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문도에 핀 동백꽃은 제 7부

2012.02.02 14:25

연규호 조회 수:760 추천:29

15장: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역시 수정교회의 슐러 목사님이 가르쳐 준 말씀이 생각났다. "세상의 헛된 욕망을 버리세요."라는. 그러나 욕망을 버리고 나니 또 다른 욕망이 솟구쳤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너무나 많았다. 너무나... 그러나 두 가지가 마음에 떠 올랐다. (하나는 청주에 가서 성공회당으로 오르는 그 돌계단에 순해와 같이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지나 바다에 가 바다 밑에서 홀로 살고 있는 닌에게 꽃 한송이라도 던져 주고 싶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그를 찾았다. -뜻밖이었다. 우울증 전문의사인 제임스 야마시로였다.- 자초 지총을 들은 그는 닥터.강에게 위로와 사죄를 하였다. "그러고 보니 닥터.강은 간경화증 환자였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순해 환자를 돌보아 달라고 떼를 썻었군요. 내 환자는 고쳤으나, 반대로 닥터.강은 악화가 되었었군요. 허나 감마선 치료도 받았으며 이식 수술의 명단에도 올려 놓았으니 한번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고 오세요." 그는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일본에 규슈에 가면 해신(카이진, 海神)의 힘을 빌려 병을 고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의 누나도 남편의 병을 그렇게 고친 적이 있다고 하였다.- "카이진이라구요? 신라때 장보고가 거기까지 갔었나요? " 닥터.강은 웃으면서 물었다. "아-그게 아니고 일본에서 말하는 해신은...미우라 반도(三浦半島)에서 다케루(日本武 )왕자를 살려준 바다의 신을 말하지요. 남편을 살리기 위하여 풍랑속으로 몸을 던졌던 아내를 생각하며 '아즈마 하야! 아즈마 하야!'라고 울부짖었던 다케루를 구해주었던 그 바다의 신을 카이진이라고 하죠." "그렇게 까지? 더구나 일본의 잡신(雜神)에게? " "아-카이진도 위력이 있다고 합니다. 어쨋거나 혹시 일본에 가보실 의향이 있으면 오이따에 사는 나의 누이 오하라(大原) 쇼꼬(晶子)상에게 부탁을 해 보겠습니다." "쇼꼬? 참 이름이 예쁘군요. 제임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권하는 것은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어디인지 한번 다녀오십시오. 모든 것을 훌쩍 털어 버리고...어디고...." * 그날 저녁, 닥터.강은 많은 생각을 하였다. 더구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눈 앞에 보면서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해보고자 하였으나 정리 할 것보다는 역시 한번 더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앞섰다. 그리고 그 결론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과 사랑을 받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구인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보고 싶다. 그리고 사랑을 받고 싶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누구인가를 만나 사랑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책상에 앉아 서울에 있는 친구, 긴종일 의사에게 편지를 쓰고 말았다. ["사랑하는 친구, 종일에게. 생략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수명.. 이 수명이 다하기 전에 나는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잇다네. 그리고 내가 살 길은 간 이식이라고는 하나 구차하게 남의 간을 받아 살고 싶지는 않다네. 때가 되어 죽는 편이 낫겠지. 하나님이 부르면 가는 거지. 구차하게 수술까지.... 그러나 꼭 한가지... 죽기 전에 자네의 집에 가서 너의 가족이 되어....아니 가족의 일원이 되어 조금만 살면 안될까? 조금만... 너의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벗 강석호가. " ] 편지를 쓰면서 그는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그를 생각해 보았다. (1967년 7월, 그와 결혼을 약속하였던 순해가 배신하고 미국으로 가버리자 그는 끓어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못 참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말하였었다. '모든 것이 깨졌어. 깨끗이 단념하마. 그리고 다른 좋은 여자를 만나마. 그리고 석호! 너도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거라! 바보처럼 울지 말고 남자 새끼가!') 그리고 그는 정말로 좋은 규수를 만나 결혼을 하여 아들 달 낳고 잘살고 있었다 그러나 강석호는 역시 바보 같은 새끼였다. 지금까지 결혼 도 않고 혼자 살고 있으니....가정이란 것이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막상 수술을 받고 보니 더 더욱 간절하였다. 아들이나 딸이 있어 그들의 손을 잡고 맥도날드(MacDonald)나 버거 킹(Berger King)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작고 허름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이라도 입에 뭋쳐가며 먹고 싶었다. 아니 옆 탁자에 애들을 데리고 와 떠들석하게 그리고 분주하게 먹는 가족들이 부러웠었다. 애들은 고사하고 애를 못 낳는 아내라도 있어 손잡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이라 먹어보았으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순해라면 더 좋으련만, 그녀는 이제 마크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것이 닌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좋으련만 그녀는 멀리 남지나 바다에에서 수장된 시체로 있으니.... 친구, 김종일이 언제가 한말이 떠 올랐다. "석호! 외과 의사하고 내과의사하고 다른 것은 말야, 하루 종일 수술을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 왔을 때, 딸냄이가 '아빠! 아빠!'하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 모든 피로는 싻 없어지는 거라. 이게 바로 나의 행복이라네."라고 한 말이었다. '그래, 나는 그런 행복을 갖어 보지 못했어. 그리고 가질 수도 없고. 나는 어짜피 곧 죽을 수 밖에....' 닥터.강은 울고 말았다. * 다음날 아침, 그는 마크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어제의 심정을 소상하게 설명하였다. "아-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요! 아- 그런데 나로 인해 그렇게 하지를 못했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마크는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베트남으로...한국으로 가서 김종일을 만나겠다구요? 그리고 또 어디로?" "예, 남해바다 남쪽에 있는 거문도에 가서 동백꽃을 바라다 보며 등대직이로 살아온 정진성 선장을 만나 본 후에는 아마..." "아마?" 마크는 불길한 마음으로 되 물었다. "죽게 되겠지요. 마크." "죽는다고요?" "그렇겠지요. 아무것도 없군요. 아무것도....." "닥터.강? 아무도 없다니요. 내가 있잖소. 그리고 나의 간을 드리겠소. 그러니 수술 받고 더 오래 사세요. 더 오래...그리고 사랑하는 순해도...." "예? 간을 주겠다고요? " "그렇습니다. 닥터.강. 순해도..나의 아내 순해까지도 드리겠소. " 마크는 닥터,강의 손을 잡고 말했다. "뭐라고 하셨소?" "내 아내, 순해를 드리겠다고요!"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순해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아내와 연인은 다름니다. 나의 아내는 당신을 평생동안 생각하며 살아 왔으니까요..." "그래도...당신의 아내요. 당신의..." 16장. 남지나 바다에 다시 와 보니... 닥터.강이 베트남의 호지민 시티(구. 