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되어 날으리

2007.04.18 11:28

정해정 조회 수:622 추천:33

    지난 주일이다. 서울에서 여고 동창생 친구가 왔다.
    미 서부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만나러 LA에 들렀노라 했다. 그 날은 올들어 첨으로 화씨 10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였기 때문에 나는 가까운 ‘산타모니카’ 비치로 안내를 했다. 바닷가라 바람은 좀 있으나 너무 많은 인파로 더위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리는 놀이기구들이 모여 있는 상가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뭔가 ‘푸더덕, 푸더덧’소리가 났다. 고개를 젖혔다. 시커멓고 커다란 독수리 형상의 연이 바닷바람에 푸더덧하고 날고 있었다. 그 위에는 원색으로 울긋불긋한 연들이 서너 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친구가 “모든 것이 큰 미국은 연도 우왁스럽게 크네” 하며 웃는다.

    우리 민족의 오랜 풍습으로 좋은 소식의 전달자로 믿었던 <방패연>이나, 하늘을 나는 욕구나 자유를 상징시켜주는<가오리연>과는 모양새나 느낌부터 영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 하늘로 띄운 연은 동서양이 그 의미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맨발로 바닷가로 나왔다. 순한 물결이 발목을 간지른다. 우리는 많은 소식을 주고 받았다. 고개를 젖히고 파란 하늘에 살아 움직이는 연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 풍습에는 연날리는 시기가 음력 정초부터 보름 경이지만 12월이 되면 아이들은 연을 날리기 시작한다. 현대에 와서는 아무 때나 바람만 있으면 언제라도 연날리기는 손쉽고 좋은 놀이로 변했다.

    민속놀이 중에 정월에 연에다가 (액)자를 크게 쓴 연을 하늘 높이 띄운다. 얼레에 감긴 실을 모두 풀어 얼레밑의 실을 끊어 영영 날려 버리는 <액막이 연>이 있었는가 하면 첩의 투정을 부적으로 그려 훨훨 날려버리는 <속풀이 연>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연이란 바람을 타고 공중에 날리는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런 하찮은 것에도 하늘과 땅의 연결과 중재를 기대하는 깊은 뜻이 담아 있었나 보다.

    삼국사기에 ‘연’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진덕여왕 원년에 비담 영종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김유신이 토벌을 담당했는데 어느  큰 별이 궁성에 떨어졌다. 백성들은 이것이 여왕이 패할 징조라 하여 큰 화가 생길 으로 두려움에 민심이 소란하게 됐다. 이어 김유신은 곰곰히 생각하다 꾀를 내었다. 큰 연을 만들어 밤중에 남몰래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런 다음 땅으로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이 퍼지자 민심이 수습되고, 군사들은 사기가 왕성해 싸움에 크게 이겼다.

    이 얘기는 연을 이용해 하늘의 뜻을 바꾸어놓은 일화라고 볼 수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에 신의 뜻이 담겨 있듯이 하늘로 띠워 올린 연에는 인간의 의지가 실려있다. 인간은 하늘은 나는 연에 소망을 빌고, 액운을 보내기도 다. 그러고 보면 연날리기는 철학이 담긴 유희라고 봐도 되겠다.

    영랑님의 <연>이라는 시를 적어본다.

    린날!/ 아슬한 하늘에 뜬 연같이/바람에 깜박이는 연실같이/
    날/ 아슴프레 하다/
    하얀 연/그 새에 높이/
    실 떠 놀다 내 어린날!  

    하늘을 쳐다본다. 연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나는 연을 날리는 자이기보다 연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하늘로 오르고 싶다. 그러다 연실이 끊기면 파란색 하늘에 풍덩 빠져 어디론가 아득히 둥둥 떠나가고 싶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고향하늘 쪽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3
전체:
34,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