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영웅 제시카

2009.04.18 01:25

고대진 조회 수:1034 추천:206

 

최근에 이락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된 제시카 린치(Jessica Lynch) 일병의 자서전 “나도 미국 군인입니다.”의 출간을 계기로 제시카 린치가 다이엔 소여와의 인터뷰를 허락했다. ABC의 “프라임타임”에 나온 이 인터뷰를 보면서 나를 감동시킨 것은 제시카의 예쁘고 청순한 이미지도 아니었고 그녀의 군인정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꾸밈없는 진실이었다. 아주 여리게 생긴 작은 키의 스무 살 먹은 처자. 그녀의 척추에는 철판을 대고 있고 부서진 다리에는 쇠막대기와 나사못을 달고 있다 했다. 그녀의 걸음은 아직도 비뚤거리는 걸음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녀의 걸음이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 많은 현 부시 행정부의 정치가들보다 훨씬 바르게 걷는 것 같이 보였다.


이락군의 매복 공격을 당한 미군 호송대의 유일한 생존자의 고백을 통해 듣는 이 전투는 티브이에서 본 것 같은 영웅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제시카는 티브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격해오는 매복 이락군을 엠-16 라이플로 총알이 다하도록 쏘며 싸우다 잡힌 것이 아니라 총알  한 발도 쏘아보지 못하고 잡혔다는 것이다. “총이 고장이 나 한발도 쏠 수가 없었지요...” 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이 아기씨와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열 한 명의 다른 군인들은 다 전사했다. 그 중에는 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린치와 동무해주기 위해 자원해 이락에 온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두 아이의 엄마인 로리 엔 피에스트와(Lori Ann Piestewa)도 있었다고 해서 나의 마음을 울렸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어머니가 또 아버지가 아들이 딸이 희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신중히 생각해야 시작해야 되는 것이리라.


매스컴이나 영화에선 그녀가 총알을 맞고 칼로 찔렸다고 과장되게 선전되어 있었지만 이  인터뷰나 그녀의 책에선 그녀의 부상이 단지 타고 가던 트럭이 이락군의 매복 공격에 의해 파괴되면서 얻은 부상이었다고 고백한다. 붙잡히고 나서 병원에서 잔인한 심문관들에 뺨을 맞았다는 소문도 거짓이라고 하며 제시카가 만난 사람들은 거의 이락의 의사와 간호사들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더구나 한 이락 의사는 앰뷸런스에 린치 일병을 싣고 미군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의 검문소에서 폭탄을 싣고 오는 트럭으로 오해받고 총을 쏘아대서 병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구출작전이 시작될 때 병원에는 군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미군 피알팀이 미리 알고 영화 촬영반을 대리고 들어가 구출하는 장면을 찍었던 것이다. 물론 전투는 없었고 말이다. “그냥 와서 문을 열고 대리고 갔어도 아무도 방해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당시 그 병원의 이락 의사의 인터뷰 장면이 재미있기조차 했다. 그러니까 그게 다 할리우드 식 선전영화의 장면들이었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까 그 장면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밤 어둠 속을 볼 수 있는 첨단 헬리콥터에 최 정예 구원대가 적이 없는 병원에 들어가 펜타곤의 선전 카메라팀의 카메라를 받으며 제시카를 구원하고 몇 시간 안에 그 테이프가 전 세계에 상영되었던 것.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누가 말했지?


이런 일들을 솔직하게 말하는 린치의 얼굴에서 미국의 힘을 본다. 그건 진실의 힘이다. 조금 더 머리를 굴려 과장된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평생 전설 속의 영웅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전 제 자신을 영웅으로 보고싶지가 않아요. 전 단지 살아남았을 뿐이에요 (I'm a survivor.")...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인터뷰를 그녀의 최고 직속상관인 부시 대통령의 연설과 비교해본다. 이락이 니제르 공화국에서 원자탄을 만들기 위한 우라늄을 수입하고 있어서 전쟁을 안 하면 마치 이락이 곧 원자탄을 만들어 테러리스트에게 팔 것이라는 거짓 정보로 또 9-11의 배후에 마치 이락이 있는 것같이 여론을 유도하여 이 전쟁을 정당화시킨 그의 연설 말이다.  


진실은 결국 밝혀지는 것. 아무리 과대포장을 해도 거짓은 결국 들어 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제시카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녀를 나의 작은 영웅으로 삼는다.  

<미주 중앙일보 2003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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