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만 말해요

2012.05.01 01:01

노기제 조회 수:645 추천:128

20120418                진실만 말해요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고, 이유가 알고 싶어 물었다. 한참을 내 얼굴을 보고 있더니 생각난 듯, 자기는 진실만 말한다나. 질문에 맞지 않는 대꾸에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어천만사(무슨 일이든지)에 진실만 말한다?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그 자신감을 높이 사 주기로 했다. 그래? 언제든, 누구에게든 그렇게 말하며 산다면, 이번 일은 내가 잊기로 하고, 부디 그 신념 변치 말고 살아 주길 바란다며 돌아섰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가발가게 사장님이 있었다. 일 년 전 바로 그 가게에서 거금 주고 산 두 개의 가발을 사용 못하고 있던 참이다. 원래 머리숱이 적은 아기로 태어 난 탓에 평생을 볼 품 없는 머리 모양으로 살았다. 예쁘지 않은 것이 아쉬워서 인위적으로라도 예쁘게 가꾸고 싶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가발을 사곤 했지만 투자를 넉넉히 안 했던 때문인지 번번이 실패작이 되곤 했다. 그러다 정말 큰 맘 먹고 아주 비싼 가발을 그것도 두 개나 샀다. 판매 하시는 분의 끈질긴 권유, 그리고 정말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내가 써 보니, 그 가게에서의 예뻐 보였던 모습을 결코 재현 할 수가 없었다. 그 가게 거울의 조화였나 보다. 그러니 싸구려 가발들과 함께 이제나 저제나 쓰여질 날만 기다리게 된 가발들이다. 그런 사연이 있는 가발가게 사장님이라니 하소연이라도 한 번 해 볼 양으로 사정을 얘기하니 흔괘히 “갖고 오세요.  스타일을 봐서 손질 해 드릴께요.” 사실은 살 때, 한 번은 무료로 손질해 준다고 했다. 언제까지란 제한도 없었다. 그냥 그 말만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구세주처럼 만난 사장님이 갖고 오라니, 이번에야 말로 예쁜 머리로 변신 할 수 있겠다는 기쁨이 느껴졌다.

        개인 사정상 사장님은 목요일 1시부터 3시까지만 출근을 하신다니 그 날, 그 시간에 맞춰 가발 두 개를 갖고 갔다. 갔지만 아니 계신다. 직원에게 내가 올 것이란 말씀도 없으셨단다. 낭패로다. 그렇담 사장님께 전화를 해 주면 내가 직접 통화를 하겠다고 부탁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 대하는 직원의 태도에 우선 기분이 상했다. 연결 된 전화로 들리는 사장님의 말씀. 할 일이 많아서 오늘 출근을 못 한단다. 그렇담 직원에게 내 상황을 얘기라도 해 달라고 했다.

        매끄럽지 못한 과정을 거쳐 미용사 방으로 안내 되어 들어갔다. 처음부터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했다. 일 년 전, 세일즈를 엄청 잘하신 분의 권유로 두 개 씩이나 산 가발을, 내 실력으론 머리 모양을 낼 수가 없어 쳐 박아 뒀다가 우연히 사장님을 만나고 사장님의 배려로 여기까지 왔노라고. 긴 머리 가발과 짧은 머리 가발을 무슨 재주를 부려도 좋으니, 긴 걸 잘라도 좋고, 짧은 걸 더 짧게 해도 좋고 쓸 수 있게 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세일즈에 능숙한 사람이 팔았으면 손질도 그 사람이 해야지 왜 나보고 하라느냐고 궁시렁 댄다. 벽에 붙은 가격표를 가리키며 손질 받는데 10번 가격을 내면 12번을 해 주니 그 걸 사란다. 요즘 세일기간이라고. 내가 무식해서 가발을 그렇게 미장원 다니듯 손질하며 쓴다는 걸 전혀 몰랐었다. 그럴거면 미장원을 다니지 왜 비싼 가발을 사겠나. 가발 살 때, 미장원 열 번 안가면 그 값이 나온다고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허허 또 낭패로다.

        이러다 선듯 10번 손질 받는 가격 주게 생겼다. 가만, 생각 좀 하자. 또 돈을 들이고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 된다. 지금은 우선 이 비싼 가발 둘을 쓸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사정했다. 그래도 계속 10번 손질하는데 200불인데, 세일가격이라 200불에 12번......눈도 안 맞추며 가격표를 읽고 또 읽고, 그렇게 하란다.

        글쎄 그건 다음 단계이고 우선 이것들부터 손질 해 달라 했다. 긴 머리 가발을 중간 정도로 자르며 이 가발은 도무지 스타일을 낼 수 없는 형편 없는 가발이란다. 800불짜리 500불에 깎고 깎아서 산 걸, 형편 없는 가발이라니.....짧은 가발은 고대로 지지고 드라이로 손질해서 쓰니 보기 좋았다.         다음 예약손님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음 주에 다시 예약하고 오란다. 쓴 웃음만 나온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러마고 일어서는데 내일 이 시간에 오란다. 선심 쓰시는데 그리 해야죠.

