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 최후의 날

2013.04.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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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                                    
                           윈디, 최후의 날

       암벽등반이 예정 된 날 새벽이다.  카풀을 하기로 했으니 서둘러야 한다.   그날따라 밤새 앓는 소리에 가끔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는 윈디를 살피느라 잠을 설쳤다. 단 오 분이라도 더 자고 싶지만 약속 된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더 자고 싶은 미련을 버려야한다.  자는 남편 깰가 조심하며 일어나는데 얼굴을 잔뜩 찌프린 남편이 투덜대며 복도로 나선다.
        
       밤새 어수선한 꿈만 꾸고 잠을 못 잤단다. 암벽등반 가는 마누라 걱정돼서 안 가게 하려는 심통이려니 싶어 한 마디 쏘아 댔다.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걱정이 된다는 것인지, 그것도 같이 하던 운동이니 뻔히 다 아는 일정이 아닌가. 자기 일정대로 산행이나 가면 좋으련만 그도 안 가겠다며 뒷산이나 걷고 오겠다며 먼저 나선다.

        나도 곧 나갈텐데 윈디 오줌이나 뉘고 나가라고 부탁했다.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다. 평생을 아쉬움으로 가슴 칠 순간일 줄 뉘 알았을까. 혼자 일어나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 할 수 없는 윈디. 눈멀고, 귀 먹어 방향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기운 떨어져 걷기도 힘들지만,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워 한다. 볼일 보고 싶으면 벌떡 일어서기는 하는데 그 다음 동작이 따라오지 못한다.  14년 8개월 살아 온 시간들을 마무리 하는 단계가 되어서다.

        밤새 참고 잤으니 얼마나 오줌이 마려울까. 얼른 안고 집 앞 잔디에 내려놓으면 냄새 맡고 자리 고르고 할 새도 없이 그냥 누기 시작하면 삼 분은 족히 걸려 끝낸다. 그 다음 몇 발작이라도 떼며 걸어야 큰 것을 볼 텐데 걸을 기운이 없는지 마냥 서 있는다. 특히 바쁜 아침 시간엔 조급하게 궁둥이를 밀며 재촉을 해야 한다. 그 시간을 아끼느라 그 날 아침엔 내가 못 한 일이다. 안아서 목에 입 맞추며 이쁜이, 이쁜이 착하다고 말해주고, 하루 일정을 말하며 사랑한다고 반복하면서 따스한 온기를 전해 받는 행복한 일정을 내가 포기 했던 날이다.

        함께 갈 일행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허둥대며 문을 나설 때 “윈디야 엄마 다녀올게.” 큰 소리로 알려주곤 나섰다. 잊은 물건이 있어 다시 들어섰다가 또 한 번 “윈디야 엄마 다녀올게.” 를 외치는데 힘겹게 고개를 쳐들며 뭐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모습을 힐끗 뒤로 보며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이 엄마에게 보여 주는 마지막 모습이란 걸 윈디가 말하려 했던 걸까.

        별다른 느낌 없이 암벽등반에 혼신을 다 한 후, 하산해서 차에 올라서야 아침에 불안 해 하던 남편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등반 안전하게 끝내고 출발해서 가고 있다고 보고 하니 남편의 음성이 울먹인다. 어디 아프냐 물으니 아니란다. 그럼 윈디가? 응 하는 짧은 외마디에 난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운전하던 동행은 일정을 바꾸어 우리집을 향했다.

        두 시간이면 집에 도착하려니 했는데 교통체증이 심하다. 삼사십 분 먼저 도착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시간을 당기려 조바심이다. 카풀 덕에 운전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숨 가쁘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침에 윈디가 있던 자리는 휑하니 비었다. 방으로 들어서니, 뒤뜰로 향한 문 곁 컴퓨터 앞에 옮겨져 있는 윈디. 예의 평상시 모습 그대로 목 늘어뜨리고 깊은 잠에 빠진 자세다. 와락 끌어 안아 주려니 뻣뻣하다. 흠찔 놀라 멈췄다. 윈디 몸이 너무 차다. 내 손끝이 시려온다. 잠들었는데 눈은 뜨고 있다. 곁에 지키고 앉은 남편은 꾹꾹 소리를 누르며 눈물을 쏟는다.

