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작은 부스러기들

2007.02.15 11:47

정해정 조회 수:523 추천:55

  내게는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하는것들이 많아집니다.
  나는 유년시절 한반도 남 서쪽 끝으머리 ‘타리’ 라는 조그만 섬에서 주로 자랐습니다. 여름밤 이었습니다. 섬의 밤하늘은 유난히 별들이 빼곡히 박혀 자리가 비좁은지 빗금을 그으며 별똥별 들이 내려옵니다. 섬의 바닷가에 물결에 젖은 자갈들이 달빛에 반짝이는것을 별똥별이 떨어진 것이라고 주으러 다닐때 조용히 밀려와 내 발목을 잡던 순한 밀물과. 집집마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운 생 풀 내음을 지금도 사랑합니다.
  추석무렵 달빛이 은가루를 바다에 흠뻑 쏟아 은 물결 넘실거리는 밤에 저 건너 큰 섬에서 번져오는 징 소리를.
  바다는 살아있어 쉼없이 섬을 다독거리는 작은 파도를 함께 사랑합니다.
  섬의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옵니다. 밤새 내린 눈으로 섬은 커다란 눈덩이가 바다에 떠 있는듯합니다. 창문을 드르륵 여니 황금햇살이 반짝 내눈을 시리게 했던 고드름.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이었어요. 내가 입고 갈 곤색 세루주름치마를 당신의 요밑에 조심히 깔고 주무시던 늙은 엄마 손가락에 낀 은 가락지. 이 모두를 사랑합니다.

  낙엽이 떨어지듯 세월도 한 잎씩 떨어져 나갑니다.
  낯 선 땅에 이민와 엉거주춤 서 있는 나그네 가슴을 활활 태우는 말리부 해변의 붉은 노을을. 이땅의 이름모를 가을 들꽃들을 사랑합니다.
  작년에 생명이 다 했다고 재껴 놓았던 선인장 머리위에 살며시 피어난 한 송이 꽃에 햇살 한 줄 꽂힐때. 그 싱그러운 아침을 .
  불난리가 한 바탕 지나가고 서서죽은 새까만 나무가지에 어느날 다시돋은 연두색 새 움을. 가슴 설레이며 사랑합니다.
  영리하고 의리있다 해서 엉겁결에 이민온 내 얼굴 닮은 진돗개. 이 땅에 와서 ‘개 명단’에도 못들고 그래도 어찌 고향을 잊을소냐 ‘진도 아리랑’을 아프게 삭이고 있을것만 같은 그 어진 눈을 사랑합니다.
  산 너머 구름 너머 소식을 전해주는 우표 한장을 사랑합니다.
  어쩌다 길을 가다 베란다에 하얀 기저귀가 널려 있는것을 볼 때 얼굴 모르는 아기와 그 엄마를 사랑합니다.
  ‘홀리 크로스’ 묘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남편의 비석옆에 그의 혼이 감기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바람개비 도는 소리를.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면서 왜 자동차는 두고 갔냐고 묻는 앞니 빠진 외손주. 여섯살 에 엄마를 보내고, 비석의 얼굴에 세수 시킨다고 물로 닦는 ‘그린'이의 조그만 손을. 이모두를 가슴저리게 사랑합니다.

  꿈을 그리는‘샤갈’을 사랑합니다.
  ‘모디리아니’ 여인상 일그러진 눈매를. 선 굵은 ‘루오’의 예수얼굴도 사랑합니다.
  ‘이외수’의 가슴으로 그리는 새련된 선을 사랑합니다.
나무가지 몇개를 분양 해준 친구 ‘숙’ 그 나무가지가 자라 하얀색 꽃이 송알송알 피더니 아! 밤에만 나는 향기 그 은은한 향기를. 시절만 맞았으면 세계에서 유명한 뮤지컬 배우 가 됐을 ‘영강이'의 아까운 소리. 뚱뚱보‘정아’의 재미있고 솔직한 생활수필. 이모두를 사랑합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을 때 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있는듯 없는듯 수호천사 처럼 나를 지켜주는 내 그림자를 사랑합니다. 내 그림자 보다 노랑색 리본을 더 사랑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것들은 아주 조그만 부스러기 들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부스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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