사이공)의 공항에 어떻게 도착 하였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려운 여행길이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떠나 홍콩에서 하루 저녁을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베트남 항공을 이용하여 사이공에 도착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란 나라를 거치지 않은 것을 보아 해신(카이진)에 대한 기대는 없는 듯 하였다. 옛날 탄손누트로 불리웠던 이 공항에 그러고 보니 금년 일월 달에도 관광으로 찾아 왔었건만 이번의 여행길은 더 더욱 감회가 깊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봉타오 항구로 달려갔다. 봉타오! (그 옛날, 그가 사랑했던 닌이 라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트럭을 타고 달려갔던 바로 그길이었다. 사이공상을 끼고 달려간 길이었다.) 봉타오 항구에 도착한 닥터.강은 한 어선의 선주를 만났다. "이 어선을 한 나절만 빌립시다. 아니 반나절이라도...." "예? 어선을 빌려 무엇을 하려고요? 낚시를 하려구요? 그런데 낚시 기구도 없잖소?" "아닙니다. 고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사람을요? 바다에서?" 베트남 선주는 다소 정신이 돈 사람이 아닌가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꽤나 비싼 값을 요구하였다. 무려 오백 달라를 지불하고 그는 배를 한나절만 빌리게 되었다. 베트남 선주는 기관사 하나와 같이 배를 몰고 넓은 바다로 나왔다. "어디로 갈까요? 어느 방향으로요?" "아- 선주님? 옛날 보트 피플들이 어선을 타고 내 쫒기었던 그 방향으로 배를 천천히 몰아 주쇼." "예? 보트 피플이라고 했소? 보트 피플?" "그렇습니다. 보트 피플...그리고 타이 해적선에 의해 무참하게 죽은 피난민들 말요." "타이 해적선...우리 베트남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놈들..." 선주도 동의를 하면서 배는 봉타오를 벗어나 한시간 여를 항해하였다. 파도는 높지 않았다. 베트남 어선은 비교적 성능도 좋고 정비도 잘 되어 있었으며 선주도 또한 닥터.강의 마음을 이해하였는지 아주 호의적으로 협조를 하였다. "그러니까...사랑하였던 여인이었군요? 더구나 한국 군인으로 참전하여서 ..참으로 전쟁은 없었어야 했는데. 이젠 우리 베트남도 많이 달라 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답니다. 보십시오. 사이공 아니 호지민시티와 하노이에는 온통 한국산 자동차와 텔레비죤이 판을 친답니다. 그리고 달라트라는 곳,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요. 하룽베이처럼 아주 경관이 좋은 곳이라고요. 자! 얼마나 더 갈까요?" "타이 해적선이 나타났다고 했는데...그 곳 까지 갑시다." "타이 해적선? 그놈들! 우리 베트남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아시오? 수 만명? 수 십만명?" "그렇게나 많이?" 닥터.강이 오히려 물었다. 어선은 남지나 바다를 향해 더 항해를 하면서 파도에 울렁이기도 하였다. 멀리에서 지나가는 어선도 있었으며 군함도 있었는데 아주 평화스러워 보였다. 옛날 처럼 해적선이 공격을 할 이유도 없었으며 다른 어선에게 구걸을 할 이유도 없었다. 선주와 같이 점심을 먹으며 닥터.강은 옛날, 닌과의 사연을 말하여 주었다. 선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닥터,강? 당신은 우리 베트남을 사랑하는 군요, 더욱이 정진성 선장도...." -지난 30여년의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다시 한번 들쳐 보고 있는 듯 하였다.- (닥터.강은 갑판에서 멀리 남지나 바다를 바라다 보며 닌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니 어디에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에게 갑자기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 ("강중위님? 여기에서 손을 놓으시면 영원히 만나지 못합니다. 이제 가시면 영영 못 만나겠지요? 아니, 미국에 있다는 붉은 강의 계곡(Red River Valley, Texas)에서 만나요, 꼭요? 그리고, 한국으로 가기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7월 20일, 토요일. 저녁에 달라트 소피 호텔에서 만나요.") 7월 20일, 토요일 저녁에? 그러고 보니 1969년 7월 20일, 토요일은 닥터.강에게 있어서는 아주 의미 있는 하루였었다. (그가 사랑하였던 달라트의 여인 니을 소피 호텔에서 만나 하루 저녁을 보내며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겠노라고 약속을 한 날이었었다. 그러했었다. 1969년 7월20일 달라트의 토용일 밤은 비가 오며 칠흙같이 어두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았던 닌이 자정이 되어었을 때, 닥터.강이 잠 못이루며 고민을 하고 있던 그 소피 호텔 방 문을 두드렸다. 닌은 비를 흠뻑 맞고 문 앞에서 떨고 있었다. "아니? 닌? 웬 일이요?" "강중위님? 나의 순결은 당신의 것입니다. 한국 군인, 당신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들은 영원한 약속을 하였었다. -평생을 기다리겠노라고...평생을..- "강중위님?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저녁은 또 다른 저녁이었었다. (멀리 한국에서 그가 사랑하고 기다렸던 그녀의 연인, 한순해가 마크와 결혼을 한 저녁이기도 하였었다.) "닌! 닌! 닌!" 닥터.강은 바다를 향해 큰 소리를 쳤다. "왜 그러십니까? 박시? 누구를 보셨습니까? " 선주는 물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저기, 저 바다 밑에서 소리가 나는 군요. 저 바다 밑에서..." "저기요? 그러면 조금더 가까이 갈까요?" "그러세요." 그리고 닥터.강은 준비하여 온 장미를 바다에 하나씩 뿌려 주었다. 붉은 장미 하나가 바다에 떨어 지면서 작은 물거품을 만들더니 이내 둥둥 더 가고 있었다. "닌! 닌! 닌! 사랑하오. 이젠 숨을 크게 쉬세요. 여기 내가 왔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사랑의 계곡을 걸으려고... 그리고 닌? 삼개월 후면 나도 당신처럼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게요. 그러니 다시 만납시다. 다시..." 마침내 그는 그가 갖고 온 36개의 붉은 장미를 바다에 모두 던져 버렸으며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장미들이 여기 저기로 흩어 지는 모습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면, 다시 봉타오로 돌아 가겠습니다. 미국 박시!" 선주는 어선의 방향을 돌려 봉타오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붉은 장미들은 더 이상 눈에서 뵈지를 않았다. 멀리 서편으로 산이 보이더니 마침내 봉타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봉타오! 봉타오!' 닥터.강은 작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멀리 두고온 남지나 바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강중위님? 강중위님! 나는 이제 외롭지 않아요. 비록 이렇게 바다밑에 수장이 되었지만 외롭지 않군요. 당신이 던져준 장미꽃이 있으니까요." "아-닌!" "그리고 강중위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사람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예 나를 기다리는 사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란? 문득 금년 3월 정진성 선장 환영식에서 만났던 96명의 보트 피플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퀴, 트랜, 그리고 제임스 누엔의 모습이 떠 올랐다. '제임스?' 그러했다. 그녀의 아들이며 퀴의 조카라고 했던 아주 잘 생기고 훌륭한 변호사 제임스 트랜의 모습이었다. "예, 저의 이름은 제임스입니다. 본명은 휴이 트랜이라고 하며 달라트에 살던 레장군의 외 손자이며 트랜 상원의원의 손자입니다. 보트 피플로 죽었어야 했는데 여기 정진성 선장님 덕분에 살았답니다." 처음 만나던 날, 그는 이렇게 자기를 소개 하였었다. 그 때 또 한번 들리는 닌의 목소리가 있었다. 비오던 1969년 7월 20일 밤이었다. "강중위님? 나의 순결은 당신의 것이예요. 당신..." 그 순간 그는 제임스 누엔이 한 말이 생각났다. "저요? 1970년 5월에 사이공에서 태어 났지요. 휴이 트랜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는 제임스 누엔으로 바뀌었지요." 1970년 5월이라면? 