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온 부채

2007.04.18 11:23

정해정 조회 수:636 추천:34

  고향에서 미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큰조카가 인편으로 부채하나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부채를 좌르륵 펴 봤다. 부채속에는 진달래꽃이 가득차 와그르 쏟아진다. 부채살 한 쪽에는 날짜와, 조카 이름과, 이모가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적혀있다. 부채 그림은 봄에 그렸나보다. 적힌 날짜가 4월이다.
  조카와 나는 어렸을 적, 한 집에서 같이 자라온 터라 그 아이가(지금은 60 이 다됐지만) 손아래 동생처럼 정이 있어 내 곁에 나타난 것처럼 반가웠다. 부채에 대하여 이곳저곳 재미있는 자료를 찾아봤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부채를 단지 더위를 쫒는 도구로 이용하는 좁은 소견을 갖지 않았다. 우리 전통 예술 중 판소리나 무당굿을 할 때 부채가 지닌 상징은 대단했다. 폈다가 접는가 하면 말이나 노래나 동작을 보충해주는 보충역이었다.
  또 혼례를 치를 때 신랑이 신부집 대문을 들어서며 얼굴 아래쪽을 가리는 파란부채. 신부가 초례청에 나올 때 옆에서 거들어주는 여인이 신부 얼굴을 가려주는 빨간 부채. 이것들은 신랑신부가 때묻지 않은 숫총각 숫처녀라는 뜻이었다. 둘이 부채를 거둠으로 동정(    )을 주고받는 다는 무언의 동작이다.

  나라의 임금이나 집안에 상을 당하면 그림이나 글씨가 없는 하얀부채를 2년간 지니고 다녔다한다. 이것은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표시였다.
  쥘 부채는 접었다 폈다하는 구조를 여자의 순결에 비하기도 했다. 이 부채를 선물하여 순결을 지키고 기다리라는 사랑의 약속이기도 했다한다. 기방에서도 기생이 맘에 든 사람이 생기면 가만히 자기부채를 접어 임 앞에 밀어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 우리는 선풍기가 더운 바람을 몰아내고 에어컨은 더운바람을 찬 바람으로 바꾸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부채를 보면 반가움을 느끼고 부채 바람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부채의 실용성보다 부채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 아닌지.

  쟈료중에 이규태님 의 ‘아리랑 한국학’에 보면 부채의 팔덕이란 재미난 글이 있어 옮겨본다.
  비 올 때 갓을 가려 젖지 않게 해주니 일덕이요.
  귀찮게 달려드는 파리, 모기를 쫒아주니 이덕이며,
  요긴할 때 땅에 깔고 앉으니 삼덕이고,
  따가운 햇볕을 가리니 사덕이요, 일을 시킬 때 가르키니 오덕이고,
  먼 데 사람을 부를 때 십상이니 육덕이며,
  빚장이 만났을 때 얼굴을 가리니 칠덕이요,
  남녀가 내외할 때 쓰니 팔덕이라.

  또 하나 곁들여 있는 재미있는 얘기로.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더위를 쫒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용도였다. 사내들 눈쌀을 가릴때. 안보는 척하면서 보고싶을 때. 얼굴을 붉힐 때. 귀엣말을 할 때. 웃고 싶을 때. 덧붙여 댕기 잡으려는 총각놈 손을 내리칠 때…

  옛날에 수령이나 무관들도 부채를 휴대했는데 바람을 내는 용도가 아니라 아랫사람을 지휘하는 도구였다. 부채를 내리침으로 견책을 표시했고,부채를 접었다 폈다하므로 심경이 불편함을 나타냈다.

  우리 옛문화에 부채가 이르키는 바람에는 농사에 필요한 바람을 날려 보낸다고 해서 가뭄이 심하면 부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명을 임금님이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쥘 부채는 결의나 서약을 할 때 마음을 묶어두는 유형의 증거물이었다. 다수의 부채살이 한데 결속 되어 있음으로 일심동체를 다질 때 신물(神物)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는 다시 조카가 보내준 부채를 조심히 열어본다. 얼굴 가까이 살랑살랑 부쳐본다. 진달래꽃이 피어나면서 조카의 마음이, 고향의 향기가 진달래 향기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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