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조국이
2003.02.02 08:47
2002/11/ 내게도 조국이
노 기제
내가 한국을 떠날 때 내겐 더 이상 내 나라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다 하나님 아래 한 나라가 된다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나는 다만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미국이라는 조금 먼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셈이다. 그건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애써 희석시키려는 심사였다. 그래서 난 얼마든지 견뎌낼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척하며 거의 삼십 년을 여기 미국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꼿꼿하게 세웠던 고개가 스르르 어딘가에 가서 기대고 말았다. 두 팔 크게 벌려 나를 안아 반겨 준 바로 대한민국의 든든한 어깨였다. 그 동안 힘들어도 안 그런 척, 울고 싶어도 이를 악물고 참아내던 나의 의지가 한 순간에 와르르 주저앉았다. 마음 편히 응석 한 번 못 부려 본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재외 동포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날들은 분명 따스한 엄마 품에 안겨 본 경험이다. 문학상 수상이라는 제목아래 상금도 받고, 숙식도 제공받으며, 문화체험도 했다. 그 때만 해도 내게 한국이라는 곳은 내가 열심히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걸핏하면 물난리, 각종 사고에, 정치판도 답답하기만 한 대책 없는 나라. 그나마 몇 안 되는 친정 식구들까지도 고개만 돌리면 도와주어야 할 처지다. 어찌 보면 끝도 없이 내가 보태고 돌보고 해야하는 나의 업보 같던 그 곳에서 나를 대접한 것이다.
그런 익숙하지 못한 대접에 처음엔 무척 불안했다. 혹시 김 정일의 공작금을 내가 받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진짜 한국이 이 정도까지 능력이 있는 것인지. 행여 힘없는 국민들의 피땀을 내가 덥석 받아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삼십 여 년 떨어져 살았다해도 신문이나 방송으로 소식은 늘 접하고 살았으니 나의 불안한 마음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었고 또한 그랬기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살아 계셨다면 막내딸인 내게 이런 대우쯤이야 넉넉히 해 주셨을 것이다. 바로 이런 마음을 주최측이 원했다. 이번 행사를 모천제라 이름했다. 작은 물고기가 망망대해로 헤엄쳐나가 갖은 고생 끝에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자기가 태어난 그 곳으로 돌아온다는 연어의 생애를 빗대어 이름한 것이다.
엄마 품에 안긴 막내의 심정이 되어 가슴이 젖었다. 당신들 쓰시기도 넉넉지 않을텐데 적지 않은 돈 듬뿍 쥐어주시는 사랑에 눈물이 그렁그렁 인다. 여기저기 구경까지 시켜주시며 맛있는 것 실컷 먹으라고 권하신다. 그 동안 애썼다. 고생했다. 말없이 등만 토닥여주신다. 바라보는 눈길이 다시금 와락 나를 끌어 안아준다.
바싹 마른 막대기모양 울음도 한 번 마음놓고 울어보지 못한 나의 가슴이 촉촉해진다. 방성대곡하는 내 모습이 아주 시원스럽다. 엄마가 들어준다. 외로움 때문에 성깃한 가슴일랑 뒤늦게 찾아준 엄마의 손길로 메어주자.
이젠 등 따습게 잠들 수 있다. 두 다리 죽 펴고 이불도 차내며 자리라. 엄마가 곁에서 지켜보고 계신다. 하루의 일과가 결코 서럽지만은 않으리라. 내가 태어난 곳. 나를 감싸 줄 조국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힘겹게 억지로 고개 세우지 않아도 된다. 축 늘어지는 날이면 그대로 늘어지자. 조국에서의 응원이 따뜻하게 태평양을 건너온다. 이 응원은 내가 마음을 열고 느끼는 한 계속되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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