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2008.08.27 09:36

이영숙 조회 수:372 추천:112



며칠 전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피아노를 배우겠다며 나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전화였다.
피아노 교사를 얼굴 보고 선택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특별히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잠시 망설였지만 본인이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하니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다음날 12시에 어느 음식점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말을 하였다.
서로의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으며 그 넓은 공간에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그녀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 예쁘거든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조금은 무안한지 “하하하...”웃었다.
그러면서 “생머리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금방 알아보실 거예요.”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내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과연 이 여인은 나이는 몇 살이며 얼마나 예쁘게 생겼길래 그 넓은 공간에서 내가 금방 알아볼 정도란 말인가?
가득한 의문을 가지고 약속시간보다 한 10분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들어오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예쁜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예쁘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였고, 금방 알아볼 정도의 튀는 사람이면 어느 정도는 내가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내가 금방 알아볼’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12시가 넘었는데도.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바로 얼마 앞에서 나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손짓하여 내 가까이로 부른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사람이 올라 올 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키는 작고 얼굴은 보통인데 화장도 그렇게 화려하게 한 것은 아니었으며, 약간 뚱뚱하기까지 하여 전혀 내가 예상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웃으며 가볍게 묵례를 하고 어제 저녁부터 외워둔 대사를 읊었다.
“아~ 정말 미인이시군요”
그러자 쑥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선생님이 진짜 미인이시네요”라며 응수하여 주었다.
처음 전화를 받을 때 난 그녀가 20대 후반이나 적어도 30초반의 여인일거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을 미인이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젊은 사람일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예상을 훨씬 넘어 40대 초반의 여자였다.  
그리고 최소한 날씬하며 키 크고 얼굴이 자신이 말하듯이 상당한 미인은 아니더라도 그야말로 뛰어난 화장술로 자신의 얼굴을 덮어서 ‘화장’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얼굴을 좀 높여 다니는 여인일거하고 상상하였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결코 진한 화장도 아니고, 더구나 화장술이 뛰어난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려 하였다.
나는 듣는 입장이고 그녀는 열심히 자신에 대한 안내를 상세히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젊었을 때는 예쁘다는 말도 들었을만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예쁘다고 말한 당당함이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외모뿐 아니라 집안 환경과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할 때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그 수다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잠깐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자신에 대하여 당당할 수 있음이 차라리 아름다움이 아닐까.
여자는 꽃이다.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꽃은 아름답다.  봉우리는 봉우리로써 아름다움이 있고, 활짝 핀 꽃은 활짝 피운 모습에서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그런가 하면 꽃은 시들 때가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풍긴다니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꽃은 자신을 아름답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어찌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까?
간혹 만나는 사람들 중에 보기에 꽤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잃고 풀이 죽어 지내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충분히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울 만한데도 그렇지 못하여 자신의 삶을 그늘로 끌어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꽃들의 모습이 어떠냐 보다는 햇빛아래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 좋다.
그늘에 숨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맘껏 나타내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답답하게 만든다.
봄꽃은 유난히 더 아름답다.  봄 여인도 아름답다.
푸른 잎을 마다하고 화려하게 온통 꽃만으로 장식하는 봄꽃은 자신만의 도도함이 특유의 아름다움이다.
남들의 견해를 배제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가득하게 가진 자신감 역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겨울을 막 벗어나 따뜻한 봄바람의 손길로 피운 꽃이기에 더 아름답다면, 움추린 현상들을 떨쳐내고 포근한 사랑의 손길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여인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문을 열어보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봄꽃으로 피어나 보자.
벌, 나비를 불러 모을 향기도 날리며 가지고 있는 꿀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나눔’ 또한 한껏 뽐낼 아름다움이니.
때로는 봄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힘들게 할지라도 내가 봄꽃임을 잊지 않는다면 여전히 당당할 수 있다.

이 봄에 활짝 핀 꽃처럼 자신만만하게 피어서 어깨를 펴고 가슴을 열고 ‘나, 예뻐요.’라고 외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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