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2007.04.26 11:49

정해정 조회 수:758 추천:43

  어떤 학자는 콩나물 원산지는 고구려라 했다.
  이민 초기에 서양식품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시금치도, 상추도, 숙주나물도 별의별것이 다 있길래 콩나물을 찾아봤다. 콩나물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오래 산 함께 간 친구에게 물었다.
  "서양사람은 콩나물은 안 먹는다고 하드라. 잘은 모르지만 콩 자체를 싫어하나봐.”
  "왜?"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는 몰라도 서양사람이 콩을 싫어하는 이유는 콩깍지가 지옥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여서래. 또 콩깍지 모양이 생식기를 닮아서라기도 하고___"
  친구는 입을 가리고 웃는다. 친구 말을 듣고보니 나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 책에선가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 던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콩나물을 먹으면 '오감'이 마비되고 광기와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래서 유령을 그릴 때는 콩나물 대가리에 하체는 털이 부숭한 하얀 외다리를 그렸던 모양이라고도 했다. 그런 콩나물에 대한 선입감 때문인지 서양사람들은 콩나물을 기르기는커녕 먹지도 않고 기피해 왔나보다. 같은 동양권 중국상점에서도 녹두의 싹인 숙주는 많이 있지만 콩나물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콩나물은 우리들만의 음식이 분명한가보다.
  콩나물은 시루 안에서 빽빽하게 모여 있어야 잘 자란다. 마치 서울의 좁은 도시에 지하철 안에서, 또 버스 속에서 서로 밀집되어 부대끼면서 잘도 살아온 우리 국민처럼.

  또 콩나물을 기를때는 뿌리 내릴 흙도 필요없고, 햇빛도, 바람도 필요없고, 그져 물만 주면 된다. 물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콩나물은 쓰고달고, 기름진 맛도 없다. 그저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소박한 맛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 중에 콩나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음식문화의 오랜 전통으로 콩나물은 밥상에 항상 단골로 앉아 있어도 물리지 않고, 나물로도, 국으로도, 밥으로도 항상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콩나물은 좁은 땅에서 이렇다 할 천혜의 자원도 없이 천재지변의 약정에 시달리면서도, 풍부한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는 세상에서 티없이 잘 살아온 우리 민족과 닮은 것은 아닐까. 또 콩나물을 삶을 때 익기 전에 뚜껑을 열면 비린내가 나는 것까지도 한국사람의 성격과 다를 바 없다고 책에서 말한다.

  오래 전, 수많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콩나물은 우리 곁에 있었다. 병이 났을 때는 죽으로 회복시켜 주었고, 밥상에는 가장 손쉽게 가장 맛있는 반찬으로 올라앉아 있었다. 감기에는 콩나물국에 고춧가루 한숟갈을 넣어 감기를 밀쳐 냈으며, 식구들이 밥맛을 잃었을 때, 콩나물밥을 해서 양념장에 비벼 먹으면 입맛을 돋구어 주기도 했다.
  콩에는 바이타민 C가 없으나, 나물로 기르면 생기고, 섬유질과 알콜 분해 성분이 있어 옛날부터 콩나물국은 숙취를 푸는 해장국으로 즐겨먹었다.

  뜨거운 욕탕 속에서 <어- 시원 해-> 하는 표현과 같이 뜨거운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 아- 시원하다-> 하는 표현은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민족만의 특유한 말이다.
  오늘 저녁 식탁에는 시원하고, 뜨거운 콩나물 국을 끓이고, 딸아이에게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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