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문화

2007.03.29 02:49

정해정 조회 수:402 추천:21

이민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마켓을 갔다가내 실수로 그만 자동차 안에 열쇠를 넣고 문을 덜컥 닫아버렸다. 그 순간 그렇게도 가슴이 철렁 가슴이 내려앉고 앞이 캄캄 할 수가 없었다. 반대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내가 어딘가에 갇혀버린듯한, 모든것이 순간적으로 마비된듯한 공포였다.

  이런 진땀 흘리는 경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똑 같은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한다.
이민와서 첨으로  한국에 갔을때다. 한국도 놀랄만큼 발전해 아파트가 수도없이 많이 생기고, 자가용이 늘어나 열쇠가 생활에서 뗄수없는 한 몫을 하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놀이터에서 노는아이들도 목에 열쇠를 걸고 놀고 있었으며 주부들이 바로 옆집만가도 반드시 또깍또깍 위아래로 열쇠를 잠근다. 서로가 믿지못한 세상이 되어버린듯해서 어째 씁쓸했다.

시골길을 가다가 피곤하고 목이 마르면 아무집이나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 샘물을 떠 마시고 툇마루에 앉아 쉬었다가 가더라도 주인이나 객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민족이 바로 우리민족 아니였던가. 어떤분은 우리민족에게 열쇠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단일문화라 이질성이 없기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서양은 같은 문화권에 살지만 개인주의 발달과 사생활의 중요함 때문에 개인 둘레에 벽을 쌓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열쇠문화가 발달했다한다. 맞는 말인것 같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에게도 자물쇠와 열쇠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잠그고 여는것 보다 상징적이랄까.
  대문은 빗장으로 슬며시 걸어놓고, 곡식을 넣어두는 뒤주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장롱의 자물쇠는 밀기만 하면 쉽게 해결할수 있게 만들어 졌다.
산모가 진통을 할때 순산하라고 대문과 장롱문을 열어 놓았으며 지붕의 기와를 떼어 놓는것도 열쇠 기능이요, 아기가 삼신할매의 망태 속에서 쑤욱 빠지라고 손을 비비는것도 마찬가지다.
산모가 순산을 해 대문에 금줄을 치는것도 자물쇠 역할이요, 동네 입구에 서있는 장승도 병마와 악귀를 쫒는 자물쇠 구실이다.

동서양이 같은것은, 열쇠는 신비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해결책을 상징하는 것이다. 로마신화나 그리스 신화에서나오는 열쇠는 행운을 지키거나 새로운 삶을 찾는 의미였다. 오래전 어느책에서  바빌로니아 유적지 출토의 어느도장에 태앙신이 열쇠를 들고 있는 조각이 새겨진 사진을 본적이 있다. 그렇다면 열쇠가 상징하는 힘이 서양문화의 기본이 아닐런지.

옛날 우리선조들은 열쇠를 권리이양으로도 사용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살림을 물려줄 때 열쇠뭉치를 내주어 힘과 책임을 이양했다.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로라가 가출하면서 열쇠를 몽땅 내놓고 떠난 장면도 인상적이다.

지금도 국가에서는 다른나라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행운의열쇠를 선물하고 친선을 도모한다. 혼인예물로 황금열쇠를 선물하기도한다.

나는 지금 하루에 50번 이상 열쇠를 돌리지 않으면 생활할수 없다는 이 시대, 이 문화권 안에서 살고있다.
어느누구도 못 믿고 내것을 뺐기지 않으려는,도둑을 막는열쇠만 날이 갈수록 더,더 새게 움켜쥐고 있다.

도대체  행복을 여는 열쇠는 어딜 갔으며 또 진리를 찾는 열쇠는 어디가서 찾을까.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마실을 가고, 자동차 열쇠를 잠그지 않고 마켓을 보는세상도 있다던데 과연 어디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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