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꽃

2007.02.09 06:02

정해정 조회 수:502 추천:40

  지난번에 친구에게서 더덕씨를 조금 얻어다큼직한 화분에 뿌려 놓았다.
정성들여 물을 주었더니 얼마있다가 싹들이 푸릇푸릇 올라 온다. 그런데 놀라운일은 싹하나가 쑤욱 올라온 것이다. 이녀석만 <영양 과잉>인가<돌연변이>인가

  며칠이 지나자 쑥 올라온 그 싹에서 보라색 작은 꽃봉오리가 송알송알 맺혔다.
  다음날 아침이었다.보라색 꽃봉오리 하나가 밤새 컷는지 몽우리를 터뜨리고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머! 도라지꽃 아냐? 도라지꽃--"나는 누가 옆에라도 있는것처럼 흥분해서 말했다.더덕씨가 오면서 도라지씨가 한놈 따라왔나 보다
  각이진 남 보라빛 얇은 꽃닢 다섯개가 살포시 피어나고 있는것을 드려다보고 있자니 ,지금 살아계신다면 백살도 훨씬 넘었을 엄마의 얼굴이 겹쳐온다.

  유년시절 이었다.
내가 자랐던 한반도 남쪽 작은 섬에서의 일이다. 무화과를 따러 바가지를 들고 뒷마당으로 나가는 엄마의 치마자락을 잡고 따라나갔다.
  엄마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애들처럼 화들짝 놀라며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 옆에 나도 따라 쪼그리고 앉았다.
  풀섶에 피어난 도라지꽃을 본것이다.

  "아이고. 도라지 꽃이네.이쁘기도 해라. 우리 막둥이 얼굴같네"
하며 웃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아가. 이거볼래?"
엄마는 발 밑으로 지나가는 아랫도리가 통통한 큼직한 개미 한마리를 잡아 도라지 꽃 속에 넣어 꽃잎을 오므렸다.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 보라색꽃이 서서히 꽃 분홍 색으로변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엄마. 왜 이래?"
  "꽃 마음을 개미란 놈이 알아버린께 부끄러워서 그런단다."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면서 혼자말로 '하찮은 풀꽃도 속맘을 알아버리믄 부끄럼을 아는디......'

  엄마는 혼자 말 이었지 어린 나를보고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였을꺼다.
  그런데 오늘 이꽃을 보고 있으니 반세기도 훨씬 지난 시절에 엄마가 혼자말로 흘린 이말이 왜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하찮은 풀꽃도 부끄럼을 아는디...'
  이 글을 쓰면서 도라지꽃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도라지 꽃은 '초롱과'식물이며 꽃말은 '영원한 사랑'더우기 재미있는것은 개미의 분비물이 꽃잎에 닿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랫도리가 통통한 개미가 없어 도라지 꽃 속에 넣어볼 수 없어 약간 섭섭했다.

  나는 날마다 크고 작은일에 얼마나 부끄러운짓을 많이 하면서 얼굴하나 붉히지않고 살고 있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꽃.  도라지 꽃.
새삼스럽게 도라지 꽃 속을 보면서 내 속 마음을 드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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