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의 여행

2009.03.14 01:19

정해정 조회 수:904 추천:103

                           개똥벌레의 여행

개똥벌레는 등잔불 하나를 손에들고 잠 못 이 루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왁자지껄한 어느 집 창문에 등잔불을 들이대었습니다.

어느 부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민 온 걸 후회하고 다시 돌아가자고 트렁크를 내놓고 짐을 싸고,
남편은 기왕에 온거 참아보자고 소릴 지릅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조금만 견뎌 보세요. 폭풍우가 지나간 바위는 더 깨끗하고 튼튼하답니다
<힘듬>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을 들고 날아갑니다.

어느집 거실에서 청년이 목을 메어달아 자살을 하려고 하고 있네요.
사랑하는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아서요, 아서요. 살다보면 내뜻대로 이연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 하세요.
더 좋은 인연이 무지개 처럼 기다리고 있을 꺼예요.<아닌인연>을 이리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을 들고 날아 갑니다.

어느집 안방을 들여다 봅니다.

앗차! 어느여인이 막 한줌의 약을 입속에 털어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새 여자가 생겨 집에 안들어 온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스톱!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가슴아래 찌꺼기를 두지 마세요.
남아있는 앙금이 종기가 된답니다.
어서 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용서못함>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을 들고 날아갑니다.

개똥벌레는 등잔불에 심지를 돋우고 다시 밤길을 날아 갑니다.

어쩐지 슬픈 '쟈카란다'가 연한 보랏빛으로 밤을 에워싼 공원 벤치에
곤드레만드레가 된 아저씨가 술병과 함께 널부러져 있습니다.
이민와서 죽을만큼 열심히 일을해서 모은돈을 사촌형 한 입에 털어 넣었다고 길길이 뜁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잊으세요, 잊으세요. 돈은 다시 벌 수도 있습니다.
절망이 아무리 깊은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은 아니랍니다.
잊지 못하면 미움이 당신의 가슴을 난도질 칠껍니다. <못잊음>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과, <못잊음>을 들고 다시 날아 갑니다.

깜깜 한데도 십자가가 환한 어느교회 철야기도 중 입니다.

걱정만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만 모여 기도 하고 있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 지붕뚜껑을 열면 모두가 걱정 투성이랍니다.
걱정이 아무리 크다해도 해결못하는 걱정은 하나도 없어요.
물 한 방울이 강을 흐르게 한답니다.
오늘의 수고는 이것으로 끝이예요. 나머지는 그 분께 맡기세요.
그리고 <걱정>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모두 내려놓으세요.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세요.
이젠 새털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들면,
분명히 찬란하고 기쁜 내일 아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껍니다."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과,<못잊음>과,그리고 <걱정>을 모두 들고
싼타모니카 바다 한 가운데로 날아갑니다.

개똥벌레는 거기서 몽땅 빠뜨리고 두 손을 탈탈 털었습니다.

모든 잠못이루는 사람들은 하얀 구름 위에서 깊은 잠에 푸욱 빠져 들었습니다.

개똥벌레는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후유~~' 숨을 내쉬자 등잔불도 사르르 꺼졌습니다.

어느새 분홍빛 새벽은 달콤한 산들바람을 타고 웃으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금테 안경 [1] 정해정 2009.09.10 1596
100 밤에만 향기나는 꽃 정해정 2009.02.01 1554
99 꼬마 마술사 비두리 정해정 2010.01.09 1471
98 세월은 파도처럼 정해정 2009.07.26 1248
97 메이플 애비뉴의 비둘기들 정해정 2007.03.18 1230
96 깨져버린 거울 정해정 2007.02.21 1099
95 고해성사 정해정 2009.09.10 1053
94 그림 같은 시, 시 같은 그림 정해정 2009.03.07 1037
93 비둘기 발가락 정해정 2007.05.12 1023
92 수호천사 정해정 2010.06.07 1012
91 봄편지 정해정 2010.03.12 969
90 가을하늘 정해정 2010.03.09 940
89 황제 펭귄 정해정 2006.02.15 928
» 개똥벌레의 여행 정해정 2009.03.14 904
87 일상의 행복을 잔잔하게 이야기한 동화들 "빛이 내리는집" 정해정 2007.05.05 893
86 바람 (신년시) 정해정 2009.02.02 884
85 파리 정해정 2006.02.10 840
84 기러기 정해정 2007.04.26 831
83 파도 소리 정해정 2007.02.15 822
82 가을 기차 정해정 2009.01.28 809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4,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