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힘

2004.03.06 15:25

바람의 아들 조회 수:238 추천:16

벌써 20년도 지났지만 참 힘들게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초기엔 더욱 힘들었죠. 그 때 갑자기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이제 좀 정신을 차렸다는 친구가 보내 준 이 시는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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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정 호 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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