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에 어린 추억

2007.03.24 14:35

정해정 조회 수:422 추천:31

  딸’아이가 퇴근길에 ‘국화차’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찻잔에 말린것 두개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일 이분 있다가 마시면 그윽한 향기도 좋을 뿐 아니라 장수 한다고 일러 주었다.
  “장수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린데…”
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찻잔을 꺼냈다. 새끼 손가락 한 마디 만큼한 마른 꽃닢 두 개를 넣고 물을 끓여 부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다. 노랑색 선명한 꽃씨에 하얀 꽃이파리 들국화 두 송이가 끓는 물에 활짝 피어나 찻잔에 떠 있는게 아닌가. 신기했다. 꽃이 우러난 노르스름한 차 빛깔은 신비롭기 까지했다.

  꽃 중에서 국화만큼 우리와 친숙한 꽃이 어디있을까.
  우리 선조들은 꽃을 대할때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태보다 꽃이 상징하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더 취했다.

  눈 속에 핀 매화. 진흙 속에서 핀 연꽃. 그리고 늦 서리속에서 고고히 핀 국화. 이런 꽃들이 지닌 숨은 정신인 지조와 절개를 높이 삼았던건 아닐런지.

  옛날 선비들이 ‘의’를 맺을때 자기가 키운 국화를 하나씩 가져와 접을 붙여 한 나무에서 두 가지 꽃을 피우게 했다는 얘기는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얘기다.

  봄에는 싹을 데쳐 나물을 해 먹고, 여름에는 잎으로 쌈을 싸먹고, 가을에는 꽃잎으로 술을 빚어 마셨다. 겨울에는 뿌리를 달여 먹어 무병장수를 누리는 신비한 영약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국담수 라고 해서 꽃에 내린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다.

  시인 서정주님의 시 “국화옆에서”중에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
  <누님>이라는 인생의 측면과 국화의 인고를 잘 나타낸 상징적인 시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우리민족의 명절 중에 음력 9월9일 중양절에는 특별한 음식을 장만해서 산으로 계곡으로 단풍 놀이를 가는 풍습이 있었다. 특별한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것이 국화 꽃잎으로 부친 화전과 국화꽃으로 빚은 국화주 였다.

  특히 국화주는 궁중에서도 축하주로 애용했다 한다. 국화술은 향기도 좋지만 두통을 낫게하고 특히 귀와 눈을 밝게 해주는 좋은 술이라 한다.

  나는 LA에 살면서 다운타운에 있는 꽃시장을 자주 들린다. 시장을 들어서면  오만가지 꽃들이 저마다 향기를 뿜으며 활짝 웃는다. 그 중에  국화는 장례식용으로 비교적 헐값에 한쪽에 치우쳐 대접을 못받고 있다.

  서양사람들은 국화를 주로 돌아가신분의 평화로운 휴식을 기원하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 뜻을 알고난 이상 평상시에 국화 화분을 집에 사 들이기도 좀 그렇고, 누구집을 방문할때 선뜻 사가지고 가는것도 어쩐지 찜찜해서 국화와는 점점 인연이 멀어지는것만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어느새 고향의 들국화 만발한 언덕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적 엄마는 해마다 메밀 껍질이 아닌 새 국화꽃을 정성 들여 말려서 베개 속에 넣어 주셨다. 딸 중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전수한 작은 언니는 늙어가면서도 마른 국화꽃을 넣은 베개를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왈칵 밀려온다.
  작은언니랑 마주앉아 하얀 들국화가 둥둥 뜬 향기로운 국화차를 나누고, 국화꽃 베개를 배고 편안한 잠을 자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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