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선생님

2004.05.02 08:06

노기제 조회 수:651 추천:107

061901 K 선생님
노 기제
메모지에 적힌 성명과 전화 번호가 우울한 내 기분을 밝은 빛으로 이끈다. 얼굴엔 금방 미소가 번진다. K 선생님은 항상 좋은 말씀만 해 주신 분이다. 오늘도 내가 외출한 사이 전화를 주셨다면 틀림없이 내 마음을 기쁨으로 떨게 하실 것이다. 밤 열 시면 아무리 급한 용무라도 전화를 걸 편안한 시간은 아니다. 내일 통화를 하리라 망설이다 그냥 실례를 하고 싶다. K 선생님은 넉넉하게 이해하실 것이다. 더구나 밖에서 구겨져 돌아온 내 기분을 다림질 해주시기에 꼭 맞는 분이다.
K 선생님과의 만남은 1997년 초겨울 시 낭송 모임에서였다. 그 때만 해도 난 대책 없는 문학소녀 였다. 옛날 단발 머리적 마음에 나이만 들어버린 아줌마란 표현이 제격이겠다. 마음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써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곤 했다. 그래도 분수를 모르고 몇 차례나 시 낭송 모임에 참가를 했었다. 그렇게 해서 K 선생님도 만났으니 푼수를 떨어 볼만도 하다.
처음 K 선생님은 아주 특색 있는 글을 쓸 소질이 보인다며 시 보다는 수필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난 수필과 시의 다른점 조차도 확실히 몰랐지만 우선은 가능성을 보아주시니 진짜 내가 글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꾸 써 보라시며 연락처를 주셨다. 몇 편이던 쓰는 대로 보내주면 보아주시겠다고 했다.
아울러 글공부하는 모임을 소개하시며 공부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동안에 한 가닥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신 K 선생님을 생각하는 순간이면 난 행복함을 느낀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항상 용기를 주신다. 열심히 하라고. 많이 좋아 졌다고도 하신다. 그 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길도 열어주신다. 글이란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읽어줘야 한다. 독자를 만나게 도와주시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느 누구에겐가 이렇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보았는가?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따로 드는 일도 아니건만 한 마디 용기를 주는 말을 얼마나 아끼면서 살았나. 칭찬에 인색했던 나의 습관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어두운 길을 홀로 가게 했을까. 부끄러워진다.
K 선생님의 지나치는 듯한 칭찬 한 마디에 잠자던 나의 글쓰기 재주가 기지개를 켰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가끔 전화도 주시고 예쁜 카드도 주시며 계속 용기를 주신다. 자칫 게을러지고 성과도 보이지 않아 포기 할 수도 있지만 잊지 않고 주시는 관심에 용기를 얻곤 한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K 선생님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나도 K 선생님이 되고 싶다. 혼자 차지하려고 남에게 일절 기회를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자신이 어렵게 얻은 것이면 구태여 남에게 쉽게 가도록 일러주지 않는다. 너도 네 힘으로 찾아서 가라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K 선생님은 내게 기쁨을 주신다. 심혈을 기울여 좋은 글 두어편 써서 보내라신다. 한국에도 작품을 읽히게 길을 열어 주시려는 보살핌이시다. 때론 움츠려들어 주저앉고 싶어도 K 선생님의 따뜻함 때문에 언제나 좋은 글을 쓰는 수필가의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늦은 밤 전화를 해도 마음 넉넉하게 받아주시는 K 선생님께 밝은 웃음 한 다발, 진정으로 감사함을 대신해서 드리며 나도 K 선생님처럼 되고자 마음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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