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토끼

2007.02.03 10:46

정해정 조회 수:728 추천:33

  토끼 아빠는 장마 때 사람들이 젖은 채소를 억지로 먹여 장염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토끼는 너무나 슬퍼 빨간 눈이 더 빨개지도록 울다가 사람도 싫고, 집도 싫어 토끼장을 나와 산속으로 울면서 들어갔습니다.
  아빠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이리저리 헤메다가 밤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기대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누군가 두 귀를 흔드는 것 같아, 유독 예민한 토끼는 ‘아! 벌써 아침인가?’ 하고 깜짝 놀라 눈을 떴지요.
  사방은 고요한데 머리 위에  둥근 달님이 내려다 보고 있지 않겠어요? 오늘이 보름인가 봐요.
토끼는 둥그런 달속에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왕토끼님을 보았어요.
  “왕토끼님. 왕토끼님. 우리 아빠는 정말 억울하게 죽었어요. 장마 때라도 무나 당근 같은 채소를 주면 되련만, 우리 토끼들은 아기를 낳을 때 말고는 물이 필요 없잖아요. 네? 왕토끼님! 흑.흑.흑...”
  왕토끼는 너무나 슬피 우는 토끼가 불쌍해서 조용히 말합니다.
  “토끼야. 뚝! 그만 울어라. 그만울고 나 좀 봐. 네 소원이 뭔지 내가 다 들어주마. 소원이 있거던 낮에는 무지개 편에, 밤에는 은하수 편에 전하렴. 토끼야 내가 다 들어주마.” 왕토끼는 으젓하게 말을 잇습니다.
  “토끼야. 이 숲에는 네 친척들이 많단다. 그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살아라.”
  토끼의 친척들, 친척들이래야 콩자반 같은 똥을 누는 초식 동물들이랍니다. 염소, 노루. 사슴 등등…
  토끼는 왕토끼에게 절실하게 말합니다.
  “왕토끼님. 저는 토끼라는 것이 싫어요. 빨간 눈도 싫고요. 네 발을 가지고 점잖게 걷지도 못하고 깡총깡총 뛰는 것도 싫고요. 사람 사는 집도 싫고요. 긴 두 귀를 사람들이 잡고 다니는 것도 싫어요.”
  ‘”토끼야 그럼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말없고 점잖은 까만색 염소에게 시집보내 주세요.네?”
  “그래라. 그것이 네 소원이라면.”
  그날로 토끼는 까만염소의 색시가 되었지요.
  얼마 동안은 말없고 묵직한 염소가 좋아 보이더니, 이건 무뚝뚝한 것이 표정도 없고, 아무에게나 막무가내로 뿔 먼저 들이대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오더니 까만염소 대 여섯 마리를 줄줄이 새끼줄에 메달아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토끼는 다시 무지개 편에 왕토끼에게 연락을 했지요.
  “왕토끼님! 눈알이 까맣고 선한 노루하고 사귀고 싶어요. 소원이에요”
  “그래라. 그것이 네 소원이라면……”
  노루를 보내 주었어요.
  다정하고 아기자기한 노루는 자기 자랑을 엄청나게 합니다.
  “ 우리 조상은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 조상인 줄 알지? 나뭇군과 선녀 얘기 말야.”
  “세상에. 그걸 모르냐? 알아 알아”
  “그런데 말야.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후의 얘기도 안단 말야?”
  “그건 몰라.”
  “ 나뭇군이 하도 슬퍼 하길래 우물가로 두레박을 내려 주었대. 그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나뭇군은 하늘나라에서 선녀랑 다시 만나 재미있게 잘 살았지 뭐니.”
  “그게 끝이야?”
  “아니 더 있어. 나뭇군이 땅에 두고 온 늙고 병든 엄마 생각이 나서 날마다 우니까 선녀가 날짜를 정해서 어느 날까지 다녀오라고 두레박을 내려준 거야. 그런데 막상 병든 엄마를 놓고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어 하루하루 미루다가 그만 그 날짜를 어겼지 뭐냐.”
  “저런저런… 그. 그래서?”
  “두레박은 다시 내려오지 않고 하늘 문은 영 닫혀 버린 거야. “
  “바보! 불쌍한 나뭇군! 약속을 지키지…”
  “또 그 다음 얘기도 남았어,”
  “나뭇군이 하늘을 쳐다보고 울다가 지쳐서 그만 죽었어, 그 혼이 수탉이 되어 새벽마다 하늘을 우러러 목청을 뽑는단다.”
  다정하고 자기 자랑 많이 하는 노루랑 얼마를 재미있게 지내는데 어느 날 노루가 심각하게 말합니다.
  “토끼야. 그동안 재미있었어. 그런데 나는 가족이 있는 몸이라 이만 돌아가야 될 것 같아.  그동안 즐거웠단다. 안녕!”
  토끼는 훌훌 떠나버린 유부남 노루가 야속하고 허망해서 하늘을 보고 며칠을  울었지요
