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그 작은 공간

2007.03.26 11:25

정해정 조회 수:312 추천:25

  “우리 저녁먹은거 소화도 시킬겸 노래방이나 들러갈까?”
  “나는 안갈란다.노래방 에서 노래하면 점수를 매긴다며?”
  “엄마는 촌스럽기는. 흥을 돋으려고 컴푸터가 엉터리로 매겨”
음치인 내말에 딸아이가 받는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엄마정도면 좋은 점수가 나올껄.”
이번에는 막내녀석이 나를 놀린다.

  그날 우리식구는 외식을 했다. 너무 과식했나 싶었는데 아이들에게 등을 밀리듯 노래방 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꽉 막힌 작은 공간. 이 작은 공간이 쌓였던 스트래스를 풀어주는 역할도 하고, 과식한 사람에게 소화제 역할도 해주는 곳이란 말인가.
  빽빽하게 노래 곡명이 적힌 책에서 부를 곡명을 정하면 화면에는 그노래 가사가 나오고 반주와 영상이 나온다. 성능좋은 마이크에 대고 멋드러지게 노래만 부르면 된다. 관객은 없다. 함께간 일행이 있기는 하지만 다음 차례에 자기가부를 곡을 찾느라 정신이 없으니 관객이랄수도 없다. 자기혼자 폼을 잡고 소릴 지른다. 즉 자기 도취속에서 황홀감을 맛보는 작은 공간이다.

  그런 작은 공간은 또 있다. 달리는 관광 버스속에서 춤추고, 뛰고, 노래부르는 광란은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광경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러다 버스가 뒤집히는것이 아닐까 조마조마 하기도 했었다.

  오래전 서울에 나갔을때 일이다. S라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다. 그는 보기드문 저택에서, 훌륭한 시어른들과 좋은 남편과 자식들로 험잡을대없이 다복하게 사는 친구다. 성격이 순하고 말수가 적고, 거기다가 넘치는 부를 이웃과 나눌줄도 알았으니 금상첨화라고 할까.
  오랬동안 벼르다가 이루어진 여고동창끼리 일일 관광에서였다.

  S는 놀랍게도 평소 그녀 답지않게 달리는 버스속 가운데 좁은 통로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나는 우리 버스속을 밖에서 볼까봐 신경이 쓰였다. S와 그외 몇명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악쓰고, 마시고, 뛰고. 마이크를 뺐고, 빼았기고… 지칠줄도 몰랐다. 어쨌던 그날은 많이 웃었고 즐거운 하루였다.

  그날밤 잠자리에 누우니 낮에 보았던 S가 생각이났다. 평소 그녀의 품위로 봐서 자기의 엉뚱한 모습을 보인것을 틀림없이 후회하고 있겠지. 그리고 젊잖은 시어른들께는 어떠했을까. 술이 채 깨지않은 헝크러진 모습이 남편과 아이들. 더구나 일하는 아랫 사람들 에게는 어떻게 비추어 졌을까. 몸은 괞찮을까…

  다음날 일찍 ,S에게 전화를 했다.
  “어떠니?”
  “버스 의자에 부딧쳐 온몸이 멍 투성이야. 근데 오랬만에 한번 자알 놀고 시원하게 풀었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어떤분의 칼럼에서 “한국인은 한국무속이 추구하는 황홀경 곧 엑시터시의 경지에 이르는수단으로 춤과 노래가 있다. 그 황홀경에 젖으면 누적된 한과 원이 마비되고 중화된다.”

  노래방이란 곳이 한국에서 유행이란 소문이 들리는가 했더니 이곳 LA에도 금방 산불처럼 번져 30군대가 넘게 생겼다고 한다. 노래방을 찾는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다.

  이민 생활에 겹겹히 누적된 한과 울분을 노래방에서 발악하며 몸부림쳐 풀수만 있다면 그 순간만이라도 모든것이 마비된듯 할것이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느날 불쑥 서울에서 S가 온다면 제일먼저 노래방 부터 가자고 해볼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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