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할아비>와 <샌타클로스>

2007.04.01 11:40

정해정 조회 수:395 추천:53

  한해를 마감하면서 또 오는해를 맞으면서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는 일을 누구에게나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연례행사로 개인이나 각 사회단체나 교회에서 앞다투어 ‘이웃돕기’를 한다. 선물을 가득들고 불우한 이웃을 방문하는 사진과 기사들이 신문마다 가득하다.
  신문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사람이 하나있다. 아주오래전에 읽은 책으로 책 제목은 잊었지만 ‘이규태’님의 글이라 기억된다.

  정조때이야기다.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돈을벌어 이웃을 도와 주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어느 이름없는 할아비 이야기다. 동대문 밖에선가 살았다는 이 할아비는 본인이 나름대로 계획을 새워 초하루에는 동대문 앞에서, 초이틀에는 배오개에서, 초나흘에는 진고개에서, 초닷새에는 종각앞에서… 이런식으로 날짜를 잡아놓고 서울장안을 한달 내내 돌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책을 어찌나 재미있게 읽는지 할아비가 나타나면 남녀노소 할것없이 너도나도 모여들어 겹겹이 둘러쌌다.

  나는 지금 웃는 마음으로 할아비의 책 읽어주는 모습과 장소를 상상해 본다.
  할아비가 정해놓은 장소 근방에 요즘처럼 공원이 있는것도 아니요, 광장이 있을리 만무한 시절이었으니, 여름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나 바람이 솔솔 지나가는 나무 그늘 이었을 것이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잘 드는 어느집 담벼락이 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할아비는 책을 읽다가 간절한 대목에 이르면 뚝! 숨을 멈춘다. 그러면 청중들도 따라 숨을 멈춘다. 그러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청중들은 어서 계속하라는 뜻으로 앞 다투어 돈을 던진다. 할아비는 바로 그 효과를 노리는것이다.
  할아비는 자루에 가득 채워진 돈을 어께에 메고 돌아오는길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모두 풀어버린다.

  추운겨울 물건을 못팔아 길거리에서 잠을자야하는 잡상인을 주막에 데리고가 재워주기도 하고, 배가고파 떡을 훔쳐먹고 달아나는 아이의 떡값을 치러주기도 하며, 어미의 배가곯아 젖이 나오지않아 보채는아기를 달래는 아낙에게 한웅큼의 돈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돈이 남으면 길에서 노숙하는 행려병자에게 약값으로 고루고루 나누어준다.

  할아비의 주머니에는 주막에 들어가 얼큰이 취할수 있는 돈 몇푼만 남아 있으면 족하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냐고 할아비를 붙들고 고마워 하면 할아비는 말한다.
  “심청이 에게 갚아라.”  “장화홍련에게 갚아라”  “흥부에게 갚아라.”
  하면서 돈을벌게해준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공을 돌리곤 했다.

  이 시대에 이야기 할아비가 살아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실속없는 바보할배라고도 할것이고, 일류성우요, 일류배우라고도 할것이다. 또 어떤이들은 훌륭한 자선사업가 라고도 할것이다.
  그러나 이 보다는 정을 가슴에 듬뿍 품은 <산타클로스>라고 하는편이 어울릴것 같다.

  아침신문을 보다가 2백년전 한 이름없는 할아비와 고 이규태님이 생각난것은 모든것이 풍족한 지금시대에 ‘이웃돕기’라는것이 어쩐지 본래의 뜻과 어긋난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민족 만큼 정이많은 민족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너도나도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일년내내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정을 주고받아 늘 따뜻한 입김이라면 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훈훈할까

  한해를 보내면서 엤날 옛적 <이야기할아비>와 <산타클로스>를 생각해 본다. 새해에는 조금은 살맛나는 해가 될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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