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고 싶은 내 어릴적 이름

2003.03.23 01:59

노기제 조회 수:646 추천:93

다시 갖고싶은 내 어릴적 이름
노 기제
나는 요즘 그리움에 시달린다. 열 아홉 살 이전의 시절로 돌아 가고파 한다. 지나간 시간들을 자꾸 흘끔거린다. 보일 듯, 다가올 듯, 만져질 듯, 나를 착각하게 한다. 정녕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임에 가슴만 설레며 자꾸 고개를 돌린다. 뒤를 보면 혹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그러다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를 듣는다. 기순이, 기순이, 박 기순. 그렇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릴 적 이름이다. 잊어버린 이름이 아니라 내가 버린 이름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열 아홉 살 나던 해 아주 따스한 봄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에 실패하고 별 대책 없이 한가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작명합니다. 개명 해드립니다" 라는 점잖은 음성이 들렸다. 그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후다닥 일어나 문을 열고 보니 음성만큼이나 지적으로 보이는 젊은 아저씨였다. 그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묻고 싶었다. 내년엔 대학 입시에 합격 할 것인지.
그 당시 나는 교회와 인연을 맺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용한 점쟁이나 찾아다니는 그런 속수무책도 아니었다. 그냥, 찾아온 작명가를 불러들였을 뿐이다. 틀림없이 이 아저씨는 뭔가 내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에 찬 내 눈망울이 아저씨를 긴장 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가진 실력 다 동원해서 내게 아주 좋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무슨 일이든 술술 잘 풀리고 결혼해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이름이라고 환하게 웃으셨다. 아주 만족해하시며 돈도 안 받고 가셨다.
그날부터 나는 박 기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전혀 여자이름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바로 그 점이 난 좋았다. 똑 같은 이름도 만나지 못했다. 이 사실을 난 더 좋아했다. 이듬해 입시에 또 실패했지만 그래도 난, 내 새 이름에 불평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성공을 향한 샛길이라도 보이려니 기대했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특별하게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입시에 응시한다는 자체도 무리한 일이었다. 따라서 불합격이란 결과에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이름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 이름으로 불리면서 괜찮은 청년과 연애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럴 때도 난, 이름을 바꿨으니 이젠 뭔가 잘 풀릴 만도 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정말 지지리도 되는 일이 없었다. 공부를 하려해도 안 되, 연애를 하려해도 안 되, 직장을 잡으려해도 안 되. 그렇게 안 되는 연속 중에서도 전혀 새 이름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혼 청첩장에도 새 이름을 썼고 미국으로 와서는 성까지 바뀐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내가 존재한다.
흐르는 세월 따라 나도 흘러오면서 성경을 알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예수 믿는 사람이 이름은 왜 바꿨어요?" 라는 힐책 어린 질문을 받았다. "글쎄나말에요. 그땐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었거든요" 라고 멋 적은 변명도 했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변화되어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에게 이름을 바꿔주셨다. 사울이 바울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된 것이 대표적 예가 아닐까.
나의 경우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온 까닭에 남편 성을 따랐다. 그러니 애초 젊잖은 음성과 지적인 외모의 작명가 아저씨가 지어주신 이름은 별 효과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한자로 써서 획의 숫자와 관련이 있는 이름 풀이에 성이 바뀌면서 숫자에 변동이 생겼으니 말이다. 대학입시 실패에서 결혼하기까지가 그 아저씨가 지어주신 이름을 사용한 기간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 기간은 내 인생의 암흑시기였다. 되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 아저씨를 향해 불평 한 마디 생기지 않았다. 난 그 아저씨가 지어준 남자이름 같은 내 이름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이름도 갖지 않고 발음이 쉽지 않아 애를 쓰는 미국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도록 고집해 왔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버린 이름을 다시 갖고 싶다. 그 이름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내가 다시 내 옛 이름으로 복귀한다면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것이란 착각이 든다. 혹시라도 내가 다시 열 아홉 이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소꼽동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수 있겠지? 무엇보다도 엄마랑 아빠랑 큰오빠가 살아나서 지금의 작은오빠와 나를 끌어안고 옛날처럼 우리가정이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나는 박 기순이라 불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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