아-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그녀는 나를 꼭 7월 20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었나? "강중위님? 7월20일날 만나요. 7월20일이요. 19일도 안되고 21일도 안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제임스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닥터.강? 나는 외 아들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나은 후 동생을 낳지 못했으니까요.") '아! 닌이 말하는 기다린다는 사람이란? 제임스? 제임스란 말인가? 아닐거야. 아닐거야.. 그럴 리가...' 닥터.강은 문득 제임스가 보고 싶어졌다. 그는 그를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를 보기 위해서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간암에서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간이식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제임스를 생각하고 보니 더 이상 외울 것 같지 않았다. 간 이식을 한 후 회복이 되는 대로 웨스트민스터로 가 제임스 누엔, 아니 휴이 트랜을 만나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기뻤다. 그의 손을 잡고 맥도날드에 가서 큰 햄버거를 같이 먹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닥터.강은 호지민 시티 국제 공항을 출발하여 홍콩을 거쳐 그날 오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울에 있는 친구 김종일 외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것보게 석호? 어서 오게나. 어서. 나,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네. 이제부터는 나와 같이 사는 걸세. 그동안 자네에게 진 빚을 몽땅 갚아 줄터이니까...염려 말라구." "고맙네. 그런데 내가 잠시 들릴 곳이 있어, 그곳부터 다녀와서 자네를 찾겠네." 뜻밖이었다. 그는 인천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김포로 가 그곳에 있는 한 호텔에서 하루 저녁을 잔 후 다음날 아침, 여수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보니 옴 몸에 맥이 없었다. 진땀이 낫으며 다리는 휘청거리고 있었다. 17장. 거문도, 동백(冬柏)의 가슴은 붉게 타고.... 닥터.강이 전라남도 여수 항구에서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을 때, 갈매기 떼가 오동도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여객선의 이름이 "거문도"였다.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거문도! 역객선, 거문도는 마침내 붕-붕- 소리를 내며 돌산 대교를 지나 가막만의 섬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여객선은 파도에 부딪쳐 흔들리기도 하였다. 약 2시간을 달리니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로 구성된 거문도의 거문항(巨文港)에 도착을 하였다. 2시간의 항해가 마치 34년의 긴 세월을 단축한 시간과도 같았다. 거문항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법 번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항구 주변에 작은 식당 그리고 여관들이 꽤나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곧잘 찾아오는 듯 하였다. 고도에서 삼호교 다리를 건너 서도에 이르자 확 트인 백사장이 보였으며 그곳에서 북쪽으로 올려다보니 '기와집 몰랑'이 보였다. 동백꽃 나무가 무성하여 담을 이루고 있는 작은 집을 발견하였다. 이 작은 집에 96명의 월남 피난민들을 구해 주었던 선장 정진성씨가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살아왔다고 한다. 거문도 등대를 지키며 서도에 핀 동백꽃을 바라다보며 바다에 나아가 고기를 잡아 온 정진성 선장은 마침 집에 있었다. "아니? 닥터.강? 웬일이요? 지난 3월에 미국에서 만났었는데... 어떻게 여길?" 정진성씨는 너무나 뜻밖의 방문에 놀라고 말았다. 더더욱 몰란 것은 닥터.강이 격은 지난 몇 개월의 악몽같았던 사건의 연속을 듣고 나서였다. "아니? 간 암이라고요? 그리고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구요?" 그는 운이 휘둥그래 지면서 물었다. (정진성 선장이 귀국하고 난 후,닥터.강이 체험한 순해의 우울증, 그리고 닌의 죽음...그리고 너무나 피곤한 그 자신이 간염과 간 경화증을 거쳐 간암의 진단을 받아 감마 나이프로 시술을 받은후.... 그는 이제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수가 있다는 사형 선고 같은 진단... 그리고 죽기전에 나선 베트남 나들이...그리고 친구 김종일의 가족이 되어 살고 싶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 정진성 선장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닥터.강은 제임스 누엔이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임을 말하지는 않았다. 정진성 선장은 말하였다. "듣고 보니 절망이군요. 모든 것이 마지막이군요.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지나 바다에서 해적선에 의해 약탈을 당했던 베트남 피난민들도 흰셔츠를 흔들며 마지막 까지 구원을 요청하였지요. 그러고 보니 닥터.강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간 이식을 받으면 살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간 이식을 받아야지요. 간 이식을...그리고 당신은 의사의 일을 계속 해야지요." "그럴까요?" "물론이지요! 여기 거문도에 와서 나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 생각일랑은 하지 마쇼. 닥터.강과 나는 전혀 다르다구요." "다르다구요?" "다르지요. 물론! 나같은 어부따위 하고는 비교가 안되오!" * 그리고 그들은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다가 마침 영국군 묘지곁을 지나게 되었다. "여기에 있는 이 묘지는 영국군들이 이년간 이곳 거문도를 점령하였을 때, 죽은 젊은 군인들이 뭍쳐 있는 묘지라구요. 젊은 군인들이 멀리 영국에 두고 온 애인들을 기다리다가 죽어 묻쳤다고 하던군요." "영국군이? 아니? 영국군인이?" 닥터.강은 소스라쳐서 놀랐다. (구 한말, 영국군은 남쪽으로 내려 올지도 모르는 러시아를 견제 하기 위하여 약 2년간 무단으로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그 2 년동안에 몇 명의 영국군이 죽어 여기 거문도에 묻쳤있다고 한다.) 그리고 문득 월남 전쟁에 가서 죽어 한줌의 재가 되어 동작동 국군 묘지에 묻쳤던 그의 친구, 한성민의 모습이 아련하였다. "그렇죠? 당신의 친구, 한성민 중위가 월남에서 전사하였던 것 처럼...." "예. 마치 붉은 동백꽃이 가슴 아파 피를 토하는 것 같군요. 정진성 선장님?" "그렇죠! 닥터.강? 나는 믿습니다. 한성민 중위는 죽어 그 혼이 여기 거문도에 와 있다고요. 그래서 나는 이곳 거문도로 와 살고 있답니가. 마치 죽은 한성민 중위의 가슴에 붉은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 같구요. 멀리 환하게 비쳐주는 등대불이 마치 남지나 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닌씨를 비쳐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선장님? 성민의 영혼이 여기에...그리고 닌의 혼도 여기에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닥터.강?" 거문도의 서도에 있는 산책로, 기와집 몰랑을 를 밟지 못하고, 유림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바라다 본 서도는 마치 찬란한 햇빛을 받아 의젖하였다. 깍아 지른 벼랑에는 넘실 흰 파도가 부서지고 바다에서 솟은 바위는 의젖하게 물을 맞고 있었다. 이끼낀 바위가 운치를 더하고 우거진 동백이 인사를 하는 듯 하였다. "정 선장님? 부탁입니다. 부디 나를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 주세요. 이곳에서 당신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바쁘고 싸움 투성이인 도심에 가고 싶지 않군요. 그러고 보니 나의 친구, 한성민의 혼과 닌의 혼이 이곳 거문도에서 살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선장님? 