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와 푼수

2007.04.09 12:10

정해정 조회 수:583 추천:29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생활의 기본이었다.
    옛날 선비사회에서는 자기 기품이나 처지를 객관적으로 따져 그 신분에 알맞는 집차림, 옷차림, 음식차림을 함으로써 본인은 물론 자손들에게 내리는 정신적 유산으로 여겼다. 상민사회에서도 나름대로 분수를 지키며 사는 일이 살아가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분수를 지키지 못 한 것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허영심에서 주제파악을 못함으로 생기는 것이라 봐도 되겠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놀부처럼 되어서도 안 되고, 흥부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놀부는 고약한 심보와 욕심을 경계함이고, 흥부는 제비 덕에 박을 타서 정신 못 차리게 치부를 하자 조강지처를 버리고, 기생첩을 줄줄이 데려다 별당 후원에서 밤낮으로 흥청망청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자무식인 주제에 방안 가득히 ‘제자백가’와 ‘사서삼경’을 들여놓고 있었으니 주제파악을 못한 견본이 아닐까.

    한국은 70년대에 경제성장이 갑자기 부풀자 벼락 부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그들 중에는 저택을 지으면서 책방에다가 우리 서재가 몇 평인데 거기에 마추어 책을 보내달라 주문하면 장식용 전집이 트럭으로 들어왔다는 거짓말 같은 시절도 사실 있었다. 분에 넘치는 호화혼수 여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상류사회에서나 볼 수있는 초 호화판 결혼식이 한국에서는 너무 쉽게 치러지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봤다.

또 며칠 전 서울에서 다니러 온 친구와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묻는 다른 친구의 안부에 이 친구의 대답은 그 애는 고급공무원 남편 덕에 동산, 부동산 벌려놓더니 제작년 몇십 억을 주고 산 새 아파트를 몇 억을 들여서 기둥부터 부셔버리고 대리석으로 궁전처럼 꾸며 살지도 않고 전세놓고 여행 떠나듯 캐나다로 이민갔다고 한다. 또 친구 얘기가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서울에서는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 내장을 뜯어버리고 새 것으로 새로 고쳐 들어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고 했다. 자기 돈 가지고 자기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아프리카는 우리와 멀다고 치자. 나라가 두 동강이난 우리 핏줄도 멀다고 치자. 고개를 돌리면 바로 이웃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무리 자기 것이라도 이런 낭비는 사람이 정당하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2차대전 후에 독일 사람은 사람이 셋이 모여야 담배에 불을 켰고, 편지 봉투를 뒤집어서 한번 더 사용했다는 말을 옛날 옛적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자랄 때 늘 말씀했다.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복이 내린단다”
    모양내기 좋아하는 내가 허영에 들떠 분수에 넘칠까봐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나도 아이들을 기르면서 우리 엄마가가 내게 한 것처럼
    분수를 지켜야 복이 내린다. 그리고 분수를 모르면 푼수가 된단다.”

    그러는 나는 수입도 없는 주제에 내 옷장에 뺍빽히 걸려있는 옷을 보면 분수에 넘친 낭비를 한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진다. 얼른 나에게 변명한다.
    "사계절이 확실치 않아 옷이 다 나와 있어 많게 보이는 거야. 전부 싸구려 옷인 걸. 이민올 때 가져온 것부터 처분하지 않아서 그래. 옷장이 작아서 꽉 차보여…”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쉴새없는 변명이 푼수처럼 나온다.

    가을이다.
    지나간 계절을 차분하게 정리할 계절이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 조그만 것부터 분수를 지키기로 맘먹는다. 먼저 옷장부터 정리하기로 한다. 가을이 가기 전에 <구세군>이나 <성 빈첸시오>에 과감하게 나누어야겠다. 그리고 차근차근 내게 분에 넘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야지.

    이렇게 결정하고 보니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처럼 내 마음도 서서히 개운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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