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아래 평등

2009.04.18 01:26

고대진 조회 수:966 추천:208

12월 12일 산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에는 텍사스 주지사 페리가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그의 차를 장애자를 위한 주차장소에 파킹했다가 들켜서 결국 벌금 250 불에 해당하는 금액을 장애자를 위한 기관에 기부하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동안 장애자를 위한 일을 잘 하지 않아 장애자들에게 곱게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문제가 표면에 나온 한 이유이지만 어찌되었던 주지사가 (그의 차를 운전한 사람의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고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벌금을 보낼 수 있음은 법 아래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해 주고 있다.

이 뉴스와 함께 얼마 전 주 법원에 의해 판사직에서 해임된 알라바마의 법원장 로이 무어가 이 법원의 결정에 대한 항소를 그가 있던 주 대법원에 청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십계명 판사로 알려진 이 사람은 자신이 2년 전에 주문해서 대법원 마당에 몰래 들여놓은 돌로 만든 2.5 톤짜리 십계명 조각이 특정 종교를 전도하는 것 밖에 안되므로 법원 마당에서 치우라는 연방법원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주 법원(court of judiciary)에 의해 해임되었다. 자신을 법 위에 놓았다는 이유에서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주 법원장직까지 마다한 순교자인 것처럼 여기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다른 정치적 야심 때문에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알라바마 법원장직은 선거로 뽑힌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정말 판사로서의 자격은 없는 사람이다.

십계명 자체가 특정종교(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특정 종교를 편들 수 없다는 법에 거슬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법원의 명령에 따르라고 명령했을 때 그 사람들이 명령에 따르듯이 자신도 법원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법원의 철거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자신을 법 위에 두고 만 일이었다. 무어판사가 주장하는 것은 연방정부의 명령이 주의 권리를 침범했다는 것. 알라바마 주지사 조지 왈레스를 비롯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잘 쓰던 논리여서 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 나라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있는 나라이다. 기독교인만을 위한 나라도 유태교인이나  카톨릭만을 위한 나라도 아닌 모두를 위한 나라 말이다. 힌두교도나 무슬림교도가 전통 복장을 입고 이 알라바마 법원에 들어오다가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말이 적힌 돌이 법원 마당에 있는 것을 보고 뭐라 생각할까? 아마 그 법원에서 공평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혹시 판사가 십계명에서 첫 번째 조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고 모른다면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적어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하게 하면 안되지 않을까?

이 일로 무어 판사는 주지사나 인기가수같이 유명해져서 몇 번 보수 기독교 방송에 출연한 다음 전국을 돌며 연설을 하여 얻은 수익으로 -물론 연설비를 많이 요구할 것이고- 곧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후광으로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로 출마하여 될 수도 있을 터. 물론 이 법원의 결정에 항소를 했으므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 더 매스컴을 탈 것이고 따라서 그의 주가도 점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벌써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려고 출판사와 협상  중이라니 여기서 나오는 수익 또한 엄청나리라.  

돌에 새기지 말고 마음에 새기라는 어느 분의 말을 기억해본다. 차라리 돌에 십계명을 새기려 하지말고 “네 이기적인 공명심 때문이나 자만심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빌립보서 2장3절)” 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새기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2003년 12월 13일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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