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회복

2004.01.05 08:22

노기제 조회 수:499 추천:89

062503 사랑의 회복
노 기제
결혼 회갑연을 맞으신 친구 부모님의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18세 동갑으로 결혼해서 60년을 함께 사셨단다. 그것도 연애하듯. 꿈같은 얘기다. 사랑이 그렇게 지속될 수도 있다는 걸까? 자신의 어떤 것보다 가족을 우선으로 살았다는 친구 아버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보통 남편들이 즐겨 쓰는 남이니까 라는 말이다. 아내는 가족이니까 화를 낼 수도 있고, 핀잔을 줄 수도 있고, 나무랄 수도 있고, 언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남이니까 잘해줘야 한다는 말. 난 그 말에 항상 가위표를 긋지만 남편들의 상식은 그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온 나의 삼십 년 결혼생활은 완전히 사랑이 고갈된 상태다. 어쩌면 십 년, 십 오 년 세월에도 사랑은 이미 바닥이 났으리라.
남이니까 잘해줘야 한다는 이론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가족이니까 이러저러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랬기 때문에 당하는 아내 입장에선 상처를 입고, 골이 깊어지고, 사랑이 변질되어 푸석하니 초점 잃은 시선만이 남는다.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변하기를 기다리다가 폭팔 하고 이혼이 거론되면 남편들은 아연실색 이유가 뭔지 몰라 당황한다. 여태껏 아무 문제없이 잘 살다가 웬 날벼락이냐는 거다. 그 동안 따뜻한 말 한마디 고대하며, 부드러운 시선 목말라하며, 연인 같은 아내로 인정받기 기다리며 살아온 아내들. 급기야는 콘크리트 바닥모양 굳어진 가슴을 내보이며 이혼이란 단어를 뱉어내는 아내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바람을 피웠나? 밥을 굶겼나? 이유가 도대체 뭐야?
그렇게 정녕 이해할 수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태도를 바꾸면 되는 것을! 말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응답하며 작은 칭찬 한 조각 따른다면 아무리 딱딱하게 굳은 가슴이라도 서서히 풀려나갈 준비를 하게된다.
교통위반 티켓을 받아도 마음놓고 말도 못 한다. 누군가 차에 흠집을 냈어도 알릴 수도 없다. 무조건 야단부터 치니까. 아내가 뭐 남편의 자식인가. 자식에게도 그럴 순 없다. 인격체로 존중해 주며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남편들이 많다. 자신은 생전 교통위반도 안 하고 접촉사고도 없는 사람처럼 말한다.
남편들이 그냥 해버리곤 잊어버리는 말에 의외로 상처받는 아내들이 많다. 그게 바로 남편들의 우선 순위가 엉망인 탓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인생 참 맛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편으로 돌이켜 본다면 그렇게 참고 살아온 아내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어쩌다 이혼지경까지 가면서 남편에게 아무런 내색도 안 했단 말인가. 그런 남편의 대우가 굴욕적이고 싫다고 표현을 했어야한다.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꾸지 않는다면 한 바탕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있더라도 타결을 봤어야 한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다면 아주 잘 못한 거다.
이제 길은 하나다. 갈라서는 거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편해지고 싶다. 그러나 잠깐. 좋아서 결혼하지 않았나? 연애할 땐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고 싶던 사람 아닌가. 죽자살자 붙잡고 싶던 그 사람인데. 곁에서 이 남자 차지하려 넘보던 여자들도 있었지 않았나. 어쩌면 이 남잔 그렇게 멋대가리 없는 말투로 평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아서 결혼했다면 바로 좋았던 그 때를 자꾸 떠올리자. 그리곤 이해를 해보자.
그래도 남편이니까 잔소리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틀렸다고 언성도 높이지. 울타리로 건재해 준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래 고맙다.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주면 더 고맙겠다. 큰소리 낼 필요 없고 의논하듯 얘기하면 더욱 고맙겠다. 잘 못하고 실수해도 조용히 타이르면 되지 않을까. 아내를 우선 순위로 생각해주면 정말 다시금 연애하던 때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둘이 마음 모아서 찬찬히 그 때 그 사랑을 회복해보자.
언성 높여 야단치고 싶거나, 화가 날 때, 잠깐씩 생각해 보고 말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결혼 회갑연까지 사랑하는 맘으로, 연애하듯이 못 살 것도 없겠다. 친구 부모님의 기사를 읽고 많은 부부들이 결혼 회갑 때까지 연애하듯 서로 사랑하며 살겠다고 새로운 결심들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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