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옥이의 어여쁜 믿음

2011.10.25 04:05

노기제 조회 수:688 추천:161

20110906                        아무 소용 없는 걱정

        준옥에게서 온 전화다. 가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주고 받으며 끝 마무리는 항상 “우리가 뭐 하나 맘대로 할 수 있니? 그저 그 분께 맡기고 기쁘게 살자.” 로 전화를 끊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뇌 동맥이 부풀려 진 부분이 발견 되어 어느 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단다. 수술을 할 만한 위치도 아니라 그냥 그런대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남의 집 강아지 얘기 하듯 가볍게 한다. 듣는 나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대꾸 했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언제 뇌동맥이 터져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될런지 예측 불허란 아찔한 상태다. 그래도 그런 위험에 처한 환자란 느낌이 전혀 전해 오지 않는다. 평상시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느냐는 간단한 철학으로 오로지 한 분,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 뭔가 보이실 일을 준옥이를 통해서 이루려 하시려나 보다고 주거니 받거니 편하게 얘기 할 따름이다. 당사자인 준옥이도 전해 듣는 나도 서로가 평안한 마음은 확실하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다. 우리의 생활을 한 번 돌아 보고 재 정비 하자. 일찌기 은퇴하고 놀고 먹는 내게, 보란 듯이 막차에 오른 준옥이의 비지네스를 들먹이며 속도 좀 줄여야 않겠냐고 했다. 바빠지고 힘에 부치게 일이 많아서 걸핏하면 밤을 새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무랬다. 일 맡길 사람 찾고 있고, 일도 줄이기로 지금 준비 중이란다.

        기도를 부탁하는 음성에 간절함이 묻어 있다. 기도한다 해도 기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는 착한 딸들로 살기를 원하는 외에 특별히 회복을 원하거나, 삶의 연장을 간구하는 기도는 안 한다고 말하니, 확실하게 동의 했다. 이렇게 준옥이와 나의 기도가 합일점을 이루고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순종하며 따를 수 있도록 지혜를 줍시사는 기도를 예전 보다 더 많이 더 자주 하게 됐다.

        가까이 살면서 서로의 생활에 바빠 한 번도 틈을 못 냈던 둘 만의 데이트를 약속했다.  점심시간을 함께 보내고 킥킥대며 옛날 따라 왔다는 남학생 얘기도 나누다 보니 진짜 친구란 이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커다란 샌드위치 하나만 시켜서 반으로 나눠 먹으며 한국말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소곤소곤 대는 재미. 가끔은 박장대소하는 철부지 나를 눈흘겨 주의 주는 준옥에게 사정 없이 쏘아 댔다. “야, 너 나쁜 기지배야. 남편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면 어쩌니?” 세상에 그렇게 착한 남편 어딧다고? 니가 딱 내 남편하고 똑같다.”

        암튼 듣고 보니 준옥이가 남편에게 해 대는 말투가 울 남편과 정말 똑같다. 난 그 말투가 싫어서 우울증까지 키우며 사는데 준옥이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준옥인 남편에게 뭐 그런걸 다 신경쓰고 사느냐며 그냥 그러려니 살라고 했단다. 그렇게 눙쳐 버리는 말투도 울 남편과 똑같다. 나를 엄청 약 오르게 해 놓구 그러려니 하라니. 듣는 사람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너 아냐?

        그렇게 보낸 시간 속에 우린 근심, 걱정, 불안, 미움, 뭐 이런걸 초대하지 않았다. 아예 다 주님께 드렸다. 무거워서 우리가 품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지 알 순 없지만, 그 계획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 하는 그 뜻을 잘 받아 감당할 수 있기만을 마음을 다해 기도할 뿐이다.

        수술이 불가능 하다고 했을 때도 그냥 받아 들이고 기분 좋게 만나 떠들며 놀았는데, 기적같이 수술 할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을 땐, 그런대로 기분 좋게 임했던 준옥이. 의사를 보내신 분도, 수술을 하게 하시는 분도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시니 예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지나치게 담담히 반응하는 준옥이가 걱정이라며 불안 해 하던 용길이, 엉뚱하게 뇌종양이라고 편집인 모임에서 전하며 근심하던 주옥이,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선명하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 준 준옥이의 믿음이 많이 예쁘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도록 도구로 사용 된 준옥이가 부럽다. 나도 그 아름다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었음 좋겠다.

        지금은 간단히 수술 잘 끝내고, 회복 중에 있는 준옥에게 전화해서 질투 섞인 투정을 한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나 보다 너, 준옥일 더 사랑하신다고. 얄미운 기지배. 맛 있는 거 먹으로 가자. 이번엔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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