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무개’ 그릇 진열장

2005.09.14 14:50

최영수 조회 수:673 추천:115



오늘도 나는 그릇을 깬다. ‘상대’란 그릇은 물론 ‘내’그릇도 깬다.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릇 깨지는 소리’부터 내지른다. 물론 처음에는 조용히 말을 전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나 인양, 나만한 모양으로 같은 크기인 그릇으로 여기고 무조건 내 그릇에 있는 내 뜻과 같은 것이 거기에도 의당 있을 줄 알고 그대로 퍼 부으려고 한다. 물론 고분고분 잘 담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냅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 내 모습을 본다. 그렇게 나는 상대의 그릇을 깨곤 한다. 내 그릇도 깨짐은 피차일반이지만 흥분하고 있어서 전혀 개의치 않는 나조차 모른 채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가정폭력 행위자이다. 나이가 먹으면서 다행인 것은 그나마 그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안다. 때로는 얼굴의 일그러짐으로 또는 마음의 일그러짐으로 그렇게 소리 없이 깨지면서 긁힌 상처가 소리를 내며 깨지는 것에 비할 바 없이 크고 깊게 곪아 있어 마치 암 덩어리처럼 내밀한 속 깊이 묻어 두었다가 가끔씩 폭발적 에너지로 나타남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감지하기는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정폭력 행위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을 느낀다. 그들의 평소 모습은 너무도 우리와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그릇을 깨게 되는 기회와 분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똑같은 방식으로 순식간에 해결해치우는 것이 우리보다 보다 더 고속인 만큼 능숙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다른 점은 그들은 자신의 그릇이 깨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뿐더러 상대의 그릇이 깨진 상황에서 조차도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상대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당위성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폭력행위자들 대부분은 ‘너만 가만있었더라면……, 네가 부추기지만 안했더라도……’라는 말로 겨우 자신의 흥분을 가라앉힐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반듯한 사람으로 크는 것이 많이 장려되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것을 쉽게 양보하는 상황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일견 일리 있을 수도 있다고 이해되기도 하겠다. 또한, 우리는 대체로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적·공간적으로 모두 보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이렇듯 발달과업으로 과학화된 교육 내용 플러스 민주적 사고에 충실하다보니, 우리는 다 자기 식으로 개성 있게 자신을 키워가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하여 지금 마주한 상대가 나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함에 오히려 당황하여 실망감~배신감으로 분노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가정폭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본다. 이렇듯 어느 순간 모른 채 살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다음 순간에는 마치 내가 나를 버려버리는 기분으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기도 한다.  
‘입안에 혀도 물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보통의 경우, 자신에게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여긴 채 어떤 상황에 대한 점검도 없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탓으로 여겨진다. 내 것이라고 사전준비 없이 사용을 하다가는 이렇게 혼이 난다는 의미로 본다면 배우자 역시 그렇게 ‘입안의 혀’처럼 기대는 물론, 그 기대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집온 세월이 시어머님만큼 되면 시어머님만큼 할 수 있다.’라는 가정을 한다면, 그 세월을 우리는 열심히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생활을 편하게 하도록 내도록 배려를 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그런 투자는커녕 우리 대부분은 이름 새기기에만 급급하다. 또한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는 자기 그릇에 이름만 새겨 놓고 그냥 자신을 전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보통 그릇 파는 사람들은 그릇을 열심히 닦고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들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소중하게 대접하는 의미로 열심히 닦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대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그릇에 맞는 자리에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세상은 ‘아무개’ 그릇 진열장 최영수 2005.09.14 673
21 자동차 없어 더 좋은섬 비양도 신동해 2004.11.26 646
20 사랑을 아시나요? 권영이 2007.07.12 620
19 相思花(어긋난 만남) 이순원 2005.09.15 614
18 그대 상사화로 피고 지고... 江熙 2005.09.16 563
17 허수아비 江熙 2005.09.08 511
16 사랑이 있는 풍경 한병진 2009.03.25 503
15 choo suk sun mool 정문선 2006.10.04 484
14 입회 인사 신 동해 2004.11.09 467
13 하얀 목련 한병진 2009.03.25 428
12 쥐풍금과 피아노 홍원근 2011.03.06 427
11 미국에서 맞이하는 추석 ! 9/24/07 이 상옥 2007.09.24 417
10 Red Flower.... 문승환 2008.11.24 403
9 첫 출근을 하며 file 김우영 2010.06.11 398
8 장대비 썬파워 2009.07.25 389
7 그대와 나 썬파워 2009.08.03 386
6 행복 썬파워 2009.05.31 386
5 당신때문입니다 썬파워 2010.04.13 350
4 재단사의 날개 홍원근 2011.01.29 317
3 영롱한 물방울 양 재호 2014.03.07 133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0
전체:
96,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