 것은 손수 음식을 만들고 세탁도 하여야 했다. 막상 몸이 불편하고 보니 평소에는 못 느꼈던 불편함을 실감하게 되면서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발견하는 듯 하였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본인도 일단 환자가 되고 보면 사람을 피하게 되며 모든 것에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과 그로 인해 우울해 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해가 우울증 환자가 되었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너무나 외롭군! 너무나! 외로움이 죽음보다 더 무섭다고 했는데...." * 며칠 후, 딕터.류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닥터.강의 병세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여 주었다. (일단 간암 조직은 제거하였지만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워낙 간 기능이 약함으로 간 이식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 '간 이식을? 그렇다면 내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구나.' 결국 그는 얼바인 대학 병원에서 간 이식을 받기로 등록을 하여 놓았다. 혈액형이 맞는 간 기증자가 생기면 언제고 입원하여 수술을 받기로 하였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50마일 밖으로는 나가지 않기로 하였다. '얼마나 더 살려고 간 이식을 한담.' '차라리 때가 되면 죽으리라.' 그는 죽는 방향으로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아냐 살아야 해'라고 사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담담했다. 살겠다고 하는 욕망을 버리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였다. 15장: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역시 수정교회의 슐러 목사님이 가르쳐 준 말씀이 생각났다. "세상의 헛된 욕망을 버리세요."라는. 그러나 욕망을 버리고 나니 또 다른 욕망이 솟구쳤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너무나 많았다. 너무나... 그러나 두 가지가 마음에 떠 올랐다. (하나는 청주에 가서 성공회당으로 오르는 그 돌계단에 순해와 같이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지나 바다에 가 바다 밑에서 홀로 살고 있는 닌에게 꽃 한송이라도 던져 주고 싶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그를 찾았다. -뜻밖이었다. 우울증 전문의사인 제임스 야마시로였다.- 자초 지총을 들은 그는 닥터.강에게 위로와 사죄를 하였다. "그러고 보니 닥터.강은 간경화증 환자였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순해 환자를 돌보아 달라고 떼를 썻었군요. 내 환자는 고쳤으나, 반대로 닥터.강은 악화가 되었었군요. 허나 감마선 치료도 받았으며 이식 수술의 명단에도 올려 놓았으니 한번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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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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