며칠을 울다가 은하수 편에 다시 편지를 보냈답니다.
  “왕토끼님! 마지막으로 한번만! 사슴하고 사귀게 해주세요. 네? 마지막으로 한번만요”
  “그래라! 그것이 네 소원이라면……”
  토끼는 다시 사슴과 함께 지내게 되었지요.
  “ 이거 봐! 이 근사한 뿔 좀 봐. 이런 멋진 뿔을 가진 동물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정말 멋져. 내가 그 뿔 때문에 반한 거 아냐? 왕관처럼, 너무 근사해.”
  “봄이면  새싹처럼 돋아나는 이 건사한 뿔을, 사람들은  최고급 보약제로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하지.”
사슴은 자기의 외모를 말할 때면 유난히 거드름을 피웁니다.
  “그런데 말야. 사람들은 정말 잔인해. 막 솟아난 뿔을 몸에 좋다고 산 채로 잘라 피를 빨아 먹지. 동물 중에 제일 고급이라는 사람들이…”
  “정말이야 사람들은 왜 그럴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토끼는 숲속에서 자유롭고 재미있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합창을 하며 지나갑니다. 소풍을 나왔나봐요.
  <깊은 산골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토끼가 흥분해서 말합니다.
   “참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대. 참! 우리 초식동물은 물을 먹지도, 세수를 하지도 않는데 말야.”
   “허어.  달밤에 노루가 숨박꼭질 하다가 물만 먹고 간데.”
  “우리 초식동물은 달밤도, 그냥 밤도, 육식동물한테 먹힐까봐 꿈쩍 않고 잠만 자는데……”
  “또 있어. 사람들은 우리 토끼보고 입으로 아기를 낳는다지 뭐냐. 입으로 토하니까 토끼라고… 허어. 어이없어. 살이 찌면 목부터 통통해 지니까 목에다 임신을 해서 토해 낸대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은 대단하지. 사람들은 미워미워.”
똑같은 마음이 된 사슴과 토끼는 힘을 합해 하늘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칩니다.
“ 왕토끼님 그치요?”
왕토끼는 방아 찧던 손을 잠시 멈추고 아래를 보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이 소리가 너무나 컸던지 근방에서 잠자던 늑대란 놈이 잠을깨고 일어났습니다.
“야 , 이놈들 봐라 … 허어…좋은 아침밥이로구나!”
늑대는 입맛을 다십니다.
놀란 사슴과 토끼는 젖먹던 힘을  다해서 뛰었지요.
어딘지도 모르고 마냥 뛰었어요.
허억!. 그만 나무 사이에 그 자랑스럽던 사슴뿔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토끼는  언덕 밑으로 나가 떨어졌구요.
그런데 이상한 노릇입니다 토끼가 떨어지고 보니  어쩐지 보드라운 구름 위로 떨어졌다는 느낌이에요.
  토끼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잠자는 토끼 등 위였어요.
젊고 잘생긴 청년 토끼가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눈이 예전에 그렇게 싫어했던 똑같은 빨간색인데 지금 보니 ‘루비’ 보석같이 예쁘게 느껴졌습니다.
  솜털보다 더 보드라운 하얀 털… 멋있는 두 귀… 오물거리는 입.
  청년토끼 에게 말합니다.
  “네 눈이 참 예쁘구나.”
왠 일인지 토끼는 마치 길을 잃고 떠돌다가 편안한 엄마 품에 다시 돌아온 듯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토끼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또 다시  깊고 깊은 잠에 떨어졌지요.
  
  또그르르 이슬 한 방울이 굴러 입을 마추니 눈을 떴어요. 어느새 햇님이 막 올라오네요.
  밤새 걱정스럽게 지키고있던 청년토끼는 정신이 든 토끼를 보고 안심했다는 듯이 하품을 늘어지게 합니다.
  “정신이 나니? 후유- 안심이네”
그러다가 청년토끼는 화들짝 놀랩니다.
  “아~참 늦었어. 거북이하고 경주 약속 시간이……아~함~”
  “자기야… 거북이하고 경주하면서 졸지 마!. 느티나무 그늘이 아무리 서늘해도 거기서 낮잠 자면 안돼! 알았지?”
  토끼는 청년토끼의 등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이 모든 광경을 모두 보고 있던 달나라의 왕토끼는 햇님에 밀려 서서히 물러나면서 이제 안심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믓한 웃음을 두 토끼들에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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