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강

2011.07.16 15:35

김수영 조회 수:1012 추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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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강                                                金秀映     


   강물은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세월과 함께 흘러가 버린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강처럼 말없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누구나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그림 한 장쯤은 가지고 있다. 그 그림이 아름다운 그림이든 슬픈 그림이든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옛 추억을 더듬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준비를 하던 중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의 그림이다. 폐 침윤 정도의 증상이 가벼웠는데도 회복이 늦어지고 있어서 원장 박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다. 기관지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나를 기관지 촬영을 위해 부평에 있는 미 육군병원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의료계엔 기관지 촬영전문 병원이 없을 때였다. 요즈음처럼 자기장 이용, 초현대식 인체 단층 영상 촬영하는 MRI, CT 스캔, 초음파, 업그레이드된 X- 레이 등등 최첨단 기술이나 의료기기가 하나도 개발되지 않았던 반세기 전 일이었다. 기관지 촬영과정이 그토록 원시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줄 알았다면 나는 한사코 거절하며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군의관은 나에게 기관지 촬영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영어 해득이 가능했던 게 불찰이었을까. 마음속으로 신뢰가 가지 않아 불안해졌다. 나는 기관지 촬영하는 기계가 X-ray처럼 다 찍어 주는 자동인 줄 알았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앞서가는 선진국이라 기관지 촬영 의료기계쯤은 젊음과 목숨을 걸고 파병 나온 군 병원에서는 응당 배치되고 사용되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선뜻 내키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기관지 촬영에 응할 것인지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어떨 결에 그냥 응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취주사도 없이 정신이 말짱한 가운데 기관지 한쪽 기도 속에다 튜브를 꽂고 콧구멍을 통해 무슨 흰 가루약을 물에 타 섞은 것을 집어넣었다. 갑자기 숨 쉬는 기관지 기도가 막혀 숨이 멎어 죽는 줄 알았고 생으로 다량 투입하니 얼마나 아픈지 이것이야말로 완전히 생사람 잡는 고통이었다. 촬영이 다 끝나 이제는 살았다 싶었는데 환자를 거꾸로 천정에다 매어 달아 인위적으로 기관지에 들어간 흰 가루 용액을 밖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당장 뱉어내야 한다며 기침을 계속하여 액체를 다 토해내라고 했다. 있는 힘을 다하자니 진땀이 나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용을 써 뱉고 뱉어 보다가 그 액체가 다 빠져나오기 전에 나는 그만 기진해버렸다.     

   학교 다닐 때 남학생들이 벌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그 꼴이 되어 거꾸로 천정에다 매달려 있으니 피가 역류하여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오락가락 혼미해졌다. 007 첩보영화를 보았을 때 간첩을 잡아 고문하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공포에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나는 죽느냐 사느냐의 가림길에서 절망적인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의 극한 상황 속에서 킬리만자로의 산정 눈 속에 얼어 죽어가는 표범이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해 왔다.     

   '사람 살려라’ 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자 천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기관지에 들어간 이물질이 다 빠져나오질 않아 숨이 답답하고 기침이 나고 그 불쾌지수는 엄청났다.   병원에 되돌아왔을 때는 열이 섭씨 42도가 넘으면서 춥고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폐렴이었다. 완전 혼수상태에서 의식마저 혼미해졌다. 담이 얼마나 끓는지 기침하다가 담이 기관지 기도를 막아 숨이 막혀 죽을 뻔한 일이 되풀이되었다. 

   사경에 놓여 있을 때 병원에서는 비상이 걸려 의사와 간호사가 총동원되어 <사람 살리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교대로 치료해 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결과 겨우 살아나 이렇게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을 먼 이국땅 미국에서 추억할 수 있다니 이것도 은혜가 아닐까. 내 체력도 문제가 없잖아 있었지만, 점진적 투약의 접근을 시도도 하지 않은 군 병원의 그 군의관, 지금쯤 경험도 많이 쌓아 노련한 의사가 되어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겠지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어 현대의 의학기술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축복인지 과거와 비교하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늘 기관지 촬영을 하려고 CT Scan을 찍으러 병원에 왔다. 혈관에다 무슨 주사약을 주사 놓고 굴속에 들어가듯이 사진을 찍기 위해 드러누웠다. 기계속으로 들어가면서 엑스레이 기사가 지시하는 데로 숨쉬기를 조절하며 사진을 찍었다. 미국 와서 기관지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세기 전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진 찍다가 죽도록 고생한 과거가 생각나면서 지금 이 시각이 얼마나 행복한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가 매일 공짜로 마시는 공기 고마운 줄 모르면서 마시고 산다. 나도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없었다면 현대 의술에 감사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 갈 것이다. 나는 뼈저린 아픈 경험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면 이 촬영기기를 발명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눈부시도록 괄목할 만하게 발전한 현대의술과 의료기기 발명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난다. 나는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자주 가는 아이젠하워 공원에 들러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한가히 노니는 오리 떼를 바라보았다. 완쾌 후 집에 돌아와서 쉬고 있을 때의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 아픈 상처는 강물에 다 떠내려 보내고 감사를 가득 실은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노저 어 간다.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오직 앞으로만 향해 떠내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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