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인간미를 기대하며

2004.04.20 02:56

노기제 조회 수:474 추천:97

021704 신선한 인간미를 기대하며
노 기제
형편이 좋아지면 자진해서 나를 찾겠지. 어려울 때 도움 받은 일을 잊을 수야 있겠나. 다만, 사는 게 힘들어서 갚을 능력 없으니 연락이 없겠지. 못 갚는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적지 않은 돈 빌려 주고 넋 놓고 기다린 세월이 칠 년이다. 느닷없이 형편을 묻고 싶어 전화를 했다. 끊긴 전화이니 번호를 확인하라는 녹음 된 음성이 나온다. 정신이 앗찔하니 가슴이 방망이질이다. 설마 내게 알리지도 않고 이사를 했을까.
다급해진 심정에 이곳 저곳 수소문을 했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직장에 연락을 하니 그만 두었단다. 두 주일 전에. 아뿔사 한 발 늦었구나. 어떻게 찾을까. 동부에 있는 딸이 해산을 해서 아예 다 옮겨 갔다는 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는 있다. 아들아이가 아직 여기 엘 에이 B은행에서 일하고 있단다. B은행에 알아봤다. 아들아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것이 다행이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요, 작은 합창단을 맡아 지휘를 하던 음대 출신이다. 노래를 매개체로 만난 사람이니 순수하게 어려울 때 도울 수 있었다. 딸 아이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음악가요 아들아이는 명문 B대학 학생이었다.
칠 년전 어느 이른 아침, 느닷없이 전화를 받았다.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는데 이따 점심 때 갚을테니 아들애 은행 구좌에 현금으로 입금을 부탁한단다. 수표로 입금하면 당장 현금화가 어려우니 현금으로 넣어달란다. 그렇게해서 시작된 일이 제법 큰 금액이 되었다. 매번 사정은 급했고 숨넘어가는 지경들이었다.
지난 3년간 내 돈 받아보려고 애 좀 썼다. 그러나 돈이 없으니 갚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항상 기가 죽어 있었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이니 꼭 갚겠단다. 그래서 기다리며 세월만 흘렀다. 여유가 생기면 갚으려니 믿고 있었다. 그 동안 딸아이는 결혼해서 동부로 이사하고 직장도 뻑적지근하니 어느 유명악단의 단원이 되었다.
이제 상황이 바뀐것 같다. 믿고 형편나아지기만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형편은 이미 나아진것 같은데 연락도 없이 이사를 갔다. 집을 팔고 갔다면 여유는 생긴 것 아닌가. 부동산 관계하는 친구에게 알아보니 32만불에 샀었고 68만 8천에 팔려 에스크로 중이란다. 궁리끝에 아들아이의 직장으로 연락을 했다. 다행히 바로 찾았다. 어렵게 말머리를 끌어내어 대강 설명을 했다. 시작은 바로 네 구좌에 입금했던 것이라고.
알아듣기를 원했다.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 부모가 철면피로 나오니 아들이라도 내 사정을 알아주길 바라며 얘기했다. 조용히 듣더니 의논해서 빠른시일 안에 연락드리겠단다. 고마웠다. 첨부터 딱 잡아떼고 모르쇠로 나와도 난 할 말이 없다. 배를 쨀 수도 없으니 말이다.
희망이 생겼다. 세대가 다르니 맑고 깨끗하겠지. 순수한 도움에 고마움으로 답하겠지. 설령 옳지 않은 판단으로 돈 갚을 생각 않는 부모라 해도 옳은 생각을 하는 아들아이 앞에서야 별 수 없겠지. 그런 부모를 설득해서 나 를 도와 줄 것이다. 연락이 올 것이다. 젊은 사람이니까.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우리세대의 썩은 정신이 아이들 세대에선 신선하게 반짝 빛을 발해서 세상을 밝혀 주길 기대해 본다. 아래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부모세대의 악습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땀 흘려 일하고 살기 보다는 어떤 사람들 처럼 사기나 치고, 속일 수 있으면 속여서 이속 채리고, 거짓말은 밥 먹듯 하면서 적당히 쉽게 살아 보려는 나쁜 세태를 본 받지 말기를 가슴으로 말 해 주고 싶다.
오늘도 난 설레는 마음으로 그 아이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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