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로미오

2007.04.01 11:39

정해정 조회 수:329 추천:24

  지난초가을 어느 일요일이었다.
  우리집에는 ‘로미오’라는 강아지, 하얀색 말티스 한마리가 들어왔다.
  로미오의주인은 혼자사는 노처녀인데 로미오와 어릴적부터 단둘이 살다가 노처녀가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 남자가 개라면 질색을 해서 로미오를 몹시 학대 했다고한다. 노처녀가 견디다 못해 개를 잘 키울사람을 찾다가 몇 다리 건너서 우리집 으로 온것이다.

  막상 대하고 보니 눈빛은 불안하고 긴 털은 꾀죄죄하고 모두 엉켜 있었다. 우리는 목욕을 시키고, 털을 다듬고 정성을 다 했다. 며칠지나고 보니 여간 귀티나고 잘 생겼다.
  노처녀는 자식걱정하듯 안부전화를 하고, 간식같은것을 사들고 종종 방문하곤했다.

  그러자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개를 없에던지, 집을 비우던지 하라는 우리집주인의 통보였다. 우리식구들은 여러번 의논을 했으나 딸아이가 우기는 바람에 집을 비우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예 강아지가 있다는 말을 먼저하고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6.8도 지진이 나던날 새벽이었다. 로미오는 땅 속의 그 무서운 예진을 사람보다 먼저들었을까. 새벽잠에 곤히 빠진 우리 식구들 방마다 숨가쁘게, 급히 알리러 다녔다. 천장이 갈라지고, 커다란 그림이 떨어지고, 책장이 쏟아지고, 유리가 박살남을 미리 알려준 셈이다. 딸아이는 여진에도 로미오 부터 안고 엎드렸다.  

  왠일인지 노처녀의 방문이 갑자기 잦아졌다. 밤중인지 새벽인도 모르고 전화를 하는 행동도 약간 이상했다. 남자와 헤어졌다며 로미오를 안고가서 자고오고는 했다.
  그런데 로미오를 소개한 친구의다급한 얘기가 그녀가 남자친구한테서 버림받고 마약을 시작 했으며, 전에 앓은적이 있는 정신병이 도졌다며 우리에게도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가 로미오를 안고간지 삼일째 되던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눈을 딱 감고 로미오를 다시 받지 않겠다고 해버렸다. 딸아이의 설득은 뒤로 미루고…
  그후 들리는 소문은 올림픽 가에서 로미오가 젊은 여자랑 서성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누구는 8가 할매집앞에서 젊은 여자가 그 하얗던 털이 잿빛이된 로미오를 안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말을걸고 있더라고도 했다. 또 누구는 그여자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고 로미오는 정부에서 끌어 갔을꺼라고도 했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 마다 딸아이는 봤다는 장소로 잽싸게 가 봤으나 번번히 헛탕이었다.

“이제와서 어쩌겠다는 거냐?” 나는 맘에없는 소리로 나무랐다.
“돈주고 사오려고……” 나는 눈물이 맺힌 딸아이의 눈동자에서 로미오의 초롱한 눈을 보았고, 비정한 내마음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딸아이가 어린애 팔뚝만한 강아지를 한팔로 안고 왔다. 함께 일하던 친구가 뉴욕으로 가면서 버린거라 했다. 만지기도 싫게 더럽고 병약한것이 금방 쓰러질것 같다. 이름은 ‘패블’이라 했다. 우리는 로미오에게 죄스런 맘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영양제를 먹이며 열심히 정성을 쏟았다. 몇주가 지나니 살이 통통 오르고, 얼굴을 덮은 머리사이로 빼꼼히 내다보는 모습이 금방 무슨말을 할것같다. 이번에는 막내녀석이 일을 저질렀다. 이놈은 국적이 다른 사람들 한테 옮겨다녀서 이름도 없다한다. 더구나 큰개한테 물려서 뒷다리를 절었다. 로미오 에게 지은 죄값으로 열심히 우리식구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놈봐라. 가수 조영남이 안경벗은 얼굴이잖아? 엄마가 좋아하는…” 막내녀석의 말에 이름을 ‘쪼영’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많은 자동차 알람중에서 딸아이것은 용케도 알고 패블과 쪼영은 쏜살같이 뛰어간다. 아이들을 키울때 수십명의 아이들 울음소리 에서 용케 우리아이 소리를  금방 알아내듯이...

나는 두 녀석을 목욕 시켜 털을 말리고 맥이 빠져 마당에 나와 한 숨 돌리고 있었다. 마치 빨리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남은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두 녀석을 보며 로미오 생각이 났다. 어디서 우리를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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