그러니, 부디 나를 당신의 한 가족으로 받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닥터,강은 거문도의 풍치에 반하여 그리고 이곳에 성민과 닌의 혼이 살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곳에서 살겠다고 간청을 하였다. "이보소! 닥터.강? 여기 거문도는 아무나 사는 곳이 아니요. 나같은 바닷 사람이나 있을 곳이요. 당신같이 공부 많이 한 의사는 죽을 때가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살아야 하오. 그러니 서울로 가 속히 간 이식 수술을 받으세요. 보아하니 당신을 도와 주겠다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자! 나는 오늘 저녁 거문도 등대를 지킬 차례입니다. 안녕히가세요" "정선장님? 또 다시 찾아오렵니다. 아무래도 거문도로 오는 여객선을 여러차례 타야겠지요.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진성 선장과 작별을 한 닥터.강은 동백 향기가 가득한 거문항에서 다시 연락선을 타고 여수 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포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오니 늦은 밤이었다. '살아야한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지...." 그러나 그 자신은 비록 미국 내과 전문의사라고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두커니 서있는 촌 노인과 같았다. 그리고, 너무나 피곤하였기에 그는 김포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밤을 지내었다. 18장: 간 이식 수술을 받으면 반드시 산다. 아침이 되어서야 닥터.강은 친구 김종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 석호야! 드디어 네가 찾아 왔구나. 네가 돌아 왔구나."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죽마고우인 둘은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아 온 것을 운명의 작난이라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러나 김종일은 강석호에게 씻지 못할 큰 빚을 지고 있었다. 김종일이 말하는 큰 빚이란? (거듭 반복 되는 얘기이지만, 김종일과 강석호는 한순해를 사랑하였다. 다시 말하면 삼각관계였다마는 고아나 다름 없는 강석호 보다는 부유한 집의 아들인 종일이 승자였다. 그리고 강석호가 멀리 미국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이민을 온 것도 알고 보면 김종일로 인한 패배때문이였다.) "석호! 나는 네게 진 큰 빚을 갚아야 해. 아니 꼭 갚을거야." "빚을 갚는다고? 종일아, 나는 너의 가족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 "아냐! 석호야? 네게 아주 좋은 소식이 있어. 너에게 간을 떼어 주겠다고 하는 도너(기증자)가 나타났어." "나에게 간을 떼어 주겠다는 사람이? " "그렇다네. 네가 멀리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 닥터.류라는 중국 의사를 통해 너를 위해 UC얼바인 대학에서 준비한 간 이식 진료 일지를 받아 간 이식을 하려고 준비를 하였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 동안 1000여회에 이르는 간 이식 수술을 하였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나를 따를 만한 외과 의사도 드물다고...아마도 너를 살리기 위해서 였는지 모르지." (사실이 그러했다. 김종일 외과전문의사는 미국에서 간 이식 수술에 대한 훈련을 받은 후 한국에 와서 놀랍게도 1000여 회가 넘는 간 이식 수술을 하였는데 그 성공률이 무려 98%였기에 과히 세계적인 대가가 되었다. ) "그런데 누가 나에게 간을 기증한담? 누가?" "누구라고 말은 못하나 그의 혈액형과 너의 혈액형이 아주 100% 일치하기에 완벽한 도너임에 틀림없어. 석호! 그러니 걱정 말고 수술을 받게나." "그래도...이름은 알고 싶다네. 이름이라도...." "그럴까...놀라지 말게 미국 훌러톤에 사는 마크, 맥.나이트라는 사람이라네...놀랐지? 사실 나도 처음에는 놀랐다네. 우리가 사랑하였던 순해를 가로 채간 그 미국사람이 너를 위해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였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을 하였다네." "마크가? 마크가?" 그 순간 닥터.강은 얼마전에 그가 말한 것이 기억에 났다. ("닥터.강? 나는 당신 곁에 있으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당신을 위해 하렵니다. 나의 간을 드리겠소. 그리고 나의 아내, 순해도 드리겠소.") "그렇다네, 마크가. 너에게 지은 빚을 갚겠다고 하던군. 마치 내가 그러하듯이... 어찌 된 셈인가? 석호! 그리고 그는 며칠 내에 서울로 온다네. 아마 혼자서 온다고 하던군..." "혼자서? 순해는 오지 않고?" "그렇다네. 순해씨는 수술이 끝나고 나서 온다고 하던군...." 뜻박의 훈훈한 대화였다. 결국 닥터.강은 친구 김종일의 가족이 되었으며 친구의 손에 의해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 * 닥터.강이 친구 종일의 가족이 된지도 일주일... 내일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H 병원에 입원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간 외래를 통해 준비한 혈액 검사, 가슴 사진 컴퓨터 촬영등 바쁜 일과였다. 그리고 간을 기증하겠다는 도너, 마크도 어제 서울에 도착하였다고 김종일 의사도 말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면역 관계상, 수술 전에 서로 만나 볼 기회가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고 말하여 주었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며 다음 날,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네..어때? 석호?" "고맙네. 고맙네." * 그러나- 그러나- 간 이식의 대가인 외과 의사 김종일은 그날 저녁 아주 고민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독자들을 위해 외과 전문의사 김종일이 고민하는 간 이식에 대해 조금은 설명을 들여야 할 것 같아 여기 기록을 하고자 한다. 간 이식란? -간 이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체(살아 있는 사람의 간)로부터 받는 간을 이식하는 방법과 또 하나는 죽은 사람(사체)의 간을 이식하는 사체(Cadevar)이식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닥터.강은 생체 이식을 받는 셈이다. 사람의 간은 대략 1500Gm쯤 되는 핏덩이의 기관인데 두 개의 엽(葉,Lobe)으로 나뉘어 있다. 보통 오른쪽 엽(右葉)이 왼쪽 엽보다 크다. 대략 그 비율은 60%:40%로 되어 있으니 900Gm:600Gm이 되는 셈이다. 이식을 할 때, 보통 40%, 600Gm에 해당되는 좌엽을 떼어 환자에게 주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종종 발생하게 되는 것은 간을 주는 사람(도너)이 너무 작거나 받는 사람(환자)이 너무 큰 경우에는 40%의 크기의 간으로는 부족하여 성공률이 50% 이하가 되어 수술은 하나 마나 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외과 의사들은 근자에는 두 사람의 좌엽을 한 환자에게 이식하기도 한다고 한다. 즉 30%짜리(450Gm)의 좌엽을 두 개 합치면 60%(900Gm)의 크기가 되니까 성공률이 높아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간을 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며 수술도 복잡하다. 그렇다고 기증자의 60%에 해당하는 우엽을 기증 한다면 기증자를 죽이는 살인 행위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데 김종일 외과 의사에게 생긴 큰 고민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 강석호에게 기증하기로 한 마크. 맥.나이트의 간은 뜻밖에도 70%:30%의 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환자에게 주어야 할 오른쪽 간이 30%의 크기(450Gm)이기에 간이식을 해보아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간 기능 저하로 인해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100%이기 때문이었다. "아- 안 되는데...