        이왕 시작 했으니 조금 참고 이쁘게 변한 가발을 쓰도록 하자. 화를 낸들 뭔 소용이 있으며, 그래봤자 나만 손해 아닌가. 나도 만만치 않은 성깔에 무지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 내 시간도 그리 널널한 시간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지만, 그것도 참아두자.

        이튿날 약속 된 시간에 갔다. 긴 머리 가발을 건네니 가발이 무지 더럽단다. 고약한 냄새도 난다며 코에 대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제는 아뭇 소리 안하더니 이건 또 뭔 행패일까. 아무래도 빨아야 되겠다며 갖고 나간다. 여기서 미리 말 해 둬야 겠다. 내 가발은 긴 머리에 굵은 웨이브가 살짝 있는 가발이고 어제 미용사 자신이 길이만 좀 자른 상태다. 한 15분, 작은 공간에서 혼자 기다리며 팁을 따로 준비해서 겉 옷 주머니에 넣었다.

        시계를 보았으니 15분 기다린 건 확실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발을 들고 들어오는데, 가발 모양이 마음에 든다. 아주 꼽실거리는 컬에 색도 내 것 보다 까만색이라 쓰면 이쁠 것 같다. 허지만 이건 내 가발이 아니다. 갖고 싶은 유혹을 누르며 이거 내 것 아닌데..
        .“맞아요. 이거 맞아요. 써 보세요. 얼른 써 보세요.”
        “아무래도 내 것 아닌 것 같은데...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어떻게 써 보라는 거에요? 이거 내 것 아니잖아요.”
        “맞아요. 써 보세요. 왜 안 쓰세요? 이거 맞아요.”

        옥신각신하는 중에 다시 들고 나가선 또 15분 후에 들어 온다. 이번엔 내 것을 갖고 온 듯 한데, 또 속는 기분이 들어 이것도 내 것 아니지 않느냐 했더니 똑같은 말만 한다. “맞아요. 그거에요.”

        급기야 메니저 찾아 말해보니 가발은 물에 젖으면 컬이 바뀌고 모양도 바뀐단다. 첫 번 가져온 가발을 보여 줬음 좋겠는데 그 건 이미 다시 나가서 내 것으로 바꿔 왔으니 자초지종을 길게 말 할 수도 없고, 완전히 나만 바보 노릇한 답답한 상황이다.

        예뻐지기 이렇게 힘이 드는 줄 어찌 알았겠나. 그냥 던져 버리고 나왔으면 딱 좋겠다. 차라리 먼저 바꿔 온 걸로 갖겠다고 그럴까? 돈 500불 본전 생각나서 버리고 나오기도 그렇고. 긴 머리 짧게 잘라 변한 가발 들고 그 가게를 나오며 생각 해 본다.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바꿔치기 한 가발은 어떤 가발이었을까. 싸구려 가발가게에 가면 그렇게 맘에 드는 가발을 살 수 있다고 친구가 그랬는데. 그런 가발인가?  왜 바꿔치기 했었나. 시종일관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았 던 그 미용사는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대했던 걸까. 자기의 수고에 댓가가 없을 것에 화가 났던 걸까. 아무리 사장님의 지시라지만 재수 없게 자기가 걸려 든 것에 짜증부터 났던 모양이다.

        각자 입장이 다르다. 나도 억울한 입장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로 나를 취급하다니. 인간적으로 화가 많이 난다. 정말 다시는 상대 못 할 사람 아닌가. 어찌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산 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을 미워하게 된 사실이 나를 못견디게 한다. 속으로 그 미용사에게 욕을 해 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풀리 질 않는다.

        잠을 설치며 삭이려 애 쓰다 결국 기도하기로 했다. 그 미용사의 입장이 되어 이해 해보고 미움에서 자유롭기를 간절히 기도 하며 잠을 청했다. 기도가 길어지며 날이 바뀌어도 도무지 변하 질 않는다. 두 밤을 그렇게 뒤척이고 아직도 치미는 화를 견딜 수 없어 해 질 무렵 뒷산으로 향했다.걸으며 땀 흘리면 좀 나아지려니 기대하면서.
         집에서 산 초입까지 20분 걷고 산길로 접어 들어 10분 쯤 걸었을 때, 내 눈 앞에 나타난 사람. 기도의 응답이 왔음을 알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움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밝은 음성으로 “어머, 안녕하세요. 리사씨.” 하며 반기는 내게 그 역시 밝은 얼굴로 “안녕하세요?” 한다.“나 아시겠어요?” “많은 손님을 상대하니까 그 중 한 분이시겠죠.”바로 이틀 전 일인데..벌써 날 잊었단 말인가?
        “리사씨 맞죠? 가발요. 내 가발 리사씨가 바꿔 갖고 와서 다퉜잖아요. 근데 정말 왜 그랬어요?”
        표정 없이 멀거니 잠잠하다. 다시 물었다.
        “왜 바꿔 갖고 왔었냐구요.”
        “..................나는요, 진실만 말해요.”
        “?????????????????,........................”

        내 질문에 전혀 해당 되지 않는 짧은 대답이다. 그러나 왠지 내 마음이 풀리고 있다. 제발 그렇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삶을 살아 주길 바란다. 드디어 누구를 미워하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날아갈 것 같다. 헐리웃 산 해질 무렵의 하늘이 오늘처럼 평화스럽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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