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사는 세상

2007.04.18 11:18

정해정 조회 수:562 추천:40

토렌스에 사는 친구에게서 오랫만에 전화가 왔다.

안부겸, 너무 분한일이 있어 다이얼을 돌렸노라했다. 무슨 분한일이냐고 물었더니, 요즘 한참 신문과, 라디오, TV에서 I.M.F 시대이니 고국의 중소기업을 살리자 하는 광고가 요란하길래 꼭 필요한것이 있어서라기 보다도 뭔가 동참할 수 있을까 하고 시간을 내어 지정한 장소에 갔다고 했다.
광고와는 너무나 다르게 매장에는 물건들의 종류도, 수량도 너무 적었다. 친구는 어리석게도 “ 아. 나같은 사람들이 벌써 많이와서 다 팔렸나부다.” 하고 뿌듯한 맘까지들었다.
일 하는 사람에게 지나는 말로 물었다했다.
“광고 나온지 며칠 안됬는데 왜 물건이 이렇게 없어요?”
“어것들은 다 셈플이고 진짜물건은 지금 배로 오고있는중 이예요.”
전혀 손님한테 미안한 태도가 아니더란다. 물건도 오기전에 광고부터 한것이라 약간 김이 빠졌으나, 동참하러 온거니까 다른거라도 살것이 없나 하고 장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여름 돗자리가 몇개 새워져 있길래 보니 가격이 싸질 않았다. 또 어짜피 동참하러 온거니까하고 두개를 자동차에 실었다.

집에와서 더 분한일이 생겼다. 돗자리는 한국제품이 아니라 중국제품이었다. 친구는 전화기에 대고 길길이 뛴다. 야무진 친구의 얼굴이 보이는듯했다. 친구는 계속 퍼붓는다. 동네 한국엄마들도 비슷한 불만을 터놓는다고했다. 50%~60% 세일한다고 해서 가보면 딴소리고, 한국 중소기업을 살리자고 해서 가보면 그집 물건은 90%가 일본제라고 했다. 과대광고를 내보내는 언론도 문제라고 침을 튀겼다. 친구는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우리모두 합심해도 어려운 이 판국에 애국을 앞새워 동포들을 우롱하고, 한 몫잡자는 수작이라고 했다. 내가 말할 틈도 주지않고, 나하고  싸우는것처럼 떠들기에, 언제한번 만나 저녁이나 먹자고 달래 수화기를 놓았지만 이얘기를 들은나는 잊고있었던 어떤 배신감이 다시 살아났다.

작년일이다.
딸아이로 부터 재킷 하나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딸아이는 퇴근길에 한인타운 에서 급히 샀으니까 맘에 들지않으면 언제든지 교환해도 된다고 다짐을 받았노라 했다.
한국유명상표로 수월찮은 액수였다. 옷이 약간 끼는듯하여 한 칫수 올려 바꾸려고 다음날 그 가게를 찾아갔다. 내가 원하는 옷이 지금 배로 오고있으니 옷은 놓고가고, 일주일후에 들르라고 했다. 일주일후에 다시갔다. 또 다음 일주일로 다시 늦춰졌다. 그냥 그 옷으로 가져올까 했는데 이미 그 옷은 팔려버렸다 한다.
세번째 그 가게를 찾아간날. 가게는 텅비어 모두 철수를 해버렸다. 놀라서 옆집에 물어보니 일주일전에 문을 아주 닫았다고 한다. 옆집사람 말은 나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 때 내 심정은 배신감에 가슴이 떨렸다.

그 후 딸아이 한테는 미안하고, 어쩐지 부끄러워 오랬동안 그일을 말할 수 없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상점을 아예 외면한다고 했다.  

몇몇 사람들 때문에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은 덤으로 손해를 보고있는것같에 안타깝다.
고국의 경제사정이 엉망이고, 너도나도 힘을 합해야 난국을 넘긴다는것은 기정 사실이다. 작은것 부터 서로믿고, 힘을 합하여 차근차근 살아갈 수는 없을까.

고향을 떠나 이민길에 오른것은 팔자 센 사람들이라한다. 고향을 등진 팔자 센 사람들 끼리 언제까지 믿지못하고 살아야 하는지. 사람도 광고도, 믿고 사는 세상은 영 오지 않고 마는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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