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무궁화

2007.04.04 13:51

정해정 조회 수:584 추천:43

내가사는 집 아래 ‘어린이 학교’가 있다.
지난주 였다. 그 앞을 지나가는데 원장이 뜰 안에 나무 한구루를 심는다.
“이게 ‘무궁화’ 나문데요. 학교에 한국아이들이 많아서요” 하며 웃는다.
며칠이 지나자 나무에 곷봉오리가 하나둘 맺히는가 했더니 어느새 탐스런 곷이 온통 나무를 뒤덮었다. 꽃잎은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돌고 노랑 꽃술을 받히고 있는 꽃속은 진홍빛이다.

수 많은 무궁화 품종이 있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꽃' 무궁화다. 아침나절부터 꽃들은 모두 활짝피어 마치 주먹만한 나비들이 나무에 붙어 팔랑거리듯 하다가 해질녁이면 날개를 접고 모두 우수수 떨어지는 형상은 한 세상 깨끗이 살다가 미련없이가는것 처럼보인다.

문득 어렸을적 일이 생각난다.
하루는 아버지가 꽃나무 두 그루를 모과나무 옆에 심으시고 “이 나무를 건드리면 하루걸이(학질)걸린다 조심해라.” 하시며 열심히 보살피셨다.
언니랑나랑은 이나무를보고 ‘하루걸이 나무’라며 피해다녔다. 얼마지나니 나무에는 접시꽃 비슷한 꽃이 수없이 많이 피었다가 저녁에는 모두 떨어져 버리는 볼품없는 꽃이었다. 거기다가 진딧물이 어찌나 꼬이는지 피부병을 앓고있는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미운 꽃이 우리나라 ‘나라꽃’ 아라는것은 안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였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동요를 부르면서도 어쩐지 정이 들지않았다. 어느날 언니랑 놀면서 언니가 “세상에서 젤 미운꽃?”  나는 대뜸 “무궁화!”하고 우린 깔깔 웃었다.

우리가 노는모습을 본 아버지가 앉으라 하신다.
“요놈들. 그럼 못써! 무궁화는 우리나라 나라꽃이야. 꽃은 하루밖에 피지않지만, 내일아침에 해가뜨면 더 좋은 새 꽃이 피지않디? 너히들이 아침에 새 마음으로 일어나 하루를 잘 보내고 저녁이면 잠들듯이… 나라의 앞날에 새로운 해가 계속 뜨기를 바라는 뜻에서 나라꽃으로 정했단다. 꽃을 찬찬히 드려다봐라 속이 얼마나 깨끗하냐?” 아버지는 이어.
“너히들이 설사나봐라 약도 되지. 무궁화는 순하고 독이없어 달여마시면 주사보다 낫고말고.”
아버지는 평범한 국민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무궁화를 사랑 하셨다. 무궁화 나무를 보호하기위해 건드리면 학질이 걸린다는것도, 꽃의 속을 보는 지혜로움도 가르쳐 주신것이다.
또 아버지가 들려주신 무궁화에 대한 전설이 생각난다.

옛날옛적 어느고을에 너무나 예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영리하고 재주가 뛰어나 멀리까지 소문이 자자했으나 장님 남편을둔 부인이었다. 그 고을 사또가 부인을 꾀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으나 넘어가지 않자 부하들을 시켜 강제로 잡아오게 했다. 그래도 끝내 말을 듣지 않자 사또는 그만 부인을 죽여버렸다. 부인의 유언이 시신을 자기집 뜰에 묻어달라 하여 그대로 했더니 싹이 트고 꽃이피어 그 집을 빙 둘러 쌓았다. 마치 장님 남편을 보호하는 울타리 처럼. 사람들은 이 꽃을 ‘무궁화’라 하고 꽃 속이 붉은것은 부인의 일편단심을 내비친 것이라 했다.

  살아계신다면 백살도 훨씬 넘었을 우리아버지. 어느 하늘위에서 무궁화 속에 묻혀 사실까. 나는 아이들이 다 자랐지만 지금까지 무궁화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들려준적이 없고, 우리나라꽃 무궁화를 심어 본적도 없다.
  엉뚱한 남의 땅에서도 이렇게 잘피고, 잘 지고있는 무궁화가 바로 우리아이들. 그리고 우리 이민자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우연히 TV를 켰다. 본국 뉴스시간이었다. 세계 꽃 박람회를 한국에서 열면서 화려하고 비싼 수입꽃들을 진열하는 과정에서 1만여 그루의 무궁화를 죽여 없에버렸다한다.
나는 재킷을 걸쳤다. 유치원 마당에 있는 무궁화가 갑자기 보고싶어졌기 때문이다. 쓰디쓴 입맛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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