너무 작아서..." 결국 김종일 외과 의사는 간을 기증을 할 다른 사람을 구하여야 했다. 그러나 너무나 막연하였다. 언제 어디에서 간 기증자를 구한단 말인가? 이틀 후에 입원을 시키겠다고 말을 해 놓았으니.... 더구나 환자인, 닥터.강은 집요하게 본인에게 간을 기증할 마크를 수술 전에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기에 마침내 내일 그들을 대변 시켜 주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예정대로 간을 받을 닥터.강과 간을 주기로 한 마크 맥,나이트는 김종일 외과 의사의 진료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감격적이었다. 옛날의 연적(戀敵)이 오늘의 친구가 되다니...더구나 생명과 같은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니.. 김종일, 강석호 그리고 마크 맥.나이트 자신도 혼돈이 오고 있었다. 김종일 외과 의사의 감회도 대단히 컷다. (자신과 결혼하기로 하였던 순해를 가로 채 미국으로 간, 원수와 같았던 마크의 배를 칼로 열어 그곳에 있는 간을 떼어, 죽마고우, 강석호의 배를 역시 칼로 열어 그곳에 있는 간을 떼어 낸 후 마크의 간을 이식 시켜 준다니..) 그러나 더 감격스러운 것은 닥터.강이 마크에게 한 말이었다. "마크? 고맙습니다. 나에게 간을 주신다니...나는 믿습니다. 유능한 김종일 외과 의사가 성공적으로 간을 이식해 줄 것이라고...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마크?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한가지...." "한가지라고요? 무엇을?" "마크.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후, 나는 마크, 당신과 당신의 아내, 순해(로즈)와 같이 멀리 남해안에 있는 거문도 섬으로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같이 가십시다. 동백 꽃이 피는 곳...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정진성 선장을 한번만 더 보고 싶군요." "거문도(巨文島)를?" "예. 거문도로. 그리고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거문도를 타고 싶군요. 거문도를 요...." "여객선 거문도를? 그렇게 하죠. 같이 가십시다. 순해와 같이...." "고맙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을 거라고요. 그리고 당신이 준 당신의 몸의 일부분인 당신의 간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렵니다. 그러면 내일 입원하여 수술실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결국 마크와 강석호는 수술 후 멀리 거문도로 같이 가자고 하는 약속을 한 셈이었다. * 그러나, 김종일 외과 의사는 큰 고민 끝에 수술을 일주일, 아니 다른 간을 기증 받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말았다. 환자인 닥터.강에게는 수술 준비를 위해 약 일주일 연장한다고 만 말을 하였다. "일주일! 일주일!" 막연하였다. 아무리 간 기증자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19장. 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듯이 김종일 의사는 일주일이 채 안되어 뜻밖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수술을 할 수가 있었다. "닥터.강! 기뻐해 주게나! 내일 아침 입원하여 수술을 하게 된다네....수술을...." * 마침내, 한국 최고의 간 이식 외과 의사, 김종일은 그의 친구, 강석호를 수술실로 보낼 수가 있었으며 또 다른 환자는 간을 기증하기 위해 옆에 있는 수술실로 보내어 간 절제 수술을 시작하였다. -간을 받을 환자의 간은 100% 다 떼 내어 졌으며, 간을 기증할(도너) 다른 환자의 간은 40%의 부분만이 절제되어 얼음이 든 함에 담겨져 간을 받을 환자, 강석호가 누어 있는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김종일 외과 의사의 지휘하에 8명의 의사와 4팀의 간호원들이 교대로 쉬지 않고 땀을 흘려 진행하는 수술이었다. 분주한 수술이었으며 인내심을 요구하는 큰 수술이었다.- 드디어 10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마치고 수술 까운과 고무 장갑을 벗은 김종일 의사는 큰 숨을 쉬었다. (사랑하는 친구을 위해, 사랑하였던 연인의 간을 떼어 자신이 직접 친구 강석호에게 이식 수술을 한 것이 너무나 대견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회복실에서 아직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깊이 잠을 자고 있는 친구, 강석호의 손을 꼭 잡고 그는 말하였다. "석호! 이제야, 자네에게 진 빚을 갚는구먼..용서하게...." 그리고 그는 옆에 방에 있는 회복실에서 역시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는 간을 기증한 환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그동안 나는 당신을 많이 원망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증오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의 간을 떼어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하였었던 강석호에게 당신의 간을 떼어 이식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석호는 당신의 간으로 인해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이 사랑한 강석호의 몸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간을 기증한 환자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닥터.김? 아직도 간 기증자(도너)가 마취에서 깨어나지를 못하는 군요. 벌써 마취에서 깨어났어야 하는데..." 마취과 의사는 불안 한 듯이 말하였다. "괜찮겠지요? 그렇죠?" 김종일 의사도 불안 한 듯이 대답을 하였다. "간 기증자(도너)의 면역 상태가 워낙 나뻤었지요. 심한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였었다고 하니...간 자체가 지방간이 되었거나 아니면 간경화증이 되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마취과 의사는 덧부쳐 설명을 하였다. "엇짿거나 최선을 다 해 봅시다. 깨어나겠지요. * 한국 제일의 간 이식 전문의사라는 김종일 의사는 밤새 고민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수술을 하였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약 1000회의 간 이식 수술을 하였으며 성공률은 98%나 되었지만 이번의 수술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별히 간 기증자로부터 간을 적출하는 수술은 아주 쉬운 것이었지만 그는 이번만은 그렇지가 않았었다. 너무나 긴장이 되었으며 부담이 되었기에 혹시라도 간 동맥에 손상을 주지나 않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기증자(도너)의 복부를 예리한 칼로 깊고 그리고 길게 그었을 때 그에게 보이는 것은 솟구치는 동맥 피였다. 그리고 잠시 후 복부를 열었을 때 보이는 것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동맥과 검붉은 간이었다. "아! 간! 간!" 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 짐을 느꼈다. 수도 없이 보았던 간이 웬일일까? 마치 찬란하게 비치는 태양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그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아- 여기 누어 있는 이 여자는 바로 나의 아내가 되었을 사람이었다. 나의 아내가... 한 때 나는 이 여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였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나를 배반하고 마크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나보다도, 그리고 마크보다도 저 옆방에 누어 이 여인의 간을 기증 받을 나의 친구 강석호를 더 사랑하였다. 나보다도 강석호를........." 