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고 싶은 앙금

2011.10.25 04:26

노기제 조회 수:707 추천:163

20111020                녹이고 싶은 앙금
                                                                                                   노기제

        속이 뒤 틀립니다. 위장이 아픕니다. 뭔가 콕콕 찌르는 듯 통증이 옵니다. 몸속 장기들의 위치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그냥 속이 아프단 표현만 합니다. 뭘 잘 못 먹어서가 아닙니다.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서 보았던 몸짓 때문입니다.
  
        관광여행 도중, 가이드에게 화장실을 물었습니다. 방향을 가르쳐 준 가이드에게  딴 곳인 줄 알고 그리로 가려 했다고 했습니다. 앞에 가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가끔은 나도 해 본 그런 몸짓, 한심하단 표현으로 은근히 비웃는 몸짓. 앞서 가는 사람 붙잡고 무슨 뜻인가 묻고 싶었습니다. 때 지난 앙금 때문이지 싶어 무시하려 했습니다. 수 년전, 바로 저 사람이 자신의 직함으로 내게 어려움을 줬던 사람입니다. 그 일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가치 없다 생각하고 잊으려 애쓰며 살았습니다. 단체 속에서 얼굴 부딪면 목례로 일관하며 지냈는데, 다시 이렇게 내 속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이니 또 혼자 아프고 말겁니다.

     같은 제목아래 함께 하는 여행이니 피할 수 없이 같은 버스로 같은 곳을 둘러 보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같은 호텔에서 투숙하면서 일거수 일투족이 다 눈에 띠는 공개 된 공간입니다. 이 참에 지난 일일랑 깨끗이 털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눈길을 자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다른 반응을 받았습니다. 일단은 다시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지난 앙금 녹이기도 전, 또 다른 앙금을 더 했습니다. 얼마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히 식탁에서 만난 분이 느닷없이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안 되지. 자기가 초청해서 강의가 끝났으면 그 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양보해야지. 여기 저기 다 가로 막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하는 건, 그건 아니지.”

     이 분도 그 어느 분과 앙금이 있으신가 봅니다. 주최측에서 비용들여 강사를 초청했다면 마땅히 초청되어 오신 분은 그 곳 모임에서만 강의 하시는 것이 정석일 듯 싶기에 그리 말씀드리니, 그것이 아니고 다른 단체에 속한 당신에게 그 강사분과 함께 개인적으로 식사도 못하게 했다는 설명이십니다. 글쎄요. 사실을 모르니 기다 아니다는 거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 느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앙금이 생긴다는 건 이렇게 자잘한 것들이 이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마뜩치 않아 무시하던 까마득한 후배 때문에 모임에도 발 끊고 사셨답니다. 그러다 부득이한 경우가 생겨 같은 모임에서 얼굴 마주 치게 되셨더랍니다. 자신이 한 발 양보해서, 만일 후배 쪽이 다가 와 인사하면 받아 주고 앙금 녹이려 마음 먹었는데, 그냥 피해 버리더라고. 아주 돼 먹지 않았다고 열을 올리시던 연배가 높으신 분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바로 나의 얼굴, 나의 입, 나의 음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집에 돌아 와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건 무얼까 생각 합니다. 모두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입니다. 나 자신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신앙인 입니다. 그러나 실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슴에 갈 앉은 작은 조각 앙금들이 우리들의 자만심입니다. 미움입니다. 사랑이라곤 티끌 만큼도 없습니다. 털고 싶고, 용서하고 싶고, 편안 해 지고 싶지만, 내가 더 잘 났으니 네게 머리 숙일 수 없고, 내가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하고 싶지 않은 교만입니다. 그리고 우겨댑니다. 너도 나 처럼 선한 마음을 갖고 찾아 오라는 우월감입니다.

     속이 아픈 건, 바로 이 교만 때문 일 것입니다. 내어 놓고 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마저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왜 내가? 난 잘못한 거 없는데. 그러면서 계속 가슴을 칩니다. 아프니까요.

     2012년, 이번엔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아무 이유 부치지 말고, 내게 주어지는 마지막 달력이라 가상을 하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여지껏 아프게 살아 온 그 앙금들을 없애려 하지 않을가 싶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내 삶이 곧 마감 된다는대도 여지껏 살아 온 방식대로 살 것입니까? 미워하는 마음 그대로, 누구든 내 발아래로 깔아 뭉게고 싶은 그 욕망대로, 곱지 않은 시선 그대로 지닌 추한 얼굴로, 그렇게 계속 살 것입니까?

      2012년의 새로운 태양이 밝았다 말하기 전, 새해의 당찬 희망을 말하기 전, 한 번 쯤은 곰곰히 생각 해 보고 싶습니다. 이 모습 그대로, 이 마음 그대로 나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순 없다는 결심입니다.

     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잘 압니다. 그래서 꼭 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앙금 깔린 그 사람들을 찾아, 내가 먼저 손 내밀어야 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음을 잊지 않는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한 후엔 더할나위 없이 편안하고 행복 해 질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의 어떤 몸짓에도, 어떤 말 한 마디에도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들을 내가 만들어야 겠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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