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2011.06.09 03:58

김수영 조회 수:585 추천: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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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로 앞 마당에 있던 팜트리 쓰러지다

수도권 기습 폭우…내일까지 전국에 70㎜ 장대비 쏟아진다 | 중앙일보

                                                                  폭우가 퍼 붓고 있다

 

폭우                                         김수영   

   가주에는 지금 집중호우가 내리고 있다. 일주일 가까이 폭우로 인정사정없이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붓는다. 이곳에 30여 년 살고 있지만 처음 보는 많은 강우량이다. 수년 동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가 와서 기쁘지만, 너무 많은 양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산불재해 지구나 산간지역의 주민들은 산사태로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모래주머니로 집 주위를 감싸지만, 워낙 물살이 셀 때는 그것도 불가항력이다. 나무들이 다 타 버린 산불 피해지역 주민은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땅이 물을 흡수 못 해 그대로 흙과 함께 거센 물살로 산에서 내려와 산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강풍으로 전기 전봇대가 넘어져 전력이 공급이 안 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주민의 대피령이 내린 곳도 많다. 적십자사에서 제공하는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았을 때 얼마나 불편할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이티에서 지진 발생으로 죽은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도 먹을 양식이 없어 굶주림에 아우성치는 비참한 모습과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의 사각지대가 된 것 보았을 때 가슴이 아팠는데…..    

   이곳 캘리포니아도 폭우 때문에 고생하는 주민이 많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산불재해 지역은 산불로 이미 큰 피해를 보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수해지구로 선포되어 집을 떠나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모습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우리집은 그래도 도시 가운데 있어서 산사태 같은 피해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전력도 시 자체에서 공급하기 때문에 전기가 나간 적이 없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빗물이 차고로 연결되는 드라이브 길까지 차올라 걱정도 했지만, 물이 빠져나가서 집까지 물이 침범하지 않아 걱정을 놓았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팜 트리 하나가 강풍을 견디다 못해 쓰러졌다. 뿌리가 완전히 뽑히고 누워 있는데 일으켜 세우려 해도 워낙 비가 많이 와서 엄두도 못 내고 바라보고만 있다. 뿌리가 잘려서 다시 땅속에 묻어도 살아날지 걱정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고를 당해 누워있는 기분이다. 내가 애지중지 키운 팜 트리인데 쓰러지다니 가슴이 아팠다. 더군다나 달밤에 팜 트리 앞에 앉아 잎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면서 시상에 잠기고 글을 쓰는 영감을 얻는데 나란히 둥그렇게 둘러선 팜 트리 가운데 한복판에 있던 팜 트리가 넘어져 복판이 휑하게 뚫려 마음이 허전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밖에 나가지는 못하고 창 너머 바라보면서 나는 누워있는 나무에게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내 사랑하는 팜 트리 나무야.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너는 알고 있지. 20여 년을 너와 함께 살아왔는데, 이렇게 힘없이 쓰러지다니….아 아픈 내 가슴이여." 그런데 과거에 비 때문에 생명까지 잃을 뻔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비 피해자 가운데도 다른 피해자에 비해 천만다행이란 생각에 하나님게 감사했다.            아주 까마득한 옛날얘기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의 일이다. 졸업반이 되어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경주 불국사였다. 학교에서는 버스 몇 대를 전세해서 한대에 40명씩 태우고 경주 불국사를 향해 갔다.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을 구경하려 꼬불꼬불한 산길을 조심스레 버스가 달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커브 길을 돌려고 운전기사가 좌회전하는 순간 차도가 미끄러워 버스가 직진하는 바람에 내가 타고 있던 버스가 낭떠리지에서 몇 바퀴 굴러 계곡에 바퀴가 하늘을 향한 체 몸체가 거꾸로 처박혀 버렸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버스 안에서는 아비규환의 신음이 여기저기 들렸고 "사람 살려라" 란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살아 있다는 안도감에 부서진 의자 사이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살아난 친구들이 나의 얼굴과 몸을 마구 짓밟고 나가는 바람에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 안 있어 경찰이 달려오고 구조대가 도착해서 나는 무사히 부서진 버스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온몸이 아프고 쑤셔왔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아 있었는데 차 속에 있던 염산이 쏟아져 흘러나왔다. 다행히 얼굴은 데지 않았는데 옷이 염산에 녹아 힘없이 찢어지고 오른쪽 다리가 화상을 입었다. 쏟아진 염산 때문에 화상을 입게 된 것이 죽음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계곡을 몇 바퀴 굴렀는데도 사상자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아서 큰 뉴스감이 되었다. 차는 완전히 휴지장 처럼 구겨져 있었다. 계곡 언덕에 아주 큰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우리 버스가 이 소나무에 떨어져 일차 충격이 흡수되고 나무 큰 줄기가 꺾이면서 서서히 차가 밑으로 굴러서 한 사람도 죽지 않는 기적이 생긴 것이었다.    화상으로 말미암은 통증도 심각해서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고통은 둘째이고  염산에 녹은 옷이 다 찢어져서 반나체가 된 것이 부끄러웠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몸을 덮을 옷을 달라고 소동을 벌였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났다. 몸을 가릴 것 달라고 아우성치느라 막상 화상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경찰이 자기들 옷을 벗어서 덮어 주었다. 그때 부터 화상의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서 화상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다리에 남아 있는 화상의 흉터 때문에 매우 걱정했다. 신기하게도 피부 재생력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강해서 새살이 살아나면서 성형수술한 것 처럼  말끔히 나을 수가 있어서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악몽과 같은 그때 사고 당시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지만 살아남아 지금껏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라 생각하니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나는 유리창 너머 앞 정원에 쓰러진 팜 트리를 유심히 바라다보면서 내가 사고 후 버스 속에 누워 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꼈다./늘 추억의 저편 

 

*2011년 6월6일 중앙일보 문예마당에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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