그리고 그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린 후 간을 적출하였으며 강석호에게 간을 이식하여 주었다. * 사실, 김종일 의사의 고민은 수술을 하기 며칠 전에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고민이 있었기에 불가불 일주일을 연기하여야 했었다. -마크의 간을 닥터.강에게 이식을 하기로 하였으며 만반의 준비가 다 된 듯 하였었는데 뜻밖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마크의 간은 뜻밖에도 70:30%의 간이었다. 30%짜리 간. 크기가 겨우 450GM에 해당되는 작은 간이었다. 설령 간을 기증한다고 해도 그 작은 간을 받은 닥터.강은 정상적인 간의 기능을 할 수가 없었기에 불가불 마크의 간을 포기하고 말았다. "마크? 당신의 생각은 고마우나 당신의 간은 그 크기가 적어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군요. 결국 다른 사람의 간을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뭐라구요? 내 간으로는 이식이 안 된다구요?" 그는 크게 실망을 하였다. "그렇군요. 마크. 꼭 간을 찾아야 하는데. 아니 찾고 말겠습니다." 외과 의사 김종일은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평생 빚진 마음으로 살아온 그가 닥터.강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그날 저녁 마크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달려 온 그의 아내, 순해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여보! 나의 간이 너무 적어 간 기증을 할 수가 없다나 보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간을 찾는 다는 군요." "못 찾는다면? 석호 오빠는 죽는가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럴지도......." "죽으면 안 되는데...오빠는 살아야 하는데....." 그리고 그들은 잠을 잤다. * 간 이식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간을 받아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경우는 교통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의 장기를 기증 받는 것이 흔한 경우였다. (병원에 잠시 입원하여 있으면 흔히 듣는 소리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였는데 그 것은 누군가가 죽어 간다는 말이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운 좋게 그 사람의 장기를 받을 수가 있었다. 비단 간뿐만이 아니라, 심장, 신장 기타 각막까지도 받게 되는 셈이다.) 닥터.강도 그러했다. (앰뷸란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그는 누군가가 죽게 되어 간을 그에게 기증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고 있구나. 나하나 살자고....이러고도 내가 남의 병을 고쳐 주는 의사란 말인가?" 닥터.강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을 잤다.) * 간이식을 약 일주일간 연장한 김종일 의사도 마음이 편치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친구를 위해 간 이식을 하여야 하는데 기증자가 없었기에 그는 실망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간 기증자인 마크의 간이 뜻밖에도 70%:30% 짜리의 간이었기에 강석호에게 간을 기증하여 수술을 해 본다 한들 성공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백방으로 그는 간 기증자를 찾아보았으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닷새가 된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예정된 다른 환자의 간 이식 수술을 10시간여에 걸쳐 성공적으로 끝내고 지친 몸으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친구인 강석호에게 기증할 기증자를 오늘도 찾지 못하였다고 비서가 말하여 주었을 때 그는 더 큰 피로가 엄습하여 왔다. 잠시 책상에 엎들여 눈을 부치고 있었다.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급히 들어 와서 말하였다. "김박사님? 어느 여자분이 박사님을 급히 뵙자고 하는군요.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요. 지금은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래요? 들여보내세요. 무슨 말인지 들어보고 싶군요."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은 뜻밖에도 미국에서 온 한순해였다. "아니? 순해가? 순해가?" 김종일 의사의 가슴이 뛰었다. (한순해라면? 아- 그녀는 분명 30여년전 결혼을 약속하였던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김종일을 배반하고 멀리 미국으로 마크를 따라 이민을 가 살었으나 가엽게도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온 여인이었으니까... 마크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쯤, 멀리 미국에서 혼자 있었야 할 사람이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여기 한국으로와 스스로 배신하였던 김종일에게 나타나다니... ) 또 한번 놀라운 것은 한순해는 강석호를 위해 그녀의 간을 기증하겠다고 미국에서 달려 온 셈이었다. "석호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요? 순해씨?" 김종일 의사는 반신 반의하며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확고하였다. (그녀로 인해 평생동안 결혼도 않고 죽음보다도 더 무섭다는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석호 오빠를 위해 그녀는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였다. 이 방법만이 그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받을 최후의 기회라고 하였다) 순간 김종일 의사는 마음 속 깊이에서 솟구치는 질투가 있었다. "그렇다면 순해씨는 나보다 종일 오빠를 더 사랑하였었군요? 그렇죠?" "........."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 사실이군요?" "아닙니다. 석호 오빠와 종일 오빠를 나는 다 똑같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순해? 나를 위해서도 당신은 당신의 간을 기증할 수가 있겠소?" "종일 오빠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그렇게 하겠어요." "그래요?" 김종일 의사는 그녀의 눈망울에 비친 눈물을 보면서 그녀는 능히 그럴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종일 오빠? 정말 나를 용서 해 주세요. 저를... 오빠를 배반한 나를..." "배반이라니! 이젠 모두 다 잊었어. 모든 것을..." "고마워요. 오빠! 40%의 간은 석호 오빠를 위해 이번에 이식을 해 주시고요...그리고, 나머지 60%의 간은 종일 오빠를 위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순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무슨 말을?" "석호 오빠를 사랑한 것이 40%라고 하면, 종일 오빠를 사랑한 것은 60%....." "............." 김종일 외과 의사는 이해 못할 순해의 독백을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른지 혼동이 왔다. 강석호 보다 자기를 사랑한 것이 60%에 해당하는 간이라고 하니.... 순해의 말로는 종일을 더 사랑했었다는 표현으로 받아 들리고 싶었다. (그래도...그녀는 나보다 석호를 더 사랑하였어...지금도.... 60%와 40%의 간으로 나뉘인 것처럼...) 김종일 의사는 마음에 혼동이 오고 있었다. '그녀의 간을? 간을? 석호에게 이식하여 준다?' 김종일 의사는 가슴이 뛰었다. "순해! 당신의 간(40%에 해당 되는 왼족 간 엽)을 석호에게 이식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김종일 의사는 마크. 맥.나이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예? 내 아내가 닥터.강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요?" 마크도 놀랐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며칠전 전화로 아내에게 말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로즈(순해)? 