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

2007.03.05 13:46

정해정 조회 수:631 추천:24

  내 아버지의 눈은 쌍커풀이 없고 눈꼬리가 아래로 약간 쳐젔다. 얼른보면 선하고 순하게 보이나, 누구도 쉽게 가까이 할수 없는 위엄과 고집이 베어있는 눈매이기도 하다.

  내 가슴에 아버지의 <그 눈>이 영원히 지워지지않게 찍혀버린것은 오십년이 훌쩍 넘었다.

  한반도 남쪽 작은 항구도시 목포에서 쉰살에 일곱째의 막내로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곧은 마음은 바다와 같아라 하는 뜻으로 이름을 ‘해정’(海貞)이라 짓고 쉰둥인 나를 유별나게 귀여워 했다.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신안군 임자도 에서 새우어장으로 일본에 수출해 서 젊은나이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남양환’이라는 자가용 배와 호남에서는 최초로 라디오를 가지고 일기예보를 들으며 그 당시 목포에서 하루 종일 걸리는 거리를 물 때 마추어 서너 시간에 왕래하곤 했다.

  목포에 어업조합을 만들고, 개화기 우리나라 수산업에 앞장을 섰다.
  아버지 그늘이 만리라고, 부근 섬 사람들의 생계는 물론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골라 목포 집에서 학교를 보냈다. 친척들도 서울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고, 학비며 생활비를 넉넉히 대주었다.

  아버지는 남한의 명사십리 라고 불리는 끝도 갓도 없는 모래벌과, 무인도 유인도를 합쳐 대 여섯개의 섬을가지고 있었다.

  신안군 임자면 태이도, 우리는 이 섬을 <타리>라고 부른다. 타리는 아버지의 섬중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섬으로 아버지는 섬 중에서 그 섬을 제일 사랑했다. 흩어져 공부하는 친척들에게도  타리는 여름방학을 보내는 아주 좋은 휴양지이기도 했다.

  <타리 섬> 남쪽으로 설탕보다 더 고운 모래 벌이 있어 여름철엔 해당화가 만발하고, 커다란 기와집인 우리 집 뒤 쪽으로 조가비를 엎어 놓은듯 옹기종기 아홉 채의 초가집 들이 사이좋게 모여있다. 그 뒤 언덕 마루에는 몇 백년이 넘었다는 팽나무가 우람한 모습으로 섬을 감싸듯이 버티고 서 있다.

  건너다 보이는 두 무인도 중 한 섬에는 한약제를 심고 염소 몇 마리를 넣은것이 불고 불어나 몇 천마리가 되었는지 몇 만마리가 되었는지, 타리 뒷산 언덕에서 건너다 보면 구름처럼 몰려 다니는 염소 떼 들로 섬이 온통 움직이는 꽃밭처럼보였다 아버지는 그광경을 보시기를 참 좋아했다.  

  내 나이 아홉살. 6.25 사변이 일어났다.
  우리가족은 주변에 사는 친척들과 남양환을 타고 그 어디보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타리 섬으로 피난을 갔다. 몇달은 그럭저럭 휴양지로 편히들 지냈다.

  우리 아이들 에게는 전쟁이라는 것도 실감 못했을 뿐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송아지만한 사냥개 두 마리, 매리와 세리가 좋은 친구이기도 해서 날마다 즐겁기만 했다.

  우리 아이들은 여늬날 처럼 뒷 산 수수밭에 꿩알을 찾으러 가는데 왠지 앞장서던 그녀석들이 따라오지를 않는다. 우리는 그날따라 꿩알은 못찾고, 산딸기랑 까막중이랑 따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타앙. 탕. 하는 섬짓한 소리가 섬을 울린다. 집 쪽이다. 나도 몰래 정신없이 뛰어서 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마루로 갔다. 뭔가 집 주변이 어수선해 보인다. 어린나이에도 무슨 예감이 있었던지 단숨에 구르듯 집으로 내려왔다.

  국군이 인천을 상륙했다는 소식에 지방 폭도들은 큰 섬을 쑥밭으로 만들었고 그 불똥이 조그만 이 섬에까지 튄 것이다.
  팔뚝에 붉은 완장을 두른 청년 두명이 장총을 들고 서 있다.
  모퉁이를 막 돌아 서는데 아! 메리와 세리가… 아까 그 총성이 바로…
  널부러져 있는 녀석들은 송아지보다 훨씬크다. 피 투성이가 된 메리는 긴 주둥이를 벌리고 이빨을 다 드러 낸채 였고, 세리는 순한 눈을 뜬채 검붉은 피 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고 근육이 약간씩 꿈틀거린다.

  나는 꿈 에서 처럼 발이 움직여 지지가 않는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
  겨우겨우 모퉁이를 돌아섰다.
  아! 아! 아버지가…우리 아버지가…
  역시 붉은 완장들이 아버지 한테 긴 총을 드리대고 있고,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금고열쇠를 돌리고 있었다. 한 번 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의 저 초라한 뒷 모습.
  나는 숨이 멎는것 같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꿈에서 처럼. 도대체 엄마는 어디갔을까…
  아버지는 금고를 다 열었는지 힘없이 돌아 앉는다. 내 눈과 마주쳤다.

  그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듯 짜릿했다.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미소가 무슨 뜻이었을까?
  아버지는 힘없이 두 팔을 벌려 내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엉겹결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품에 안겼다. 따뜻했다. 이것이 나한테 아버지의 마지막 체온이었다.

  잠시 후 붉은 완장들에 호위되어 아버지는 나룻배를 탔다. 죽은 메리와 세리도 함께…
  서서히 멀어져 가는 뭍으로 가는 나룻배 의 아버지와 나는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 눈… 그 눈…
  그 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내 가슴에 찍혀 버렸나 보다.

  아버지만 의지하고 살던 순한 섬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나룻배를 멀거니 쳐다 보며 감히 항의 한 번도 못해보고,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때 진한 연시 빛깔 노을이 섬과 바다를 , 온 세상을 피 처럼 덮었다. 어디서 왔는지 거짓말 처럼 까마귀 떼들이 마당에 하나가득 내려 앉았다.

  여기저기서 섬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어제밤 내내 섬이 울었다고. 정말 섬이 울었을까?

  모두 정신이 들기 시작했는지 아낙 몇명이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우덜은 인자 어찌살꼬… 어찌살꼬…”
  나는 정신이 나가 멍청하게 서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어디갔다가 왔는지 엄마가 목석처럼 서 있다.  엄마의 얼굴도, 하얀 모시적삼도 온통 노을에 물들어 홍시 색깔이다. 나는 엄마에게 쓰러질듯 기댔다. 엄마는 혼까지 흘려 버린듯 헛개비 처럼 느꺼졌다.

  그 뒤 바로 아버지는 학살 당하고 시체는 바다로 던져 버렸다.
  훗날 어른들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섬에 들여보낸 붉은 완장들은 외부에서 원정온 생소한 사람들 이었고, 아버지의 죄명은 <악질지주>에서 특별히 <악질>자를 빼준 그냥 <지주>라는 죄명이었다 한다. 더 기가 막힌것은 아버지가 학살 당할 때 아홉살 된 막내를 그냥두고 눈을 감을 수 없으니, 내 재산 다 줄테니 고놈이 열 다섯살 될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위엄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사정사정 했다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면도칼로 상처를 후벼파는 아픔에 치를 떨었다.

  아버지의 눈.
  그 눈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손 등에 눈물이 마르지 않게도 했지만 언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바른길을 가르쳐 준 눈이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만히 불러본다.
  “아부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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