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에담긴 고향맛

2007.04.18 11:19

정해정 조회 수:646 추천:44

한국 마켓에 들렀다.
습관대로 먼저 채소부로 발길을 돌렸다. ‘어머머.’ 한 쪽구석에 내눈을 번쩍 띄게 한것이 있었다. <쑥>이었다.
한 바구니 정도 분량으로 짙은 녹색에 젖빛 솜털이 덮인 어린 쑥이 소복히 싸여있다. 반가웠다.
“어머. 너도 이민왔니?” 하는 마음으로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가만히 몇닢 집어 코끝에 대봤다. 그래. 바로 이 냄새야. 고향냄새…

쑥은 한국인에게는 어떤 산채보다 냄새가 친숙해서인지 향수를 물씬 자아낸다. 나는 고향냄새가 새어날까봐 주섬주섬 봉지에 담았다.
집에돌아와 식탁위에 쑥을 펴 놓았다. 꼭 어떤 목적이 있어서 사온것은 아니다. 그져 고향냄새가 아깝고, 고향냄새에 취해보고 싶어서이다.

단군신화에 오직 사람이 되고싶은것이 소원이었던 곰이 쑥을먹고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는 언제들어도 웃음이 난다.
웅녀할매의 혼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번져서 인지 한국땅에는 추운겨울이 다 지나기도 전에 봄바람이 불어올라치면 논두렁, 밭두렁 양지바른곳이면 어디 할것없이 쑥이 무수히 돋아난다. 하얀 솜털을 뒤집어 쓰고 막 돋아난 어린쑥을 뜯어 살짝 데쳐 국이나 나물, 밥과 떡 등을 해먹는다.

별로 오래지않은 옛날 얘기다. 우리민족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던시절에, 배를 곯아 얼굴이 부어오른 부황난 사람에게 쑥으로 밥이나 죽을 끓여 먹이면 부기가 빠진다 해서 쑥을 약초로도 사용했다.
정월 대보름전에 쑥국을 세번만 먹으면 제아무리 마른 사람도 문턱을 못넘을 정도로 살이 찐다고 했다. 배곯은 우리민족은 그 때만 해도 살 찌는 것을 건강과 직결해서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들이나 산야에서 나는것보다 바닷바람을 쏘이고 자란것이 효험이 있다해서 부인병, 신경통, 피를 멈추게하는 담방약, 이루말할수 없이 많은 약재로 쓴다.
쑥은 하찮고 흔한 들풀에 불과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여러가지로 생활깊숙히 정이든 산채다. 식용으로, 약용으로, 화장품 재료로도 훌륭하다.
음식으로는 애탕국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것이고, 쑥떡, 쑥차, 쑥국수, 쑥 부침개,쑥 튀김등등이 나오더니 요즈음에는 쑥비누, 쑥치약까지 등장했다. 쑥에는 무기질과 비타민 A와C가 풍부한 산채이다.

내가알고있는 ‘쑥술” 을 손쉽게 만들수 있는 방법 하나.
어린쑥 두세줌을 깨끗이 씼어 물기를 거둔다. 소주열컵을넣어 어둡고 서늘한곳에 잘 보관하면 한달쯤후에 양주의 <페퍼민트>보다 훨씬색깔이 고운술이 된다. 향도 특이하고 좋을 뿐 아니라 신경통에 특효라고 한다.

이 낯선 땅에서 우연히 쑥을만난 반가움으로 자료를 찾아가며 <쑥타령>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내마음을 들여다 보시기라도 한듯 평소 존경하는 시인 K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올봄에 텃밭에 유난히 쑥이 많이 돋았으니 쇠기전에 뜯어가면 어떻겠느냐 하신다.

이번 주말에는 만사 제처두고 선생님 댁에가서 쑥을 한바구니 뜯어다가 곱게 채에 내린 쌀가루에 버무려 ‘쑥버무리’나 해볼까 한다. 벌써부터 향긋한 쑥 향기가 코끝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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