놀라지 마소! 나의 간이 너무 작아(30%에 해당되는 좌측 간) 기증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군...설령 수술을 한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하던군." "예? 그러면 석호 오빠는 죽는 거요? 간을 못 받으면?" "그런셈이지. 김종일 의사가 백방으로 노력을 하는 모양인데 급히 구하기가 힘이 드는 모양이요." "간을 못 구하면 죽는다구요?" 그녀는 전화를 받은 후 많은 생각을 하였다. 강석호 오빠는 간암으로 죽어 가고 있으며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수 있다고 하는 단순한 결론 앞에서 그녀는 그녀의 간을 무조건 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남편 마크도 닥터.강을 위해 침묵을 지키기로 하였다. 한순해가 간을 기증한다고 하면 닥터.강은 그녀의 안전을 생각하며 수술을 거부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와 닥터.강의 혈액형과 기증자로서의 조건이 비교적 양호하였기에 더 이상의 검사를 생략하고 수술을 강행하고 말았다. 물론 닥터.강은 마크의 간을 이식 받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 수술을 받은지 일주일 후... 많은 회복을 본 닥터.강은 친구, 김종일 의사에게 간청을 하였다. 그를 위해 간을 기증하여 준 마크를 한번 만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지...마침 그는 경과가 좋아 오늘 퇴원을 하게 되니까...퇴원을 하는 동안 잠시 자네의 병실로 오도록 하겠네. 잠시만...자네는 아직도 면역이 약하여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금물이니까....." * 닥터.강은 침대에 누어 있다가 병실로 들어오는 마크를 보고는 너무나 고마워 눈물을 흘리고말았다. 그리고 마크에게 부탁을 하였다. "마크? 너무나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간을 기증하여 주다니..." "........" 웬일인지 마크는 조용히 웃기만 하였다. "마크?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내가 퇴원한 후 마크? 당신과 그리고 당신의 아내, 순해(로즈)와 같이 남해안에 있는 거문도섬으로 한번 같이 가십시다. 거문도로요!" "얼마전에 거문도라도 하였습니까?. 하필이면....왜? 거문도로?" "거문도에는 정진성 선장과 월남에서 전사한 성민이 같이 살고있습니다." "아니? 성민이가? 죽은 성민이가 거문도에 산단 말요?" "그뿐인가요? 남지나 바다에 수장되었던 닌도 그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붉게 핀 동백꽃도 있구요...." "닌도? 월남 여인? 그렇다면 모두다 그곳에 있나보군요? 그러겠습니다. 거문도에 같이 가겠습니다." "같이 가는 것이 아니고...여수에서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거문도'를 타시고 고도에 있는 거문항에서 내리십시오. 바로 그곳, 거문항구 배가 내리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지요. 부탁입니다. 순해씨를 꼭 모시고 오세요. 여수에서 탄 거문도 여객선에서 두분이 좋은 추억을 만드세요. 거문도에 오시면, 서도에 있는 등대도 보여 드리고, 붉게 핀 동백꽃을 한 아름 드리리다. 꼭요?" "그러겠습니다." 마크는 닥터,강의 병실을 물러 나왔으나 그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하였다. * 호사다마라고 하였던가? 간을 기증한 순해는 아직도 혼수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너무나 면역 기능이 저하되었었는지 그녀는 마취에서 깨어 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째.... 신경과 의사가 검사한 뇌파도 비정상이었으며 간 기능 검사는 정상 이하로 떨어 졌으며 어제부터는 소변의 양도 적어져 신장마저도 고장이 난 것 같아 닥터.김도 마취과 의사도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내과전문의사들의 검진에 의하면 그녀는 죽을 가능성이 거의 80%라고 하며 환자를 포기하는 듯 하였다. "놔사가 되든지 아니면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김종일 의사는 이 며칠 동안 많은 고민을 하였다. (간 이식의 대가로 1000여회 이상을 한 간 이식 수술 중에서 최악의 경우였다. 평소에 한 그 방법대로 수술을 하였는데...간 기증자가 사경을 헤매다니...더구나 그가 한때 사랑하여 결혼을 하기로 하였던 순해를 그의 손에 의해 죽게 되다니... 문득 김종일 외과 의사에게 떠 오르는 순해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종일 오빠? 나는 석호 오빠보다, 종일오빠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여기 나의 간 (40%의 좌엽)은 석호 오빠를 위해 이식해 주세요. 나머지 60%의 오른 쪽 간은 종일 오빠를 위해서라면..." 그렇다면, 그녀는 수술을 하면서 그녀의 오른 쪽 간마저도 나를 위해 주었단 말인가? 비록 간은 그대로 그녀의 몸에 붙어 있다고는 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녀의 간이 이렇게 기능을 멈추었단 말인가? 그녀의 간은 지금 100% 기능을 멈추고 말았으니까...) 세계적인 간 이식의 권위자인 김종일 외과 의사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업적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도무지 의학적으로 설명 할 수가 없는 괴이한 현상이었다. 사람의 간은 불과 15%만 기능을 하여도 살수가 있는데...60%나 남겨 두었는데...아무리 면역이 약하다고는 하나 그럴 수가 없다고 내과 의사들도 고개를 흔들었으니까.... ("김 박사님(김종일)! 내과 교수를 수십년 하였지만 이번 환자는 이해가 안되는 군요. 혹시 수술 중에 간을 잘못 건들이지나 안았나하여 간 스캔과 컴퓨터 촬영을 해보았는데 간은 정확하게 60%가 남아 있었으며 조금도 손상이 없습니다. 그런대도 간은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군요. " 내과 교수가 김종일 외과 박사에게 말하였다. "간이야, 15%만 존재해도 기능은 되는데...왜 그럴까? 혹시 면역 기능이 안되는 거 아니요?" "김박사? 면역 기능도 제대로 됩니다. 그런데...아마도 환자가 남은 60%의 간을 마저 누구에게 주어 버렸나봅니다. 어허..." "예? 60%의 간을 누구에게 주었다고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도 이해가 안되니까요." 그렇다면 순해는 죽는구나. 죽어. 간 기능이 100% 마비되어서.... 그렇다면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그녀의 40%의 간은 석호에게...그리고 나머지 60%에 해당되는 간 마저 나에게 주고 가는구나. 나를 배신 한 죄를 갚고자 60%마저 나를 위해 주어 버렸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였구나. 나를.... 아- 순해? 그러면 안되는데.....) 간이식의 권위자 김종일 외과 박사는 믿어지지 않는 의학과 사랑 앞에서 눈시울을 흘리고 말았다. * 한편 생각해 보면 그녀는 본인보다 역시 친구 강석호를 더 사랑하였다고 생각을 하였다. 설령 그녀는 혼수에 빠져 그렇게 산다고 해도, 아니 그녀가 죽는다고 해도 그녀가 주고간 40%의 간은 친구, 강석호의 몸 속에서 살아 있겠지만 비록 60%의 간이라고는 하나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그 간은 영원히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었다. 20장,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거문도. 그리고 일개월이 지났다. 마침내 닥터.강도 퇴원하여 친구 김종일 의사의 집에서 한 식구가 되었으며 면역, 거부반응을 방지하기 위한 약을 한 웅큼씩 먹다가 근자에는 몇 개의 알약만 복용하리만큼 호전이 되었다. 그리고 남의 도움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친구 김종일은 예전보다 수척하였으며 말 수가 적어 진 것으로 보아 우울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마크가 닥터.강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음주에 그의 아내와 같이 한국으로 와 여수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를 타고 약속하였던 거문진 항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 마침내, 거문도로 가기로 한 그날이 왔다. 