        이쁜것. 엄마 보고 가려고 눈도 감지 못했구나. 엄마 올 때까지 버티려 고생 했다는 남편 말에 가슴이 찢긴다. 아빠가 몇 차례나 네 눈을 감겨도 고집 세우고 안 감더니, 결국, 한 번 닿은 엄마 손에 스르르 눈 감는 모습은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근댐 아니더냐. 보드라운 네 털을 쓰다듬으며 네 온기를 되돌리려 애써보지만 점점 더 차가와지는 너.

        윈디야, 고마웠어. 엄마 아빠에게 와 줘서 고마웠구. 너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고마웠구. 엄마 가슴에 뜨거운 사랑의 불 지펴 주어 고마웠구, 이렇게 울 수 있게 해 준 것도 고맙구. 고운 너와의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어 고맙구. 천수를 다 하고 가서 많이 고맙구나. 이런 저런 핑계로 너를 미리 재우지 않게 해 줘서 더 고마워.

        이렇게 우리 하룻밤 더 지내자. 이미 해는 져 어둡고 이대로 급하게 너를 묻기가 아프구나. 따뜻한 엄마 품에 안아 주면 차갑던 네 몸도 더워질 듯 착각하면서도 무서운 생각이 들어 품지 못한다. 거기 너를 두고 엄마 방으로 돌아 와 네 숨소리 들으려 귀 기울인다. 어젯밤 괴롭게 숨 고르던 네 소리 다시 들리길 기대하며 잠을 청한다. 네 목덜미에 뽀뽀하면 기분 좋아하던 너. 엄마 한 팔에 안긴 그렇게 작은 너를 가슴에 품고 행복 해 하던 엄마를 생각하며 네 마지막이 외롭지 않았기를 바란다. 아빠가 네 곁에 있었으니 두렵지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너도 엄마처럼 행복했었다 말하고 편히 떠났다고 믿고 싶다. 다만, 엄마 품에서 잠들기를 원했건만 그 소원을 못 이뤘구나.

        가슴에 포옥 안기는 쬐끄만 윈디. 평생을 13파운드로 살다가 언제 부턴가 마르기 시작해서 10 파운드로 뼈가 드러나는 몸이 됐다. 가끔 먹은 걸 토하고 이삼일 못 먹으며 자리 보존하다가도 지극 정성으로 돌보면 회복하기를 대 여섯 번. 한국 여행 중, 아프단 소식에 일정을 당겨 돌아와 곁에 있어 주니 다시 기운을 차린 것이 일 년 반 전이다.
  
        사랑을 먹고 살았던 윈디. 칭찬을 주식으로 삼았던 윈디.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감사함을 전해 주던 윈디.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했던 윈디. 사람이란 착각으로 살았던 윈디. 언제나 엄마, 아빠의 일정을 다 알고자 했던 윈디. 아빠는 수퍼맨이라 어느 상황에서도 윈디를 구해 낼 수 있다 믿고, 코요테에게도 겁 없이 시비를 걸다 물려 갔던 윈디. 적막한 집안에 웃음 바람, 기쁨 바람, 행복 바람 몰고 다니며 이름 값 톡톡히 했던 윈디. 엄마도 아빠도 말없이 늦게 귀가하는 날엔 엄청 큰소리 내며 우리를 혼내던 윈디, 그 야단 이젠 못 듣게 되었다.

        잠든 너를 저 만치 두고 밤을 지낸 새벽녘,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미명에 아빤 서둘러 너를 보에 싸고 상자에 넣고 묻었다. 불 밝혀 든 내 손은 떨리고, 삽질하는 아빠는 끄어끄어 소리 죽이며 눈물을 쏟는다. 너도 밤새 울었는지 네 고개 떨어져 닿은 곳이 흥건히 젖어 있더구나.

        너도 알지? 엄마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편히 자거라. 이쁜 윈디.

1998년 1월 25일 태어나 2012년 9월 22일 오후 4시 38분 잠든 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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