닥터.강은 여수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자 아침에 집을 나가려는 데 뜻밖에도 친구, 김종일 의사가 말하였다. "석호! 나도 같이 가세. 나도." "자네도? "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고맙네." 그리고 둘은 여수로 가는 비행기를 탓다. 여수(麗水)! 동백의 고향 여수는 한자 이름대로 고운 물의 땅이었다. 여수항 주변은 붉은 동백의 빛을 마음껒 뽑내고 있었으며 갈매기 떼들이 돌산 대교 주위를 돌고 있었다. 마침내 여수항구에서 거문도로 가는 여객선 '거문도'에 둘은 나란히 같이 앉았다. 오늘도 그러했다. 오동도 주위로 갈매기들이 맴돌며 붕-붕- 소리를 낸 역객선은 성난 파도를 혜치며 가막만을 돌아 남쪽으로 전진하여 갔다. 이제 두 시간 후면 정진성 선장을 만나게 되며, 미리 와 있을 지도 모르는 마크와 그리고 그의 아내, 순해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강석호, 김종일, 한성민, 마크 맥.나이트 그리고 한순해까지.....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청주에서 같이 놀았던 모든 식구들이 이곳 거문도에서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정진성 선장과 월남 아가씨 닌까지도.... 모두다...강석호가 평생에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셈이었다. 웬일인지 종일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가끔, 한숨을 쉬는 것으로 보아 심신이 좋지 않은 듯 하였다. "이것봐! 종일아? 마크가 나에게 간을 기증해 주었어. 그리고 순해를 만나게 되다니...거문도에서...그리고 고맙다. 모든 것을 다 네가 해주었어. 모든 것을..." "........." 종일은 대답이 없었다. "종일아! 너는 내 생명을 연장해 준 은인이야! 은인!" "..........." 역시 그는 말이 없었다. 여객선 거문도는 붕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붉게 핀 동백이 여기저기에서 보이며 멀리 영국군들이 죽어 묻혓다는 무덤이 보이는 거문진 항구에 도착을 하였다. 김종일도 처음 와보는 거문도의 아름다움에 놀라는 듯하였다. 그리고 정진성 선장이 이곳에서 고기를 잡으며 등대직이로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갈매기가 끼륵 끼륵 울고 갔다. 선창가에서는 생선 비릿내가 확 풍기는 듯 하였다. 뜻밖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누구인가를 찾고 있는 닥터.강에게 식당 주인인 듯한 사람이 와서 전하여 주었다. "정진성 선장을 찾으시죠? 아까 어느 미국 사람을 데리고 서도로 가면서 거기 백사장으로 오라고 하던대요." "거기? 백사장?" "예, 거기라면 아실거라고 하던군요." 거기라면 바로 동백꽃이 무성하며 아름다운 해안 절벽이 보이는 서도의 그 백사장이리라... 기와집 몰랑을 지나 파란 하늘이 바다와 맞다은 서도의 그 백사장으로 갔을 때, 그곳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정진성 선장과 간을 기증하여 준 마크. 맥.나이트였다. 마크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자기의 간을 기증하여 주었으니 생명의 은인이었다. 생각보다, 마크는 건강해 보였다. 수술을 받은 후, 말끔히 회복이 된 듯 하였다. 그런데...웬일일까? 사랑하는 여인, 순해가 보이지 않으니.... "마크? 순해씨는?" ".........." "미국에?" "............"웬일일까 어느 누구도 순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단 같이 간 친구 김종일 의사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멀리 서도 절벽으로 파도가 밀려들더니 철썩거리며 바다 밑으로 떨어지면서 하얀 물거품을 토하는 듯 하였다. 붉게 핀 동백꽃들이 닥터.강의 가슴으로 밀려 들어 오고 있는 듯 하였다. 마치 죽었던 닌이 남지나 바다에서 다시 살아 달려 오는 듯 하였으며, 푸레이크에서 전사했던 친구, 한성민이 붉은 동백을 가슴에 가득히 안고 달려오는 듯 하였다. 어느듯 저녁이 되었는지 석양에 비친 동백꽃들은 붉은 피를 토하고 있는 듯 하였다. "닥터.강? 잘 들으세요.! 순해는 거문도로 오는 여객선을 탈수가 없었습니다." "예? 여객선을 탈 수가 없었다고요? 무슨 말이죠?" "내일도 모래도 그녀는 거문도에 올 수가 없습니다." 마크는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거문도에 올 수가 없다고요?" 닥터.강은 의아하여 되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함을 직감하였다. "석호? 잘 듣게나. 자네에게 간을 기증한 사람은 마크가 아니고...순해씨였네. 순해씨."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종일이 마침내 말을 꺼내었다. "뭐라고? 순해씨가?" "그렇다네. 그런데 간을 기증한 후 갑자기 간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더니 혼수에 빠졌다네. 아마도 우울증으로 인해 받은 몸의 면역 상태가 아주 저조하였었다네. 그런데...그런데...그 후 온갖 내과 적인 노력을 다 했으나 순해씨는 죽고 말았다네." "종일아! 지금 뭐라고 말했나? 순해씨가 죽었다고?" "그렇다네. 그리고 장사한지 벌써 두 주가 넘는다네." "순해씨가 죽었다고? 어떻게? 간을 기증하고, 어떻게, 어떻게 죽었느냐구?" 마침내 닥터.강은 울고 말았다. 그녀를 평생 기다리고 살아 왔는데 ... 그런 그녀는 그녀의 간을 강석호에게 남겨주고 영원히 가버리다니...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려 왔는데....아! 더 기다려야 한다니...얼마나 더? 얼마나 더?' 강석호는 한숨을 쉬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멀리 남지나 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또 다른 여인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순해씨의 죽음은 닌의 죽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순해는 죽었다고는 하나 그녀의 간으로 인해 강석호는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죽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래,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닥터.강은 또 다른 삶을 느끼게 되었다.) "어디에 순해를 장사하였니? 종일아?" "엉, 청주에. 성공회당이 보이는 곳에.. 그리고 순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묻혀 있는 성공회 묘지에..." "그랬구먼...잘 했네. 아- 감사합니다. 마크! " "그렇소. 내 아내는 청주를 그리워 했었으니까요. 당연히..." "마크. 나는 당신과 순해씨에게 많은 빚을 지고 말았군요." 닥터.강은 그녀가 청주에 묻혀 있음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곧 그녀의 무덤에 찾아가 닌에게 하엿듯이 붉은 장미를 꽂아 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빨간 장미? 장미?' 문득 그는 그녀가 옛날 즐겨 불렀던 그 장미꽃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못 떠나겠네. 발걸음 돌리어 못해 여기 나는 잠자리... 그녀가 즐겨 불렀던 한 떨기 장미 꽃이었다. ) 그녀의 얼굴을 본 것이 어느듯 2개월은 된 듯 하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는 우울증으로부터 회복되어 웃음을 띄었었다. 그 웃던 모습이 그래도 찡그린 얼굴보다는 좋았다. '그녀는 가버렸구나. 한 떨기 장미 꽃처럼...나에게 간을 기증하고...' 강석호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석호? 마크의 간은 예상밖에 아주 작았어. 소위 70%:30% 의 크기였어. 나는 다른 간을 구하고 있었네. 그런데 미국에서 순해씨가 그 소식을 듣고는 너를 위해 달려 온거야. 다행히도 그녀의 간은 너에게 아주 적합하였지. 그리고 간 이식은 성공적으로 하였다네. 그런데, 생각 못할 면역 저하증으로 인해 40%의 간을 잃은 순해씨의 간은 급격히 그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더니...그로 인한 합병증이 생기었다네. 간 기능은 완전히 정지되었으며 심장 기능마저도 떨어지면서 그녀는 죽고 말았다네. 생각해 보면 나의 판단이 흐렸던 것 같아. 내가 그녀를 죽인거나 마찬 가지였어. 내가 순해를...."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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